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mage for YAYOI KUSAMA

2013_1127 ▶ 2014_0130 / 월,공휴일 휴관

야요이쿠사마_果物-Fruits_Ed.9_Screenprint_34×43.2cm_125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야요이쿠사마_박현수_이승오_임안나_임지빈_지호준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주말_10:00am~05:00pm / 월,공휴일 휴관

진화랑 JEAN ART GALLERY 서울 종로구 통의동 7-35번지 Tel. +82.2.738.7570 www.jeanart.net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쿠사마  ● "I, KUSAMA, AM THE MODERN ALICE IN WONDERLAND." (Yayoi Kusama, Infinity Net: The Autobiography of Yayoi Kusama, Ralph McCarthy(trans.), 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11, p. 124.) ● 쿠사마 야요이(Kusama Yayoi)는 1929년 일본 나가노(Nagano) 마쓰모토(Matsumoto)시에서 종묘원을 운영하는 부유한 집안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언제나 부재했던 방탕한 아버지와 강압적이고 폭력적이었던 어머니 때문에 쿠사마의 어린 시절은 행복하지 못했다. 쿠사마는 10세경부터 강박신경증과 그로 인한 환각, 환청에 시달리기 시작했는데 그녀에게 가해진 가정불화와 폭력은 강박신경증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로 보아진다. 가족들은 그녀의 증상을 이해하지 못했고 어머니는 여느 아이들과 다른 모습을 보이는 딸을 학대했다. 홀로 자신의 정신질환을 견뎌야했던 쿠사마에게 유일한 피난처는 미술이었다. 환각을 경험할 때마다 쿠사마는 그림을 그리거나 오브제(object)를 만들었고 자신의 마음 안에 있는 것들을 꺼내 재창조하기를 반복했다. 어린 시절 남긴 수많은 드로잉과 회화들은 바로 그 결과물이며 이 때부터 등장한 점(dot), 물방울무늬(polka dot), 그물망(net), 그리고 꽃은 이후 그녀의 작업을 대표하는 상징이 되었다.

이승오_Layer-쿠사마 호박_Paper stack_116.8×91cm_2012
임안나_Hello Kusama #1_Pigment print_50×70cm_2013

1940년대 후반, 쿠사마는 사실주의적인 주제들-양파, 식물, 나비 등-에 전통 일본화의 재료와 기법을 결합시키는 한편 유화, 파스텔(pastel), 수채화, 과슈(gouache), 템페라(tempera)와 같은 서양의 매체를 탐구하며 다양한 재료, 형태, 색채의 사용을 시도했다(미주1). 1950년대에 들어서면서 쿠사마의 작업은 보다 추상적으로 변했고 그의 회화에 등장하는 생명의 탄생과 성장, 소멸과 부패를 암시하는 것 같은 형상들은 미시적인 동시에 우주적인 지형을 재현한 것처럼 보인다(미주 2). 그리고 이러한 이미지들은 곧 올 오버(all over)로 불규칙하게 그려진 점이나 핏줄 같은 줄무늬, 그물의 형상으로 이어졌다. 마쓰모토와 도쿄(Tokyo)에서 열린 수차례의 전시에 참여한 후 자신의 작업에 자신감을 갖게 된 쿠사마는 연이어 개인전을 진행했고 그의 작업은 비평가들의 지지를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계속된 성공에도 불구하고 쿠사마는 그녀의 예술적 지평을 더욱 넓히기 위해 일본을 떠나게 되었다. ● 뉴욕에 도착한 1958년부터 쿠사마는 본격적으로 무한망(infinity net) 작업을 발전시켰는데 1958년 이후의 작업은 엄격하게 한정된 색채, 올 오버 구도, 반복성을 일관되게 보여준다. 쿠사마는 완전한 몰입과 지구력으로 화면을 완전히 채워나가는 강박적이면서도 명상적인 행위를 반복했다(미주 3). 또한 1962년부터 쿠사마는 바느질을 이용한 부드러운 조각을 제작하기 시작했고 이를 정신신체증적 예술(Psychosomatic Art)이라 이름 지었다(미주 4). 이후 전개되는 그녀의 집적 시리즈는 섹스 강박(Sex Obsession) 시리즈처럼 성에 대한 공포를 더욱 깊이 있게 다루거나 음식 강박(Food Obsession) 시리즈처럼 산업사회의 결과로 대량생산되는 물건들과 음식에 대한 공포로 확대되어 다양한 대상에 대한 신경증적 증상을 보여주었다. 또한 1965년부터 쿠사마는 거울 방(Mirror Room) 시리즈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거울에 반사된 이미지 때문에 공간은 무한히 확장되었고 바닥에 놓인 오브제는 무한히 증식했다. ● 한편 쿠사마의 퍼포먼스(performance)-해프닝(happening)-는 1967년 이후 본격화되었는데 쿠사마는 정치적이고 사회적이며 성(性)적인 주제의 퍼포먼스들을 체계적으로 진행했다. 쿠사마는 억압과 규율을 상징하는 옷을 벗은 나체에 그림을 그리는 충격적인 퍼포먼스를 제작했다. 옷을 벗고 물방울무늬로 몸을 가득 채우는 행위는 사회적 정체성을 없애고 억압된 자아를 소멸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지호준_Kusama Hommage_Yellow_Pigment Print_50×40.5cm_2013

쿠사마는 1957년 미국에서의 활동을 시작한 이후 1970년대까지 다양한 미술 양식을 선보였다. 그녀가 뉴욕에 머무를 당시 미국의 미술계는 급변하고 있었고 이것은 쿠사마가 자신의 작업 영역을 넓히는 데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그녀는 수많은 운동들과 영향 관계를 주고받으면서도 결코 그 운동들의 부분이 되지 않았으며 그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었다(미주 5). 쿠사마가 회화, 조각, 설치, 그리고 해프닝에 이르기까지 아방가르드 미술계에 그녀의 이름을 견고하게 쌓아나갔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 1973년 쿠사마는 일본으로 돌아왔고 1975년 이후 일본에 완전히 정착하게 되었다. 쿠사마는 한동안 문학에 심취했고 매년 1-2회 정도 미술가로서 전시회를 여는 것과 별개로 문학가로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1985부터 2002년까지 그녀는 12편의 소설을 발표했고 시집과 자서전도 출간했다. 1980년대를 지나면서 쿠사마는 미술 활동에 전념하게 되었고 작업 방향도 바뀌어 다시 회화와 손으로 만드는 오브제 작업으로 되돌아갔다. 이 시기 쿠사마의 회화는 미시와 거시 세계 모두를 연상시키는 생물학적이고 천문학적이라 불리는 그만의 추상적인 패턴으로 가득 차 있다. 보다 복잡해진 그의 회화에는 그녀의 초기작들을 연상시키는 유기체적이고 고대적인 형상들뿐만 아니라 인형 같은 작은 소녀, 웃고 있는 강아지, 호박, 기괴하게 자라는 꽃, 다양한 색의 그물 문양들이 포함되었다. 특히 물방울무늬가 가득한 호박들은 1994년 나오시마(Naoshima)에서의 공공 조각 설치를 시작으로 다양한 공공장소에 놓이게 되었고 그녀의 대표 아이콘(icon)이 되었다. 1990년 말부터 2000년대 초반부터 쿠사마는 환경적 설치 작업 역시 다시 보여주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이전 작업들을 보다 세련되게 재해석하거나 변주하였다. 집적 조각, 거울 방이 대표적인데 평범하거나 간결한 가구가 놓이거나 거울이 놓인 그의 전시장은 물방울무늬 혹은 전구의 깜박거림, 이미지의 무한 반사로 인해 초현실적이고 언케니(uncanny)한 알 수 없는 공간으로 변화된다. 특히 거울 방 시리즈들은 무한한 공간의 확장, 자아의 소멸에 대한 탐구, 아름다움과 신비함을 동시에 성취하는 쿠사마의 능력을 입증한다(미주 6).

임지빈_Slave_공간[空間]PM538 [KUSAMA YAYOI]_Pigment print with Facemout_70×100cm_2013

"내가 가장 최우선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훌륭한 예술을 창조하길 원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나의 유일한 바람이다. (중략) 나는 나의 죽음 후에도 빛나는 작품들을 창조하기 위한 노력을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Yayoi Kusama, Ralph McCarthy(trans.), 2011, p. 230.) ● 쿠사마의 예술은 어린 시절부터 그녀를 따라다닌 환각과 환청, 강박 신경증을 극복하고 승화시킨 결과물이다. 쿠사마는 자신의 환각을 표현하고, 그로 인해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표현하고,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 열정적으로 작품에 몰두했다. 그러나 그녀의 예술이 단순히 치유의 의미만 갖는 것은 결코 아니다. 쿠사마의 전 인생은 예술을 위한 것이었다 해도 과장이 아니다. 쿠사마 역시 자신의 작업이 정신질환과 치유라는 하나의 방향에서 해석되고 관심을 끄는 것을 경계한다. 여전히 그녀는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도발적이고 획기적인 창조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오늘도 그녀의 내면은 영원히 남을 예술을 만들고자 하는 열망으로 가득 차 있다. 이것이 그녀가 자신의 삶을 사는 방식이다. 그리고 그녀는 그 삶을 계속 살아갈 것이다. ■ 이문정

미주 1. Yayoi Kusama, Infinity Net: The Autobiography of Yayoi Kusama, Ralph McCarthy(trans.),            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11, p. 16 미주 2. Frances Morris(ed.), Yayoi Kusama, Distributed Art Publishers, 2012, pp. 16-17, Laura Hoptman,            'Yayoi Kusama: A Reckoning', in Laura Hoptman, Akira Tatehata, Udo Kultermann,            Yayoi Kusama, London: Phaidon, 2000, p. 37-38 미주 3. Yayoi Kusama, Ralph McCarthy(trans.), 2011, p. 15, p. 23, Laura Hoptman, 2000, p. 42. 미주 4. Yayoi Kusama, Ralph McCarthy(trans.), 2011, p. 42. 미주 5. Yayoi Kusama, Ralph McCarthy(trans.), 2011, p. 191. 미주 6. Frances Morris(ed.), 2012, p. 131, p. 153.

Loveforever - Kusama Yayoi ● 진화랑은 2000년도 초대전을 통해 쿠사마 야요이를 한국에 처음으로 소개하였고, 이후 6 차례의 전시를 선보였습니다. 진화랑을 설립하신 고 유위진 회장님께서는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한일 미술 교류를 활발하게 주도해 오셨는데 그 쿠사마 야요이 전시는 화랑의 역사에 있어 중요하고도 의미 있는 활동이었습니다. 쿠사마 야요이가 현재 동시대 아시아 여성 작가 중 세계적으로 가장 주목 받고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점은 화랑의 존재감을 높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 미국, 유럽 등 세계 각지의 유명미술관에서 회고전이 개최되고, 명품브랜드 루이비통과의 대규모 콜라보레이션 작업으로 쿠사마의 위상은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위치에 올라있습니다. ● 이러한 시점에 그녀의 작품 세계가 사랑 받을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다시 느껴볼 수 있는 전시를 마련하는 일은 즐거운 여운을 남길 수 있을 것입니다. 더불어 현재의 동시대 한국 작가들이 자신들의 작품 세계 속에 쿠사마 야요이를 오마주한 작품들을 함께 구성하였습니다. 현재의 쿠사마 야요이처럼 장차 세계를 뜨겁게 달굴 한국 작가들의 작품들은 쿠사마 세계의 매력 속으로 빠지는 데 열기를 더할 것입니다.    ■ 진화랑

Vol.20131128f | Hommage for YAYOI KUSAMA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