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lief in Art

유비호展 / RYUBIHO / 劉飛虎 / video.photography   2013_1220 ▶ 2014_0110 / 월요일 휴관

유비호_신념의 선_퍼포먼스 기록영상_00:15:00_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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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호 홈페이지_ryubiho.com

초대일시 / 2012_1220_금요일

주최,주관 / 아트스페이스 갤러리 정미소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_서울문화재단 협찬 / 운생동 건축사 사무소㈜_월간객석_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월요일 휴관

아트스페이스 갤러리 정미소 ART SPACE GALLERY JUNGMISO 서울 종로구 동숭동 199-17번지 객석빌딩 2층 Tel. +82.2.743.5378 www.galleryjungmiso.co.kr

예술에 대한 신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길"나의 지각과 나의 지각이 겨누는 사물은 '나의 머릿속'에 있다고 말해 보아야 나에게 아무 의미도 없을 터이나 나는 부득이 타인을, 그리고 타인이 가지는 지각을 그의 몸 배후에 놓을 수 밖에 없다. 보다 정확히 말해 타인에 의해 지각된 사물은 양분화 된다." (모리스 메를로-퐁티,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남수인, 최의영 옮김, 동문당, p.26)

유비호_위안의 숲_겨울(남)_디지털 프린트_120×180cm_2013
유비호_위안의 숲_겨울(여)_디지털 프린트_120×180cm_2013
유비호_위안의 숲_00:07:10_2013

우리는 이미 타인(관객)에 따른 해석이 작품이든 전시든 간에 이를 제시한 주최 혹은 주체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에 항상 가담하고 또 끊임없이 무언가를 생산해 낸다. 주체를 떠난 객체는 그저 주체가 제시한 시간, 정황들의 부분적인 면모들만을 이해하며, 받아들인다. 그 만큼 우리는 전시라는 형식으로 한 개인의 상상과 환타지를 통해 완성된 결과를 소설, 시도 아닌, 공연과 연극의 형태가 아닌 미술작품의 형태로 만나게 된다. 그들은 그 개인외의 타인이 볼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세계들을 자신의 구상적 표현(작품)으로 제안하고, 또 우리는 그것을 물리적인 지각체계를 통해 경험하고 받아들인다. ● 따라서 전시장에서 작업을 관람한다는 행위는 우리가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을, 눈에 보이게 하는 지각체계를 통해 경험한다. 작업을 생산하여 전시하고, 소비하게 하는 마음은 어떠한 행위인가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으로 이 전시를 시작하려 한다. 우리는 다양한 매체에서 수없이 방출되는 이미지현상을 두고, 미술의 영역에서 더 이상 새로운 시각환타지적인 이미지에 대한 기대도, 스펙타클 한 현상에 대한 기대도 그리 크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가 원래 본질적으로 예술작품에 향해있는 태도는 어떠한 것 이여야 했는가? 에 대한 화두가 이 전시의 궁극적인 목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의 인생에도 수많은 갈래 길을 두고 선택하고 실천해야 하는 것이 당연지사처럼, 예술은 한 예술가의 눈에 보이지 않는 상상력을 통한 신념에 대한 의지를 표명하기 위함일 수도 있다. 또한 항상 타인의 눈으로 확인되지 않는 상상적 사실을 두고 객관적 지표를 작업을 통해 드러내는 행위에 대한 용기와 포부 그리고 확신에 대한 이야기이며, 또 그것이 어떠한 상황을 도출해야 하는지에 관한 반성적 측면이 더 크게 부각될 것이다. ● 유비호의 최근작 「신념의 선」은 최근 몇 년간 대중적으로 미디어아티스트들에게 요구되거나, 기대했던 면모의 스펙타클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매체의 형식적면에서는 심플한 싱크채널의 형식으로 완성되었지만, 그 이면에는 형식적 스펙타클 즉, 눈에 보이는 측면에서의 시각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을 찾아 떠나는 한 사람의 여정에 관한 것이다. 그 여정이 모두 개개별로 다르게 존재하여 흘러가고 있지만 이는 결국 시간의 유유한 흐름과 같이 지나가고 흘러가고 있는 것에 대한 재확인과 동시에, 그 와중에 변치 않아야 하는 사적 신념이 녹아들어가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불확정적인 믿음을 향해 그야말로 진심어린 신념을 지닌 행진이 그가 미술계에서 유유자적하게 누려야 하는 슬픔도 기쁨도 아닌 당연한 길인 것이다.

유비호_신념의 선_퍼포먼스 기록영상_00:15:00_2013

의도된 방향성 상실 ● 광활하고 무한한 공간에 사람이 놓이게 된다면 어떨까? 최대한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 그 공간의 주변부를 이러저리 돌아보며 살필 것이고, 또 동서남북을 계산할 것이고, 또 방향성 없는 그 어딘가를 향해 걸어 가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앞에 어떠한 상황이 펼쳐질지 모르는 불안과 호기심 그 중간 어디쯤의 심리적 테제를 통해 '걸어가 봐야겠다'라는 다짐을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방향성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걸어가야 겠다는 믿음을 통해 확신된 신념에 관한 영상작을 만난다. 그는 의도하지 않았으며, 또 그 의도가 그리 유용하게 바람직하지도 않을 것이며, 또 잠시잠깐의 목표지점을 올랐다 한들, 그것이 인생 그 여정의 최대관심사의 답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어떠한 신념을 가지고 유유히 올라가는 한 명의 작가를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의도하지 않았으며, 가늠할 수 없는 어떠한 표적을 향한다. ● 「신념의 선」은 지극히 나의 작가적 개인성찰을 보여줌과 동시에 다시 심기일전하여 머나먼 작가의 길을 계속 가고자 하는 나의 바람이 담겨진 행위이다. 더불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지속적으로 서로에 대한 믿음과 신념을 가지고 나아가고자 하는 나의 기대가 담겨진 작업이다. (유비호)

유비호_긴 슬픔 공허한 숨_00:02:52_2007

표적없는 방향에 대한 탐구 ● 인간의 품을 둘러싸고 있는 관계망에서 우리는 타인의 반응을 통해 가해자임과 동시에 또 피해자인 것처럼 이 두 가지의 위치를 다 점유한다. 마치 우울함이 우울함에만 국한되어 머무르지 않고, 어느 한 순간에서는 마치 단비내리는 행복을 경험하듯, 두 가지의 양가성이 항상 어디에나 존재한다. 음과 양, 남과 여, 오른쪽과 왼쪽, 조증과 우울증등과 같이 개인의 심리와 마음, 정신에서부터 폭넓게는 사회적인 현상 그리고 사람이 가늠할 수 없는 그 어떤 미지의 세계에서도 두 가지의 양가성은 항상 존재해 왔으며, 존재하고 있고, 존재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쩌면 확실하거나 분명치 않은 어느 목표지점에 도달하기위해 끊임없이 뿌연 안개 속 그리고 언제 밝아질지 모르는 어두운 터널 속을 쉬지 않고 달리는 지도 모르겠다. 그 가운데서 불안이 엄습하게 되더라도 또 다른 위안을 찾기 위한 안정된 품을 찾아 모색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이번에 신념의 선과 동시에 작동하는 「위안의 숲」은 이러한 사람의 감정적 순환 고리의 정황을 드러낸다.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정 반대급부에 위치시켜 놓아야 하는 두 가지 측면에서 작용하는 긴장감있는 저울질이 결국 인간 본연에서 작동하는 불안을 잠식시키는 중층적 성향을 만들어 내지 않을까. 비록 하나의 작은 목소리에 불과하지만, 이번 전시를 통해 예술에 관한 우리의 신념, 그리고 더 넓게 우리의 인생길 최후의 믿음의 선, 신념의 길을 어떠한 양상들로 펼쳐질 수 있는지 가만히 눈감고 생각해 보며 한해를 보내고 또 다른 한해를 맞이하는 계기가 되길 소망하고 있다. ■ 이은주

Vol.20131221e | 유비호展 / RYUBIHO / 劉飛虎 / video.photography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