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4_0108_수요일_05:00pm_동덕아트갤러리
참여작가 권기동_김동연_김용철_김태진_박영근_박종해 서용선_신장식_심철웅_오경환_오병욱_오원배 윤종구_이강우_이계원_이민호_이상봉_정상곤 정현숙_조병왕_조소희_주성혜_한경자 허미자_허정수_황우철
주최 / 동덕여자대학교 박물관_동덕아트갤러리 기획 / 동덕여자대학교 박물관
관람시간 / 10:00am~04:00pm / 주말,공휴일 휴관
동덕여자대학교 박물관 DONGDUK WOMEN'S UNIVERSITY MUSEUM 서울 성북구 화랑로 13길 60 여성학센터 4층 기획전시실 Tel. +82.2.940.4231~2
관람시간 / 10:00am~06:00pm
동덕아트갤러리 THE DONGDUK ART GALLERY 서울 종로구 관훈동 151-8번지 동덕빌딩 B1 Tel. +82.2.732.6458
미술관 이미지, 이미지의 힘과 다양성 ● 새롭게 들을만한 옛날이야기가 있다. 고대 중국의 한 황제 침실 벽에는 폭포 그림이 그려져 있었는데, 어느 날 황제가 그 벽화의 낙숫물 소리에 밤잠을 설친다며 그림을 지워버리라 명했다 한다. 얼마나 그림 속 폭포 이미지가 생생했으면 그랬을까. 그런데 15세기 르네상스 시기 이탈리아 피렌체 사람들은 샘물이나 강, 폭포 등 물을 소재로 한 그림을 보면 열병이나 불면증이 완화된다고 믿었다. 물의 청명한 이미지가 열에 들뜬 사람의 몸을 식히고, 물의 리드미컬한 이미지가 잠 못 드는 사람의 의식을 진정시킨다고 간주해서일 것이다. 보시다시피 이 두 이야기에는 한쪽에서는 물 그림 때문에 괴롭고, 다른 한쪽은 반대로 물 그림 때문에 편안해지는 상황이 대조적이다. 하지만 둘은 차이보다도 더 큰 공통점으로 묶일 수 있는데, 양자가 모두 이미지를 마술적인 힘을 가졌고, 실재적 효과를 발휘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이 그렇다.
과학의 합리주의와 공학의 객관적 효용성에 익숙한 우리에게 이미지는 현실적인 형태와 역량을 가진 실재와는 성격이 전혀 다른 것이다. 그 다름이 실재의 모방/재현이거나, 대체물이거나, 초월적인 속성을 가졌거나 간에 말이다. 때문에 위의 옛날이야기는 그저 아득한 시절의 신화라고 넘겨버려도 좋고, 순진무구한 사람들의 민간요법이라고 치부해버려도 좋다. 현대의 우리는 폭포 그림에서 누군가의 잠을 방해할만한 소리가 들릴 수 있다고 믿지도 않지만, 설령 그런 그림이라면 사운드가 포함된 '미디어 아트' 범주에서 미학적 기준에 따라 평가하면 그것이 더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또 열병이든 불면증이든 정확한 처방전에 따라 약을 쓰면 되는 일이지, 이미지의 불확실한 효능을 기대할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그림이 그 같은 효능을 발휘한다면 우리는 그에 대해 '예술의 치유력' 혹은 '미술작품의 심리적 효과' 같은 개념을 써서 논할 것이다. 이러한 점이 종합적으로 가리키는 바는 이미지에 대한 인간 인식과 지각의 변화, 이미지를 정의하고 분류하는 체제 및 논리의 변화, 그리고 무엇보다 이미지가 사람들/공동체에 작용하는 기능 및 효과의 변화다. 요컨대 우리는 더 이상 이미지에서 주술적 힘과 초현실적 기능을 기대하지 않는다. 대신 그 이미지들과 유희하고, 일정한 틀 안 ―미술, 음악, 무용 등 예술 범주부터 광고, 문화상품, 연예오락 프로그램, 자기계발 훈련 등 비즈니스 범주까지― 에서 이미지들을 생산 및 수용한다. 그리고 물론 이미지는 그런 맥락 안에서 우리의 감각과 의식에 영향을 미치고,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복잡다단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미술관 Image』라는 주제를 내건 동덕여자대학교 박물관 ․ 동덕아트 갤러리의 2014년 첫 기획전이 흥미롭다. 실제 전시 기획의 내용 및 참여 작가와 작품의 면모가 반드시 앞서 논한 이미지의 변천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하더라도, '미술관 Image'라는 전시 명은 한편으로는 이미지를 '미술', '미술관', '작가', '작품'이라는 현대적 범주 안에서 정의하면서, 동시에 다른 한편 그 같은 범주적 정의에서 다소간 자유로운 상태를 떠올리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19세기 서구 미학을 통해 체계적으로 정립된 제도로서의 미술(Beau×-Arts, fine arts) 안에서는 굳이 '미술관'이라는 명칭을 내세울 필요가 없으며, '이미지'라는 말을 쓰는 대신 '작품'이라는 말을 써야 옳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일상의 도처와 미술관이, 그 일상 곳곳에 떠다니는 한갓된 이미지와 미술제도 공간 내의 미술작품이 구별되지 않는 것이다.
해서 우리는『미술관 Image』전시로부터 우선 '미술관'을 모델로, 모티프로, 개념으로 다루는 작품들을 기대할 수 있다. 또 '미술작품'이라는 완고하고 권위적인 범주에 매이지 않는 'Image'를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 『미술관 Image』라는 타이틀 자체가 열려 있으며, 유연하고 혼성적이다. 물론 이는 뒤집어 보면 이 전시가 구체적이고 명료한 기준에 따라 선별되고 구성된 작품들로 이뤄지기 보다는, 다양한 경향과 맥락의 작품들이 느슨한 관계 속에서 집합됐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면을 모두 고려해볼 때, 『미술관 Image』전시는 여전히 유효하고 유의미한 면모들을 갖고 있다. 기획 측의 의도가 지나칠 정도로 경직되게 작용한 나머지 각 작품의 미적 의도 및 특성이 위축되는 전시보다는 긍정적이라는 뜻이다. 또 여러 다양한 작품의 개별성이 특정 방향으로 ―심지어 그 방향이 기획 측을 제외하고는 참여 작가나 감상자 누구에게도 공감이 가지 않는 경우― 재단되는 상황보다는 상관관계가 다소간 모호하고 전체 맥락이 존재하지 않는 듯 보이는 전시가 낫다는 얘기다. 이런 전시의 경우, 큐레이토리얼의 차원에서 수준을 평가하기보다는, 개별 작품의 유일무이한 존재감, 각 참여 작가의 예술적 의도 및 실천, 감상자의 능동적 향유가 어느 정도 보장되는가를 가늠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런 관점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예상하는 것이 전시 맥락 상 현실적인 것이다.
권기동의 「Mets drive in」 그림, 김동연의 「F-B13-a」 드로잉, 김용철의 「봄-화조」 그림, 김태진의 「방문」 싱글 채널 비디오, 박영근의 「26개의 사과」 그림, 박종해의 「바람-영혼의 소리」 회화, 서용선의 「심청, 심학규」 그림, 신장식의 「금강산 구룡대 소나무」 그림, 심철웅의 「Abyss between Two Walls」 비디오 스틸 사진, 오경환의 「Window 3」 테라코타 회화, 오병욱의 「꽃밭 Ⅳ」 그림, 오원배의 「무제 1」 회화, 윤종구의 「Bluefalls 09-09」 볼펜 드로잉, 이강우의 「철암, 사북」 사진, 이계원의 「Allotropism(동질이형)」 회화, 이민호의 「Portable Landscape Ⅲ no. 4」 사진, 이상봉의 「무제-1307」 그림, 정상곤의 「Skin deep - Minuscape Ⅲ」 디지털 프린트 작업, 정현숙의 「Before and After」 회화, 조병왕의 「기하학적 칼 드로잉 09-01-10」 회화, 조소희의 「...where...」 설치, 주성혜의 「Color Drawing」 컬러 드로잉, 한경자의 「사유의 공간-존재(being)」 회화, 허미자의 「Untitled」 회화, 허정수의 「바람이 분다」 그림, 황우철의 「난 황량한 들녘」 회화. 이렇게 다양한 장르와 매체, 표현 형식 및 기교, 의도 및 주제/소재를 가진 작품들을 어떻게 명료하고 단일한 내러티브로 엮을 수 있으며, '집합'이 아닌 관계로 공존시킬 것인가. ● 그 답 중 하나는 『미술관 Image』기획 측의 의도든 맥락상 잠재된 것이든, 이 전시의 제목이 시사하는 것처럼 '작품' 대신 '이미지'라는 범주를 내세우고, 동시에 그 이미지들의 틀로서 '미술관'을 전제하는 일이다. 그렇게 해서 26명 참여 작가의 단자적인(monad-like) 상태를 존중하고, 그 많은 작품들의 고유한 미적 형식 및 질(aesthetic form and quality)을 이미지의 보편성 아래서 인정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중국 황제의 귀에 거슬린 마술적 힘을 가진 폭포 이미지가 피렌체 시민의 잠 못 드는 밤을 달래는 이미지일 수 있듯이, 그렇게 어느 쪽도 권위적으로 흡수 통합하지 않고, 그 어느 쪽에도 불편하게 흡수 통합되지 않는 『이미지 미술관』 전시를 여는 것이다. ■ 강수미
Vol.20140108b | 미술관 Image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