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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10:00pm
갤러리 푸에스토 GALLERY PUESTO 서울 종로구 성균관로 92 Tel. +82.2.765.4331 puestogallery.co.kr
이 전시의 주제는『흐린 풍경 Blurry Scene』이다. ● 이제 봄이 성큼 다가왔지만 올 겨울은 유난히도 추웠다. 나는 작업실에서 막바지 전시를 준비하는 겨울 내내 실내등유 열두 통(한말들이) 쯤을 소모했다. 그리고 곡기를 때운답시고 밖에 드나드는 것을 귀찮아해서 잠깐의 허기를 면하려 아내가 정성으로 싸준 도시락과 열 개 넘는 컵라면을 소비한 것으로 기억된다. 또한 아직도 끊지 못한 담배도 꽤나 많은 양을 피워댔다. 그리고 예민해진 마음을 추스르고 잠을 청하느라 꽤나 많은 소주를 마셔댔다. 작품 제작 중에 소모된 먹은 채 콩알만큼 밖에 되지 않고, 담한 채색을 하느라 쓴 물감도 먹보다 적다. 화지는 120호 장지 5장 정도를 소모했다. 그리고 장지 위에 밑 작업으로 소량의 백토와 거친 백토를 마감하느라 예닐곱 장의 사포를 소모했다.
하지만 그림에 임하는 순수한 마음가짐(정신일 수도 있겠다)과 작품 구상으로 골똘히 보낸 생각의 시간이 얼마나 소요되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그 이유는 아마도 그때그때에 맞추어 마음에 충실하려 애 쓸 뿐이고, 그림이 완성되면 마음과 생각이 바뀌어 이미 그린 그림에서 떠나버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도 그림을 보는 어떤 이들은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 이 그림은 어떤 생각을 담아내려 했느냐? 왜 흐리게 그렸느냐? 왜 이것만 진하게 그렸느냐? 등등 별별 것들을 묻곤 한다. 그냥 보이는 대로 느껴주면 고맙겠다. 실은 나도 잘 기억이 나질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감성 기억은 지나고 나면 언제나 분명하게 떠오르질 않는다. 나이 듦에 비례하듯 점점 더 기억이 흐릿해져서일까? 그렇다고 슬퍼할 일은 못된다. 기억에 남겨진 일들만을 가지고도 우리의 삶은 지치도록 바쁘니까 말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의 뇌에 불필요한 기억을 지우는 첨단 기능이 자리하고 있나보다.
이 전시의 주제가 된 '흐린'이라는 말은 여러 의미로 쓰인다. 비 내리고 눈보라 몰아치는 일기를 우리는 흐린 날이라고 한다. 새벽안개 자욱한 강가에 언뜻언뜻 드러내는 버드나무 가지와 갈대를 보며 우리는 시야가 흐리다고 말한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나 과거 일상들을 회상하며 떠올리는 기억들이 가물가물할 때도 우리는 흐릿하다고 말한다. 얼마 전에 책에서 읽었던 내용이 오락가락할 때에도 우리는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게 흐려졌다고 말한다. 그래서 '흐린 풍경'이 되었다. ● '흐린 풍경'으로 그려진 이번 그림들은 이곳저곳을 다니며 보았던 구체적 자연의 흐릿한 기억과 흐릿하게 떠오르는 과거의 추억들이 투영된 현실의 내 모습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느 날은 눈보라치는 맹동孟冬의 한기에 맞서는 소나무가 되기도 하고, 어떤 날에는 푸릇하게 밝아오는 하늘의 새벽달에 취해보기도 한다. 또 다른 그림에서는 따사로운 햇살이 비추는 도원桃源을 꿈꾸는 나룻배가 되어보기도 한다. 흐린 풍경 속에 자리한 농묵 표현의 나무와 배와 같은 사물들은 그림 속에서 내가되기도 하고, 그림을 대하는 익명의 누구이기도 하다. 왜 그것만 유독 진하게 그렸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 그냥 그렇게 그렸다. 굳이 미학적 해석에 관심을 둔 누군가 묻는다면 '허실상생虛實相生'의 표현이라고 해야겠다.
작은 그림들에서 바라다 보이는 주변 세상은 내 마음과 다르게 혼자 고요하다. 그래서 고요함을 주변에 그려 넣으려 했다. 하지만 내 마음은 내 밖에 세상 때문인지, 아니면 내가 원인이 되어서인지 모르게 항상 이리저리 흔들린다. 장자의 표현에 의하면 몸은 앉아 있지만 마음은 밖으로 내달리는 '좌치座馳'쯤 되겠다. 때로는 거센 눈보라에 이리저리 휘둘리기도 하고, 물가에 고요히 기대어 있지만 마음은 거센 물길을 헤치고 어디든 떠나려 한다. 그래서 흐린 풍경 속에 내게는 전혀 관심을 주지 않는 고요함과 어디론가 내달리려는 마음을 달래려 애쓰는 내 모습을 함께 그려 넣었다. ■ 임태규
Vol.20140111d | 임태규展 / LIMTAEGYU / 林太圭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