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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3_1101_금요일_05:00pm
작가와의 대화 / 2013_1103_일요일_02:00pm_3층 아카데미홀
관람료 / 대인 3,000원 / 소인(초,중생) 2,000원 7세 미만, 70세 이상 무료관람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가나아트센터 Gan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평창동 97번지 Tel. +82.2.720.1020 www.ganaart.com
1) 수묵을 통한 전통회화의 현대적 변주 ● 가나아트는 한국화의 대가 소산 박대성(b. 1945) 화백의 개인전 『圓融원융 Infinite Interpenetration』을 선보인다. 가장 전통적인 소재와 기법을 통해 역설적으로 현대적 감각을 보여주는 박대성의 작품들은 한국화의 근본을 지키는 한편, 이를 현시대에 생동하는 그림으로 만들기 위한 작가의 꾸준한 조형적 시도의 결과물이다. ● 이번 전시는 평생을 글씨연습에 매진한 작가의 대담하면서도 치밀한 필선이 돋보이는 대표작 이외에도 작가 내면의 풍경을 통해 신라의 정신을 담아낸 신작들을 새롭게 공개한다. 예를 들어 가로8미터의 장대한 화폭에 눈 내린 불국사를 표현한 「불국설경」은 세필로 섬세하게 표현된 건축물과 화면을 가로지르는 소나무의 역동적인 구성을 담은 역작이다. 또한 도자기를 소재로 한 「고미古美 2」연작은 담백한 미색으로 도자기에 담긴 정신성을 함축하고, 이에 여백과 글씨를 현대적 감각으로 더하였다. ● 지난 9월 터키 마르마라 대학 공화국 갤러리에서 열린 박대성의 개인전 『먹의 향기, 이스탄불을 담다』에는 수묵풍경 30여 점이 출품되어 현지 언론의 찬사를 받았다. 이번 전시는 이들 작품 가운데 일부를 국내에 처음 선보이는 동시에 전통과 현대, 동서양을 아우르는 작품세계를 통해서 박대성의 진면목을 느끼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2) 작가 박대성의 일생과 예술적 고행 ● 박대성은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으나 한국화의 전통을 창조적으로 계승하고 수묵을 현대화한다는 점에서, 겸재謙齋에서 소정小亭과 청전靑田으로 이어지는 실경산수實景山水의 계보를 잇는 한국화의 거장으로 회자된다. 한국전쟁 당시 부모를 여의고 자신의 왼쪽 팔까지 잃는 아픔을 겼었지만, 그림이 좋았던 작가는 묵화墨花부터 고서古書에 이르기까지 독학으로 끊임없는 연습을 거듭하는 고행의 길을 걸었다. 붓을 들기 시작한10세 이후 초지일관 화업에만 정진한 그는 수묵을 점차 외면했던 한국화단의 흐름 속에서 끝까지 먹의 정신을 고수하였다. ● 천부적인 감각과 소재 선택의 탁월함으로 한국화의 경계를 끊임없이 확장시키며, 그는 수차례 국전에서 수상하였고, 중앙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차지하는 등 70년 대 동양화단에서 이변을 일으켰다. 사람의 발이 닫지 않은 오지로 화문기행을 다니고, 경주에서 독거생활을 하며 작업에 매진해온 그의 외골수와 같은 태도는 오히려 세상에 대한 통찰의 힘을 주었다. 다시 말해 작가적 삶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긴 그의 작품들은 어떠한 현상도 각각의 속성을 지닌 채, 동시에 서로 원만하게 조화를 이루는 '원융圓融'에 다다른다. 이번 전시의 제목이기도 한 『원융』은 이렇듯 시공간을 초월하며, 정신적 조화를 이루려는 작가의 노력과 상통한다. 거시적인 시각에서 대립되는 각각의 속성을 더 높은 차원에서 거대한 하나의 순환으로써 융합하는 일은 박대성이 일생 동안 작업을 통해 추구해 온 심미안과 다름이 없다.
3) 동시대 미술계가 다시금 주목하는 '수묵' ● 한국화단에서 한국화는 서양화와의 구분이 모호할 만큼 재료나 소재 면에서 당대 미술계의 경향에 맞추어 진화해 온 면이 없지 않다. 이는 오히려 한국화의 입지를 약하게 하고, 사실상 전통의 맥을 잇기 어렵게 하였다. 이러한 가운데 박대성은 현란한 색채가 아닌 먹의 고매한 빛깔과 서예를 통해 다진 견고한 필력을 통해 약동하는 생명력을 구현하였고, 궁극적으로 먹의 정신성을 보여주었다. 또한 획기적인 화면 구성과 과감한 먹의 사용은 현대적으로 해석된 수묵에 강인한 힘과 의지를 불어넣고 있다. 결국 박대성은 전통을 이어가면서도 이 시대와 함께 호흡하는 예술이 가능하다는 것을 전통 수묵을 통해 보여주었고, 이는 수묵을 오랜 전통으로 접해온 중국을 비롯한 나라에서 조차 그의 작품을 인정받게 하였다. ● 최근 세계 미술시장에서 수묵화와 서예가 강세를 이루는 가운데, 동양의 근 현대 작가들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세계 경매 시장에서도 연일 최고가를 경신하고 있으며, 세계적인 유명 컬렉터들은 수묵화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콜렉션을 키워가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한결같은 박대성의 예술혼을 우리가 먼저 재조명하고, 주목해야 함은 마땅한 일이라 생각된다. 이번 전시를 통해 박대성의 작품세계는 물론, 다시 한번 한국화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애정을 일깨울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 가나아트
신라정신의 현대화와 박대성의 예술세계 ● 고행 혹은 자발적 유배와 예술적 성과 소산(小山) 박대성(朴大成)과 나는 참으로 많은 지역을 함께 다녔다. 우리는 1988년 서울올림픽 개막 직전 이른바 죽(竹)의 장막이라던'중공'여행을 했다. (...) 중국 계림(桂林)에서의 일화를 소개하고 싶다. 소산과 나는 계림에서 며칠을 함께 보냈다. 계림은 그야말로 중국 산수화의 고향 아니던가. 나는 소산에게 리커란(李可染)의 계림산수 같은 걸작을 만들라는 덕담을 건넸다. 우리는 베이징의 리커란 자택을 방문, 타계 직전의 노대가와 대화를 나눈 바 있다. 13억 중국인 가운데 최고의 화가로 손 꼽히던 20세기의 마지막 대가, 리커란은 소산의 화첩을 보고 남다른 관심을 표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리커란의 주특기 가운데 하나가 바로 계림 산수였다. 계림에 소산을 남겨놓고 나는 티베트로 향했다. 일주일 후 다시 계림으로 돌아오니 그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고생만 잔뜩 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그는 계림을 그리지 못했다. 무수한 스케치들만 마치 사투(死鬪)의 흔적처럼 쌓여 있었다. 문제는 계림 절경이 한국의 자연과 달리 지나칠 정도로 이색적 풍경이라는 것. 그러니까 계림은 즉석에서 소화시키기에 너무 생소한 현장이었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곽희(郭熙)가 그의 「임천고치(林泉高致)」에서 말한 가행자(可行者)가 아닌 가거자(可居者)의 태도를 연상시킨다. 때때로 자연은 관광객처럼 대충 보고 화면에 옮기려 할 때 허락하지 않는 특성이 있다. 당연한 진리이다. 물론 껍데기만 흉내 내고자 할 때에는 가능하다. 하지만 대상이 가지고 있는 본질을 형상화하려면 일정기간의 소화작용이 필요하다. 자연과 함께 살면서 자연과 합일될 때, 비로소 창작의 문은 열린다. 소산은 현장에서 화폭을 펼치는 화가이다. 하지만 대상이 소화되지 않으면 화폭을 접는 화가이기도 하다. 그가 경계하는 것은 이른바 관광산수이기 때문이다. 관광객처럼 겉만 흉내내는 태도의 그림은 그림이 아니다. 소산이 주장하는 예술론이다. ● 현재 소산은 서울의 가족과 떨어져 작품 소재의 현장인 신라의 고도 경주에서 독거생활을 하고 있다. 이른바'자발적 유배'의 경우다. 우리 역사에서 유배문화는 찬란한 예술적 성과를 낳기도 했다. 추사 김정희의 대표작 「세한도」는 제주 유배시절의 산물이다. 추사에게 있어 혹독한 제주시절이 없었다면 과연'거장 추사'라는 평가를 그렇듯 쉽게 얻을 수 있었을까. 여기서 문제의 핵심은 그렇다. 조선 선비의 유배는 타의에 의한 결과이다. 하지만 소산의 경우는 '자발적' 유배이다. 스스로 선택하여 외롭고도 절실한 상황 속에서 작품과 맞대결하고 있는 것이다. 타의의 상황에서 나온'세한'의 의미와 자발적 선택에 의해 나온'신라'의 의미는 차원을 달리한다. 소산은 먹 작업으로 승부를 걸고 있다. (...) 추사 이래 먹 작업의 정통 계승자는 누구일까. 추사가 주장한 문자향(文字香)과 서권기(書卷氣)를 가슴에 품으면서 자유자재의 필력을 구사하는 수묵의 달인, 그는 과연 누구인가. 오늘 한국미술계가 소산을 주목하는 이유는 바로 먹의 정통 계승자라는 데에서도 찾게 한다.
전통의 창조적 계승 혹은 수묵의 현대화 ● 소산 예술의 주요 특징은 우리 전통의 창조적 계승이라는 점이다. 그의 출발은 전통적 수묵화의 충실한 학습에서 비롯되었다. 그의 출세작이자 중앙미술대전 대상 수상작품인 「상림(霜林)」(1979)의 경우, 안개 짙은 산간 마을을 사실적 묘사로 경물을 집약한 작품이다. 거대한 산 능선은 흐릿하게 배경으로 처리했고 전경(前景)은 성글게 서 있는 나무들을 중심으로 돌산과 밭이 부각되어 있다. 대상을 압축하면서 담채에 의한 사실적 표현은 경쾌한 화면경영을 보여준다. 상큼한 수채화를 연상시킬 정도로 재래의 수묵화와 차별상을 보인다. 산수의 정신은 살아 있으되, 정형 산수와는 궤도를 달리한 것이다. ● 소산 회화의 특징은 무엇보다 수묵 작업이라는 데에 있다. 장언원(張彦遠)은 그의 「역대명화기(歷代名畵記)」에서 꽃이나 눈보라를 화려한 색깔을 쓰지 않고도 표현할 수 있다고 했다. 오색을 쓰지 않고도 오색 비단의 모습을 그릴 수 있다고 했다. 이는 수묵의 장점을 강조한 말로서, 장언원은 먹으로 오색을 능숙하게 표현할 수 있는 단계를 득의(得意)라고 했다. 득의라, 화가들이 지향할 저 높은 곳이 아닌가. 먹으로 득의를 표현할 수 있다. 아무리 먹에 오색이 깃들어 있다해도 운영하기 나름 아닌가. 검은 색은 죽음의 색이 아니고 약동하는 생명의 색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모든 색을 조합하면 먹색이 된다. 색의 귀향, 그것의 궁극적 지향은 먹색이다. 먹 색깔은 살아 꿈틀거린다. 하여 먹은 물질이 아니라 하나의 정신이라 할 수 있다. 색채 난무시대에 소산의 먹 그림이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바로 이와같은 먹의 정신성 때문에 그럴 것이다. 먹의 향연, 이는 소산 회화의 원형이다. ● 먹 작업의 특징은 필선(筆線)일텐데 그것의 기초는 묘사력이다. 필력을 기르기 위해 소산은 평생 글씨 연습에 주력했다. 모필의 승리는 필력에 있는 바, 이는 글씨의 필획에서 나온다. 그러니까 일반적으로 직업 서예가들은 조형성의 측면에서 부족하고, 일반 모필화가는 서예적 필획이 부족하다. 소산은 화가이면서 서예가의 경지를 몸소 실현시키고 있으며 일정부분 성과를 얻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세필의 치밀한 묘사와 필력은 소산의 장기(長技)이다. 불국사의 건축을 세필로 처리하여 숨을 죽이게 할 수 있는 필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길이 8미터의 대작 「불국설경(佛國雪景)」(1996)은 소산 필력을 유감없이 과시한 작품이다. 근경을 흐드러진 소나무 줄기로 화면에 변화와 긴장감을 배치하고 원경에 불국사의 외경이 차분하게 묘사되어 있다. 물론 소산은 세필의 사실적 묘사를 구사하다가도 팔대산인(八大山人)처럼 대담한 붓질로 대상의 요체만 일필휘지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소산 작업의 특성은 장쾌한 구성과 대담한 먹의 활용으로 화면을 보다 역동감 있게 처리한다는 점이다. '날아갈 듯 생동한 것(如飛如動)' 바로 소산의 세계이다.
(...) 소산의 화면구성은 한마디로 자유자재를 희구한다. 실경 같지만 대상을 임의로 배치하기 때문에 사진과 다르다. 「불 밝힘 굴」과 같은 작품은 토함산을 소재로 한 것이다. 그런데 산의 아래에 불국사 경내가 조감도처럼 펼쳐지고 산 위에는 석굴암이 위치한다. 토함산의 동쪽에 석굴암이, 서쪽에 불국사가 위치하기 때문에 도저히 한 화면에 함께 나올 수 없는 풍경이다. 그러나 소산은 경우에 따라 그 같은 고정관념을 파괴한다. 금강산의 삼선암을 그릴 때도 현지의 실경과 다르다. 이는 변관식이 그의 대표작 삼선암을 그릴 때, 소재들을 한 화면에 임의 배치한 방식과 상통한다. 소재의 임의 선택으로부터 구도의 임의 배치, 이는 사의(寫意)의 기초이다. 소산은 단순 풍경을 가져와 묘사력을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고, 대상을 빌려 자신의 독자적 발언을 전하고자 한다. 바로 기운(氣韻)의 세계를 염두에 두기 때문이다. 소산의 작업에서 구상과 비구상의 경계를 가름할 필요가 있는가. 언뜻보면 소산의 작품은 실재하는 실경을 사실적으로, 그것도 아주 충실히 묘사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득의 심상 표현은 굳이 대상의 재현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 구상과 추상의 경계, 이를 어떻게 바라 볼 것인가. 리커란은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 "중국화의 필묵은 추상을 매우 중요시한다. (...) 추상이란 객관적인 사물을 개괄하는 것인데, 추상이란 곧 구상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따라서 구상이 없으면 추상도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추상과 구상은 서로 상반되는 것이면서 실은 서로 협조하는 관계이다. 모순 속의 통일이라고 하겠다. 이런 까닭에 전통적인 중국화에서 자연주의가 출현한 적이 없으며 또한 추상파가 등장한 적도 없다." ● 소산의 세계는 이제 구상과 추상의 세계를 자유스럽게 넘나든다. 아니 구상과 추상이라는 경계 자체를 부정하고 있는지 모른다. 이제 소산은 대상과 거리를 두기도 하면서 본질과 대응한다. 그의 작품은 사경(寫景)인 듯하지만 사의(寫意)에 가깝다. 경주의 풍경은 특히 그렇다. 그것은 소산식의 심상(心象)이다. 그는 경주의 토함산에서 남산까지, 불국사에서 포석정까지, 보름달에서 연꽃에 이르기까지, 계속 유목민의 감각으로 예혼(藝魂)을 가꾼다. ● (...) 소산은 「고미(古美)」와 같은 도자기를 소재로 한 작품도 제작했다. 백자 혹은 분청사기, 그 하나만을 화면 가득히 부각시킨다. (...) 작가는 무엇보다 형태라는 표현성보다 흙의 실체인 정신성에 주목한다. 유화에서 자아내는 기름끼의 반들거리는 요소를 제거하고 깔깔할 정도로 담박하게 도자기의 맛을 형상화하는 것이다. 게다가 유화처럼 바탕 칠을 하지 않고 화선지의 본성을 살려 세월의 때가 낀 도자기의 성품을 표현한다. 이렇듯 소산의 독특한 도자기 그림은 그가 오랜 세월 골동과 함께 살아 온 성품을 반영한다. 여타의 작품에서도 그렇지만 도자기 그림에서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은 대담하게 구사된 여백의 미이다. 소산 그림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대상의 함축이다. 함축은 바로 여백을 동반한다. 검은 먹이 강하게 작용할수록 상대적으로 여백의 역할은 부상하게 마련이다.
경주에서 꿈꾸는 원융과 무애행 ● 경주 칩거생활의 결과로 소산은 신라의 풍경과 정신을 화면에 담았다. (...) 소산의 신라정신은 무엇인가. 그가 추구한 원융의 세계는 무엇인가. 이 대목은 매우 중요한데, 사실 명확하게 잡히지 않아 아쉽기도 하다. 신라정신의 핵심은 원효(元曉)사상에서 추출할 수 있다. 원효는 그의 「금강삼매경론(金剛三昧經論)」에서 모든 상대적 대립을 초월한 일심(一心)의 근원은 상대적 도리가 아닌 지극한 도리(無理之至理)이며, 그렇지 않지만 크게 그러하다(不然之大然)라는 대외법적 논리를 펼쳤다. 정말, 그렇지 않지만 크게 그러하다! 원효의 사상은 일심, 화회(和會), 무애(無碍)로 요약할 수 있다. '거리낌이 없는'(무애) 것, 거기에서 신라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역시 원효의 사상을 무애행(無碍行)으로 정리할 수 있다면, 신라인의 마음도 무애행의 들어냄이 아니었을까. 그것은 곧 원융의 세계와 상통한다. 원융은 무애행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원효는 저자거리에서 무애의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무애행은 바로 한국미의 한 원형이기도 하다. 소산은 경주에서 '신라인'으로 자처하면서, 작품에 '신라인'이라고 서명을 하면서, 신라정신을 천착하고 있다. 과연 소산이 도달한 신라정신은 어디일까. 원효가 실천했던 무애행과는 얼마만큼의 친연성이 있을까. 소산의 그림은 이제 기법의 수준에서 정신의 세계로 진입한 만큼 그가 추구하는 원융 세계의 실체가 궁금해진다. 그는 진정 신라인인가. 언젠가 소산은 원효와 즐겁게 만날지도 모른다. 거리낌이 없는 무애의 세계, 우리는 언제 그같은 세계에서 거닐어 볼 수 있을까. 그러고 보니 남는 결론, 화두(話頭)는 무애행이다! 바로 원융의 세계이다. ■ 윤범모
Vol.20131103h | 소산 박대성展 / PARKDAESUNG / 小山 朴大成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