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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 대화 2014_0205_수요일_07:00pm 2014_0213_목요일_07:00pm 2014_0216_일요일_07:00pm 2014_0224_월요일_07:00pm
* 작가와의 대화 1회 70명 선착순 마감 참여신청_anotherway.kr/etc/poet_meet.php
도슨트 / 02:00pm_07:00pm (단체 신청 가능)
주최 / 고담
관람료 성인_5,000원 / 청소년,어린이_3,000원 만 6세 이하,만 65세 이상,국가유공자,장애인_2,000원 * 20인 이상 단체 1,000원 할인 * 2월4일까지 사전예매시 동반 1인 무료
관람시간 / 11:00am~08:30pm / 입장마감_08:00pm
세종문화회관 SEJONG CENTER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175(세종로 81-3번지) 미술관 본관 B1 Tel. +82.2.399.1161~4 www.sejongpac.or.kr
"우리 인생에는 각자가 진짜로 원하는 무언가가 있다. 분명, 나만의 '다른 길'이 있다" 인간에게 위대한 일 세 가지가 있다. 사는 것, 사랑하는 것, 죽는 것. 박노해 사진전『다른 길』은 이 위대한 '일상의 경이'를 펼쳐 보인다. 티베트, 라오스, 파키스탄, 버마, 인도네시아, 인디아 등에서 기록해온 7만 여 컷 중 엄선한 120여 컷의 사진이 '다른 삶'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 지난 14년간 오래된 만년필과 낡은 흑백 필름 카메라 하나를 들고, 지상의 가장 멀고 높고 깊은 마을과 사람들 속을 걸어온 박노해. 이번에 포커스를 맞춘 곳은 아시아다. 눈물 젖은 땅이었으나 그 슬픔의 힘으로 치유하고 소생하는 강인한 생명의 땅이자 영혼의 대지임을 보여준다. ● 자신이 무슨 위대한 일을 하는지 인정받으려 하지도 않으며 인류를 먹여 살릴 한 뼘의 대지를 늘려가는 전통마을 토박이들. '어찌할 수 없음'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어찌할 수 있음'은 최선을 다해가면서, 우리 삶은 '이만하면 넉넉하다'고 서로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들. ● 박노해의 사진은 눈에 띄지도 않고 역사에 기록되지도 않는 이름없는 이들의 헌신과 고결을 묵묵히 포착해낸다. 이들이야말로 그 누구보다 이 세상 깊숙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삶의 전위'임을 그려 보인다. 그러나 이 낯선 세계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순간, 그 안에서 마주하는 것은 정작 나 자신이다. 우리 가슴 안의 무언가를 탁, 건드리며 근원적 소망을 불러일으키는 힘을 경험하게 된다. ● "우리 인생에는 각자가 진짜로 원하는 무언가가 있다. 분명 나만의 '다른 길'이 있다." 티베트에서 인디아까지 박노해의 뜨거운 '발바닥 사랑'으로 써온 다른 삶 속으로의 여정. 새해 아침, 내 마음의 순례길을 함께 걸어가 보자. 한 걸음 다른 길로. 한 걸음 나에게로. ■ 고담
남김없이 피고 지고 ● 야크 젖을 짜던 스무 살 엄마가 아이에게 젖을 먹이러 천막집으로 들어간다. "나는 이 지상에 잠시 천막을 친 자이지요. 이 초원의 꽃들처럼 남김없이 피고 지기를 바래요. 내가 떠난 자리에는 다시 새 풀이 돋아나고 새로운 태양이 빛나고 아이들이 태어나겠지요." 충만한 삶이란, 축적이 아닌 소멸에서 오는 것이 아니던가. 우리 삶의 목적은 선물 받은 하루하루를 남김없이 불살라 빛과 사랑으로 생의 도약을 이루는 것이 아니던가. 밀밭의 빵 굽는 시간 ● 파란 밀싹이 힘차게 돋아나고 은빛 억새꽃이 바람에 날릴 때 직접 씨뿌려 거둔 햇밀을 빻아 멋진 손 반죽 리듬으로 화덕에 굽는다. 노랗게 익어 부풀어 오른 로띠를 꺼내면 지상에서 가장 건강하고 맛있는 갓 구운 빵 냄새가 그윽이 퍼져나가고 아이의 입가에는 흐뭇한 미소가 번진다.
노래하는 호수 ● '버마의 심장'이라 불리는 인레 호수는 고원 지대에 자리한 '산 위의 바다'이다. 푸르스름한 물안개 속에 태양이 떠오르면 인레 어부들은 고요한 호수 위를 걷듯 가만가만 두 발로 노를 저어간다. 인레 호수의 고기잡이는 천지인天地人이 하나 되어 이뤄내는 부드럽고 치열한 떨림의 몸짓이다. 자연이 길러준 것을 오늘 하루 필요한 만큼만 취하는 깨끗한 노동은 감사한 밥이 되고 평정한 영혼이 된다. 작은 그물을 당겨 은빛 물고기를 거두어 받는 시간, 어부의 노동은 우아한 춤이 된다.
짜이가 끓는 시간 ● 하루에 가장 즐거운 시간은 짜이가 끓는 시간. 양가죽으로 만든 전통 풀무 마시키자로 불씨를 살리고 갓 짜낸 신선한 양젖에 홍차잎을 넣고 차를 끓인다. 발갛게 달아오른 화롯가로 가족들이 모여들고 짜이 향과 함께 이야기꽃이 피어난다. 탐욕의 그릇이 작아지면 삶의 누림은 커지고 우리 삶은 '이만하면 넉넉하다'.
화산의 선물 ● 세계에서 화산火山이 가장 많은 나라 인도네시아는 풍요로운 '불의 땅'이다. 화산은 두려움과 선물을 동시에 준다. 화산이 폭발한 자리에 탄생한 비옥한 대지는 혁명 같은 격동이 준 위대한 선물이다. "우리는 화산의 선물로 살아가고 있으니 나 또한 누군가의 선물이 되어야겠지요." 저 높고 깊은 곳의 농부는 허리 숙인 노동으로 이 무너지는 세상을 묵묵히 떠받치며 자신의 등을 딛고 인류를 오르게 하는 빛의 디딤돌만 같다. 인디고 블루 하우스 ● 인디아 여성 농민은 누구나 최고의 건축가다.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손수 디자인해 집을 짓고 살아가면서 불편하고 아름답지 않은 것은 고쳐나간다. 한 마을에서도 똑같은 집이 하나도 없는 개성이 담긴 집. 부드러운 살결 같은 흙벽에 청명한 하늘빛을 닮은 인디고 블루를 칠하고 흰 쌀가루를 개어 그림을 그린다. 물 항아리를 이고 든 여인이 자신이 다져 만든 인디고 빛의 계단을 사뿐사뿐 걸어 오른다.
그 길이 나를 찾아왔다 ● 그렇게 시작됐다. 나의 유랑길은. ● 한 시대의 끝간 데까지 온몸을 던져 살아온 나는, 슬프게도 길을 잃어버렸다. 나는 이 체제의 경계 밖으로 나를 추방시켜, 거슬러 오르며 길을 찾아 나서야 했다. '앞선 과거'로 돌아 나오고자 하는 기나긴 유랑길이었다. ● 오래된 만년필과 낡은 흑백 필름 카메라 하나를 들고 내가 가 닿을 수 있는 지상의 가장 멀고 높고 깊은 마을과 사람들 속을 걸었다. 내가 찾아간 마을들은 공식 지도에 없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현장에서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길을 잃어버리곤 했다. ● 이 세계의 지도가 선명하고 첨단일수록 길은 하나뿐인 길. 그렇게 오래되고 다양한 삶의 길들은 무서운 속도로 잊혀지고 삭제돼가고 있었다. 어느 아침 나는 지도를 던져 버렸다. 차라리 간절한 내 마음속의 '별의 지도'를 더듬어 가기로 했다. ● 막막함과 불안과 떨림의 날들. 난 모른다. 언제였는지.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왔는지 나는 모른다. 길을 잃어버리자, 그 길이 나를 찾아왔다. 아주 오래 전부터 누군가 나를 부르고 있었다.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길에서 만난 그 땅의 사람들이 나의 살아있는 지도였고 나의 길라잡이였다. ● 눈부시게 진보하는 세계와 멀어져 사람들 눈에 띄지도 않는 험난한 곳에서 자급자족의 삶을 이어온 전통마을 토박이들. 자신이 무슨 위대한 일을 하는지 의식하지도 않고 인정받으려 하지도 않고, 인류를 먹여 살릴 한 뼘의 대지를 늘려가고자 오늘도 가파른 땅을 일구어가는 개척자들. ● 인간이기에 '어찌할 수 없음'의 주어진 한계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인간으로서 '어찌할 수 있음'의 가능성에 최선을 다해 분투하면서, 우리 삶은 '이만하면 넉넉하다'며 감사와 우애로 서로 기대어 사는 사람들. ● 역사에도 기록되지 않고 마치 한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들처럼 잊혀지고 무시되고 있지만, 이들이야말로 그 누구보다 이 세상 깊숙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이야말로 이 세계를 떠받치고 있는 지구인류 시대의 진정한 '삶의 전위'이다. 어느 날 이들이 사라지고 나면 우리 삶의 지경地境과 인간 정신은 단번에 그만큼 줄어들고 숨 막혀 오리라. ● 역사상 가장 풍요롭고 똑똑하고 편리해진 시대에 스스로 할 수 있는 인간 능력을 잃어버리고 모든 걸 돈으로 살 수밖에 없는 무력해진 세계에서, 그들은 내 안에 처음부터 있었지만 어느 순간 잃어버린 나 자신의 모습이다. ● 조용한 시간, 내 마음 깊은 곳의 소리를 듣는다. '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 '나, 어떻게 살아야 하나?' ● 나는 실패투성이 인간이고 앞으로도 패배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겠지만, 내가 정의하는 실패는 단 하나다. 인생에서 진정한 나를 찾아 살지 못하는 것! 진정으로 나를 살지 못했다는 두려움에 비하면 죽음의 두려움조차 아무것도 아니다. ● 우리 인생에는 각자가 진짜로 원하는 무언가가 있다. 나에게는 분명 나만의 다른 길이 있다. 그것을 잠시 잊어버렸을지언정 아주 잃어버린 것은 아니다. 지금 이대로 괜찮지 않을 때, 지금 이 길이 아니라는 게 분명해질 때, 바로 그때, 다른 길이 나를 찾아온다. 길을 찾아 나선 자에게만 그 길은 나를 향해 마주 걸어온다. ● 나는 알고 있다. 간절하게 길을 찾는 사람은 이미 그 마음속에 자신만의 별의 지도가 빛나고 있음을. 나는 믿는다. 진정한 나를 찾아 좋은 삶 쪽으로 나아가려는 사람에게는 분명, 다른 길이 있다. ● '무력한 사랑'의 발바닥 하나로 써온 이 유랑노트가, 그대 삶이 흔들릴 때마다 작은 위로와 용기가 되어주기를. 이미 오래 전부터 그대를 초대해온 그이들과 함께 내 마음의 순례길을 걸어가 보자. ● 한 걸음 다른 길로. 한 걸음 나에게로. (2014 甲午년 2월 4일) ■ 박노해
아시아에서 길어 올린 동그란 희망 ● 1. 2014년 갑오년 새해를 맞아, 아시아의 소망을 기록한 박노해를 만난다. "시인이자 노동자이자 혁명가"로 살아온 박노해. 이제 카메라를 든 '사진가 박노해' 또한 낯설지 않다. 2003년 전쟁의 이라크에 뛰어들며 본격적인 평화활동을 시작한 그는 "국경 너머 가난과 분쟁 현장의 살아있는 진실을 글로는 다 전달할 수 없는 절박한 필요 때문에 카메라를 들게 되었다. 약자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도, 강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도 카메라였다"고 말한다. 박노해는 시인이 되기 위해 시를 쓴 것이 아니듯, 사진가가 되기 위해 카메라를 든 것이 아니었다. 그의 사진은 사랑의 실천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물이었다. 그 역사가 벌써 10년을 훌쩍 넘기면서 그는 작업의 지속성과 전문성, 그리고 진정성으로 독창적 경지를 열어가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 몇 년 전 나는 반가운 편지 한 통을 받았다. 작가주의를 지향하는 세계적인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그룹「매그넘」의 정신적 지주로 존경받는 요제프 쿠델카Josef Koudelka가 보내온 친필 편지였다. 박노해 사진집 『나 거기에 그들처럼』을 받고 보낸 화답이었는데, "박노해 시인에게 나의 경외의 마음을 전해달라"는 내용이었다. 국경과 민족을 넘어 인류애의 보편성을 치열하게 밀어나가는 두 작가가 사진을 통해 마음을 나눈 이 일은 기획자인 내게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 지난 2010년 개최된 두 번의 사진전을 통해서 우리는 박노해의 뜨거운 삶과 실천을 만날 수 있었다. 첫 번째 사진전『라 광야』展은 지구 시대 인류의 가장 아픈 지점인 중동현장 10년의 기록이었고, 같은 해 세종문화회관에서 개최된 두 번째 사진전『나 거기에 그들처럼』展은 아프리카?중동?아시아?중남미에서 촬영해온 12년간의 작품 활동을 총망라한 전시였다. 두 번의 전시 모두 깊은 성찰과 울림을 남기며 화제의 전시로 기억되고 있다. 그리고 2011년부터 현재까지 비영리사회단체「나눔문화」가 운영하는「라 카페 갤러리」에서 그의 글로벌 평화활동 사진이 상설 전시되고 있는데, 유례없이 많은 6만여 명의 관람객들이 이곳을 찾았다. ● 하지만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관람객의 숫자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관람객들에게 작가의 사진이 얼마나 깊은 내면의 감동으로 이어지고 있느냐는 것이다. 박노해의 사진전은 "가장 긴 시간 머무른 전시", "가장 많은 눈물을 흘린 전시", "재방문자가 많은 전시", "도록과 작품 판매가 많은 전시" 등으로 불리었다. 그래서 나는 어느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의 전시를 '문화적 사건'이라고 언급한 바도 있다. 지금은 손바닥에서 사진의 빠른 소비와 공유가 가능해진 시대이며 그 양이 폭주하고 난무하는 시대다. 자의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하루에도 수백 컷이 넘는 사진을 보게 되는데, 내 삶의 '결정적 사진'을 만나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 이처럼 속도 빠른 시대에 시간을 내서, 두 발로 느릿느릿 전시장을 둘러보며 침묵으로 사진을 응시하는 행위와 체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내면에 깊은 파동을 남긴다. 전시장은 하나의 독립된 세계가 탄생하는 공간이다. 그곳에서는 고요하고도 신성한 '빛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시간의 문턱'을 넘어 직접 가보지 못한 현장의 사람들과 국경을 넘는 깊은 대화를 나누고, 작가의 삶과 사상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이 낯선 시공에서 만나게 되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 2. 박노해가 찾아가는 현장은 거의 공식적인 지도에는 나오지 않는 곳들이다. 간절하게 길을 찾는 그의 발바닥이 지도였고, 그 길에서 만난 사람들이 그의 지도였다. 80년대 혁명의 아이콘이자 『노동의 새벽』의 시인으로 한국사회에서 너무나 선명한 존재감을 지녔던 그는, 민주화 이후 모두가 예상했던 길을 걸어가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를 추방시켰다. 그가 떠난 '지구 시대의 유랑 길'은 가장 멀고 깊고 위험한 현장으로의 자발적 추방이었다. ● 전쟁과 분쟁의 땅, 저항의 최전선에 선 그의 찰칵하는 셔터 소리에는, 소리 없는 생명과 약자들의 한숨과 눈물과 기도가 담겨있다. 그리고 70억 인류 중에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실제로 살고 있는 토박이의 삶과 대지의 노동을 담아냄으로써, 지금 시대 무엇이 진정한 '현장'이고 무엇이 근원적 '삶'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 로버트 카파는 "만약 당신의 사진이 충분히 만족스럽지 않다면, 당신은 충분히 가까이 가지 않은 것이다"라는 금언을 남겼는데, 그는 이를 '심리적인 거리'에도 적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사진작가가 카메라를 드는 순간 어쩔 수 없는 '나'와 '너'의 거리가 발생한다. 문화적 거리이기도 하고 찍는 자와 찍히는 자의 물리적 혹은 심리적 거리이기도 하다. 박노해의 사진에서는 대상과의 물리적인 거리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거리를 끝까지 좁혀가려는 분투가 느껴진다. 그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필름 카메라와 35mm 렌즈를 고수하며, 대상에게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기를 선택했다. 그에게 줌 렌즈는 그의 발바닥이었고 플래시는 그의 눈물이었다. 박노해는 그 지역의 문화와 역사, 노동과 저항, 고유한 살림살이에 대한 깊은 이해와 경외심으로 온몸을 기울여 다가서며 그들 삶과 내면의 뿌리까지 나직이 스며들어 간다. 눈에 띄지도 않고 역사에 기록되지도 않는 이름 없는 이들, 위대한 평민들의 헌신과 고결을 묵묵히 포착해내는 박노해의 사진 철학과 미학이 탄생하게 된 까닭이다. 대상과 육친적으로 하나가 된 듯한 그의 진실한 사진은 우리 가슴에 거부할 수 없는 강물로 흘러들어온다. ● 3. 이번 전시에서 박노해는 '아시아'로 초점을 맞춘다. 지난 3년간 아시아 전역을 기록한 흑백 필름 사진은 무려 7만여 컷. 3년의 작업이라고 하기엔 믿기지 않을 만큼 방대하고 다양하다.『다른 길』展에는 인류 정신의 지붕인 땅 티베트에서부터 예전에는 천국이라 불렸으나 지금은 지옥이라 불리는 파키스탄을 거쳐 극단의 두 얼굴을 지닌 인디아까지 총 6개국의 엄선된 120여 컷이 전시된다. 사진 속 아시아는 오랜 식민지배와 자연재해와 세계화의 모순이 겹겹이 쌓인 '눈물의 땅' 아시아도 아니며, 막연한 그리움과 신비화된 '오리엔탈'의 아시아도 아닌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 "위기에 처한 자본주의를 구원할 주체"로 아시아의 시대를 호명하고 있는 지금, 지난 16년간 아시아 곳곳을 두 발로 누벼온 박노해는 깊은 물음을 던진다. "아시아 시대의 부상은, 단순히 경제권력이 이동하는 문제를 넘어 '문명 전환'의 숙제를 안겨주는 인류사적 사건이다. 세계 절반이 넘는 거대 인구 공동체가 '성장과 진보'라는 서구의 길을 뒤따라간 자리에 과연 무엇이 남을 것인가?" ● 그 동안 뒤떨어진 듯 여겨져 온 아시아는, 박노해에게 오히려 '좋은 삶의 원형'이자 '희망의 종자'가 남겨진 땅이다. 그에게 새벽 별은 "가장 먼저 뜨는 찬란한 별이 아니"라 "가장 나중까지 어둠 속에 남아있는" 별이듯, 아시아 토박이 마을 '최후의 사람들'은 우리가 가야 할 목적지를 비추는 '최초의 사람들'이기도 한 것이다. 서구 중심의 '성장과 진보'의 세계관을 넘어선 대안 혁명의 세계관을 오랫동안 모색해온 그는 아시아 토박이 마을 삶 속으로 들어가 마지막 남은 희망의 종자를 채취하듯 사진을 찍고 글을 써왔다. ● 박노해가 발견한 아시아 특유의 정신과 삶은 '순환', '순수', '순명'이다. 첫 번째 열쇳말은 '창조적 순환'이다. 아시아는 앞에서 읽어도 뒤에서 읽어도 똑같이 읽히는 '동그라미'다. 서구는 발전을 직선으로 인식한다. 과거를 뒤로 하고 앞으로 나가는 것이 진보다. 하지만 아시아의 사유방식은 '순환'이다. 동그란 길을 따라가면 어디가 먼저이고 뒤인지 알 수 없다. 시간이 지나면 행위의 결과가 되돌아온다. 사진 속 티베트 초원의 여인은 말한다. "누구든 한 자리에 오래 머물면 이 초원은 황폐한 사막이 되고 말지요. 우리 모두는 영원한 거처를 지은 자가 아니라 이 땅에 한 시절 천막을 친 자이니까요." ● 두 번째 열쇳말은 '순수'이다. 그의 사진 한 장 한 장에는 5천 년의 시간 흐름이 담겨있다. 거슬러 올라 길을 찾아온 박노해는 오래된 것에서 미래를 발견한다. 인류의 4대 종교가 발원하기도 한 아시아에서 시원의 순수가 뿌리박은 땅과 삶의 이야기를 지켜온 토박이들, 대지에 뿌리내린 자급자립의 살림을 가꾸며 고유한 문화를 간직해온 이들은 인류의 씨종자와도 같은 존재임을 박노해의 사진은 그려 보이고 있다. ● 세 번째 열쇳말은 '순명'이다. "욕망은 끝이 없지만, 우리 삶은 이것으로 충분하다. 이만하면 넉넉하다"고 말하는 사람들, 함께 사는 지구 위에서 자기 몫의 한계성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사람들. 이것이야말로 아시아가 지켜온 오랜 삶의 지혜이다. 탐욕을 절제하고 주어진 자연 조건의 한계 속에서 최선의 창조성을 발휘하며 끈질긴 인간 노동으로 고유한 삶을 아름답게 꽃피워내는 아시아의 힘, '순명의 정신'이 박노해의 사진 속에서 장엄하게 펼쳐진다. ● 4. 박노해가 담아낸 작고 낮은 존재들의 사진에서는 놀랍게도 거룩함과 성스러움이 느껴진다. 어느 관람객은 그의 사진을 가리켜 "21세기의 살아있는 성화聖畵"라는 인상 깊은 평을 남기기도 했다. 과거의 성화는 세상이 인정하고 떠받드는 제도화된 신과 왕을 그렸다면, 과학의 손길로 모든 신비가 벗겨져 가는 21세기의 성화는 자본 권력이 스타로 만들기 위해 찍어내는 이미지들이 되었다. ● 그러나 박노해는 가난하고 힘없고 이름 조차 없는 토박이들을 그 자체로, 대지에 뿌리박은 그 흙냄새로, 인간의 존엄과 성스러움이 느껴지는 성화를 그려내고 있다. 힘겨운 상황 속에서도 서로 의지하고 노동하고 기도하며 다시 삶을 꽃피워가는 강인한 토박이들의 삶은, 누구보다 위엄 있는 인간으로 우리 앞에 다시 선다. ● 나아가 박노해는 그 내용에 걸맞은 독창적 형식과 미학을 이루어왔다. 그중에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바로 '역광'과 '절제된 빛'이다. 사진에서 빛은 결정적이다. 빛은 새벽, 아침, 정오, 저녁 등 때에 따라 전혀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고 사진의 느낌과 내용을 결정한다. 사진을 기다림과 인내의 미학이라고 하는 것도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이미지에 적당한 시간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가, 박노해는 본능적으로 빛을 읽는 작가인 것 같다. 무대 위에 선 주인공의 뒤로 조명을 비추면 신비로운 아우라가 생기듯, 그는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던 존재들을 역광으로 촬영함으로써 감동을 배가시키고, 주인공의 앞면에 깔린 길고 짙은 그림자는 중후함과 드라마틱한 느낌을 더해준다. ● 여기 파키스탄의 손수 지은 아담한 흙집에서 가족이 아침을 맞아 전통 차 짜이를 끓이며 언 몸을 녹이는 사진이 있다. 미소를 띤 얼굴로 다정한 대화를 나누는 그들에게 전통 가옥의 천장 구멍 사이로 '햇빛 기둥'이 내려온다. 그 한 줄기의 절제된 빛에 인물들의 실루엣이 신비롭게 강조되고, 어찌 보면 평범하고 남루한 일상은 신성한 의례로 탄생한다. 인간 삶의 본질을 기록하는 작가 박노해만의 독특한 관점은, 바로 이처럼 놀라운 사건이 아닌 '일상의 경이'를 담아내는 것이다. 이 충만한 아침을 담은 사진 한 장은, 우리가 무엇 때문에 이런 작고 소박한 아름다운 시간을 누리지 못하게 되었는지 돌아보게 한다. ● 그리고 버마의 인레 호수에서 작은 조각배에 몸을 의지한 채 그물을 당겨 고기잡이하는 어부의 사진이 있다. 조각배가 물결 사이로 흘러들어 가는 순간의 포착은 역동적인 노동의 힘을 발생시킨다. 이 어부의 왼편으로는 조각배에 앉아 있는 또 한 사람의 어부가 보이는데, 이는 대비와 반복의 리듬을 생성하며 프레임 밖의 다른 많은 어부를 상상하게 한다. 사선으로 흘러내리는 아침의 역광 아래, 먹고 살기 위한 고기잡이 행위는 돌연 노동의 춤이 되고 장엄한 신성을 느끼게까지 한다. ● 5. 박노해의 사진은 한 작가가 찍은 것일까 싶을 만큼 너무도 다양하지만, 그것은 분명한 주제로 흐르며 하나의 물음으로 관통된다. '무엇이 좋은 삶인가', '나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는 근원 물음이다. 지금 우리에겐 진정한 위로와 치유가 필요하다. 그 어느 때보다 정직한 희망과 용기가 필요하다. 박노해의 사진 앞에 멈추어 서는 순간 우리는 사진에서 흘러나오는 정감과 시정詩情을 느끼며, 언제부터인가 망각하고 있던 삶에 대한 근원적인 소망을 마주하게 된다. 가난하고 척박하고 고달픈 땅에서 오히려 희망을 발견하는 이 강렬한 반전이야말로 바로 박노해 사진의 힘인 것이다. ● 또한 사진 한 컷마다 역사 배경과 이야기와 삶의 화두까지를 담은 스토리가 있는 사진 캡션은 사진의 힘을 배가시킨다. 발터 벤야민은 사진과 글은 분리할 수 없는 한 몸뚱어리 같은 결합이라고 말했다. 사진에서 보여지는 한순간의 이미지가 만들어지기까지 긴 지속의 시간이 있었다. 그런데 사진은 항상 현재진행형만 찍기에, 과거 맥락은 글로 전할 수밖에 없다. 박노해의 사진과 글은 각기 독립적이면서도 서로를 지탱하며 커다란 상승효과를 불러일으킨다. ● 간편한 디지털 시대의 도래로 흑백 필름 작업과 아날로그 인화가 거의 사라진 오늘, 첫 전시부터 필름 카메라로 기록하고 전통 흑백 아날로그 방식으로 인화한 박노해의 작품은 그 계조의 깊이와 예술성으로 국내외의 주목을 받았다. 이번 전시는 이제 유럽에서조차 보기 어려운 '대형 흑백 아날로그 인화 작품'을 다시 한 번 만나는 자리가 될 것이다. 흑과 백의 계조만으로 이렇게 뜨겁고 찬연할 수 있으며, 그 나라의 자연 색감을 보여주기 위해 엄선한 몇몇의 칼라 작품은 눈이 시리다. ● 작가가 현지에서 직접 구해온 세계 각지의 배경 음악과 유럽의 인쇄를 뛰어넘는 격조 높은 아트프린팅 사진집 등 박노해 사진전『다른 길』은 빛으로 써 내려간 시각적 즐거움과 오감의 풍요가 느껴지는 전시가 될 것이다. ● 이제 박노해라는 한 영혼이 걸어온 '다른 길'을 따라, 시원의 순수와 신성함으로 거슬러 오르는 시간 여행을 떠나보자. 낯선 세계와의 만남이지만, 그 속의 사람들과 친구가 되는 만남은 나 자신과의 만남이기도 하다. 그들은 기꺼이 등불을 들고 길라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길 찾는 그대에게 위안과 영감을 주는 내 마음의 순례길에서 우리는 '낯선 길에서 기다려온 또 다른 나'를 만나 함께 손잡고 돌아오게 되리라. ■ 이기명
Vol.20140205a | 박노해展 / PARKNOHAE / 朴노해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