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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3_1114_목요일_06:00pm
후원 / 서울문화재단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유아트스페이스 YOO ART SPACE 서울 강남구 청담동 101-6번지 Tel. +82.2.544.8585 www.yooartspace.com
자줏빛 길목을 서성이는 불면 ● 도시에도 불구하고, 이후 귀를 막고 서있는 한 소년이 있다. 세상의 웅얼거림 따위는 들을 필요 없다는 듯, 이어폰을 귀에 꽂고 볼륨을 제로에 맞춘 소년. 그를 키운 도시는 고립되었고, 아무도 남지 않은 도시에 소년은 귀를 막고 서 있다. 모든 것이 그렇듯 소년도 그림자로만 남았다. 온갖 쓸모없는 것들만 남아버린 텅 빈 도시 안의 고요함. 날지 못한 비행기가 쓸쓸하게 집으로 귀가하고, 벤치들이 도로를 활보한다. 빌딩의 그림자 안에서 태양의 반대편으로만 자라는 인간들, 검은 그림자 안에 그들의 형체는 함몰되어 가고 곧 흔적도 남지 않는 밤이 온다. 이웃들은 서둘러 전등을 끄고 어둑어둑해진 서로의 집을 바라보며 안도하고 안개와 함께 사라진다. 서쪽으로 뻗어 있는 국도는 사라진 안개를 따라 조용히 제 갈 길을 간다. 아무도 남지 않은 밤, 도시는 조용히 남자를 부른다. 소리 없이 자신의 모습을 지켜보게 한다. (이원,김태용,신용목,김민정,백가흠,윤종석,이길우,이상선,변웅필,정재호 공저, 「비행기가 집으로 느리게 걸어왔다」 백가흠·정재호 편, 『그림에도 불구하고』 (문학동네, 2010))
도시가 그를 만난 것은 필연이었다. 도시는 그를 가장 강렬한 색깔로 불러냈다. 습기가 없는 빛은 모든 것을 선명하게 만들었으나, 마음까지도 그렇게 하진 못했다. 공간에 습한 기운이 사라지자 축축하고 찐득거리는 것들은 모두 마음 속 깊은 곳에 침잠되었다. 인간이 고독해진 이유였다. 사람들은 강렬하고 화려한 빛 때문에 모두 선글라스를 써야만 했지만, 눈이 부셨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선글라스는 흐름도 없고, 물길도 없는 마음속 잔잔한 심해의 부유물을 가리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사람들은 서로의 눈을 바라보길 피했고, 도시의 거리와 건물들은 그런 사람들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거리와 건물 안에 사람들은 가득했으나, 모두 혼자이거나 아무도 없었다. 공간은 선명한 푸른빛이거나 눈부신 노랑과 그림자로 남은 검정으로 채워졌다. 거리와 건물을 바라보는 자, 혼자였으니 사람들이 채웠던 도시의 빛깔이 사라졌다. 사람과 사람사이 얽혀있던 빛들이 끊어지고 감정은 찾을 수 없는 곳에 조용히 내려앉았다.
사람들의 색깔이 도시에서 사라지기 시작하자 도시는 가장 선명하고 눈부신 색깔들로 채워졌다. 그의 도시에 우리가 알고 있는 잿빛의 도시가 존재하지 않는 이유였다. 소년을 키운 도시의 색깔은 그리하여 도시에도 불구하고 선명한 파랑이거나, 하얗거나, 눈부신 노랑이거나, 그림자로 자란 검정이었다. 때때로 이것을 이국적이라 믿었으나, 이는 먼 나라의 색깔이 아니었다. 단지 우리가 가진 공간 속, 인간이 가진 습한 감정들이 거세된 자국이고 얼룩이었다. 점이나 흘러내리는 물감자국들은 겨우 유지하던 내면의 외로운 울음이었다. 소년은 여전히 이어폰을 꽂고 이젠 모두 사라지고 텅 빈 거리와 건물 사이를 여전히 부유하면서도 숨을 곳을 찾아다닌다. 이미 아무도 남지 않은 공간에서 그는 누구로부터 숨으려 하는가, 들키지 않고 그가 보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건물 속 시커먼 창 안의 그는 아직도 커튼을 벗겨낼지 고민 중이다. 여전히 이어폰을 꽂고 선글라스를 낀 채, 커튼 뒤에 숨어 있다. 그는 화려한 빛으로만 남은 고독한 내면의 도시를 버릴 참인지도 모른다. 내면 깊은 곳에 침잠되어 있는 감정의 습기가 너무 축축하다. 조금 전보다 더 고독하다. 이제 곧 비가 내릴 것만 같다. 선명하고 눈부신 빛깔의 도시가, 감히 올려다 볼 수 없을 만큼 높고 쓸쓸한 파란하늘이 보랏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다.
강박하고 불안하고 불면하여 ● 개인은 말이나 행동, 즉 언어로부터 멀어지자, 도시로부터 멀어진다. 불안감은 언어의 격리에서부터 시작된다. 입이 있되 말하지 못한다. 말을 해야 하되 말을 더듬는다. 새로운 도시의 촌장은 한 개인에게 폭압적인 언어, 활자로부터 파생된 개인 정서의 분열로 이어지는 지점을 포착한다. 활자들이 공중에서 만나서 부서지고, 늘어지며 꼬인다. 촌장은 언어의 강박으로 늘어지고 부서지며 꼬여버려서 점점 고독과 고뇌의 실타래로 엉켜버린 우리의 모습을 탐닉한다. 공중에서 부유하는 활자와 더듬거리는 언어는 우리의 본모습이다. 외롭기 때문에 고독하기 때문에 우리는 누군가 옆에 있어도 말을 하는 것이 불편하기만 하다. 위로는 인간이 인간에게 전하는 것이 아니다. 말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누군가 옆에 있어도 보고 있지 않으며 말하고 있어도 듣지 않는다. 결국엔 아무나 있으나 아무도 없다. 뭐든 서 있으나 가라앉기 직전이다. ● 세상은 온통 자줏빛이다. 보랏빛이다. 습기 먹은 푸른빛이다. 죽은 자들에겐 구원의 그로테스크이고 산 자들에겐 무엇이든 얻고자 하나 실패의 연속, 욕망의 아이러니다. 보라나 자주는 말해지는 것이 아니라 느껴지는 것이다. 푸른빛에서 검정으로 가는 길목, 우리는 무엇에 가까워지는지 알지 못하지만 간혹 느끼기도 한다. 단단히 딛고 서 있던 땅이나 건물들이 물 위에 떠 있는, 공중에 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우리는 다급하게 가라앉지 않을 곳을 찾는다. 허나 사방 둘러봐야 떠 있거나 가라앉는 것 둘 중 하나다. ● 땅 속이 텅 빈 허공이라는 것 우리의 내면이다. 이 세상 무엇도 발 딛고 서 있을 곳이 없다. 이곳은 표류하는 공간 안에 말을 잃은 자들이 죽음으로 가는 길목이다. 점으로 부서지는 이미지란 말더듬이의 말이다. 그렇게 공간은 말하고 있고, 우리는 느끼고 있다. 무엇에서 나와 무엇으로 가는지 이미지는 부서지며 말하고 있다. 애초에 우리가 그토록 믿었던 재깍재깍 움직이는 절대적인 시간은 없었으며 찰나이거나 영원만이 존재했다. 허나 우리는 느끼지 못했다. 땅은 땅이고 하늘은 하늘이라는 강박이 그렇게 만들었다. 땅 속은 비었고,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건물을 세운 육지는 끊임없이 추락하고 있다. 하강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내리고 있다. 멈추지 않으며 전속력으로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애써 모른 척 하는 것뿐이다. 지구가 돌고 있어 외롭고 고독한 것이 아니다. 지구가 우주의 한 복판으로 추락하고 있는 것이 불안한 것이다. 우리가 안고 있는 외로움과 고독함의 근원은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푸른빛에서 죽음으로 가는 보라와 자줏빛의 길목에 서 있다. 우리는 다 알고 있다. 우리가 가라앉고 있고 거대한 우주 가운데로 침몰하고 있다는 것을 태초의 그 순간부터 알아채고 있었다. 어차피 인간이란 존재는 존재하는 순간 가라앉기 시작하는 것, 빈 공간 안에 시간은 무의미하다. 역사란 것도 현재성이라는 것도 허공에서는 있으나마나한 것들이다. ● 빈 것 안에 존재할 수 있는 관념이란 없다. 우리가 가진 감정이나 개인의 시간들도 마찬가지인 셈이다. 어차피 우리에겐 허공뿐이다. 발 딛고 서 있는 땅 아래라야 공중뿐이다. 모든 것이 단단히 서 있는 것 같지만 공중에 떠 있고 땅이 가라앉고 추락하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잠들지 못하게 한다. 강박과 불안과 불면은 모두 같은 말이다. 우리의 땅이 단단하다는 것을 믿는 강박과 비어 있는 것을 알고 있는 불안은 같은 말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영원히 잠들지 못하고 자줏빛의 길목을 서성이는 불면의 환한 밤이 찾아온다. 하나의 감정까지 예민한 도시의 촌장들은 그리하여 아직도 커튼 뒤에 있는 것이다. 밖으로 나오고 있지 못하는 것이다. 아무도 없는 기숙사 골목과 버려진 정자와 바다라는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쉘터를 창안에서 묵도하고 있는 것이다. 작업실 창밖으로 간만에 소소한 풍경이 자리 잡았지만, 공중 위의 땅 위의 작업실 안에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는 것이 고작이다. 허공의 허공에 떠 있는 것, 잠을 자지 못하는 이유이다. 모두 밤이지만 그저 보라나 자줏빛인 이유다. ● 언어에서 발생되어 도시 생산과 공간에 대한 불안감으로 번진 자아의 회귀는 눈여겨볼만 하다. 촌장이 포착하고 있는 공항이나 비행기는 바로 이 불안감의 발로이기도 하다. 이별과 작별, 귀환과 마중, 정착과 불시착은 인간이 영유한 공항의 상징적인 이미지에 불과하다. 공항의 본질은 아닐지도 모른다. 공항의 본질은 떠나고 돌아오는 사람들로 북적거리며 가득 차 있을 때 떠오르는 것이 아니다. 그곳이 텅 비어있을 때 드러난다. 사람들이 사라지자 인간들의 들뜨고 과장된 감정도 함께 사라진다. 사람들을 떠나보내고서야 공항은 하나의 인격을 갖게 된다. 텅 비어버린 상실된 자아, 고독한 인격체로 남는다. 너무나 역동적이고 활동적인 공항이 멈추어 있다. 이륙과 착륙하는 비행기가 존재하지 않는다. 비행기는 정말 날고 싶은 걸까. ● 허공을 나는 것과 날 준비를 하는 것, 아름답지 않은가. 허공을 나는 것이란 가라앉는 고독함이나 외로움과 반작용하는 것이다. 허나 어디에 내려앉을 것인가. 온통 가라앉고 추락하는 것뿐인 세상 어느 곳에 불시착할 것인가.
샌프란시스코 & 일산 ● 샌프란시스코는 바닷가 옆의 청명한 하늘 아래 있고, 일산은 인공호수 위에 떠있다. 샌프란시스코에는 태초에 아무도 살지 않았다. 일산에는 몇몇의 사람들이 오래 전부터 살고 있었다. 왕족의 무덤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샌프란시코엔 금이 묻혀 있었고, 일산에는 왕족들이 묻혀 있었다. 일찍이 금을 찾아온 개척자들이 샌프란시스코를 세웠고, 서울에서 가장 가깝고 텅 빈 공간에 넓은 아파트평수를 원하는 부동산업자들이 일산을 만들었다. 샌프란시스코는 천혜의 경관을 가진 곳이지만 국내에서 가장 많은 알코올을 소비하고 자살율도 가장 높은 곳이다. 음악, 예술, 좋은 음식과 문화적 쾌락이 자유로운 곳이지만 죽음과도 가까운 도시다. 일산이랄 것도 없이 한국은 슬로베니아에 이어 두 번째로 술을 많이 소비하는 나라이고 자살률은 세계 최고인 나라이다. 일산은 우리의 모든 도시가 비슷하듯 그냥 그런 도시다. 일산의 자랑거리는 인공호수와 쇼핑몰, 거대한 오피스텔, 아파트단지다. 샌프란시스코는 사막과 바다 사이를 부유하는 곳이고 일산은 서울과 개성 사이를 떠다니는 곳이다. 샌프란시스코는 경사진 도로가 유명한 곳이고, 일산은 도시보다 자유로가 더 유명한 곳이다. 샌프란시스코는 인구 75만 명이 120제곱킬로평방미터 안에서 살고 있고 일산은 98만 명이 270제곱칠로평방미터 안에서 살고 있다. 그도 거기 살았고, 거기 살고 있다. 그의 공항에서 날아간 비행기가 불시착한 섬들이다. 그는 땅에 발 딛었으나 여전히 텅 빈 공항 안에 머물러 있었다. 떠나려고 했으나 떠나지 못했다. 비행기는 날았으나 착륙하지 못하고 공중을 맴돌았다.
그는 그저 '잘못 날아온 것'뿐이었다. 그는 금을 찾으러 온 개척자도 아니었고, 넓은 평수를 얻기 위해 이주한 사람도 아니었다. 도시의 촌장은 샌프란시스코의 거센 바닷바람을 맞으며 살기도 했고, 일산의 안개 안에 숨어 지내기도 했다. 그는 그저 그가 떨어진 곳에 생존했다. 지켜본 것이 그를 지켰고, 뭐든지 꽉 차 있는 도시의 정광이 그를 촌장으로 만들었다. 어차피 사람들은 모두 선글라스를 끼고 맑고 청명해서 똑바로 볼 수도 없는 것들을 보는 척 했고 사람의 습기는 모두 내면 깊은 곳에 가라앉았기 때문에 그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습기 가득한 도시에서는 무엇이든지 제 색깔을 내지 못하고 뿌연 것들로만 기록됐다. 사람들과 같이 있었으나 언제나 혼자였다. 사람들과 함께 걸었으나 거리는 항상 텅 비었다. 그의 언어는 사람들에게 닿지 못하고 샌프란시스코와 일산사이를 떠다니다 부서지기 일쑤였고, 어쩌다 말한다고 해도 말을 더듬었다. 그는 어느 도시에서든 더디었다. 예민한 탓이었다. 강박하고 불안하여 불면한 것들이 텅 빈 도시를 채우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가 지금 두 도시 사이 푸른빛에서 검정으로 가는 자주와 보랏빛 길목으로 우리를 이끌고 있다. 허공을 표류하는 공간 안에 말을 잃은 자들을 바라보고 있다. 텅 빈 곳에 가라앉은 불안을 바라보고 있다. ■ 백가흠
Vol.20131117a | 정재호展 / JUNGJAEHO / 鄭在祜 / painting.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