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호, 여기서 저기를 잇다

초대일시 / 2013_1102_토요일_01:00pm

초대일시 / 2013_1102_토요일_01:00pm~08:00pm

참여작가 Stone & Water Project Team (위창완, 이가은, 송지은, 한바라시 외 2명) 김동현_박윤주_시도들_아버지의 숲_장수진_정재민

주최 / 아트퍼블릭 모두 주관 / 시화지구 지속가능 발전 협의회 후원 / 한국 수자원 공사_ 산 미디코

시화호 조력발전소 T-Light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대부동동 2098번지 blog.naver.com/t_light

'시화호, 여기서 저기를 잇다.'를 열며 ● 우리는 자연이라는 물리적 공간을 기반으로 살고 있다. 자연환경에 의해 생활의 물리적 공간, 공감의 물리적 공간이 생성되며 그것을 기반으로 만남과 소통이 이뤄진다. 이 공간 안에서 우리는 개인의 생활을 넘어 공동체의 생활터전을 일궈나간다. 경기도 시흥시, 안산시, 화성시에 둘러싸인 인공호수인 시화호는 1987년부터 1994년까지 국토확장과 수자원확보를 목적으로 바다에 방조제를 건설하면서 생겨난 인공호수이다. 그 크기는 시흥과 화성 두 도시에 걸쳐있어 첫 글자를 하나씩 사용하여 시화가 되었다. 이 거대한 호수는 본래 농지와 산업단지의 용수 공급이 목적이었으나 대도시의 하수가 이곳으로 유입되고 간척지의 퇴적물 등으로 인해 수질이 악화되면서 원래 계획을 포기하고 현재는 해수호로 관리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그들이 가꿔왔던 터전이라는 물리적 공간을 기반으로 살던 사람들의 생존방식은 단숨에 바뀌었고 그로인해 공동체의 연대는 파괴되고 와해되었다. 방조제가 생기기전 그들은 단지 물리적인 공간이라는 의미에 '섬'사람들이었지만 이제는 심리적 공간으로 개인으로 존재하는 고립된 '섬'의 모습으로 살고 있다. 오랫동안 바다와 육지, 해수와 담수 사이의 혼돈의 정체성을 갖고 있는 시화호는 그 경계를 명확하게 하지 못하고 불분명한 역할을 수행하며 육지와 바다의 기능을 동시에 수행해야했다. 이것은 자연의 터전 안에 살아야만 하는 우리내의 삶을 총체적으로 바꿈과 동시에 개인을 넘어서 공동체의 정체성을 잃어가는 역사와 꼭 닮았다. 개발이라는 명목하의 바뀌어져버린 풍경과 그 속의 공동체의 삶을 성찰하며 서로의 이해의 장을 펼치려 한다. 지금, 우리는 자연이 다시 본질의 그 자리를 찾아가려하듯이 자연과 공동체의 궁극적인 공존의 삶을 추구하며 그 장의 시작을 지금 이 자리에 예술 활동과 실천으로써 치유하고 승화시키려 한다. ■ 한지혜

Stone & Water Project Team

Stone & Water Project Team (위창완, 이가은, 송지은, 한바라시 외 2명)내 보따리 Stone & Water Project Team-Inevitable Nomad는 이번 시화호 프로젝트 안에서 '이주' 의 키워드를 작업으로 진행한다. 공간을 이어주는 장소, 휴게소 같은 공간적 특징과 함께 인간의 이주 정착 안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삶을 모습을 담아보고자 하는 것이 이번 프로젝트의 큰 이야기가 아닐까한다. 한 곳에 머무르기 위한 이주이기도 하며 떠나고, 남겨지는 것들은 보따리에 꽁꽁 싸 메어진 짐 (우리가 가진 인생의 무게) 과 함께 새로운 장소와 삶으로 이동한다.

김동현

김동현새우 잡이 우주선 가구를 만들고 남은 폐 나무를 이용하여 노아의 방주를 만든다. 버려지는 자원을 이용하여 작품을 제작하고 이것에 자연 동력을 이용하여 움직임을 구현하는 작품의 시스템은 자연과 인간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상징한다. 이것은 시화호와 관련된 모든 이들의 바람을 담아 전달하고자 시각적 메시지이다.

박윤주
박윤주

박윤주샤워론 Shower theory 통계자료에 의하면, 현대인의 66%이상(2010 NYU조사)은 샤워 중에 중요하고 예상치 못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발견한 경험이 있다. 그만큼 직관이 뚜렷해지고 집중력이 극도로 확장되는 시간이라는 뜻이다. 동시에 개인의 우주적 차원의 창의력과 천재성이 압도적으로 발휘되는 순간이기도 하며, 공식적으로 허락된 무한한 가능성의 차원이기도 하다. 이러한 일상의 초월적이고 완전한 순간을 예술로 환기하여 삶의 부분적 완전체를 제안한다. 동시에 샤워기가 자기고 있는 순환의 기능을 차용한다. 물의 흐름(하늘에서 비가 내리고, 강이 되고, 댐이 생기고, 하수도를 통해 인간의 물을 사용하고, 샤워를 하고, 그 물이 배수가 되고, 폐수가 되어, 강으로 흐르고, 바다로 흘러, 수증기가 되어 기화되고 구름이 되어 비가 내리고 다시 강이 되는 순환적이고 반복적인 역사.) 과 인간의 역사와의 연관성에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공존방법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이 공존방법이 과연 공존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인지, 그리고 샤워라는 과정(나를 씻는 현대적인 방법)이 주는 완벽함과 취약함의 극단을 비교해보고 탐구해 본다. 사람들은 본 샤워기가 시화호의 완전히 정수되지 않은 물로 연결되었을 때, 과연 그 물로 샤워를 할 수 있을까. 그 정체불명의 물은 왜 정수되어야만 믿을 수 있게 되었을까. 이 모든 과정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시도들

시도들lightON-journey 시화호에서는 우리들 혹은 그들 각자의 삶이 얽혀 예상치 못한 사건들이 일어난다. 검은 바다 위에 표류하듯, 유영하듯 떠 있는 간판들은 어쩌면 우리 삶과 내면에 혼재된 기호들의 자화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어둠 속에 유유히 빛나는 간판의 불빛을 통해 우리 스스로의 갈망과 마주하고 사색하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장수진

장수진 (나쁜 쇼, 거리에서 움직임) ● 당신과 나는 나쁘다. 선명한 것은, 부패한 것들의 '엉김'이다. 무덤처럼, 멀리서 보면 한 덩이의 축적물과도 같은. 시작과 끝이 없는 것 물처럼, 경계 없이 서로를 파고드는 힘 센 자세. 가장 오만한 것은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는 자들의 반듯하고 잘 생긴 갈비뼈일 것이다. 축배를 들듯 바깥을 향한 팔과 다리는 어떤가, 쓸모 있는가. 여기, 시체들이 누워있다. 당신이 나를 지나치는 속도와 방향은 나를 느려지게 하고, 무너진 곳에서 불구가 된 몸이 욕조 속에서 커지는데, 그대 여, 나는 당신과 나쁘다. 나는 고통 속에서 오만하고 당신은 눈부신 병신과 협동하고, 무엇이 동시에 파멸하는가. 이렇게 부드러운 바람 속에 떠 있는 것, 기억, 증발된 소금, 허공에서 정지된 행동들, 왼쪽 눈과 평행하지 않는 오른쪽 눈, 모로 뜬 눈동자와 용기와 내내 조용한 물이 증오한다. 미안하고 섬뜩한 공간 속에 당신과 내가 있다.

아버지의 숲

아버지의 숲이동텐트 프로젝트 I : 해와 달 '이동'은 이야기와 동화의 앞 글자를 따서 지은 이름이다. 이야기 동화는 책의 형태로 출판되는 동화 이전에 구술로 전해져 내려오던 우리의 전래동화를 의미한다. 어머니가 아이에게 그 아이가 자라 다시 자신의 아들딸에게 들려주던 전래동화는 세대와 세대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함과 동시에 우리를 둘러싼 환경에 신화, 민담, 전설과 같은 스토리를 부여함으로써 인간과 환경을 연결하는 역할을 해왔다. '이동텐트 프로젝트'는 잊혀져가는 전래동화를 텐트 퍼포먼스라는 새로운 형식으로 재구성해 전래동화에 깃든 상생의 아름다움을 새로운 형식을 통해 자라나는 세대에게 들려주기 위해 시작되었다. ● 「해와 달」은 전래동화 「해와 달이 된 오누이」로 유명한 일월전설(日月傳說)을 재구성한 작품이다. 이동텐트 프로젝트의 첫 작품을 「해와 달」로 정한 이유는 해와 달이 시간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자연적 오브제이자 지상 만물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달이 뜨면 밀려왔다 해가 뜨면 빠져나가는 밀물과 썰물, 해가 뜨면 깨어났다가 달이 뜨면 잠이 드는 많은 생명들을 보면 해와 달이 생태를 순환하게 하게 가장 근원적인 오브제임을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네 선조들은 해와 달의 유래에 인간의 이야기를 부여하고 아이들에게 반복적으로 들려줌으로써 인간과 자연이 분리된 것이 아닌, 본래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것임을 무의식적으로 자각할 수 있게 해주었다. * 2013에딘버러페스티벌 프린지 부문 참가 작품

정재민

정재민KARMA 너는 나의, 나는 너의, 우리는, 단 한번 같은 곳을 보지 못할 관계 속에서 쌓이는 서로의 생채내기는 한걸음 훌쩍 뛰어 다시 만나도 같은 생채기의 흔적이 남을 것이다. ● 사람과 사람, 사람과 동물, 사람과 자연... 무수히 많은 관계 맺음에서 단 한번 같은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것은 아주 어렵거나 절대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주 좁디좁은 각각의 삶의 공간, 혹은 생태에서 서로를 상처주고 보듬으며 그렇게 존재하는 것이 운명 인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그 운명은 하나의 존재가 탄생하여 소멸되고 다시 탄생되는 과정을 통하여 영원의 시지푸스의 신화처럼 반복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

Vol.20131102a | 시화호, 여기서 저기를 잇다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