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의 대화 / 2013_1114_목요일_04:00pm_기흥역 대합실
패널 / 박수진(복합문화공간 에무 디렉터)_이지혜(독립큐레이터)
후원 / 용인시_용인문화재단_(주)용인경량전철 기획 / 이지혜
전시문의 / 이지혜, 010-9169-3388 도록정보 / ISBN 979-11-951807-0-7 93650
용인에버라인 기흥역사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구갈동 480-7번지 일대
도시에 대한 이야기와 그 안에서 살고 있는 나와 우리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거대 담론을 거론하거나 눈요기를 위한 전시는 지양하려 했고, 주위에 산재되어 쉽게 드러나는 부분들을 보여주고자 했다. 생각의 나래를 전부 펼친 수는 없었지만, 가능성과 방향성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번 도시와의 만남에서 겉 표면을 훑고 지나간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조금 더 깊은 관계 맺기와 사유를 바탕으로 다음 도시와의 만남을 기약하고자 한다. ■ 이건희
도시의 초상 ● 『TAKE A TRAIN』은 작가가 살고 있는 도시 '용인'에 대한 이야기이다. 용인을 가로지르는 용인경전철이 이번 전시의 배경이 되었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다채로운 풍경이 꽤나 흥미롭다. 무인으로 운행되는 용인경전철은 용인시 전체를 관망하기에 좋다. 기흥(백남준아트센터)역을 시작으로 용인시청, 용인의 역사가 녹아있는 김장량동, 거대 테마파크 에버랜드까지. 용인경전철은 지곡천과 금곡천을 따라 용인의 중요한 거점을 지나며 개발지역, 개발예정지구, 미개발지역까지 용인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건희 작가는 용인경전철에 올라 그 길 위에서 마주한 도시와 그 안에 살고 있는 이들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개발의 늪에 빠진 도시에서 해소되지 않는 개인의 불안과 현실에 대한 추궁을 시작했다. ● 현재 용인시는 '난개발'이라는 불명예를 벗어나기 힘든 상태다. 2012년 이전까지만 해도 용인시의 재정자립도는 경기도내 1~2위를 유지했다. 하지만 용인경전철 사업으로 인해 재정자립도는 급격히 하락했다. 용인경전철의 총 공사대금 1조32억 원 중 용인시의 실부담액은 5천억 원이었다. 시행사와의 조정으로 비용을 조금 줄이기는 했지만 관련 업계에서는 용인경전철 사업으로 인한 용인시의 재정난이 지속적으로 악화될 것이라 예상했다. '난개발'의 오명을 쓰게 된 이유는 용인경전철 사업뿐만이 아니다. 주거시설의 무리한 개발은 구성원의 삶을 고되게 만들었다. 야산을 무차별하게 깎아 만든 아파트 단지가 급격히 증가했지만 늘어나는 인구를 수용할 도시기반시설이 턱없이 부족하다. 용인의 서부인 수지, 기흥은 수도권 인기 주거지이자 '투자1번지'로 꼽히는 부동산 핫스팟인 반면 동부의 처인구는 녹지와 상하수도시설이 부족하여 시민들이 고충을 겪고 있다. 용인경전철에서 바라본 처인구의 풍경은 난개발로 인한 동서의 지역격차를 실감케 했다. 아직 개발의 손이 닿지 않은 처인구 김장량동은 용인의 유일한 전통시장인 용인중앙시장등 용인의 본 모습을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 중 하나다. ● 용인경전철은 기흥역부터 전대·에버랜드역까지 총 15개의 역이 있다. 시원하게 뚫린 사방의 창으로 시내 전경이 눈에 들어온다. 곡선 형태의 철로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기울기와 지상으로 높게 건설된 철로는 낯선 시각을 제공하며 도시의 체험을 극대화 한다. 작품 「The Code Shower」는 혼란스러운 용인에서 찾아낸 작가만의 키워드로 이루어졌다. 용인경전철로 들어오는 햇살은 타공된 코드 사이로 빛의 줄기를 만들며 사람들 표면에 '코드의 상(狀)'을 맺는다. 개발의 늪에 빠진 도시에서 개인은 진퇴양난의 상황에 놓였다. 그것이 가진 양면성과 부당함, 잔인함 등을 묵과한 채 바쁜 삶에, 바쁜 도시에 안주하며 살아간다. 이렇게 삶에 개입하는 도시에 무감각해져 그저 그것들에 녹아드는 '도시인의 권태'를 직설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 기흥역에서 출발한 용인경전철은 20분정도 지나면 김장량역에 도착한다. 이건희 작가는 김장량동의 오래된 건물 실루엣들을 수집했다. 이전 작품 「Diorama-만들어진 풍경」에서는 수집된 실루엣으로 한 도시의 기호화된 디오라마를 그려냈다면, 이번에 소개되는 작품 「랜드마크를 위한 기념비」에서는 실루엣 조각으로 하나의 실체를 만들었다. 용인시 곳곳에서 괴발개발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지만 해당 도시의 정체성을 대변할 혹은 충당할 만한 랜드마크는 형성되지 못하고 있다. 주체를 찾지 못하고 이리저리 휩쓸리는 도시 속에서 만들어지는 결과물은 마치 '아무에게도 읽히지 못한 단편선'인 것만 같다. 이건희 작가는 김장량동의 모습을 담아 하나의 실루엣의 탑을 쌓았다. 산에 오르다 마주하게 되는 돌무지에 손을 모아 빌어보듯 이건희 작가도 실루엣의 탑에 자신의 바람을 불어 넣었는지 모른다. 도시 속 정착의 가능성, 그리고 삶의 주체로서 도시를 영유하는 바람을 말이다.
종점인 전대·에버랜드역에서 다시 출발점인 기흥역으로 돌아온다. 기흥역사의 파사드(fasade)에는 '기흥역'을 알리는 거대한 옥외안내물이 걸려있다. 그 밑에 자리 잡은 작품 「Yongin Grid Project」는 용인 시내에서 실컷 소비되고 철거된 현수막들의 편린이다. 광고나 정책 선전성 문구가 90%이상을 차지하는 용인의 현수막에서 이건희 작가는 흥미를 찾은 동시에 싫증이 난 모양이었다. 용인을 돌고 돌면서 계속 마주하는 현수막의 문구들은 외면 할 수도, 그렇다고 주시하기도 멋쩍은 대상이었다. 익명의 산책자들에게 강력한 캐치프레이즈(catchphrase)를 자신 있게 주입하다 힘없이 철거되어 둘둘 말린 현수막의 모습이 안타깝기까지 하다. 이건희 작가는 용인시에서 철거한 방대한 양의 불법 현수막을 수집했다. 그리고 수집한 현수막들의 텍스트를 잘게 잘라 거대한 그리드(grid)를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도시의 면면을 채우며 강력하게 호소하던 캐치프레이즈들은 잘게 분해되었다. 잘게 분해된 텍스트는 면이 되어 다시금 도시를 채운다. ● 이렇게 용인의 도시 기호를 채집하여 만들어진 이건희의 작품들은 우리의 또 다른 초상이라 할 수 있다. 독일의 사진가 잔더(August Sander)는 1929년 출간한 사진집 우리 시대의 얼굴(Antlitz der Zeit)을 시작으로 사실주의적인 인물초상을 보여줬다. 잔더는 사람들에게 본인의 유니폼(uniform)을 입혀 철저히 개인의 신분이나 사회적 지위를 드러나 보이게 했다. 자신과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을 사실적 기록함으로써 거대한 사회구조 속에 놓인 인간상을 보여주려 한 것이다. 반면 이건희 작가는 잔더가 보여준 방식과 상반되는 방식을 택했다. 거대한 자본주의 속에서 급변의 가도에 젖어든 현대인의 모습을 기호로 변환하였다. '기호는 다시 기호로 되어서 온다.'라는 들뢰즈의 해체론적 관점에서 볼 때 이건희 작가가 만들어낸 현대인의 초상은 다시금 이 시대의 기호로 돌아오는 것이다. 도시가 주는 지대한 영향은 도시를 사는 한 인물의 정체성과 결합하지만 해당 인물은 정체성은 상실되고 만다. 도시 속 개인은 내 것으로부터 시작된 것이 더 이상 내 것이 아님을 확인하며 일련의 배신감을 느끼는 것이다. 돌과 나무 등으로부터 시작된 이건희 작가의 탐구는 점차적으로 순환하여 자신의 이야기를 지나 도시에 정착했다. 삶이 펼쳐지는 도시에서 우리는 어떤 영향을 주고, 받으며 살고 있나. 탄생의 요람에서 얻어지는 정체성은 누구도 피할 수 없다. 거대 도시가 주는 곤란함이나 난처한 상황에 부딪쳐 한계를 느낄 때, 한 개인의 정체성은 주체를 상실한다. 삶의 기반이 되는 도시에서 끊임없이 정체성의 상실을 겪으며, 우리는 참기 힘든 불안에 익숙해 졌는지 모른다. ■ 이지혜
Vol.20131107j | 이건희展 / LEEGUNHEE / 李健熙 / video.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