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균형의 균형 Occult balance

우중근展 / WOOJOONGKEUN / 禹重根 / painting   2013_1120 ▶ 2013_1126

우중근_거대한 호흡 The huge breath_캔버스에 유채_110×160cm_2013

초대일시 / 2013_1120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30pm / 일요일_11:00am~05:00pm

갤러리 고도 GALLERY GODO 서울 종로구 수송동 12번지 Tel. +82.2.720.2225 www.gallerygodo.com

불균형의 균형(Occult balance) ● 눈앞의 대상들은 그대로 멈춰 있기도 하고 움직이기도 한다. 그것은 선택이고 의지일 수 있다. 논리적인 이성만이 그것을 볼 수 있는 혜택이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몸과 마음을 가지고 그냥 보이는 사물에 가능성을 열어 놓고 같이 움직이고 멈춰 설 수 있다. 자의든 타의든 살아온 만큼 스스로를 길들여온 개인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그대로 닮아 있고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행복감을 잊은 듯 그리워한다. 모든 것이 섞여 있어 하나 하나는 알 수 없지만 같이 섞여있어 편안하고 나의 모든 것과 하나같이 일체감을 느낄 수 있는 세계. 작은 입자들로 밀도 있게 구성된 현재의 모습들은 학습된 언어의 조합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내가 지녀온 시간만큼 관습화된 이미지의 환영으로 질서 있게 내가 보는 정도만큼 온전히 보여준다. 비슷한 것들 끼리 혈연관계를 유지하듯 꾸준하게 색과 형태를 갖추고 나의 시각 앞에 존재하는 이 세계의 모든 것들은 보이지 않는 거대한 동일화의 시스템 속에서 다양한 접촉을 하고 있다.

우중근_불균형의 균형Ⅰ Occult balanceⅠ_캔버스에 유채_39×53cm_2013
우중근_분홍을 읊조리다 Appreciating pink_캔버스에 유채_162×130cm_2013
우중근_견고함의 효과 The effect of firmness_캔버스에 유채_116.5×91cm_2013

지속할 수 있는 힘은 아예 이 세상에 없는 것처럼 시간이 기억과 예측들 사이에서 의식구조를 망각하게 하고 공간 역시 약속 없는 변화의 자리를 지킨다. 그리고 안전성을 보장하는 듯 언어. 기호. 이미지는 크게 변하지 않았고 더 미분화되어 유사한 사실들을 더 많은 사람들이 공유 할 수 있도록 증식시키며 배려하고 있다. 편리하고 세련되게 스마트한 삶을 꿈꾸는 만큼 쇳덩어리 같은 무게로 붙는 삶의 그림자는 수면아래 빙산처럼 살고 있다는 증거인 양 유유히 따라다니고 어떤 우연한 자리에서도 질서와 무질서는 빛바랜 양면성을 쥐고 삶의 의지를 가늠한다. 낯설고 불편할 뿐 아니라 위협까지 느끼는 자연이라는 존재는 문명화의 과정에서 아름답고 숭고한 존재로 다시 태어나기도 하는데 언어를 매개로하는 이성의 상징계가 이를 친절히 돕고 있다. 반면. 상상력을 기초로 실재세계에 대한 이해를 고양시키는 나르시스적 태도는 예술이 가진 부분과 유사한 관계를 보여주며 논리적이고 개념적인 이성이 합리화의 과정에서 걸러진 욕망의 결핍을 완전하지 못한 상태로 충족시켜 준다. 모든 인간들에게 적용될 수 있는 욕망의 결핍. 이것은 한 인간이 사회성을 획득하려고 할 때 발생하는 트라우마 같이 어두운 곳에 깊이 잠재되어 있어서 서로 다른 방식. 다른 형태로 드러나고 경험되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인간은 끊임없이 다른 형식의 결핍된 욕망으로 삶의 시간을 소비한다. 그리고 다시 부재하는 대상에 대한 끝없는 추구로 이어지든가 삶의 의지의 추락으로 타나토스의 유혹을 받곤 한다. 아직 미분화 되지 않은 혼돈의 세계는 잠재적 질서의 차원으로 해석가능하다. 카오스라고 일컫는 이 세계를 인간의 이성은 역사를 통해 무한의 무질서와 질서를 경험하며 고된 작업을 해왔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이성이 단순히 인간의 몸과 마음에 대치하여 억압하는 기능을 수행해 왔다고 어리석은 판단을 우리는 하지 않는다. 그것은 생명체가 가진 본능이외에 인간이 지닌 생물학적 기능으로 볼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다만 어떤 시기에 어떤 지배이데올로기의 도구로 전락 했을 때 심각

우중근_고전에 관한 짧은 명상 The short meditation about the classics_캔버스에 유채_73×117cm_2013
우중근_푸른 안착 The blue safe arrival_캔버스에 유채_91×116.5cm_2013

한 문제가 될수 있는 데 그 어떤 시기는 늘 존재해 왔던 것 같다. 합리적으로 관리되는 세계의 비합리성의 비판은 여러 형식으로 드러나지만 사회의 본질에 대해 비동일자로 남아있는 예술의 경우 내면에 축적된 의지의 반영을 통해 침묵하는 이미지로 다양한 구조를 드러낸다. 그리고 모순적 구조를 기본으로 탑재한 채 진정성에 호소하는 모습을 종종 발견하게 되는데 이는 곧 시니컬한 대중들의 습관적 감수성과 전문가 집단의 무관심속에 자연과 같이 사라지기도 한다. 인간의 이성이 그러하듯 비합리성의 대상이 되는 자본주의 역시 비판의 자리가 제자리가 아니다. 인간들의 삶과 죽음. 희노애락을 좌우하는 만큼 중요한자리를 차지하기 때문에. 또는 예술과 관련된 사회적 시스템을 흔들 수 있는 능력이 있으므로 예술의 무가치를 논하며 비판의 대상으로 보이는 것이다. 언어가 만들어 내는 의미는 결국 조합과 선택, 유사성과 차이의 관계 속에서 짜여진 상호작용의 결과라고 말한다. 카오스이론에서 언급하는 나비효과는 장자의 나비의 꿈과 다르다. 그렇지만 자연현상을 놓고 봤을 때는 유사성이 발견되기도 하는데 구조주의자들의 입장을 적용해 직조해낸 결과물은 흡사 거대 이데올로기로 부풀려 나타날 수도 있을 것이다. 동양적 사유가 우리에게 주는 선물은 알 수 없는 편안함이다. 합리성에 기반을 둔 서구의 많은 이론들에 비해 체질적인 차이에서 비롯된 것인지 문명화된 자연이나 우리가 일반적으로 일컫는 자연에 동화될 수 있는 능력 같은 것을 제공 해준다.

우중근_상승하는 계획된 터치들의 집합 The assemblage of the planned thouches rising up_ 캔버스에 유채_130×162cm_2013

그러나 지금 여기는 자아극복을 위한 자아의 해체를 말하는 동양의 전통사상들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시공간이 되었다. 아무 보호장치 없이는 자기분열을 초래 할뿐이다. 예술을 기계문명과 같이 계속적으로 상향 발전한다는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아서도 안 되고 예술이 동시대가 가지고 있는 특성을 간과해서도 안 된다. 동시대 예술이 가야할 방향은 예술의 특징이 그러하듯이 여러 갈래로 나눠지기도 합쳐지기도 하면서 외롭게 그들이 발견한 이 시대 사실들의 표현일 것이다. 어떤 트라우마를 격고 있는 나의 체질적 욕망은 시니컬한 자세를 취해 보기도 하지만 진정한 시공간들 밖에서 결핍을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허탈한 마음으로 스스로를 의심하며 앞서 어설프게 축약한 나의 텍스트의 너머를 바라보고 있는지 모른다. 혈육과도 같이 유기적으로 얽힌 세계와 나의 관계는 유사성의 차이들을 바라보며 뫼비우스의 띠와 같이 희극과 비극을 넘어 다양한 가상극으로 나타난다. 이런 극적인 과잉현상들을 경험하는 나의 사유는 복합적 양태 혹은 불균형한 균형들 속에서 침묵과는 다른 태도로 그림 그리기를 시작한다. ■ 우중근

Vol.20131120a | 우중근展 / WOOJOONGKEUN / 禹重根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