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의 대화 / 2014_0125_토요일_05:00pm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월요일 휴관
오픈스페이스 배 OPENSPACE BAE 부산시 기장군 일광면 삼성리 297-1번지 Tel. +82.51.724.5201 www.spacebae.com
소소한 미술 커뮤니티를 말한다. ● 생초라는 낮선 지역에 레지던시라는 또 하나의 유령이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레지던시 공간의 지리적 생뚱맞음이 이제는 그리 큰 이슈가 못 된다. 워낙에 국내 여기저기에서 레지던시가 광풍을 이루고 있으니 생초라는 곳이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넓은 운동장, 한적한 시골분위기, 맑은 공기, 훌륭한 스튜디오시설 오히려 작가들에게 작업하기에는 구미가 당기는 곳이다. 와보지 않음 알 수가 없다. 필자는 두 번 방문 중 한 번은 몸과 생각들을 내려놓고 작가들과 하룻밤을 엉켜버렸다. 다행인지 모르겠으나 조형섭 작가를 만나는 기회가 되었고 고작 두 번 대면에 작가의 작업에 관해 살짝 끼어들기를 하면서 주제 넘는 글을 쓴다. ● 조형섭 작가는 본인의 작업과 매우 유사한 풍경을 찾아 다니는듯하다. 하루에 마을버스 몇 편 안다니는 경기창작센터의 대부도, 독일의 외딴 도시, 그리고 여기 생초 경남창작센터까지... 서둘러 말해, 작가에게 어떤 기분일지는 모르겠으나, 계속 유목민처럼 외딴 곳으로 유령이 되어 흔적들을 탐닉하고 다니면 어쩌지, 스스로 그 생각들의 범위를 구획하지 않고 세간의 눈높이 따위는 모르세로 일관해 버리며 레지던시의 참호 속으로 들어가 버리면 어쩌지, 괜한 생각을 해본다.
작가의 작업실은 물리적인 공간만은 아니다. 그 곳에서 게으름을 피우기도하고 친구들 모아 술 마시며 놀기도 하고 사유(思惟)하는 투쟁의 장이 되기도 한다. 또한 지금과 같은 여건의 시설을 갖추고 정착해서 안정적 공간을 소유하는 것이 많은 작가들의 현실이며 바램들이다. 그러나 레지던시가 주는 떠날 시간을 정해 놓은 작업실은 작가에게 매우 유리한 입장으로 해석 될 수 있다. 창작이 그러하듯 스스로의 자극을 통해 바짝 긴장하는 끈을 일상에서는 그리 녹녹치 않으니 말이다.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갈 때는 그래도 작가라는 삶이 매우 가치 있구나, 혹은 또 다른 프로젝트를 도모해서 일거리를 만들어야 이번 레지던시 잘 한 것일까? 조형섭 작가에게는 그러한 지점을 읽어낼 도리가 없다. 낯설지 않은 그냥 작업실로 작업들이 나에게 읽혀졌다. 그가 최근 작업한 「부흥상회1+1」을 대면하면서 더욱 자연스럽게 감지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번 생초 작업실에서의 그의 작업들은 소위 작가에게 새로운 "부흥"이 될까!
부흥상회_1+1이란 작업을 들여다보자. 둘이란 말인가? 하나라는 것인가? 「원+원」 마트에서 매우 자연스럽게 통용되는 문구이다. "페아노 공리계"의 수학적 원리에서 기인한 하나와 하나를 더하면 둘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작가는 슬리퍼, 소반, 자개농 등 기능을 다한 오브제들에게 말을 걸어 매끈한 솜씨도 부리지 않고 최소의 결합/재구성 을 통해1+1을 말하고 있다. 자개농은 합판처럼 잘려져 새마을 운동 시절에 유행했던 "잘 살아보세"처럼 "부흥상회"라는 텍스트로 예술이 이제는 부흥 하는가 라고 마치 외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 부흥에 반해 이미 예고하듯 매우 쓸쓸하게 전시장에서의 작품은 그 목소리가 작아져가고 있고 많은 이들과 말 걸기를 기다리고 있다. ● 소반과 가구들 또한 일상의 시간과 흔적들을 조합하여 그 기능은 다 하였지만 형태로써 다시 말을 건다. 1+1 이렇게... 조합하는 방식은 물질보다 시간과 사유를 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 방식은 어디에서도 일상적으로 통용되는 방식이 아니다. 오롯이 작가 본인만의 기술을 뽐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 더하기에 나도 더해지고 싶은가 보다. ● 에디슨이 흙 한 덩이와 한 덩이가 합치면 한 덩이라고 선생님한테 질문을 했다는 일화가 있다. 작가는 내안의 또 다른 타자, 나와 너, 우리와 사회의 규정 되지 않는 +(더하기)로 예술을 나누고자 한다. 매우 작은 출발에서 기인하는 소소한 커뮤니티 아트를 실천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실천들은 매우 유의미하고 파장은 점점 강도 있게 울림이 있을 것이다. 예술이 사회적 기능을 관계하는데 있어서 거대담론이나 자극적이야 한다는 것이 편견임을 작가를 통해 확인할 수 있으며 작가가 실천하고 있는 예술이 지금 혹독한 현대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개인들로 하여금 기억의 편린들이, 치유와 회복된 시간으로 재생산해 내는 방법들을 잘 알려주고 있다. ● 필히 소소한 지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고 반드시 또 다른 여지의 더하기를 챙겨보며 불통을 피하지 말고 소통할 때 커뮤니티 아트라는 다소 모호한 영역에서 작가의 커뮤니티가 형성 될 것이다. 이번에는 첫 만남이니 지금의 유목적 환경 속에서의 작업만 살짝 개입해본다. 그가 경험한 유토피아를 꿈꾸는 잠수탁 그리고 다른 이야기들은 다음 기회로 미뤄두고 싶다. 그래서 또 다른 밤을 기약하며 그 잠수탁에 몸을 실어볼까 한다. 기대된다. ■ 서상호
작가로서의 나는 지극히 일상적인 오브제와 그리고 그 오브제들이 만들어 내는 주변의 조건 및 상황들에 관심을 집중한다. 다시 말해, 작품의 내용을 이루는 소재나 재료들은 평범하고 흔한 우리의 생활과 맞닿은 공간에서 수집한 것들이며, 그 곳의 이야기가 담긴 모습을 채집하여 작품에 반영하고 있다. 익숙한 사물들이지만 그 사물들은 주위의 사물, 또는 사물과 사물이 만들어 내는 관계에 따라서 다른 모습과 다른 표정으로 다가온다. 일상에 낮게 내려놓은 관계의 그물망으로 낮은 차원에서 습득한 오브제들은 우리 일상의 경험이 담겨 있고 그것들이 만드는 다양한 표정의 모습들이 작품의 모티브가 된다. 작품은 이런 저런 가공들을 통해 또 다른 형태로 만들어 지거나, 재료의 이화와 사물의 변화를 통해 새로운 공간 안에서 제3의 결과로 공간의 이탈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적극적 개입을 배제한 슈필라움, 즉 활동적 창의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서 자연스러운 참여자의 놀이나 행동을 이끌어 내려 한다. 관습적이고 익숙한 기능의 해체와 왜곡을 통해 사용자 혹은 관람자에게 익숙함으로부터 거리감을 느끼게 하고,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사물이나 정해진 기능을 수행하는 장치의 역할을 다시 생각 하게 하는 전환의 기회를 제공하면서 사고의 확장과 자신을 포함한 주변들을 성찰하는 기회를 가지게 하고 싶다. 때로는 동네 어귀에 쌓인 폐 박스를 통해, 때로는 버려진 가구를 통해 사람들 일상의 흔적과 사라져 버릴 것에 대한 아쉬움 내지는 결코 가볍지 않은 애정의 표현을 그 안에서 나타내고 싶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사람들과의 작은 소통을 만들고, 저변으로 제쳐 지고, 혹은 수면아래 잠겨 쉽게 드러나지 않는 일상에 자리한 의미들을 가시화 하려 한다. 내가 만들어 놓은 형태를 통해, 그리고 그 형태가 남긴 공간과, 형태들 간의 간격을 통해, 보는 사람들의 주위를 환기 시키고, 그들이 다시 참여로 그리고 태도로 작품을 완성시키길 기대한다. ■ 조형섭
Vol.20140125b | 조형섭展 / CHOHYEONGSEOB / 趙亨燮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