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3_1129_금요일_06:00pm
후원 / 서울특별시_서울문화재단_성북예술창작센터
관람시간 / 10:00pm~06:00pm
갤러리 맺음 Gallery_Ties 서울 성북구 회기로 3길 17(종암동 28-358번지) 성북예술창작센터 2층 Tel. +82.2.943.9300 cafe.naver.com/sbartspace
8년 전 우연히 만난 3인은 술도 마시지 않은 말짱한 정신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술, 바람, 자유, 피가 그 때 나온 주요 단어들이다. 네 단어로 문장을 만들어 보았다. '술 먹고 바람 난 자유, 피 흘리다.' 혼자서는 하지 않을 말이었다. 셋이 모여 우연히 생겨난 문장이 괴상했지만 한 단어씩 집중해 보기로 했다. 2008년 '술과 바람'을 주제로 공중 목욕탕처럼 생긴 카페에서 전시를 했다. 전에는 다루어 보지 않았던 주제를 잡고 보니 묻지 않아서 하지는 않았지만 엄연히 존재했던 각자의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2013년에는 '피'를 주제로 보건소를 개조한 공간에서 전시를 연다. 폭력이 만성이 되면 피도 탈색 되어 분홍색으로 보인다. 아마도 각자가 만난 가장 잔인한 생의 이면을 그려낼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늘 보는, 아무렇지도 않은 그런 것들일 것이다. 그러나 보는 이의 심장이 살아 있는 만큼 피를 보게 될 것이다. ■ 정원연_노순석_김태진
할아버지는 한 쪽 눈이 자꾸 빠지셨다. 빠진 눈알을 쉰 웃음소리를 내며 다시 제자리에 넣으셨다. 등을 긁으라 하셨다. 한쪽 등이 깊게 패여 있었다. 내 할아버지의 등은 내가 태어날 때부터 패여 있었고 내 할아버지의 한쪽 눈은 내가 태어날 때부터 없었다. 할아버지는 원래 그런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묻지 않았다. 묻지 않았기에 누구도 할아버지가 왜 그렇게 되었는지 말해주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돌아가셨고 할아버지의 상처는 사라진 줄 알았다. ● 사람들을 만났다. 돈이 되는 것만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돈이 되지 않는 창작을 거듭하는 사람들, 학교에서 떨어져 나온 사람들, 결혼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 길에 나 앉은 사람들, 좀 모자라 어디에도 갈 곳에 없는 사람들. 그들의 손에 할아버지의 빠진 눈알이 들려있다. 그들도 쉰 웃음 소리를 내며 눈알을 제자리에 넣지만 자꾸 빠진다. 그들의 한쪽 등도 움푹 패였다. 살점이 떨어져 나간 등짝이 간지럽다고 한다. 그들도 자기 상처의 자초지종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시시비비를 가리기보다 당장 현재를 살아야 하니까. 내가 눈이 빠지게 떠대는 꽃들은 말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눈알이 없는 눈덩이와 패인 등에 놓는 헌화이다. 실로 뜬 꽃은 밟혀도 짓무르지 않으며 더럽혀져도 물로 빨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 정원연
딱 1년 전, 세종문화회관 뒤편에 있는 술집에서 그를 만났다. 내가 화가란 걸 아는 마담이 그림을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다며 소개를 시켜준 것이다. 통성명을 하고 술 한잔을 마신 다음 그는 스케치북을 한 권 내밀며 그림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낡은 가장자리를 잡아 한 장씩 넘기자 말 그대로 스케치북이었다. 자동차, 고양이, 의자, 과일 등이 연필과 색연필로 꼼꼼하게 스케치 되어 있었다. 형식적으로 '잘 그렸네요', '재주가 있네요'란 칭찬을 중얼거리던 내 입은 어느 순간부터 나직한 탄성만 질렀다. 여자의 얼굴이 계속해서 나왔는데 잘 그리지는 않았지만 잘 그린 그림이었다. "전부 저랑 잔 여자들이에요." 그가 말했다. "많이 그리셨네요." 내가 말했다. 스케치북을 덮고 위스키를 삼키며 '너 같은 삶을 살 수 있으면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겠다'라고 속으로 말하면서 고개를 돌렸더니 메피스토펠레스가 앉아 있다. ● 그렇게 그림을 배우러 합정동 작업실에 온 그에게 한 첫 마디가 "왜 이 일을 하게 되었습니까?" 였다. ■ 노순석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파괴에 대해 떠올려 본다. 가장 극심한 파괴의 이미지는 영화에서 다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는 현실의 어떤 사건 장면은 마치 영화에서나 나올 것 같은 것이었다고 이야기하게 되었다. 퀴퀴한 지하 만화방의 기억은 권태로운 사춘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세상이 망해버리면 속 시원하겠다.' 삶은 초능력을 가진 이가 힘을 과시하는 이미지를 소비하고 있었다. 만화나 영화 속에서 파괴를 자행하는 악은 그것을 막아내는 영웅을 떠받쳐 주기 위해 있다. 불가피한 상황인 가운데 그저 그것을 편안하게 즐기기만 하면 그만인 것이다. 하지만 그토록 극심한 폭력의 모든 정황은 공모된 것으로서의 싸움에 의해 생겨난 부산물일 뿐이다. 그리고 현실에서는 이편저편 모두가 승리하는 시나리오로 작동하게 되는 것이다. ● 이 모든 억압을 만들어 낸 것 같이 느껴지는 현실의 풍경, 그것이 뭉개져버리는 광경은 내밀한 통쾌함을 느끼게 한다. 구닥다리 골목길은 온데간데없고 새로 들어선 아파트들은 어쩐지 미래적이다. 차세대 전투기도 참으로 미래적이다. 파괴와 건설의 틈바구니에서 숨이 차다. 파괴된 바그다드에도 건설 붐이 한창이라는 뉴스가 갑자기 생각난다. ●「May I Hate You?」는 수퍼맨을 미워해보고 싶어서 만들었고, 「푸른연기」는 만화 속 과장된 파괴의 그림들을 차용하여 인물 빼고 의태어 빼서 다시 그려보기 한 것이다. 연작들과 함께 전시될 것이다. ■ 김태진
Vol.20131127a | 분홍 피 pink blood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