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뢰 松籟-소나무숲 사이를 스쳐 부는 바람

백범영展 / BAEKBEOMYOUNG / 白凡瑛 / painting   2013_1120 ▶ 2013_1128

백범영_용반 龍盤_화선지에 수묵담채_70×46cm_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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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3_1120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갤러리 한옥 GALLERY HANOK 서울 종로구 가회동 30-10번지 Tel. +82.2.3673.3426 galleryhanok.blog.me

송뢰성(松籟聲), 야성을 깨우는 소리 ● 백범영, 그는 야성적인 사내다. 햇볕에 검게 그을린 얼굴, 투박한 말투는 화가 같지 않고 농사꾼 같다. 근자엔 허연 수염까지 길러 더하다. 그는 늘 일탈을 꿈꾼다. 스무 살 대학생도 아닌 쉰을 넘긴 대학교수가 불쑥 배낭 하나 둘러메고 보름을 걸어 국토를 종단하고 횡단한다. 무거운 짐 속에 스케치북을 잔뜩 넣고 걷고 또 걷는다. 그는 걸으면서 본 것과 보면서 느낀 것, 그리고 걷는 동안 그린 것들로 충만해져서 더 새카매진 얼굴로 돌아온다. ● 그림 그리다 말고 동양철학을 본질로 파고들겠다며 진작 한문 공부에 한 세월을 보낸 뒤, 대학원 동양철학과로 진학할 때부터 그는 남달랐다. 남이 안 가는 길로만 갔고, 안주를 늘 거부했다. 그는 반복적 일상의 나른함을 혐오하고, 손끝의 재간으로 그리는 그림을 경멸한다. 늘 극단으로 자신을 내몰아 세워 종종 퇴로를 차단한다. 그간 네 차례나 국토를 종주하면서 몸이 고통스러울수록 마음이 정화되는 기이한 체험을 거듭했다지만, 나는 그가 그 나이에도 자신을 그토록 괴롭히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백범영_송뢰 松籟_한지에 수묵담채_32×43cm_2013
백범영_철갑 鐵甲_화선지에 수묵담채_27×27cm_2013

그 극한의 걷기 속에서 그는 야생의 소나무와 가슴으로 만났다. 원예사의 손길로 잘 생기게 다듬어진 궁궐의 소나무 말고, 오랜 세월에 시달린 흔적이 고스란히 녹아든 못 생겨도 씩씩한 야성과 해후했다. 일본의 소나무는 굵어도 굳지 않고, 중국의 소나무는 멋없이 솟기만 해서 꿈틀대는 맛이 없다. 미국의 소나무는 장하기는 해도 아예 딴 나무처럼 보인다. 소나무는 우리 산야 사계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것이라야 비로소 화가의 붓을 꿈틀대게 하는 힘이 있다. ● 철린(鐵鱗)을 두른 용이 허리를 틀어 하늘로 솟는다. 그 서슬 따라 눈길을 올리면 아스라한 하늘 위 삼연(森然)한 잎새에 눈이 먼저 휘청한다. 그 쭉 뻗은 장쾌한 줄기며 눈 쌓인 가지 사이를 겨울 칼바람이 건듯 밟고 지날 때 나그네는 때 아닌 해도성(海濤聲)에 놀란다. 사시장철 푸른 솔의 기상에서 손 뒤집듯 바뀌는 염량의 세태를 탄식하며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를 되뇐 것은 추사의 「세한도」에서다. 울근불근 돋은 송근(松根)을 베고 누워 풋잠에 들었다가 학 탄 신선에게서 선계(仙界)의 인연을 듣는 얘기는 송강(松江)의 「관동별곡」에 보인다. 화가는 솔 위에 으레 학 한 마리를 얹어 송수학령(松壽鶴齡)의 장수를 꿈꾸었고, 바닷가 파도 앞의 낙락장송으로 일품당조(一品當朝)의 소망을 깃들이기도 했다. 솔은 꿈이요 닮고 싶은 표상이었다.

백범영_와룡 臥龍_화선지에 수묵담채_43×63cm_2013
백범영_불천 拂天_한지에 수묵담채_70×73cm_2013

이제 백화백이 가슴으로 만난 솔은 또 다르다. 그는 화가면 누구나 제법 그리는 잘 생긴 소나무 말고 걷다가 만난 강원도 바닷가 야생 솔의 생생한 표정들을 이번 전시에서 담아냈다. 시련의 시달림을 온 몸에 새긴 야성의 기운에 눈길을 주었다. 기법을 버려 내키는 대로 그린 솔은 둥치를 내질러 화면 밖까지 뻗는다. 울근불근 주체할 수 없는 기운이 옹이로 맺혀 넘침을 자제한다. 적절하게 절제하거나 편집한 화면이 아닌 생긴 그대로 못나서 씩씩한 모습들이다. 하지만 작은 한옥 갤러리에서 열리는 전시라 큰 화폭에 담지 못해 그 씩씩한 기운을 누르려 애쓴 것은 조금 안쓰럽다. ● 그가 그 고생을 자청해 국토를 걸으며 제 가슴 속에 숨어있던 낙락한 소나무를 다시 꺼내 왔다. 몸을 혹사해 비워진 마음에 야성의 기운이 싱싱하게 푸르다. 이것이 다시 꼴액자의 투박한 외곽 속에 드니 아연 기운이 비등한다. 전시회 제목을「송뢰松籟」로 정했다. 송뢰는 바람이 솔가지 사이를 뚫고 지날 때 나는 피리 소리다. 가지가 흔들리면서 가락이 바뀌고 속도에 따라 음의 고저가 달라진다. 그야말로 자연의 가락이요 펄떡이는 기운이다. 화면 속에서 화가의 내면을 읽는데 그림 밖에서는 송뢰성의 가락이 들린다. 조촐한 전시장에 청청한 기운이 가득하다. 작은 화폭 속 소나무가 틀 밖으로 꿈틀대며 아우성을 친다.

백범영_쇠송 衰松_한지에 수묵담채_74×143cm_2013
백범영_해풍 海風_한지에 수묵담채_74×143cm_2013

그가 허심탄회하게 가슴을 열고 만난 소나무, 우리 소나무! 바닷바람에 시달려 한쪽으로 쏠리고도 용비늘 갑옷 벗지 않고 독야청청 푸르른 옛 선비의 꼬장꼬장하고 시원시원한 기운과 만나러 가자. 그의 소나무 그림은 이제부터다. (2013년 11월) ■ 정민

Vol.20131119b | 백범영展 / BAEKBEOMYOUNG / 白凡瑛 / pain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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