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필기행 - 세상의 길을 걷다

박병춘展 / PARKBYOUNGCHOON / 朴昞春 / painting   2013_1109 ▶ 2013_1205

박병춘_샹글릴라의 눈 온 풍경_한지에 먹_40×100cm_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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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3_1109_토요일_03: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주말_11:00am~07:00pm

갤러리 이레 GALLERY JIREH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마을길 48-12 (법흥리 1652-405번지) Tel. +82.(0)31.941.4115 www.galleryjireh.com

나에게 여행은 삶의 연속이며 내 자신을 정화시키는 중요한 의식 같은 행위이다. 나는 여행을 통해 세상과 만나고 내 안에 내재돼 있는 능력을 일깨워내기도 한다. 그 동안 많은 오지를 찾아 내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데 노력을 했다면, 작년 유럽으로의 여행은 내가 서구의 문화 역사를 현장에서 목격하고 또한 서양인들과 섞여 지내면서 동양인으로써 무의식 속에 잠재돼있던 열등감을 극복해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 이였다. 물론 더 큰 이유는 세상구경을 통해 내 자신을 좀 더 성숙시키고 예술가로써의 상상력을 풍부하게 만들고 싶은 바램 이였다. 혼자서 여행을 하는 일은 온전히 세상과 나와의 관계만 생각하며 정처 없이 다니기 때문에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가족과 함께 하는 여행은 여러 면에서 긴장되는 일이다. 숙소, 음식뿐 아니라 낯선 곳과 낯선 곳을 잇는 연속적인 긴장감은 여행을 해본 사람들에게도 무척 힘든 일이 분명하다. 나 또한 여행을 떠나기 전 많은 긴장을 했다. 혹시 어디 오지에 갔다 잡혀서 노예로 사는 건 아닌지, 낯선 곳에서 나쁜 사람을 만나 강도라도 당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있었다. 내가 한국을 떠나기 전 가장 많이 한 일은 중국,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 태국을 돌아다니는 동선을 지도로 그려보는 일과 유럽지도를 그려가며 내가 돌아다닐 수 있는 최적의 루트를 생각으로 시연해보는 일 이였다. 그것 이외에 어떤 것도 하지 않았다. 숙소나 관광지 예약 등등… 그러나 놀랍게도 우리는 내가 눈감고도 그릴 수 있었던 아시아와 유럽, 인도의 루트를 95프로로 일치하게 여행을 다녔다.

박병춘_떠내려가는 풍경 – 베르샤유_중성지에 아크릴채색_50×65cm_2012

2012년 2월 22일 매서운 추위가 서울을 꽁꽁 얼리고 있을 때 우리는 1년간의 세계여행이라는 큰 포부를 안고 비행기를 탔다. 편안한 뉴욕의 삶을 포기하고 우리는 어찌 될지 모르는 길을 찾아 떠나간 것이다. 우리는 각자에게 적당한 배낭 하나씩을 메고 공동으로 사용해야 되는 물건과 아들의 참고서 몇 개와 고춧가루를 담은 캐리어를 들고 떠났다. 중국 운남 쿤밍에서 시작된 여행은 따리, 리장, 샹그릴라, 시상반나 그리고 버스로 라오스 국경을 넘어 루앙남타 루앙프라방에 머물다 캄보디아 씨엠립으로 이동해 앙코르와트를 구석구석 구경하고 태국 방콕으로 넘어가 파리행 비행기를 탔다. 파리 씨떼에서 3개월간 레지던지를 하면서 우리는 루브르, 오르세, 오랑주리, 퐁피두센터를 이틀에 한 번 꼴로 바꿔가며 구경을 다녔다. 레지런지 작가들에게 무료로 출입하는 통행증이 주어져서 우리는 줄을 서지 않고 미술관을 자유롭게 들어갈 수가 있었다. 레지던지 내에서도 일주일이면 동시다발적으로 오픈 스튜디오가 있어서 세계 각지에서 온 작가들과 수시로 이야기를 나누고 파티를 즐겼다. 파리에 있는 동안 노르망디로 스케치여행을 다녀오고, 영국 뉴캐슬의 안토니오 곰리의 북방의 천사도 보고, 런던의 뮤지엄을 다니며 오래된 명화를 원 없이 감상했다. 테이트모던의 데미안 허스트 특별전도 꽤 인상적이고 감동적 이였다.

박병춘_포츠담_중성지에 아크릴채색_29.5×41cm_2013

그리고 파리에서 렌트한 7인승 차를 가지고 시작된 자동차여행은 암스텔담을 들러 고흐의 작품을 만나고, 독일로 넘어가 쾰른 성당을 들러 뒤셀도르프 뮤지엄에서 올덴버그 특별전을 관람했다. 베를린에 한 달간 살면서 페르가몬 국립뮤지엄 등 많은 현대미술관을 관람하며 요셉보이스나 안젤름키퍼 같은 거장들의 숨결을 현장에서 느낄 수 있었고, 렌트하우스의 두 쌍의 노부부와 가진 우정도 가슴에 남았다. 드레스덴, 카셀, 슈트트가르트를 거쳐 스위스 로잔에서 지인이 빌려준 집에 머무는 동안 아름다운 호수를 내려다보며 비탈길에 늘어선 포도밭 사이를 산책하거나 도시락을 싸서 넓은 들판으로 나가 영화에 나오는 가족들 같은 소풍을 즐기기도 했다. 유럽의 지붕 융프라우가 있는 인터락켄에서의 트렉킹과 캠핑생활도 굉장했다. 아침에 텐트에서 나오면 눈앞에 펼쳐진 융푸라우의 멋진 설산을 마주할 수 있었다. 남성적인 멋을 지닌 체르맛의 마테호른 앞에서 도시락을 먹으며 그림을 그리던 시간을 뒤로하고 여름이 한창일 때 오스트리아로 갔다.

박병춘_체르맛 – 마테호른_한지에 아크릴채색_59×124cm_2013

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도시이며 모짜르트의 고향 짤츠브르크와 클림트와 에곤실레의 도시 비엔나, 스키장이 많은 아름다운 시골동네 탐스윙의 브록드로프의 시간은 우리를 오스트리아에 푹 빠지게 만들었다. 내가 유럽에 가서 산다면 바로 이 오스트리아의 시골도시 탐스윙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박병춘_짤츠부르그_중성지에 아크릴채색_29.5×41cm_2013

9월이 시작될 때쯤 세르비아을 지나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옥색 물빛을 품은 바다가 있는 크로아티아의 아름다운 서쪽해안을 따라 내려가서 배를 타고 이탈리아로 넘어갔다. 천 년의 도시, 슬픔의 도시, 잃어버린 도시 폼페이를 걷고 나폴리를 지나 역사의 도시 로마로 가서 2주를 살았다. 역시나 로마를 보면 유럽을 다 본거라는 말처럼 로마는 그랬다. 로마 내셔널갤러리에서 본 수많은 조각작품들은 로마가 얼마나 문화강성 국가였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로마를 떠나 피사, 피렌체, 베네치아에서 캠핑을 하는 동안 이미 우리는 피자 맛을 제대로 배워가고 있었다. 이탈리아 국경지대 제네부에서 캠핑을 한 후 다시 프랑스 남부 알프스 끝자락 베르동 계곡에서 꿈같은 가을을 보내고 니스를 거쳐 스페인으로 넘어갔다.

박병춘_판판네라 가는 길 – 스페인_한지에 아크릴채색_40×69.5cm_2013

바르셀로나 외곽에서 캠핑을 하며 버스를 타고 시내구경을 했는데 이미 10월 중순으로 계절이 흐르고 있는 터라 밤에는 꽤 쌀쌀해 졌지만 우리는 이불 하나 더 사서 거뜬히 추위를 이겨내고 있었다. 바르셀로나에서 피카소와 미로 뮤지엄을 관람하고, 위대한 건축가 가우디의 페밀리아 성당에서 엄청난 충격을 받기도 했다. 발렌시아를 거쳐 집시들의 고향 안달루시아 판판에라에 2주를 보내면서 보헤미안적 삶을 살아가는 편안하고 여유 있는 집시들과 어울리며 우리도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박병춘_여행 – 인도 함피_한지에 아크릴채색_68×133cm_2013

아쉬운 안달루시아를 떠나 그라나다 세비야를 지나 포르투갈로 넘어가 유럽의 서쪽 끝 해안이 있는 신트라에 머물며 동네사람들과 가진 우정도 그립다. 소박하고 호탕한 미남들의 나라 포루투갈도 좋다. 스페인의 작은 도시 에보라와 아기돼지 통구이가 유명한 똘레도를 지나 마드리드에 갔지만 인도비자가 늦어져 또다시 스페인 북부로 차를 몰아 10일간 산티아고 길을 따라 가며 순례자들의 휴식처 루앙성당, 레온성당, 산티아고 성당을 구경하고 순례객들과도 진한 추억을 만들었다. 마드리드로 돌아온 후 외곽에 위치한 캠핑장에 머물며 유명한 몇 군데의 뮤지엄을 관람했는데, 스페인의 화가들이 유럽 미술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들이라는 걸 깨달았다. 마드리드에서 그 동안 가지고 다니던 짐들 중 필요 없는 것들은 캠핑장 직원들에게 주고 텐트와 스케치북 등은 한국으로 보냈다. ● 12월 1일 드디어 길고 긴 유럽여행을 마치고 마지막 여행지인 인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우리는 인도의 남부 휴양지 고아 팔로렘 해변에 머물며 낮이나 오후엔 수영을 하고, 현지에서 사귄 친구들과 맛있는 해물요리를 해먹으며 지내다 시간이 날 때면 매일매일 여행기를 썼다. 돌산으로 가득한 함피에서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아침과 오후에 오토바이를 타고 스케치를 나가고 낮이나 밤에는 여행기를 쓰거나 그려둔 스케치를 정리하며 지냈다. 그렇게 우리의 여행은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전세금을 털어 떠난 여행에서 내가 얻은 것은 인간적 고뇌로 가득한 몇 권의 일기장과 10여권의 스케치북에 담긴 600여장의 스케치, 그리고 가족들과 더 단단해진 신뢰와 사랑 이였다. 특히 나는 이번 여행을 통해 그 동안 검은 먹 속에 조용히 숨겨두었던 예술가로써의 열정이 담긴 색(color)을 찾아왔다. ● 1월 17일 서울로 돌아와 정신 없이 살았다. 그림은 손에 잡히지 않고 머리는 복잡하기만 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그려야 할지 모든 것이 막막했다. 그렇다고 2년전 그리던 방식으로 그림을 그리는 건 더더욱 싫었다. 그렇게 헤매다가 6월이 돼서 여행에서 그려온 수채화들을 보고 아크릴로 다시 그려 보는 게 좋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정신 없이 작업에 몰두했다. 한지나 중성지에 아크릴로 그림을 그리다 보니 내 안에 쌓였던 체증이 다 날아가 버리는 것 같았다. 비로소 내가 새로운 세계로 들어서는 기분이다. 이번에 전시하는 작품들은 동, 서양의 기법과 재료들로 그려졌다. 붓은 동양화 붓, 물감은 서양물감 그리고 사람은 글로벌 마인드… 그렇게 그린 80여점의 작품들을 즐거운 마음으로 내 놓았다. ■ 박병춘

Vol.20131109d | 박병춘展 / PARKBYOUNGCHOON / 朴昞春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