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재를 그리다

이수연展 / LEESUYOUN / 李守連 / painting.drawing   2013_1211 ▶ 2013_1221 / 일요일 휴관

이수연_Drawing#_2013

초대일시 / 2013_1211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요일 휴관

아트스페이스 에이치 ARTSPACE H 서울 종로구 원서동 157-1번지 Tel. +82.2.766.5000 www.artspaceh.com

'X 없는 X'의 공간미학을 추구하며 ● 1. 이수연은 부재(不在)의 공허를 확인하며 부정한다. 체념하며 갈망한다. 부재로부터 탈주하며 다가간다. 존재의 흔적을 지우며 찾으려한다. 그것을 비우며 채우려한다. 존재로부터 절연하며 지연시키려한다. 그녀의 메타피지카(metaphysika)는 상념의 혼돈에서 질서를 모색하는 중이다. 질서가 혼돈의 피안이듯이 존재는 그 너머의 부재까지도 체험하라고 작가에게 요구하고 있다. 실재와 관념은 존재의 필요충분조건임에도 부재에서 그것들은 공허를 공유할 뿐 어떤 조건도 아니기 때문이다. 피안(彼岸)과 차안(此岸)이 시공에서 한 몸일 수 없고, 단지 한 켤레일 수밖에 없는 까닭, 또한 거기에 있다. ● 그래도 시인들은 그 사이에서 시를 쓴다. 몇 줄의 글로써 번뇌하는 자신들을 타자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간극에 포위된 화가들은 난감해한다. 페이소스(pathos)에서 자기타자화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부재의 공허에 사로잡히기 일쑤이다. 그래서 그들의 욕망은 절대를 염원하며 시공간을 주저 없이 가르곤 한다. 그것은 모노로그일까, 다이얼로그일까? 또한 그것은 카타르시스일까, 테라피일까? 이수연에게 그것은 모두 다이다. 그녀는 부재를 독백하며 대화한다. 그녀는 부재의 잔영을 허공에 날려 버리며 영혼을 치유하려한다.

이수연_Cristallin_Bubble in the night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8.5×100cm_2013

2. 이수연은 '있음'보다 '거기에 있음', 이를테면 현존재(Dasein)가 무엇인지의 의미를 새겨준 부재함이 (이런 저런 것의 부재가 아닌) 어떤 무엇과도 대체가 불가능한 순수부재(l'absence pure)로 승화하는 순간을 무의식 중에도 기다린다. 그리고 그녀는 진정으로 그렇게 되길 염원한다. 존재의 흔적이 아닌 부재에 대한 망각을 그녀는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모리스 블랑쇼가 『기다림, 망각함』(L'attente l'oubli)에서 말하는 무에 대한 기다림과 존재에 대한 망각을 이즈음의 그녀 또한 고대하고 있다. ● 이를 위해 이수연은 'X 없는 X'(X sans X)라는 '관계없는 관계', 즉 부재의 관계를 만장(挽丈)으로 표상한다. 기다림의 만장과 망각의 만장들이 부재의 관계를 오버랩하며 의식과 무의식의 사이와 차이를 확인시켜주려 한다. 그것들은 실존과 무화(無化)를 공연하며 부재의 메타피지카를 실험한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을 온몸으로 감당하며 그녀는 타나토스(Thanatos)와 그로 인한 부재를 어느덧 미학의 장(場)에서 살풀이하듯 연출하는 것이다. 마치 초혼제에 초대된 듯 만사(挽詞)의 메아리가 관람자의 귀를 의심케 할 것 같다. ● 이미 사라짐으로 부재하든, 미처 도래하지 않음으로 부재하든 부재의 언어는 혼(魂)의 언어일 수밖에 없고, 부재의 논리는 초(超)논리일 수밖에 없다. 그 때문에 어떤 언어와 논리 안에도 부재의 그것들을 위한 자리는 없다. 그래서 작가 이수연은 부재를 캔버스 밖으로, 존재의 카테고리 밖으로 가져가려한다. 그것을 탈코드화하고 탈영토화하려 한 것이다. 부재의 조형이 패러독스이고 모순임을, 그리고 아포리아(aporia)임을 그녀는 이미 간파한 탓일 터이다.

이수연_Silver Tre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87×100cm_2013
이수연_Cristallin_Tree Drawing #1_종이에 드로잉_72.7×62.8cm_2013

3. 이수연은 관념과 실재 사이에서 이마쥬를 실험한다. 그녀는 접신의 순간을 포착하려는 이마쥬의 사냥꾼 같다. 그것은 잠의 신 히프노스(Hypnos)와 함께 하얀 날개를 펄럭이며 찾아와서 망자(亡者)의 혼을 운반해가는 죽음의 신 타나토스의 이마쥬를 표상하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그 때문에 그녀는 양식도, 원리도, 기법도 거추장스러워한다. 그녀가 준비한 카니발에는 명사화가 불필요하다. 그녀는 아직도 타나토스와 히프노스에게 묻고자한다. 부재의 원향이 올림포스인지를. ● 세상에는 신화만큼 'X 없는 X'의 이야기도 없다. 신화는 애초부터 지상의 부재를 이야기하는 메타포라(metaphora)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것은 부재의 이마쥬들과도 연상작용을 한다. 그것은 약속된 규칙대로 색과 형태를 배열하는 이마쥬 대신 모델 없는 이마쥬로 창조를 시도한다. 그녀의 이마쥬들이 우리로 하여금 상징하기보다 상상하게 하는 까닭도 거기에 있다. 작가 이수연은 무엇보다도 만장들 사이로 초대된 아니마(anima, 靈)와 아니무스(animus, 魂)를 앞 세워 '지금, 여기에' 새로운 공간미학을 우리에게 선보이려 하기 때문일 것이다. ■ 이광래

이수연_Cristallin_Tree Drawing #19_투명 인화지에 드로잉_18×14cm_2013
이수연_Cristallin_Tree Drawing #19_종이에 드로잉_65.1×53cm_2013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로 가버린 다시는 볼 수 없는 친구가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인사를 하러 왔다 내 그리움일까. 바램일까. 채우지 못한 마음 속의 욕망일까. 그 친구를 바라봤던 축적된 시선 속에 발생한 착각의 연속일까. 내가 본다는 것은 실제에 다가갈 수 없다. 혼돈된 상황이나 어색한 감정들로 휩싸인 이 세계는 사실에 다가가려고 할수록 불안과 고독으로 스스로 막을 씌우고 빛을 바라본다. ● 그리워 붓을 들었는데, 어느새 그리기에 집중하고 있다. 아는 것이 많아지면 그에 따른 욕망도 커지듯, 난 그리기 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안개 속에 묻힌 진실을 보려고 한참을 떨어져서 바라본다. 내 앞에 형상을, 내 마음과 그 형상이 어떤 괴리감을 갖고 있는지 살펴본다. 형상이 스치고, 내 앞에 펼쳐진 상황이 진짜인지 연출된 극인지. 그 진짜를 알아가는 동안 난 아주 차가운 순간, 냉정한 순간을 경험한다. ■ 이수연

Vol.20131211f | 이수연展 / LEESUYOUN / 李守連 / painting.draw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