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3_1204_수요일_05:00pm
참여작가 / 박현정_오세경_이채영_장서우_조나라
관람시간 / 10:30am~06:30pm / 일요일_12:00pm~06:30pm
갤러리 그림손 GALLERY GRIMSON 서울 종로구 경운동 64-17번지 Tel. +82.2.733.1045~6 www.grimson.co.kr
얼굴은 현실적 물리적 화학적 지배를 받는 곳이라면, 생각의 장소는 시공간을 뛰어넘는 그나마 자유로운 공간이다. 수 만 가지의 생각들은 숨쉬는 것과 같이 사는 동안 일어나는 것이다. 깨어있거나 잠을 자거나 끈임 없이 움직이는 생각, 그 모습은 심해 깊은 곳에서 뽀글뽀글 올라와 일괄적 태생의 모양에서 각기 다른 크기와 모양으로 성장하다가 순식간에 소멸하는 심해의 공기방울과도 같다
매우 복잡해 보이고 다양해 보이나, 그 크기의 다름과 양의 많고 적음의 차이일 뿐인 단순한 법칙으로 매번 다르고 새롭고 복잡한 듯, 특별해 보이는 형태를 만들어 공간에 뿌려놓는다. 생각의 모습은 개인의 취향대로 헤어스타일을 가다듬고 바꾸고 치장하는 우리 모습과도 같고, 둥둥 떠다니는 머리처럼 낯설어 보이는 타인의 생각과 같다.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서 살아가는 샤먼의 생활 속에서 그 경계를 넘나드는 나의 '생각의 모습'은 이렇게 둥둥 떠다닌다. ■ 박현정
변질되기 전 인간의 순수한 감정은 인위적 조건이 배제된 야생동물의 습성과 '공통분모'를 이룬다고 생각한다. 감정과 습성에 대한 고민은 가끔씩 꺼내보고 덮기를 반복하던 중 뜬금없이 화성 탐사로봇 '오퍼튜니티'의 삶의 기록이 아름답게 느껴지면서 구체화되었다. 3개월의 짧은 화성 탐사로 계획된 '오퍼튜니티'는 무려 10년 가까이 생존하며 기계에서 기대할 수 없었던 감정을 전해주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작업에서는 달을 배경으로 생물과 사물이 살아가는 모습을 따라가며 그린 측면이 있다. 달의 중의적 환경에서 생물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아이러니 하지만 역설적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닮아있다고 생각한다. 임시의 공간에서 살아가는 상황은 현실과 가상이 교차되어 만들어진 새로운 증강현실이자 구분이 무너진 세계이다. ■ 오세경
일상적인 일들 속에서 지내오면서, 불현듯 미묘한 이질적 요소들을 발견하게 된다. 항상 걸어 다니는 익숙하고 친숙한 장소들이 어느 날 하나의 장면으로 보이는 순간들을 경험하게 된다. 본인의 집 근처의 모습인 장소에서조차 어느 순간 호기심과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공간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기묘한 순간들은 시간의 흐름을 통해 더욱이 색다른 모습으로 변화하는 모습으로 보이게 된다. 낮과 밤이라는 시간대 속에서 느껴지는 도시의 풍경들, 즉 일상에 연관된 장소들, 나 또는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거리들, 도시의 주택가와 낡은 건물들의 주변 요소들 속의 장면들 속에서 감상자의 감정에 몽환적인 감성을 건드리고 싶었다. 도시는 비정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아주 고독하기도 하고 낮에 번성한 거리는 모습에서 밤에 절멸의 풍경으로 돌아가는 그 한 순간을 먹 작업을 가지고 보여주고 있다. ■ 이채영
일본에서 자라 한국으로 돌아온 후 어느 언어에도 익숙하지 못했던 나의 유년기 시절은 단절의 역사였다. 그때부터 언어 이외의 언어, 시각언어에 대해 열망하게 됐는지 모르겠다. 식물을 키웠다. 그것은 내 단절의 역사와 내 열망을 자양분으로 자라 세상과의 소통을 위해 '혀'라는 열매를 맺는다. 인체기관인 혀는 인간을 소통하게 한다. 인간을 외부와 연결한다. 내가 키운 그 식물은 끊임없는 생장을 통해 나를 세상과 소통하게 했다. 식물이 생장 할수록 내가 열망하던 나만의 시각언어체계는 견고해졌다. 밀폐는 흑백이 되었고 반복했던 소통으로의 시도는 점이 되었으며, 나에게 익숙한 소통의 방법으로서의 선은 더욱 섬세해졌다. 작품의 완성이 곧 내 소통의 완성이다. 트라우마를 아름답게 담아내려 끊임없이 점을 찍어내는 나의 손짓이 단절에 대한 나의 저항이다. 인간의 소통을 열망하는 나의 휴머니즘이다. ■ 장서우
나는 우리가 흔히 보고 인식하는 관념들의 의미를 뒤집어 표현한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이미지의 면이 아닌 뒷면의 이미지의 작품을 통해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적 방식으로 그동안 인식하지 못했던 현실을 바라보게 하고자 한다. 지금까지 일반적으로 알고 있던 뒷면은 완성하기 위한 흔적과 자국에 불과할 뿐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니었다. 완성의 위한 자국과 흔적으로만 여겨졌던 부분이 나의 작업에 들어오는 순간, 자국이 아닌 하나의 새로운 이미지가 된다. 캔퍼스에 붓 터치를 하듯 나에겐 실 한올이 한 터치이다. 작업을 하는 면의 이미지가 아닌 다른 면의 이미지로 이야기한다. 나의 작업에서 앞면과 뒷면의 경계는 없다. 하나의 이미지일 뿐이다. 한줄의 실은 화면의 앞뒤를 오가며 만들어 낸 이미지는 하나의 이미지이다. 실이 지나간 면은 반드시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들은 우연과 무의식의 요청에 의해 엉키고 중첩이 반복되며 새로운 이미지를 만든다. 그 새로운 이미지는 구상, 재현의 이미지에서 시작된 표현으로 우연과 중첩의 반복적 행위가 만들어낸 화면은 새로운 이미지를 제시한다. ■ 조나라
Vol.20131204j | Hidden Stage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