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아트 인 서울

行政 × art in Seoul展   2013_1205 ▶ 2013_1214 / 월요일 휴관

출판기념회 / 2013_1205_목요일_07:00pm

출판기념회『김윤환의 작업실 행진곡』

특강「현대미술에서 예술가의 역할」 일시 / 2013_1205_목요일_06:00pm_김윤환 특별행사「라운드 비치 Round Beach」 예술가와 공무원의 해변에서의 노가리전투 * 진짜 노가리를 먹으면서 토론합니다. 주요참가자 / 예술가_공무원_시민 00명 일시 / 2013_1212_목요일_07:00pm

주최 / 미래창작센터_서울특별시 시민청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_예술과 도시사회연구소_경향아트

관람시간 / 09:00am~09:00pm / 월요일 휴관

서울특별시 시민청 갤러리 SEOUL CITIZEN HALL 서울 중구 세종대로 110 B1 Tel. +82.2.739.5811 www.seoulcitizenshall.kr

도시와 예술은 사회역사적으로 깊은 관계를 맺어 왔다. 창의성의 시대, 특히 도시문화전략의 차원에서 당대 도시의 발전을 위해 예술의 역할이 더욱 확대될 것을 요구받고 있다. 그것의 구체적 표현으로서 도시를 창조도시 혹은 문화도시로 지칭하고, 예술가를 창조계급으로 부른다. ● 도시는 문화예술을 활용해 발전하고 싶어 하고, 시민은 문화예술을 통해 삶의 질을 추구한다. 예술가는? 자신의 직업에 매우 만족하는 편이지만 사회나 행정과의 만남에 서툰 경우가 많다. 행정은 통치행위로서 예술을 이용하려하고, 예술은 체질적으로 행정을 불신한다. 하지만 서로 필요로 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행정아트 인 서울』전시는 행정과 예술이 서로 무슨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지, 서로의 입장차이가 뭔지에 대해 시민, 예술가, 공무원이 함께 탐구해보는 전시이며, 그것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아봄으로써 서로의 오해와 불신을 해소하고 이해를 높이는 공공예술의 장이다.

예시 예술가들이 행정을 만나면? "우리가 공무원 따까리냐? 오라하면 오고 가라하면 가나"(반발) "공무원 지가 전문가인줄 알아"(무시) "예술가 형편이 어려우니 제발 좀 도와줘요~"(애원) 반대로 행정이 예술가를 보는 시각은? "도대체 뭐해 먹고 사세요? 돈은 어떻게 버나요?"(동정) "시에서는 혈세로 예술가를 그렇게 많이 지원하는데도 예술가들은 왜? 예술을 도구화한다고 공격하는지...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요."(불신) "시민들을 위해 재능기부하세요. 사회에 유익한 일을 하시는 거죠."(활용) 대체로 위와 같은 반응들을 보인다.

내 직업은 행정 예술 ● "김윤환 씨는 뭐 하는 사람이에요?" 뭇사람과의 새로운 만남에서 흔히 듣는 이 질문은 항상 말문이 막히게 만든다. 나는 이 질문에 선뜻 대답을 한 기억이 한 번도 없다. 내 정체성이 모호해서일까? 잠시 머뭇거리면서 "아! 저는 시각예술가입니다." 그러면 "무슨 작품 하세요?" 하고 다시 묻는 게 보통. 그러면 나는 그때부터 "저는 그림도 그리고요. 퍼포먼스도 하고요. 영상도 만들고요. 기획도..." 말이 주저리주저리 횡설수설로 변한다. 그런데 그걸로도 나를 설명하는 게 부족하다 싶어 하나 더 얹는다. "서울시나 다른 공공기관에 문화정책 조언이나 혹은 사업심사도 하고 그래요." 최근에는 최대한 축약해서 설명하기 위해 "저는 요즘 행정아트를 합니다"라고도 해본다. 하지만 이렇게 대답해도 '행정 아트'가 뭔지 한참을 설명해야 할 뿐 아니라 사람들에게 나의 정체(?)를 더 의심받는 경우가 많다. 행정아트?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면 행정아트란 단어는 안 나온다. 단지 행정과 아트가 따로 떨어져서 한 문장에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예를 들면 이렇다. ● '행정중심복합도시 아트센터 설계공모 접수 ( ~3/19 까지 ) 21C 공연예술 경쟁시대를 선도할 도시의 상징 성 있는 건축물 !! 문화예술의 장과 과학영상 , 체험 , 전시 , 교 육 , 휴게 , 놀이 공간 등 어쩌구 저쩌구...' 행정과 아트가 분명 깊은 연관이 있는 것처럼은 나온다. 그래서 아예 본격적으로 행정과 아트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행정은 '법 아래에서 국가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행하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국가 통치작용'이라 씌어 있다. 옥편에는 行政의 行(갈 행)은 조금 걸을 척()에 자축거릴 촉()으로 이루어져 있고, 政(정사 정)은 바를 정(正)에 때릴 복()으로 돼 있다. 이를 직역해보니 행정(行政)이란 말은 조금 걷는 척 자축거리면서 정사를 본다는 뜻으로 묘하게도 관료주의의 냄새가 은근히 배어나온다. 특히 '자축거리다'의 뜻이 '다리에 힘이 없어 조금씩 자꾸 절면서 걷다'는 뜻이라고 하니 킥! 하고 절로 웃음이 난다. ● 또 예술(藝術, art)은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창조하는 일에 목적을 두고 작품을 제작하는 모든 인간 활동과 그 산물'을 일컫는다. 이를 한자어로 보면 藝術은 '재주 예(또는 심을 예)'에 '꾀 술'자로 꾀나 재주를 심는다는 뜻이니, 이들을 모아 만든 신조어 행정예술(行政藝術)은 '정사를 보는 척하는 관료들 사이에 끼어(intervention)들어 책략을 심는다'는 정도로 해석해볼 수 있겠다. 예술 공간 운영하며 정책에 개입 ● 내가 예술로 행정에 '개입'한 것은 2004년 오아시스 프로젝트부터다. 오아시스 프로젝트는 국고를 헛되이 낭비하는 문화부와 그에 유착된 예술권력을 문제로 삼았고, 예술인의 창작할 권리와 유휴 공간의 창조적 활용을 슬로건으로 삼았다. 하지만 더 구체적으로 행정의 내부에까지 깊숙이 개입하게 된 시기는 2007년부터일 것이다. 오아시스 프로젝트가 스(공간점거예술)을 통해 유동적인 공간을 실험한 것이라면 '문래동'에서는 좀 더 구체적인 지역과 도시에 대한 실험을 했다. 문래동에서 직접 공간을 운영하면서 서울시의 정책과 제도에 개입해 들어갔고, 젠트리피케이션이나 예술의 사회적 기능 등을 두고 쟁점과 해법을 찾아가고자 시도했다. ●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일을 겪게 되었다. 행정이라는 밀림을 헤치며 만난 단어들은 마치 사납고도 영리한 맹수들과도 같았다. 왕복운동, 관리, 경직, 갑을, 인센티브, 안전, 규정, 점수, 주무관, 칸막이, 예산, 정산, 감사, 분기, 자문회의, 민원, 이해관계자... 그것들은 단지 단어가 아니라 구체적인 통치행위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이고 폐해들이었다. 나는 기관의 피스톤 운동에 개입해 충돌, 기만, 분절, 가공, 변형, 융합의 과정들을 겪었다. 그러한 복잡한 공정들을 거치면서 통치제도가 얼마나 견고한지, 행정이 얼마나 사나운 동물인지 깨달았다. 그렇지만 그것이 또 얼마나 허술한 논리 아래 어이없이 전개되는지도 알게 되었다. 내가 '개입'해서 변화시킨 것이 있나? 생각하곤 한다. 어쩌면 변화보다 파열을 기대한 것인가. 그러나 내게 '행정'은 작업실이고 내 작품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김윤환

현대미술에서 예술가의 역할 ● 오늘날 미술가의 작업은 전통적인 창작행위와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다. 그들은 미술품의 물질적 생산에서 나아가 조사, 인터뷰, 자료수집, 진행 등의 프로세스를 내포한 총체적 미술 행위를 통하여'시간성'과'장소성'의 문제를 미술의 영역에 적극적으로 도입한다. 뿐만 아니라 사회학, 인류학 등 타 영역의 전문가들과 연계하여 통섭적인 프로젝트 작업을 하기도 하고, 일반인들과 함께 대중참여적 코웍(Co-work) 프로세스를 진행하기도 한다. 이러한 현대 미술의 현장은 전통적으로 물질적 작품 제작에 한정되었던 미술가들의 정체성이 변화하고 있는 현상을 증거한다. 변화된 미술가의 정체성은 물질적 형식의 예술작품이 결국'자본화'로 이어지는 것을 비판하기도 하고, 창조성의 배타적 독점자로서의'예술가'의 정체성에 문제제기를 하기도 한다. ● 페터 뷔르거(Peter Bürger)가 정의한 역사적 아방가르드 이후, 현대 미술가들은 예술작품의 생산자로서의 역할보다는 예술의 역사 그 자체와 예술의 철학적 본성을 문제시 하는 것에서 자신들의 역할을 찾고 있다. 일상 사물은 예술작품으로 전용되고, 미술사의 어떤 계기들이 현대 예술작품의 일부로 등장한다. 개인으로 특징 지워졌던 모더니즘의 시대는 집단 예술가들의 행위들로 대치되고 있다. 예술가와 비예술가의 경계는 참여를 통한 창조성의 발현주체의 개념을 통해 희미해진다. 예술의 범주를 미술이라는 좁은 범위가 아닌 사회와 삶의 영역으로 확장하며, 사회 혁명을 예술의 외화 된 형태로 인식하기도 한다. 예술가의 정체성을 예술작품의 생산자로써만 위치지우지 않고, 교육자, 환경 운동가, 문화운동가, 사회 운동가 등으로 다변화시키기도 한다. 영원한 시간성 속에서 절대적 가치를 존중받았던 예술 작품은 행위와 시간성 속에서 일시적인 것으로 변환되고 있으며 도시 공간이라는 삶의 장소가 예술의 공간으로 전환되고 있다. 르네상스 이래 역사 안에서 자기 정체성을 구축해온 예술가들이 자율적 예술개념의 반성으로써 아방가르드를 등장시켰다. 아방가르드 이후 예술가들은 역사 안에서 구축되던 자기 정체성으로부터 결별하면서 현대 예술(contemporary art)의 현장을 만들어 가고 있다. ● 이러한 현대 미술가들의 행위는 예술의 인식론에 개입하는 것으로써, 미학이 전통적으로 연구해 온 학문의 범주들을 다시금 재검토할 수밖에 없도록 추동하고, 미술가의 정체성에 대한 재검토를 요청하고 있다. 미학은 질문의 방식을 변화시키면서 발전해 왔지만 미학의 중요한 생산자인 예술가 정체성에 대한 연구는 본격화되지는 않았다. 동시대 미술가들이 재구성해 간 자기 정체성문제는 독일의 미술사학자 한스 벨팅(Hans Belting)과 아서 단토(Athur Danto) 가 제기한 '예술의 종말론'의 촉매 역할을 하였다. 벨팅은 에르베 피셔(Hervé Fischer, 1941년 프랑스 파리에서 출생하였다. 예술가, 철학자, 예술과 사이버 컬쳐의 사회학자이기도 한 피셔는 1971년'사회학의 예술(l'art sociologique)'을 창립하였으며, 예술과 커뮤니케이션에 관련한 저서를 21권 가량 저술하였다. 베니스비엔날레 프랑스 빠빌리옹(1976년), 상파울로 비엔날레 (1981), 카셀 도큐멘타(1982) 등에 초대되는 등 국제적인 규모의 전시에 다수 초청되었다. 파리 에꼴 데코라티브(école décorative) 교수(1969-1980)를 지냈으며, 1981년에는 3D 에니메이션 작업을 하기도 하였다. 여러 멀티미디어 예술 단체 및 멀티미디어 아트 페어(MIM;Marché International du Multimédia)의 디렉터를 역임했다.)의 퍼포먼스(performance, 1974)를 통해 미술사학의 문제를 지적하고, 단토는 앤디 워홀을 통해 예술철학의 문제를 지적한다. ● 사실상 19세기에 형성된 미술사는 '새로움'이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진보'를 그 역사적 진전의 매개로 상정한다. 따라서 '새로움'이 이끌어 가는 단선적 역사가 미술사인 것이다. 그러나 피셔는 1979년 2월 15일 파리 퐁피두 센터(Centre de Pompidou)에서 펼친 퍼포먼스 (한스벨팅이 자신의 저서 『미술사의 종말? Das Ende der Kunstgeschichte?』1983.의 서두에서 기술하고 있는 피셔의 퍼포먼스는 다음과 같다.「피셔는 관객 앞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천천히 걷는다. 그는 꽃으로 수 놓은 하얀 인디언 셔츠와 녹색 옷을 입고 있었다. 그는 그의 눈높이에 달린 하얀 끈을 한손으로 짚어가며 이동한다. 다른 손에는 마이크를 잡고 걸으면서 말한다.'예술의 역사는 신화적 기원(mythicorigin)의 것이다. Magique. Ieux. Age. Anse. Isme. Isme. Isme. Isme. Isme. Neoisme. Ique. Han. Ion. Hic. Pop. Hop. Kitsch. Asthme. Isme. Art. Hic. 틱(Tic). 탁(Tac). 틱(Tic).'그는 끈의 중앙지점에 도달하기 전 걸음을 멈추고 말한다.:'순수한 예술가, 천식의 연대기에서 마지막으로 탄생한 나는 1979년 오늘, 예술역사는 끝났다고 선언한다.'그는 한걸음 떼고 나아가 끈을 자른다. 그리고 말한다.'그 끈을 자른 순간이 예술역사의 마지막 사건이었다.' 그는 끈의 오른쪽 절반 부분을 바닥에 떨어뜨리면서 덧붙여 말한다.'이 떨어진 끈의 선형적 연장은 사상의 무의미한 환상일 뿐이다.' 또한 그는 끈의 왼쪽 절반 부분을 떨어뜨리면서'지금부터 현재의 에너지에 주의를 기울여 기하학적 환상을 자유롭게 하라. 우리는 META-ART, 즉 탈역사적(posthistorical) 예술의 사건의 연대로 들어간다." 」)와 자신의 저서를 통해 이러한 예술 역사의 종말을 선언한다. 미술의 역사 즉 쓰여진 미술의 역사를 포함해서 앞으로 쓰여질 모든 종류의 미술의 역사에, 자기 자신은 예술가로써 참여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 ("그것 자체의 새로움은"'진행과정에서 이미 죽은 것이 된다. 그것은 미래의 신화로 후퇴하는 것이다.","역사의 가상적 수평선에서 원근적 사라짐의 지점에 이르게 된 것이다."선형적 발전의 논리 즉, 아직 현실화 되지 않고 쓰여지지 않은 예술역사를 앞으로만 발전시키는 논리는 중단되어져야한다."'예술적 행위가 생생하게 살아 있으려면 새로움에의 이상은 버려야만 한다. 예술은 끝나지 않았다. 끝난 것은 새로움을 향한 진보로서의 역사이다."에르버 피셔,『예술의 역사는 끝났다(L'Histoire de l'art est terminée)』 ) 이러한 피셔의 행위와 선언은 전통적 의미의 예술 작품 생산자의 예술가 역할을 거부하고,'예술 역사'그 자체를 자신 작품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이다. 즉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해 왔던 '역사'에 대해 문제제기 하는 것을 예술 생산의 새로운 주제로 설정한 것이다. ● 한스 벨팅은 이처럼 미술가에 의해 제기되고 있는, '예술은 역사를 가지는가 하는 질문'에 주목하고, '동시대 예술과 학문적 맥락에서의 동시대 예술의 공통된 문제점'에 접근한다. 벨팅에 따르면, '미술사(art history)는 단지 19세기적인 미술(art)의 개념과 역사(history)의 개념이 결합한 것'이다. 즉 19세기적 미술과 역사는 '미술을 미술작품과 분리시키고, 역사를 역사적 사건 속에 존재'시키는 것이다. 19세기에 이해한 미술과 역사는 본질과 현상을 분리시키는 것이었다. 19세기 초에 일종의 서로 다른 개념인 미술과 역사의 혼종물로써 '미술사'가 보편적 의미를 띄고 통용 되자마자 미술은 가장 좁은 의미로는 미술'작품'속에서 인지되는 하나의 성질이 되었고, 역사는 역사적 사건 속에 존재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이를 통해 '미술사'는 미술작품 속에서 성장한 미술이라는 개념으로 변형되었고, 작품으로부터는 독립되며 단지 작품 속에 반영될 뿐인 역사기술의 테마가 되었다고 벨팅은 지적한다. 그러나, 현재도 미술과 역사에 대한 19세기적 이해가 미술사학의 보편적 기준으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벨팅은 미술사학은 오류를 이어왔다고 비판한다. (Hans Belting, 『미술사의 종말? Das Ende der Kunstgeschichte?』1983. pp.6-7) 따라서 벨팅은 19세기에 '발명'된 개념으로서의 '미술사'가 현대의 예술연구를 종말에 이르게 했기에, 새로운 극복으로서의 미술사학의 문제를 현재에 제기한다. ● 단토의 예술의 종말론은 앤디 워홀의「브릴로 상자 Brillo Boxes」(앤디 워홀 Andy Warhol, (1928-1987)은 1964년 뉴욕의 맨허튼 이스트 74가에 위치한 스테이블 갤러리(Stable Gallery)에서「브릴로 상자」를 전시했다. 원래 이 박스는 브릴로 비누를 담는 박스로써 산업 디자이너 스티브 하비에 의해 디자인 된 것이다. 이 박스들은 미국의 슈퍼마켓 어디에나 가면 볼 수 있는 일상적인 제품이다. 워홀은 이 브릴로 박스의 사이즈와 디자인을 그대로 옮겨서 다시 자체 제작하여 전시장으로 가져왔다. 즉 워홀은 하비의 박스를 전용하여 갤러리 전시회 맥락 속에서 제시한 것이다.)가 제기한 예술작품의 지각적 식별 불가능성의 문제로부터 도출된다. 워홀은「브릴로 상자」를 통해 일반 사물과 예술작품의 차별성을 구성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단토는 워홀이 예술의 본성적 측면을 구성하고 있던 지각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그 배경으로 예술이 모더니즘 시대에 철학과 양식이 분리된 상태로 존재했음을 지적한다. 즉 예술에 있어서 철학과 양식의 분리는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예술의 자기 본성에 대한 탐구를 가능하게 하였고, 그러한 질문의 등장이 예술이 종말 상황을 증거하는 것이라 고찰한다. ● 위와 같은 벨팅과 단토의 종말론은 미술사학과 예술철학의 맥락에서 헤겔미학을 검토한다. 벨팅은 미술사학이 르네상스 시절 죠르지오 바사리(Giorgio Vasari)의 『미술가 열전 Le Vita』 (원 제목은『Vite dei più eccellenti Architetti, Pittori et Scultori italiani da Cimabue insino a'tempi nostri, descritti in lingua toscana da Giorgio Vasari, Pittore aretino, con una sua utile et necessaria introduzione a le arti loro 아레초 화가 조르조 바자리가 토스카나어로 저술하였으며, 그들의 예술에 대한 유용하고도 필요한 서문이 포함된, 치마부에에서 우리 시대에 이르는 탁월한 이탈리아 건축가, 화가, 조각가들의 생애』이다. 흔히『Le vite』로 줄여서 부르고, 한국에서는『미술가 열전』으로 번역되어 불리운다. 롤랑 르 몰레,『조르조 바사리_메디치가의 연출가 Giorgio Vasari_L'Homme des Médicis』임호경 옮김, 미메시스 출판사, 2006 참조.)으로부터 시작된, 고정된 양식의 표준을 비판적 검토없이 이어받아 19세기적인 예술과 역사의 개념으로 미술연구를 이어왔다고 지적한다. 헤겔 이후 미술사가들이 예술의 내용과 형식의 분리를 예술역사 연구의 관습적 태도로 받아들이면서 오진의 역사를 이어 왔다는 것이다. ● 반면 단토는 헤겔이 낭만주의 예술의 고찰을 통해 제시한'예술의 과거성'명제를 예술의 종말의 철학적 맥락으로 이어간다. "예술은 그 최고의 규정의 편에서 볼 때 우리에게 있어 과거이자 과거로 남아있다. (In allen diesen Beziehungen ist und bleibt die Kunst nach der Seite ihrer höchsten Bestimmung für uns ein Vergangenes.)" (G.W.F Hegel, Ästhetik(Vorlesungen über die Ästhetik), Band I, p.22) ● 헤겔은 자신의 시대 즉 낭만주의 시대에 이미 예술은 우리 내부에서 직접적인 향수로 감각되기 보다는 오히려 우리의 판단이 환기되고, 작품의 내용과 표현수단 등의 적절성이나 부적절함이 우리의 사유적인 고찰로 가능해진다고 보았다. 낭만주의 시대에 예술은 이미'사상(Gedanken)과 반성(Reflexion)에 의해 추월(überflügelt)' (G.W.F Hegel, Ibid, p.21) 되었기 때문에 예술은 종말을 맞이하게 되었다고 헤겔은 지적한다. (헤겔은 낭만주의 예술은'예술을 산출하는 활동과 그 작품들이라는 독특한 방식이 우리의 최고의 욕구(Bedürfnis)를 더 이상 채워주지 않기 때문에, 예술작품을 시적으로 경모하고 숭배할 수 있는 상태를 벗어나 있다고 지적한다. 헤겔은 독립된 주관성의 발전을 외적인 현존의 우연성과 연관시키면서 낭만적 예술을 주관적인 내면성의 예술이며, 현상세계를 우연적인 상태 그대로 묘사하는 예술로 정의한다.) 헤겔은 예술을 역사의 노정 내에 위치시켰는데, 이는 예술을 철학으로 향하는 중간 단계의 기능으로 파악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헤겔에 의하면 예술은 한층 고차적인 인식인 철학의 도래와 더불어 끝난 것이다. 진보주의적 역사관을 기초로 하는 헤겔의 예술철학의 관점 안에서는 예술은 종말한 것으로 이해된다. ● 단토는 헤겔이 종말을 주장했던 1828년부터 그 자신이「브릴로 박스」를 체험했던 1964년까지의 시기에 예술은 점차적으로 종말을 향해 달려왔다고 고찰한다. 단토는 헤겔 이후 워홀까지 예술은 철학적 자의식을 향해 나아갔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종말에 다다를 수밖에 없고, 예술이 그 자신의 철학적 본성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하였을 때 종말에 이르게 되었다고 분석한다. 단토에 따르면, 서양미술의 거대 내러티브는 필연적으로 종말을 고할 수밖에 없는 내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즉 양식사로 불릴수 있는 서양미술의 거대 내러티브는 철학과 양식의 분리를 통해 구성되었고, 그러한 분리가 예술 그 자체가 철학적 본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철학으로 이행하는 계기로 작동한 것이다. 단토가 헤겔에 기대어 사유한 바에 따르면, 예술이 철학으로 이행된 것은 예술의 종말을 의미한다. 종말을 맞게 된 예술은 이제 탈역사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역사의 짐으로부터 해방되었다. 단토는 예술의 종말 이후의 상황을 탈 역사의 시대, 즉 '역사로부터의 해방'된 상황이라 정의한다. 단토는 '역사로부터 해방'된 미술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는 가, 혹은 무엇인가를 탐구하자고 제안한다. ● 따라서, 벨팅과 단토가 헤겔 미학을 호명하여 각각의 종말론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하고, 근대 미학과 근대 역사철학의 비판적 공찰을 통해 종말이론을 구성한 것은 동시대 예술의 현장을 재발견하자는 제안과도 같다. ● 두 이론가의 종말론의 중심축을 이루는 것은 미술사학과 예술철학의 이론적 배경이기는 하지만, 두 종말론의 출발점은 예술가의 정체성의 변화이다. 벨팅은 피셔로부터, 단토는 워홀을 비롯한 팝 아티스트들의 행위를 통해 예술의 종말을 고찰한다. 이러한 현대 미술가들은 전통적 의미의 예술작품 생산자이기 보다 '우리가 무엇을 예술이라고 할 것인가?'라는 예술의 인식문제를 제기하는 것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구축하고 있다. 따라서 예술의 종말이 대두되게 되는 배경은 예술이론의 한계와 현대 미술가의 정체성의 변화라 할 수 있다. ● 뒤샹에서부터 스쾃티스트까지 현대 미술가들의 행위는 예술작품의 존재 방식 자체에 질문을 던지고, 사회 안에서의 예술가의 역할을 폭넓게 재정의하면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새로이 구축해 갔다. 뒤샹은 예술가의 정체성을 작품의 제작자에서 호명자로 변화시켰으며, 보이스는 예술가의 지위를 일반인 모두에게 부여하면서 예술가에게 배타적으로 독점되어 있던 창조성의 문제를 보다 넓은 범주로 확장하였다. 국제상황주의자(l'Internationale Situationiste:IS)은 개인성을 그 존재적 특성을 삼는 예술가정체성을 집단성으로 변화시키면서, 사회 안에서의'혁명가'로 예술가의 역할을 전환시켰다. (스쾃티스트(Squartist) 스쾃티스트(Squartist)는 도심의 빈 건물이나 빈 공간을 전용(Détournement)하여 새로운 공간인 스쾃을 만들어 가는 집단이다. 스쾃은'사용되지 않는 공간을 허가의 유무를 떠나서 사용을 원하는 자가 그 공간을 직접 사용하는 것'을 일컫는다. 용어상으로 스쾃티스트는 스쾃(Squat)이라는 단어에 예술가(artist)가 결합되어 squ(at) + (ar)tist 라는 형태로 재조립된 것이다.) 는 창조성 발현 존재로서의 예술가를 장소성과 시간성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현재적 삶을 재구성하는 존재로 전환시켰다. 스쾃티스트에게 있어서 뒤샹의 레디메이드(Ready Made)는 기존 공간에 대한 인식의 재호명이며, 보이스의 사회조각개념은 스쾃의 시간성과 행위 안에서 발현되고, IS의 혁명적 정신은 도시와 권력구조의 모순을 드러냄과 동시에 삶을 재창안하는 방식으로 실현된다. 따라서 스쾃티스트에게 있어 예술가의 정체성은 작품의 제작자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를 드러내는 동시에 현재적 삶을 재구성하는 존재이다. 이와 같이 현대의 미술가들은 사회와 삶의 변화적 측면까지도 자신들의 역할로 인지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구축하고 있다. 자본과 권력의 재생산의 기능으로 전락한 빈 공간을 스쾃으로 전용(détrement)하는 행위는'사용되지 않는 것'을 '사용하는 것'과 같은 의미도 지니지만, 자본의 확대 재생산의 지점과 그 방식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빈 공간이 스쾃티스트들에 의해 '스쾃'으로 변모할 때, 도시는 무의식을 드러내게 된다. 이는 팽창과 확대, 자본과 권력추구의 도구로 전락한 '공간'의 문제가 스쾃을 통해 의식의 층위로 이동하게 되면서, 현실 비판과 현실 재구성의 구체적인 '장소'로 인식적 전환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도시의 무의식을 드러내는 구체적인 장소가 된 스쾃은 소유가 아닌 사용중심의 '생산성'을 지향하게 되고, 자본과 권력의 욕망 대신 공동체의 자율성이 추구된다. 따라서 스쾃은 자본주의의 욕망을 드러냄과 동시에 그 욕망을 극복하려는 의지의 담지체이다. ● 이와 같이, 자본주의 사회 전체를 대상으로 그 모순과 무의식을 드러내고, 사회의 재구성을 추구하는 스쾃티스트의 행위는 마르쿠제가 새로운 감성에서 언급하고 있는 미학적 차원과 만나는 지점이 있다. 마르쿠제는 '새로운 감성'에서 "미학적인 세계는 자유의 욕구들과 능력들이 해방을 위해 의존하는 생활 세계 Lebenswelt" (H. 마르쿠제, 『해방론』, 김택 옮김, 울력 출판사, 2004, p.52)라 정의한다. 이러한 생활 세계는 환경을 창조하는 집단적인 실천을 통해 가능해 질 것인데, 자유의 욕구들과 능력들은 공격적인 충동의 의한 그리고 공격적인 충동을 위한 환경에서는 발전할 수 없을 뿐더러, 새로운 사회 제도의 단순한 효과 정도로 상상해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새로운 세계 창조의 집단적 실천으로서의 스쾃티스트의 행위는 "사회의 재구성에서 현실은 새로운 목표를 드러내는 하나의 형식 form을 취하게 된다. 이 형식의 미학적 질은 그것을 하나의 예술작품을 만들게 될 것이다." (H. 마르쿠제, 같은 책, p.53) 따라서, 스쾃티스트들의 집단적 실천을 통한 사회의 재구성으로써의 스쾃은 미학적 차원의 예술작품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 미학적 차원의 예술작품으로서의 스쾃에서는 창작 공간, 주거공간, 발표 공간의 구분은 의미가 없어진다. 거주와 창작의 분리된 개념이 이곳에서는 해체된다. 거주하는 곳이 바로 창작과 발표의 공간이 되고, 일상과 예술의 새로운 구성체로써의 스쾃 공간은 일상과 예술의 복합적인 공간으로 변신된다. 일상적 창작행위, 교류, 대화, 공동 식사, 콘서트, 전시회, 회합, 페스티벌 모두 이 스쾃 안에서 행위 되며 삶과 예술의 경계는 무의미해진다. "그러한 힘으로서 예술(art)은 사물의 질과'외관'에 형식을 부여하는, 또한 현실과 삶의 방식에 형식을 부여하는 통합적인 요소일 것이다. 이것은 예술의 지양Aufhebung을 의미하리라. 즉 현실로부터 미학적인 것을 분리하는 것의 종말이자 비즈니스와 미를, 또한 착취와 쾌락을 상업적으로 통일시키는 것의 종말이다. 예술은 그러한 요소들의 좀 더 원초적인 '기술적' 내포를 재탈환하게 된다. 즉 무엇인가를 준비(요리!)하거나 경작하고 키우는 기술(art), 그 내용이나 감성에 폭력을 가하지 않는 형식을 부여하는 기술이 그것이다. 다시 말해 이것은 존재의 필요성 중 하나로서의 형식의 상승을 말한다." (H. 마르쿠제, 같은 책, pp.53-54) ● 마르쿠제가 지적하는'힘으로서 예술'인 스쾃은 삶과 예술을 분리했던 역사의 종말을 의미하게 되며, 새로운 것을 준비하는 보다 원초적인 기술(art)이 내포한 의미를 재탈환하게 된다. 따라서 스쾃은 삶과 예술이 원초적인 의미로 재연결되어 '공간'을 환기시키면서 예술을 지양(Aufhebung)하게 된다. 지양된 예술로서의 스쾃은 "규격의 틀을 흔들리게 하며, 위엄있는 삶의 태도를 회복하는 데에 초점을 맞춘다. 따라서, 빈민, 여성, 가족, 인종, 노동, 생태, 자율, 이주노동, 노숙인, 예술, 문화 등 모든 종류의 운동이 하나로 통합될 수 있는 것 또한 스쾃이다. 안주하지 않는 삶, 움직이는 삶, 인간전형을 끊임없이 재창조하는 것, 저항의 양식을 새로이 창안하는 것, 예술가의 정체성을 언제나 재구성하는 것 모두가 스쾃에 포함된다. 삶의 전 과정에서, 예술의 전 과정에서 '창작'이라는 것이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정체성의 다른 표현이라고 전제할 때, 삶과 예술은 스쾃이라는 실험실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그 실험의 과정에서 파생되는 모든 종류의 생산은 주류적 가치에 대항하며, 새로운 문화를 출현" (김강 『삶과 예술의 실험실_Squat』, 문화과학사, 2008, 서문)을 기대한다. ● 이처럼, 스쾃티스트는 삶을 재구성하는 것까지도 자신의 역할로 인지하면서 삶의 재구성이 가능한 공간으로써 도시의 '빈 공간'을 선택하고 실천한다. 따라서, 스쾃티스트에 의해 환기되는 공간은 도시의 무의식을 드러내는 것이자 새로운 감성의 출현이 기대되는 실험실로써 그 장소성을 드러내게 된다. 스쾃티스트의 활동은 '장소'를 해방시키고, 정치사회적이자 문화적인 커뮤니티로 장소성을 재구성하고, '일시성'을 통해 그를 둘러싼 풍경을 변화시킨다. 이는 삶과 사회의 재구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스쾃티스트라는 커뮤니티가 프랑스 철학자인 장-뤽 낭시(Jean-Luc Nancy)가 제안한 '집단적인 예술의 실천(collective artistic praxis)' 으로 향하고 있음을 예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장 뤽 낭시가 제안하는 커뮤니티의 성격은'끊임없이 고정된 정체성을 의심하며, 통일성의 이름으로 지워진'차이'들의 존재를 인식하는'불안정한 커뮤니티'이다. 이는'더 고귀하고 중요한 전체성'을 위해 개인을 규합하는 커뮤니티가 아니라 외부적 시선으로 규정당하는 커뮤니티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그 부정성의 기반위에서 실험하는'집단적인 예술의 실천(collective artistic praxis)' 으로서의 커뮤니티를 의미한다. Miwon Kwon, One Place After Another:Site-Specific Art and Locational Identity-Cambridge, Massachusetts:The MIT Press,2002) ● "아마도 우리는 예술의 시대를 벗어나서 다른 어떤 것 속으로 진입하고 있는 지 모르는데, 그것의 정확한 형태와 구조는 아직도 우리의 이해를 기다리는 중이다." (아서 단토,『예술의 종말 이후의 예술 After the End of Art 』이성훈, 김광우 옮김, 미술문화, 2004, p.41 ) 위와 같은, 단토의 언급처럼 스쾃티스트의 행위가 예술의 시대를 벗어나고 있는 것을 증거하는 단 하나의 예증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분명히 다른 형태의 예술의 출몰을 기대하게 한다. 스쾃티스트들은 집단의 정체성으로 도시의 무의식을 시간과 장소성의 개념을 통해 새로이 인식시키면서 다른 형태의 예술의 공간을 열어가기 때문이다. ● 이러한' 장소성'의 문제는 예술의 문제가 삶의 문제와 일치하는 지점에서 발현되고, '일시성'의 문제는 예술작품에 드리워진 '아우라'를 걷어 들이며, 21세기 현대 미술의 현장을 창출해 나가고 있다. 예술과 삶, 예술사와 예술철학 모두에 질문을 던지면서 '역사의 짐'으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킨 예술가들은 '새로운 세계의 구성'을 자신의 창조적 생산물로 여기면서 새로이 예술가의 정체성을 구성해가고 있다. ● 벨팅은"오늘날의 미술이 조금이나마 역사를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미술사'를 향해 있는 것이 아니라 특정 그룹이나 예술에서 사회를 위한 모범을 찾으려는 신념의'역사'를 향한 것" Hans Belting, 같은 책, p.53 이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우리가 벨팅의 조언을 받아들인다면, 예술을 통해 사회의 모범을 찾아가려는 시도는 끊임없이 자기 정체성을 변화시켜 가며 예술과 사회에 조응해왔던 예술가들의 행위의 발견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 본 텍스트는 필자의 「현대예술에서 예술가의 역할에 관한 연구」, 홍익대 미학과 석사논문(2008)을 축약 정리한 것이다.)김강

* 전시장 내부는 비치의자 해변풍경 등 바닷가에 온 느낌, 전시장 곳곳에는 행정과 예술의 관계에 관한 텍스트, 영상, 설치작품과『행정아트자료집』이 비치됨.

Vol.20131205b | 행정아트 인 서울 行政 × art in Seoul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