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가나 컨템포러리 GANA CONTEMPORARY 서울 종로구 평창동 98번지 Tel. +82.2.720.1020 www.ganaart.com
권수현 개인전에 부쳐-생명력 회복을 위한 '코끼리-되기' - 프롤로그 ● "웃어라, 온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울어라, 너 혼자 울게 될 것이다." (Ella Wheeler Wilcox 시「고독」중에서.) 유일하게 생의 의미를 찾는 존재인 인간은 '바라는 바를 꿈꾸면 이뤄진다'는 말을 믿고 살아간다.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은 세상에서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믿음은 불확실성에 기대는 인간의 나약함을 모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꿈꾸는 자는 사람이면서 우주임을 월드컵 축제를 통해 우리가 증명한 바 있다. 꿈이 이뤄지듯이 행복도 살아 있는 감정이기에 마음먹기에 따라 확대재생산이 가능하다. 예술도 '이미지의 감응(affection)'으로 정의한다면 감상이나 감흥보다 일상적 삶에서 몸을 일깨우고 행동을 유발하는 것임을 인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의 그림은 우리에게 말을 걸고 일상 속 행복한 삶을 실천하도록 자극한다.
곤궁한 일상에 경쾌한 기운을 나누어주려는 권수현의 목표와 감각이 농축된 그림은 눈에 보이는 것을 통해 보이지 않는 행복해질 현실을 지배하도록 만든다.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는 마음인 에로스 가득한 구스타브 클림트의 감각이나 생기발랄함의 작가 니키 드 생팔, 로버트 콩바가 추구했던 '자유구상' 형식을 통해 삶의 치유의 한 방식을 함축하는 것으로, 니체가 말한 '예술가는 문명의 의사'라는 비유에 적절히 부합한다. 꿈이 일상의 밑바닥에서 재가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진심을 다해 그린 그림들은 특히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을 뿐 아니라 행복해져야 할 의무가 있음에 대한 기원이기도 하다. 폴 발레리가 정의한 '행복은 본능적인 개념'임에 동조하면서, 삶이 가치 없이 느껴지는 것은 자신의 서투른 태도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일깨운다. ● 그림은 은유적이며 실현가능한 꿈이 반영된 감각적인 명쾌한 색채들로 채워져 있으며, 삶에서 포착한 작은 행복의 단편들은 환상적이며 선명한 이미지들로 가시화되었다. 화가는 그러한 환상적인 이미지에 분명한 현실 가능한 믿음이 있으며, 주변 사람들도 자신의 그림을 통해 이미 꿈의 영역에 근접했었음을 자신 있게 말한다. 작가는 즐거운 이미지는 말이나 생각보다 강하게 작용하며, 자신이 행복하게 만든 이미지는 감상자에게도 동일한 행복감을 느끼게 한다고 믿는다. 자신이 송출하는 메시지 이상의 것을 수신자들이 의미를 이해하고 보충하고 신뢰를 가지길 바란다. 코끼리, 천사, 낙원, 이슬람 양탄자 등의 상상적 존재들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에 의해 감상자에게 생명력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접속과 배치 그리고 모자이크 사유 이미지 ● "세상사에는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행복을 누리는 일이다." (Paul Éluard) 그가 추구하는 세계의 압축된 구조와 코끼리의 알레고리는 삭막한 도시에서 눈과 귀와 제 몸마저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무한한 능력의 잠재력을 제안한다. 존재의 확장은 나를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무한한 능력으로 대체함으로써 가능해지는 까닭이다. 권수현은 인간보다 긴 코와 큰 귀, 어마어마한 발과 거대한 몸집을 가진 코끼리에 명예와 재물 그리고 부귀영화의 상징적 의미를 부여한다. 그에게 코끼리는 종교적이기보다는 단지 인간이 꿈꾸는 보편적 희망이나 가치를 반영한 캐릭터의 반영인 것이다. ● 작가에게 코끼리는 나를 1인칭이 아니라 3인칭으로 바라보게 만들어 자신의 입장을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한 전략이자 선택이다. 자신의 이미지는 또 다른 이미지로 투영되고 그 위에 '헤르메스의 코끼리'를 합성하여 이중의 이미지와 통합한다. 이미지에 이미지를 중첩시켜 얻어지는 효과는 단일 이미지를 나열하는 그 이상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던 것이다. 권수현은 어느 날 우연히 헤르메스 광고사진의 코끼리를 접하고 문득 그 이미지를 자신의 작품에 투영하게 되었다고 한 것을 보면 작가가 이 모든 효과를 미리 감지하고 그림의 구성 요소로 삼은 것 같지는 않다.
작품 속 세상에서는 인간의 모습을 한 코끼리에 새의 날개를 달거나 인어의 이미지가 이중으로 중첩되기도 한다. 이러한 접속은 코끼리 혹은 날개의 요소와 능력을 인간 신체 내에 분사시킬 뿐 아니라 인어의 감응을 통해 신체와 정신적 능력을 배가시킨다. 작품들은 배트맨이나 스파이더맨처럼 신체의 능력을 증강시키기 위해 무엇과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힘의 표현이나 방향이 달라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작품「Follow What's Right」는 주인공인 아들의 뒷모습과 그를 바라보는 이미지들을 정면으로 배치함으로써 건강하게 성장하는 조건은 지켜보는 사람이 많을수록 더 큰 변화가 일어난다는 모성적인 믿음과 화가의 치밀한 구성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 작가 권수현의 모자이크 구성방식은 디지털 시대의 시뮬라크르 사유에 기대면서, 외부적 접속 장치라는 들뢰즈의 감각을 수반하는 이미지의 존재론적 사유와도 유사하다. 코끼리의 이미지는 작가의 페르소나(persona)로서의 인식론적 가치가 반영되었지만, 이 또한 헤르메스 광고 이미지를 자신만의 이미지로 수용한 것으로 통합 방식을 통해 이종결합에 의한 새로움의 생산을 추구한 것에 속한다. 분명 이미지의 원천은 미디어의 속성을 지닌 것이지만, 이미지를 차용하고 변형시켜 인간 세상을 또 다른 방식으로 반영한다.
생의 생명력 회복을 위한 '동물-되기'의 반복 ● "슬픈 인간의 기도는 신에게까지 올라갈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 (Emile Cioran) 작가가 추구하는 '동물-되기'는 다수의 주체성보다는 특수한 소수자의 능력과 관계된다. 소수의 작은 능력이 다수의 것보다 크게 작용한다는 의미로 순수한 잠재성을 확인하고 다른 배치로 또 다른 성격을 부여하는 것인데, '되기'를 통해 규정을 깨고 새로운 능력을 부여받은 존재는 또 다른 다양한 존재로의 이행이 가능해진다. 지배적 가치에 의해 규정되어 버린 나를 해체하여 나타난 새로운 가치가 계속 증대될 수 있는 존재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사회적 인간은 세상 밖으로 나가 다양한 상황 속에 배치될 수밖에 없으므로 고정된 정체성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내가 변한다는 것은 잠재된 새로운 능력이 발생한다는 것이며, 어떤 환경과 접속하느냐에 따라 존재와 능력이 새로이 평가된다. ● 작품은 인간의 '코끼리-되기'와 코끼리의 '인간-되기'를 경험하게 만든다. 작가가 선택한 이미지는 사회적으로 이미 성공적인 가치를 획득한 것들이긴 하지만 나를 제3자로 전이시켜 바라보는 효과를 상승시키기에 손색이 없다. 나를 주인공으로 하는 것은 나의 감정이 개입됨으로써 객관성이 약화되어 선명한 이미지를 발견하기 어려우므로 원본 이미지에 또 다른 이미지를 중첩시키는 방법을 택한다. 예술의 성공은 강렬한 생명의 기형화 속에서 새로운 힘들을 느끼게 하는 능력에 의해 평가된다고 들뢰즈는 말한다. ● 올바른 '사회적 가면(persona)'은 내면의 인격을 적절하게 조절한다. 사막화가 진행 중인 도시에서는 낙타로 살아야 하고, 야생의 공간으로 변해가는 도심에서는 코끼리로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수호신으로서의 역할이든 재앙의 전조이든 반인반수의 종족들은 신화와 역사 속에 끊임없이 등장한다. 배트맨이나 스파이더맨, 손오공, 슈렉 등 상상 속 캐릭터들은 인류를 구원하는 수호자로서 혹은 대중의 환상을 대리함으로써 대중에게 사랑받는다. 스스로 인정받기 위한 '페르소나'로서 코끼리의 이미지는 스스로에게 요구하는 긍정적인 생각과 태도를 위한 작가의 적절한 선택인 것이다. 작가는 현대인들의 동물도 아니고 인간도 아닌 어떤 존재에 대한 욕망인 경계의 안과 밖을 넘나드는 미학적 실천을 대신한다. '되기'가 사람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처럼 성공이라는 것은 사물의 밝은 면만을 취하는 과정에서 어둠의 측면이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치유 그리고 삶을 긍정하기 ● "행복을 말하는 자는 흔히 슬픈 눈을 가지고 있다." (Louis Aragon) 그림을 시작했던 상황에서의 약점에서 얻어진 그의 독창성은 인간에게서 겪은 상처가 온순하지만 지혜로운 코끼리를 통해 치유되기를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작가는 지난한 암중모색의 와중에 그림의 구조적 틀을 깨닫고 코끼리의 형상을 차용하여 주제를 형상화하고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현실 이미지를 반영하면서 상상을 통해 미학적으로도 성취하고 작업의 밀도 또한 성실하게 채웠다. 이미 익숙한 시각적 이미지(déjà vu)에 코끼리를 반영하거나, 미디어를 통해 이미 어딘가에서 제 역할을 다했던 이미지를 중심으로 새로운 치유의 세계를 꾸미고 있다. 권수현은 자신과 타인의 아픔을 극복하기를 바라마지 않는 마음으로 아프지 않은 세상을 아프다고 말하는 착한 사람들의 착각을 행복의 올바름으로 이끈다. ● 그는 무엇보다 감상자에게 불러일으킬 긍정적인 효과를 중요하게 여기므로 평화, 사랑, 기쁨, 행복으로 충만하며, 작품의 제목도 희망, 거침없음, 성공, 백만장자, 한계극복, 행복천국으로 명명한다. 인간이 추구해야 할 긍정적인 것들이 가득한 가운데 보색대비의 하모니와 생명을 불어넣은 금으로 만든 축복의 길 또한 화면에 가득하다. 상징적 질서 안의 매혹적인 금분으로 칠해진 길은 인간의 삶의 여정을 의미하며, 거미가 자신의 분비물로 집을 촘촘하게 역어가듯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게 하는 모성적 공간이자 사랑이 발생하는 공간, 삶의 배후를 감싸는 안전망이기도 하다. ● 작가는 작품을 통해 인생에 대한 사랑과 효과이론을 제기한다. 그림이 다만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틀에 박힌 것이 아니라 삶을 자극하고 행동을 이끌어내며, 수신자와 더불어 변조하고 효과를 생산하는 것임을 다소 강하게 발언한다. 들뢰즈의 주장처럼 예술은 주체가 성취한 그 '감각들'을 미래의 감상자에게 위탁하는 것이다. 그림은 기분 좋게 느껴지는 세계를 상상하거나 기억 속 행복을 일깨우므로 행복은 내부에 슬픈 그림자를 지니면서도 그 가치를 더해가는 것이다. 긍정적 사고는 행복의 출발점이다. 그림을 통해 또 다른 자아가 있음을 인식하게 하고, 그림에 머무르는 동안 발견된 자아는 더 큰 현실을 이끄는 것이다.
에필로그 ● "행복은 가장 위대한 정복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강요된 운명과 맞서는 것이다." (Albert Camus) '예술은 행복에의 약속'이라고 소설가 스탕달은 말했다. 권수현 작가는 그림을 통해 행복이 '지금 여기에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라, 단지 행복해지려 한다면 그림이 제공하는 환상적인 세계에 감정이입 되기를 바라고 있다. 긍정적인 생각이 주는 경이로움처럼 긍정적인 이미지가 주는 놀라운 기적과 상응하기를 권유한다. 작가에게 허구는 현실에 상응하는 지시체를 은밀하게 감추고 있으면서 더 효과적인 감동을 불러오는 무엇이므로 그것을 믿는 강도에 따라 더 현실적인 것이 되곤 한다. 그러므로 그림은 과학이 아니라 감성의 학이며, 앎의 대상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이 된다. 전기에 감전되어야만 전기의 존재를 알듯이 그림에 몰입하는 순간 눈으로는 감지하지 못하는 충만하게 흐르는 에너지를 감지한다. 그림의 에너지에 감전되고 점화되는 것이다. ● 단순하고 선명한 이미지는 복잡한 이미지보다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미래에 우주와 생명, 자연과 인간의 이원론적 하모니를 자기의 것으로 동화시킬 수 있을 때, 그리고 현실을 조형적 어휘로 생각하게 될 때 인간은 자신의 주변 환경을 재구성한다. 그러므로 몬드리안은 예술이 혹은 자신의 작품이 인류를 위해 새로운 삶을 준비하고 인류를 그 삶을 향해 이끌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균형과 하모니가 지배하는 새롭고 좀 더 나은 세계로 향하는 길을 여는 것이 예술가의 사명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권수현 작가 또한 작품을 통해 모든 사람이 행복하고 안녕하기를 바란다. ● 상투적인 이미지와 동화적 내용으로 빠져들게 하는 부분의 요소들은 상상력을 방해하는 형식이 될 수도 있으리라는 염려에서 단점이 된다. 동화적 어투를 취하면서 상처를 뒤로 숨기는 방법은 유년의 상처를 극화해서 능동적으로 재구성하는 놀이가 될 수 있지만, 어둠이 있으면 빛도 있어야 하는데 빛만 존재하는 판단이 유보된 세계라는 느낌을 준다. 그러나 행복의 신비를 푸는 데 그림은 하나의 가이드가 되거나 은유로서의 가치를 충분히 지닌다. 행복이라는 금맥(金脈)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눈 앞에서 함께하고 있음에도 사람들은 쉽게 알아채지 못한다. 생기발랄한 그의 그림 안으로 들어가면 그의 비밀을 눈치 챌 수 있고 그의 영혼도 만날 수 있다. 권수현은 그림으로 오랜 철학의 문제를 새로이 성찰하도록 이끌며, 마음의 창문을 열어 더 이상 닫히지 않게 한다. 문제의 해결은 외부보다는 자신의 내부에 있다는 성찰이다. ■ 주성열
Vol.20131108b | 권수현展 / KWONSOOHYUN / 權修賢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