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과 절망을 끌어안은 영혼

손상기展 / SONSANGKI / 孫祥基 / painting   2013_1227 ▶ 2014_0126 / 월요일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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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상기 기념 사업회_www.sonsangki.com

초대일시 / 2013_1227_금요일_05:00pm

손상기 25주기展

도슨트 / 11:00am, 03:00pm

관람료 / 성인_2,000원 / 초,중,고등학생_1,000원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GS칼텍스 예울마루 GS CALTEX YEULMARU 전남 여수시 시전동 1003번지 7층(예울마루로 100), 잔디마당 Tel. +82.61.808.7080 www.yeulmaru.org

초기작 ● 손상기 회화의 초기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시기는 1979년 서울로 올라오기 이전의 때를 말한다. 초기시기에 그의 작품은 시골장터의 아낙네, 양지바른 곳에서 볕을 쬐는 노인들, 시골아이들의 해맑은 표정, 시끌벅적한 시골마당 등의 소재를 붓과 나이프로 번갈아 사용하며 두툼하고 질박한 공간을 만들어 향토적, 민속적인 분위기를 짙게 풍겼다. 그의 작품이 이렇게 향토적인 이유는 풍광이 좋은 여수 출신이라는 점이 작용하였을 수도 있고,한편으로는 그에게 등단의 기회를 안겨준'구상전'의 입상과의 연관성에서 찾아볼 수 있다. '구상전'의 입상으로 정식 회원으로 추대되었고, 그로 인해 작가로서 방향성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그가 향토색을 짙게 풍기게된 계기도 실제로'구상전'멤버였던 장리석이나 최영림, 황유엽 등 구상화가들과 교류하면서 민속적인 이미지, 향토적인 색조와 넉넉한 질료감의 영향을 받은 탓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여수 한산사에서'의 작품은 이 시기에 가장 향토적, 민속적 분위기를 나타내는 손상기의 대표적인 초기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손상기_여수 한산사에서_캔버스에 유채_162×130.3cm_1975
손상기_서울 1_캔버스에 유채_97×130cm_1980

공작도시 ● 손상기의 회화가 커다란 변화가 있게 된 것은 그가 서울로 상경한 1979년부터 작고한 1988년까지 10년간을 일컫는다. 이때 그의 예술세계는 붓을 이용하는 방식이 줄어드는 대신 날카로운 나이프에서 나오는 속도감, 긁힌자국 등 해체적이면서 격렬하게 바뀌게 된다. '공작도시'라는 테마는 그가 원광대 재학시절부터 천착해 온 주제이지만 그것이 본격적으로 표면화 된 것은 서울 아현동시절 부터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는 서울 이전 시대의 향토적인 분위기와는 대조적으로 고층빌딩과 철문이 내려진 가게, 사지가 잔인하게 떨어져나간 나무, 판잣집이 밀집한 달동네나 변두리 풍경, 부산한 거리표정이 주요한 모티브로 등장한다. 작가는 도시의 음산하고 우울한 모습들을 그로테스크하게 비틀어 화면에 던져놓았다. 색조면에서도 우울한 회백색과 비정한 암갈색이 기조를 이루는가 하면 화면은 무거운 심리적 중압감을 반영하듯 거친 스크래치로 얼룩져 있다. 이 무렵 그의 작품은 따뜻함보다는 속에서 분출된 걷잡을 수 없는 분노와 원망의 감정으로 점철되었다.

손상기_시들지 않는 꽃 - 해바라기_캔버스에 은지, 유채_73×50cm_1981
손상기_취녀_캔버스에 유채_53×65.2cm_1982

시들지 않는꽃 ● 손상기의 삶 전부가 치열하거나 비탄적인 것은 아니다. 아현동 시절의 작품들에서는 담장 너머로 넘어온 나무덩굴이라든가 골목에서 노는 아이들의 모습, 꽃가게와 단풍이 든 계절 감각을 살린 동네모습을 담아 내기도했다. 그가 이웃에 애정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암시해 주는 대목이다. 이는 질곡의 세월을 살면서 맑은 심성을 버리지 않았다는 반증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의 작품에 있어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의 예술관을 관통하고 있었던 것은 결국'내상을 입은 현실'의 조명이라고 할수 있다. '시들지 않는 꽃'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불임의 사회를 풍자하면서 현대인의 허위의식을 예리하게 들추어내고 있다. 그가 바라본 서울은 고통을 받고 있지만 그 사실을 인지조차하지 못하는 통증마비의 도시였다. ● 인물누드 손상기는 독백처럼 자신의 예술에 대해"나의 그림 중에서 사람이나 짐승이나 어떤 것이라도 모두가 상징일 뿐이다. 물론 상징이라고 못 박을수도 없는 일인데 사람이나 짐승이나 꽃, 식물,어떤 것이라도 화면 표정속에서만 있을 뿐이다. 내가 말하는 표정은 내 그림을 보는 사람들의 감정을 깊이 건드리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손상기의 80년대 전후의 인물 작품들은 표현하는 느낌과 방법이 달랐을 뿐 보는 사람들의 감정을 움직일 수 있는 풍부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그가 1982년부터 연속적으로 그린 술집의 여성을 소재로 하는'취녀'는 자신이 그린 그림속에 동화(同化)되어 그림 속의 설정상황과 마음의 대화를 나누는 독특함을 보이며, 이는 그가 남다른 감성의 화가였음을 환기 시켜 주고 있다. ■

손상기(1949~1988) ● 전남 여수 출생. 3세부터 구루병을 앓아 후에‘척추만곡’이라는 장애인이 됨. 여수 제일중학교와 상업고등학교 졸업. 원광대 미술학부 회화과졸업. 대학 시절인 1977년 『전북미술전람회』특선과 『한국창작미술협회공모전』입선. 1981년 서울에서 첫 개인전인 『손상기전』(동덕미술관) 개최.이 해에 『한국현대미술대상전』 동상, 『중앙미술대전』(중앙일보) 입선.1982년 『한국미술대전』에 입선하여 지방 순회전(대구) 선정. 1984년 『한국미술협회전』 『해방40년 민족사초대전』 『구상전 회원전』 등에 출품.1985년‘폐울혈성 심부전증’진단을 받은 이후 입원과 퇴원을 반복.1986년 초대개인전 『손상기전』(샘터화랑, 바탕골미술관, 평화랑, 대구 이목화랑)과 『그랑빨레 비평구상협회 초대전』(파리), 주일한국대사관 한국문화원 7주년 기념 『구상전 초대전』(도쿄)에 출품. 1988년 향년 39세의 나이로 부인과 두 딸을 남겨둔 채 요절.

Vol.20131227a | 손상기展 / SONSANGKI / 孫祥基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