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다시 돌아보다 WHITE-Revisited

권대섭展 / KWONDAESUP / 權大燮 / ceramic   2013_1121 ▶ 2013_1224

권대섭_白

초대일시 / 2013_1121_목요일_06:00pm_청담점

권대섭 작가의 식기와 함께하는 Afternoon Tea Party 전시 중 예약제 / 예약문의_+82.2.517.7713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일요일 휴관

김리아갤러리 청담점 KIMREEAA GALLERY CHUNGDAM 서울 강남구 청담동 19-20번지 Tel. +82.2.517.7713 www.kimreeaa.com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월요일 휴관

김리아갤러리 통의점 KIMREEAA GALLERY TONGUI 서울 종로구 통의동 35-97번지 1층 Tel. +82.2.736.7713 www.kimreeaa.com

"백"은 해아릴 수 없는 수많은 색을 말한다. 상형문자로서의 '백'은 햇빛이 위를 향하여 비추는 모양을 본뜬 글자이다. 형태가 없는 빛을 상형화 했으니 그 모양도 빛깔도 다양할것이다. 권대섭의 작품은 어떠한 색으로 표현하기 어렵다. 아마, 색 중에 가장 추상적인 색, '백'이라는 단어로 표현하는 것이 가장 적절할 것이다. 그의 백자는 주변 공간을 담아내고 그 공간안에 내포되어 있는 색과 공기를 조용히, 가장 자연스럽게 수용한다. 600년 전 부터 만든 조선백자의 방법과 미를 끊임 없이 흙과 불로 전승해 내는 권대섭의 백자는 그래서인지 현대의 공간과 생활에 자연스럽게 어우러 진다. 그의 도자기는 600년전과는 상이하게 달라진 우리의 현대생활 형태와 방식을 포용할 만큼 넉넉하다. ● 김리아갤러리 청담점과 통의점에서 진행되는 이번 전시는 권대섭 백자의 다양함과 현대성을 재 조명하는 자리이다. 권대섭은 30년간 고집스럽게 단순한 형태를 만들어 내지만, 그의 도자기를 찬찬히 보다보면 색과 형태의 다름이 은근히 눈에 베어난다. ● 달항아리와 사발 뿐만이 아니라, 그가 만들어 내는 식기들은 새로운 전시의 형태로 관객에게 다가간다. 전시기간 내에는 권대섭의 식기를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서양의 식기 등과 같이 현대적인 구성에서 체험해 볼 수 있는 "Afternoon Tea Party"도 진행 될 예정이다. ■ 김리아갤러리

권대섭의 백자 ● 백자가 잘 익어갈 무렵, 가마 속을 들여다 본 사람은 아마 알 것이다. 그 광경은 붉게 물든 석양이나 일출 같은 범상한 자연에서조차도 경험할 수 없는 장관이다. 가마 속은 그야말로 영롱하게 빛나는 황금불빛으로 환하다. 소란했던 불꽃은 모두 사라지고, 이제는 소리 없이 이글거리는 적막한 열기 속에서 마지막 몸을 태우는 백자를 바라는 순간, 도공은 곧 탄생하게 될 백자를 꿈꾸며 마음 설렌다. 수 없이 가마 속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고, 불꽃의 색깔을 관찰하고 온도를 측정하며, 장작불의 열기로 느낀 숱한 경험의 데이터들을 이리저리 궁리하며 마음을 조아리는 이 순간 흥분과 기대는 절정에 이르게 된다. 그러니 백자를 빚어내는 도공들에게 그 찬란하게 반짝이는 황금빛깔은 희열의 도가니로 몰아갈 수밖에 없다. 이런 달콤한 경험은 도공의 몫이며 창작의 인고를 감수해낸 자에게만 허락된 위로이고 특권이 된다. ● 백자의 전승과 전통은 이렇게 뜨거운 가마 속에서 육백여년 이어져 왔다. 이 불씨가 조선시대부터 지펴져 지금은 권대섭의 황토가마에서 계속 타고 있는 것이다. 백자의 기술과 정신이 녹아들고, 백자의 마음이 타고 있는 것이다. 타는 불꽃에 에너지가 흐르고 야망이 서린다. 이렇게 그가 추구하는 것은 가장 개인적이면서도 또한 보편적인 양식의 도자기를 만들어 내는 것인데 이 부질없어 보이는 노력이 조선시대부터 이어져온 백자의 장구한 사명이기도한 것이다. 전통의 불씨에 백자의 보편 미와 평정심을 심는다. 한편, 백자의 예술적 가치가 오늘에 이르면서 아주 특별한 맥락으로 현대미술 시장에 부각되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 사실 서구의 현대 문화가 들어오면서 백자는 케케묵은 골동품 정도로 밀려나고 박물관이나 골동애호가들에게만 각별한 예술품이 됐다. 그러나 지금은 유리와 금속으로 차갑게 지어진 현대식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백자를 본다. 깔끔하고 단순한 현대식 공간의 정서에 백자가 딱히 어울린다는 얘기다. 백자의 멋은 현대의 화가나 조각가들이 모노크롬이나 미니멀리즘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낸 멋과 맞수를 놓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게 됐다. ● 백자와 미니멀리즘은 각자 태어난 시대나 지역적 배경으로 봐도 서로 어울릴 수 없을 만큼 이질적이다. 알다시피 미니멀리즘은 미국문화를 중심으로 핀 현대 미술의 한 장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공간적으로 떨어져있던 백자와 미니멀리즘 예술이 현대미술의 맥락에서 무리 없이 교차되는 이유는 두루 내통하는 공통의 성질이 있기 때문이다. 미니멀리즘 예술은 자기에게 붙어있는 모든 미학적, 정치적, 서술적, 이미지와의 관련성들을 모두 태워버리고자 한다. 작품 자신 외에 자기에게 붙어 있는 그 모든 외적인 요소들을 불순물처럼 여기고 그것들을 깨끗이 씻어버리고 싶어 한다. 예술이란 이름도 떨쳐버리고 그저 특별한 일상품으로서 우리에게 다가 서겠다고 한다. 이러저러한 꾸밈이나 장식도 없이 우리 생활 곁에 놓여 쓰임 받고, 거기에 실용 미(완상 미)까지 더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백자와 통하는 면이 있고, 미니멀리즘 표현 형식도 역시 단순하고 결백할 수밖에 없다. 얼핏 외모와 태도는 달라 보일지 몰라도 속내는 서로 공감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그간 잊혀 진 백자 미학의 (자기 서술이 없는 순박성의) 현대성이 오늘날 일시적인 사조로 부상된 미니멀리즘 예술과 얼맞아 보이는 것은 일리가 있다. 이것이 서로 다르면서도 서로 통하는 동양과 서양의, 전통과 현대의 두 축이 지나가는 교차로의 만남이 아닌가 한다. ● 나는 권대섭의 달 항아리를 보면서 백자의 역사 전체를 생각하곤 한다. 우선 지극히 전승 적(정통적)이며 또한 전통적(창조적)이다. 그 전승과 전통의 힘이 현대 미학의 한 맥락과 어울려 큰 멋이 우러남을 본다. 하얀 흙에 투명한 유약을 입혀 구운 순백의 자기, 담박(淡泊)하여 욕심 없고 마음이 깨끗한 그릇, 차라리 무심에 대한 욕망 덩어리, 그렇게도 차가워 보이는 백자가 얼마나 뜨거운 불덩이 속에서 나왔는지 우리는 안다. 그래서 도자기를 아는 사람은 인생을 아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중에도 백자를 아는 것은 인생의 보석을 즐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것을 태워버리고 남은 정결한 빛, 그것이 백자의 매력이다. 이를 위해 권대섭은 삼십여 년 장작불을 지피고 있다. ■ 윤익영

Vol.20131121h | 권대섭展 / KWONDAESUP / 權大燮 / ceramic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