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3_1208_일요일_04:00pm
특강 『중국현대미술로의 여행』 / 02:00pm~03:30pm 한창윤_광주시립미술관학예연구관
관람시간 / 10:00am~07:00pm / 2,4번째주 일요일 휴관
해와문화예술공간 HAEWA CULTURE & ARTS SPACE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 253번지 Tel. +82.62.233.9011
송용홍은 최근 커다란 변화를 가졌다. 오랫동안 해왔던 대형 유화작업에서 벗어나 새로운 변화와 모색을 위해 소형작업들을 시작했는데 그 첫 번째가 그가 중국미술학원 재학시절 전공했던 판화작업이다. 판화는 주로 전통적인 목판화 작업인데 그가 오랫동안 추구했던 주제들로 기존의 드로잉 작업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두 번째는 수채화 작업인데 이는 대형 유화작업이 완성되는 시간이 많이 걸리고 기법상의 효과를 빨리 알 수 없는 것에 비해 수채화는 그가 의도하는 방향으로 도중에 수정이 훨씬 용이하고 가능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멈추었던 판화작업은 작년 7월부터 시작했는데 무엇보다 가장 큰 동기는 20년 이상 해온 유화에 대한 염증과 무엇인가 새로움을 찾고 싶어서였다. 오랜만에 시작한 판화작업은 그에게는 작업에 대한 새로운 의식이고 신선함이었으며 과거를 다시금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 송용홍 수채화의 특징은 일반적으로 작가들이 대상을 객관적으로 재현한데 비해, 그는 자신의 감정을 주관적으로 이입해 풍경을 재구성하는 것이다. 그가 주요하게 유화작업을 통해 보여주고 싶은 것은 화면에 대한 생소함을 전달하는 것이다. 아주 평범한 일상의 풍경들이 관람자로 하여금 아주 새로운 낮선 풍경으로 느껴지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화면은 그가 원하고 생각하는 상들이 자신의 모습으로 화면에 나타나기도 한다. 그는 심리적인 의식 즉 사람들이 느끼는 새로운 감정을 중시한다. 심리적인 것들은 때로 우리에게 생활 속의 명상 같은 것이다. 그가 초기 유화작업에 천착했던 성(性)을 주제로 한 작업들은 그 당시로는 파격적이었는데 이는 사회주의 미술의 특성인 일종의 사실주의를 벗어난 작품들이었기 때문이다. 사회적인 불안감을 표현하고 사회의 모순들을 끄집어 낸 그만의 특별한 작업이었다. 그런 이유로 그는 관전(官展)보다는 일찍이 외국전시와 개인 간의 교류전시에 많이 참여했다. 그에게 1995년 홍콩전시는 이런 이유들로 하게 되었는데 그를 외부 세계에 알리는 매우 중요한 전시였다.
그가 그림을 하게 된 동기는 흥미롭고 재미있다. 그의 말을 빌리면, 그는 중학시절 매우 불량끼 있는 개구쟁이 소년이었다고 한다. 그 당시 아버지는 군인이었고 어머니는 국어선생님이었다. 하루는 엄한 아버지에게 많은 꾸지람을 듣고 매를 맞았는데 다리가 부러져 움직일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그림을 그렸는데 그것들은 아주 쉽게 잘 그려졌다고 한다. 그런 연유로 그의 예술 활동은 시작되었고 중국의 유명예술가인 형 송용핑의 영향을 받고 성장하면서 그는 무엇보다 그림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그림이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가치를 가장 잘 드러내 보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중국미술학원 재학시절부터 이미 그의 작업은 많은 사람들로 부터 크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다른 예술가들이 하고 있는 작업과 크게 다른 점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 주를 이루었던 사실주의 작품이나 향토주의 작품은 그의 생각과 많이 달랐고 그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었다. 자신의 주변생활에서 가장 가까웠던 풍경을 다룬 학교시리즈는 그러한 의지를 반영한 주요한 작품이다. ● 이 시기는 중국현대미술계에 있어 가장 큰 변혁기인 85미술운동이 일어나던 때였다. 당시 학교의 교육 분위기 또한 그에게 매우 중요하게 작용했다. 중국미술학원은 아카데믹하지 않고 서양, 즉 외부로부터의 새로운 예술에 대한 도입과 관심이 자유로운 분위기여서 새로운 예술활동이 많이 일어났던 곳이다. 그렇지만 그는 서구의 새로운 예술과는 거리를 두었다. 그것들이 자신들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송용홍은 자신의 생활 속에서 자주 일어나고 느껴지는 것들을 정확히 잡아내 표현하고자 했다. 외부세계의 영향도 간혹 받았지만 자신만의 독특한 의식이 강했기 때문에 다른 이들과의 작업에 차별성이 있었다. 그가 유화작업으로 정착하게 된 가장 큰 동기는 작업의 편리성 때문이었다. 그는 무엇보다 이상적인 작업은 작가가 의도한 도상을 화면에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 방법으로 가장 적절한 것이 유화였다. 그에게 있어 작업이란 자신이 무엇을 표현할 것인가가 가장 중요했다. 기법은 그에게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자신의 자아나 심리가 본질적으로 잘 표현되었는가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림에 소질이 있었던 그는 일반학생들보다 기본기를 빨리 습득했고 대학 2학년 때 부터는 무엇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에 대해 깊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당시 송용홍은 자아의 표현이 곧 예술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틈나는 대로 생활 속에서 조그만 드로잉을 하고 상상을 통해 기억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의 졸업작품은 당시 유행했던 신조류미술이나 향토미술에서 벗어난 그만의 독특한 작품이었다. 졸업 후에도 그는 다양한 여러 가지의 실험작업을 했다. 미국의 미술잡지들을 통해서 설치나 실험미술을 보고 많이 해보았다. 그러나 그것들은 결국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학교 재학시절 주로 표현했던 학교주변의 이야기를 벗어나 사회로 관심을 확대시킨 성(性)을 주제로 한 작품이나 사회의 문제점들을 표현한 작품들이 90년대 초부터 90년 중반까지 나타났다. 이후 그가 쓰촨지역 작가 출신들이 주요하게 모여 살았던 화자띠 예술구에서 함게 교류하며 새롭게 시작한 작업이 목욕시리즈였다. 사실 그동안의 작업들은 어떤 면에선 화면구성이 복잡하고 서술성이 강했다. 그는 이러한 작품들이 매우 난잡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자신의 어려운 현실과 맞물려 정제된 새로운 작업을 찾게 되었다. 그는 이러한 방법을 그가 대학시절 주요하게 했던 소묘작업에서 찾았다. 대학시절에 그린 목욕하는 모습의 드로잉은 추상이나 사실적인 부분에서 벗어난 중간적인 입장이었고 그것들은 이전의 성(性)을 주제로 한 작업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측면도 있었다. 목욕시리즈는 그동안의 복작한 작품의 구도나 많은 이야기에서 벗어나 주제가 좀 더 강렬하게 부각되는 효과가 있어 자신만의 독특한 모티브로 중국미술계에서 크게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다. 졸업 후 국가에서 배정해준 학교에서 미술교사로 근무했던 송용홍은 당시 그의 작업을 이해해 주지 않았던 사회현실과 독특한 작업성향 때문인지 얼마 되지 않아 학교에서 퇴출되었다. 그리고 이어서 딸이 태어났다. 그리고 2000년 얼마 되지 않아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등 많은 일들이 한꺼번에 이어지며 정신적 공황을 겪었다. 그런 이유로 이 시기에 나타난 「위로의 목욕」이라는 제목의 목욕시리즈는 필연적인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당시의 사회현실이나 자신의 불우한 상황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지만 그럴 형편이 아니었다. 목욕시리즈는 이러한 배경에서 출발한 현실사회를 벗어나고 싶은 그의 욕구에서 시작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것은 결국 그의 자아가 크게 충격을 받고 다시 벗어나고, 다시 시작되는 순환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에서 생겨난 비판적인 의식과 이유도 있었다. 2009년 작품 중 「미망」 즉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뜻의 이 작품은 당시의 사회적 상황을 표현한 작품이다. 세계적인 경제위기로 발전한 미국 발 금융위기가 오면서 중국미술계도 많이 변했다. 급격한 환경변화에 따른 문제점들은 다시한번 그에게 사회적인 부분에서 정신적 공황을 겪게 했다. 이 사건은 중국에 있어 사회적으로 충격이 큰 사건이었다.
요즘 그는 전통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중국이 서구화되면서 사라지고 단절되는 것들을 전통성에서 찾고 있다. 판화나 수채화, 서예 등을 통해 자신을 찾는 과정을 시도하고 있다. 소품작업을 통해 예전으로 돌아가 에너지를 재충전하고 새로운 것을 찾으려 한다. 그는 중국미술계 있어 다른 작가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도상들을 보여주었다. 성(性)을 주제로 한 작업이나 목욕시리즈는 당시 중국미술계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것을 새롭게 보여준 것들이었다. 그의 말처럼 회화라는 부분에서 새로운 것을 찾기는 쉽지 않다. 실험적인 음악을 듣는 것을 좋아하며, 많은 소설을 읽고, 술 마시는 것을 좋아하는 그는 바깥세상의 많은 것을 보려 여행을 많이 하고 있다. 이것은 그에게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상상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함이다. 송용홍은 현재 중국사회에 대한 관심에서 벗어나 더 큰 관점, 즉 국제적인 변화에 관심을 넓히려 한다. "나는 다른 사람과 틀려야 한다." 그것이 그에 작업에 있어 가장 중요한 철칙이며 원칙이라 할 수 있다. ● 얼마 전 북경 798에서 열린 송용홍 개인전의 반향은 매우 뜨거웠다. 그의 말과 바람처럼 이번 전시는 그의 작업에 있어 전환점이자 새로움을 보여주는 것이다. 작가는 이번 전시가 관람자들이 전시를 보며 그에 대한 작업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금방 느낄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즉 자신의 작업에 있어 빙산의 일각을 보았다고 느끼길 바라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송용홍은 앞으로도 자신의 작업영역을 넓히고 우리에게 새로운 생소함을 계속해 전달해 줄 것이다. ■ 한창윤
Vol.20131208d | 송영홍展 / SONGYONGHONG / 宋永紅 / painting.pr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