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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렌 정 리 홈페이지_www.helenchunglee.com
초대일시 / 2014_0111_토요일_04:00pm
박수근미술관 창작스튜디오 8기 입주작가展
관람시간 / 09: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양구군립박수근미술관 Park Soo Keun Museum in Yanggu County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 박수근로 265-15(정림리 131-1번지) Tel. +82.33.480.2655 www.parksookeun.or.kr
시각의 무의식, 감정이입에서 추상으로의 충동 ● 헬렌 정 리는 자연의 무늬로부터 발견해낸 우연한 형상에 연상되는 장면을 표제로 부여하며 몽환적인 시경(詩景)을 펼쳐왔다. (인간의 눈으로는 뿌옇게 흐트러져 버리는 거리에서) 카메라의 눈으로 근접 촬영하여 선명하게 포착하여 확대한 나무의 옹이와 나이테, 전복 껍데기의 사진적 재현은 유려한 선과 미묘한 색채, 광휘, 그리고 리드미컬한 결 등 그 자체만으로도 황홀경이다. 게다가 순환과 흐름을 성실하게 반복하는 가운데 만물이 생성, 변화, 소멸하는 원리, 즉 대자연의 시간성과 대우주의 질서와 조화를 고스란히 품은 소우주적 존재의 내부라는 주제적 의미까지 작가든 관람자든 보는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히 유의미한 몰입을 준다.
사진의 무의식과 기술적 재현은 초기 사진부터 인간의 일상적 시선과 동어반복적 사유 고리를 끊고, 무한세계를 향한 시선과 열망을 이끌어내는 예술적 시선이자, 충분히 유의미한 환각으로 주목되어왔다. 이성과 합리, 과학기술과 전문화(專門化)의 한계, 즉 획일화와 불통, 인간소외를 부단히 반성하고 고민하는 동시대 지성의 양심이자, 예술의 구원처로서 말이다. 다채로운 감각과 개성, 그리고 다원사회와 역사, 문화를 되살려낸 사진의 재현적 성과들은 인간의 무한 확장을 자극하는 상상력의 보고(寶庫)로서 21세기 디지털가상에 몰입하게 한다. 동시에, 소재나 주제적 관심을 기계적으로 반복 재생산한 잉여적 사진들, 소진된 의미와 무의미로 나열이라는 비판과 동시대 사회문화 비평적 논의들, 사진에 사로잡혀 과학-기술-자본의 거대 프로그램 안에 함몰된 실상, 인간의 주체적 시선과 자유의 회복 등이 사진을 둘러싸고 다시금 불거진 돌림노래이다. 사진은 16세기 르네상스 시대부터 본격화된 비평 논의로서 과학기술의 재현적 상상력과 구별되는 예술의 상상력, 기술적 환영을 넘어선 그림, 자유로운 주체적 시선과 태도로서 몰입과 거리두기라는 예술의 고전(古典)을 동시대 여느 예술 장르 영역보다 치열하게 고전(苦戰) 중이다.
헬렌 정 리가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2007년 개인전부터 이어지는 그의 사진과 회화의 경계 작업은 사진의 무의식과 예술적 형상을 향한 충동이라는 맥락에서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에게 사진은 재현물 혹은 구성적 소재들을 제공하는 도구가 아닌, 자유로운 상상력을 발동시키는 매개 도구이다. 마법사의 수정 거울이나 로흐샤 심리 테스트시와 같이, 사진의 눈으로 포착한 외부 세계의 규정할 수 없는 형상들은 기억, 저장된 형상들을 자유로이 연상하며, 내부의 감정과 정서, 바람 등을 외부로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 헬렌 정 리는 사진 위에 떠오른 이미지를 아크릴 점묘로 형상을 명료하게 구체화시킨다. 마치 바닷물이 증발하며 소금의 결정체가 드러나듯이, 원래 사진 안에 잠재되어있던 형상인 양 내부의 형상들을 그려낸다.
헬렌 정 리는 사진의 몰입을 통해 외부 세계로의 감정이입이자, 동시에 내부의 출현으로 인한 거리두기라는 흥미로운 역설을 펼친다. 그는 역설에 대한 관심보다는 역설을 그대로 유희하는 방식을 택한다. 그리고 2007년 개인전 타이틀『숨바꼭질 Hide and Seek』이 표명하듯, 나무옹이의 근접 확대 사진을 매개로 한 외부 대상 세계와 내부의 주관 세계의 자유로운 시선의 주고받음이 시작된다. 2008년부터는 2013년 현재까지 부산과 청주, 제주도, 강원도 양구로 작업환경을 옮겨가며 전복 내부의 무늬에 반영시킨 작가 내면의 심상을 픽쳐레스크한「꿈의 풍경 Dreamscape」을 펼쳐왔다.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欲) 뒤얽힌 인간적 감정과 욕망의 옹이와 주름들을 자연의 시간이 만들어낸 주름의 소밀(疏密)과 다채로운 색채들의 혼재, 명사화시키기 어려운 모호한 형상, 그리고 형상과 배경의 애매한 경계 등 이질적인 충돌 요소들이 조화로운 장관으로 화해시킨다.
문학적 서사와 감수성을 자극하는 제목의 에피소드 연작으로 이루어진 헬렌 정 리의「꿈의 풍경 Dreamscape」에는 분명 형상을 둘러싼 알레고리 충동이 강하게 작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업 과정상, 나무옹이와 전복 내부의 무늬에 몰입하며, 그 위에 내부의 시선을 내려놓고 순수한 시각적 유희에 내맡기는 작업적 전제와 태도는 단순한 감정이입, 즉 인간적 감정의 동일시 대상을 넘어서 자연의 형상 원리와 질서, 구조에 대한 관심과 추상을 향한 강한 충동을 분명히 짚어보게 한다. 헬렌 정 리는 2013년 박수근미술관 창작스튜디오 8기 입주작가 프로그램 결과 보고 전시인 2014년 1월 개인전에 기존 작업들을 유형화하여 설치하는 전시 구성 계획이라든지, 2014년 본격적인 스트레이트 추상 사진에 대한 포부는 밝힌 바 있다. 그의 대상에 대한 순수한 시각적 관심과 호기심, 미적인 관조는 스스로에게 자기반성적 시선을 무수히 되돌려왔으리라 생각된다. 몰입과 거리두기라는 예술적 시선과 새로움의 예술 신념을 향한 성실하고 진지한 시간들. 헬렌 정 리의 추상 사진에 뚝심 있는 도약을 희망해본다. ■ 조성지
Vol.20140111c | 헬렌 정 리展 / HELEN CHUNG LEE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