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3_1017_목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옵시스 아트 OPSIS ART 서울 종로구 소격동 36번지 Tel. +82.2.735.1139 www.opsisart.co.kr
흉내란 남이 하는 말이나 행동을 그대로 옮기는 짓을 말한다. 대개 상대방을 놀리거나 웃기려고 흉내를 내지만, 상대에게 지지 않으려거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흉내를 내기도 한다. 실제로 생태계에서 동물이 위험에 대비하여 스스로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나, 아니면 눈에 띄지 않으려고 주위의 물체나 환경의 일부처럼 보이도록 하거나, 다른 동물과 매우 비슷한 모양을 하면서 스스로를 숨긴다. 위험에서 자신을 보호할 목적으로 어떤 대상이나 환경에 스스로를 통합하는 것이다. ● 로버트 리는 이렇게 생물들이 가지고 있는 흉내 내는 능력을 전략적으로 차용하여 작품을 제작하고 전시한다. 동식물이 상대를 모방하고 환경에 동화하는 적극적인 능력을 역으로 이용하여 상대나 환경으로부터 그 흉내 내는 능력을 고립시켜서 해체하고 그 능력 자체를 물질화된 형태로 드러낸다. 즉 흉내의 대상이 되는 사물이나 환경을 작가가 이미 사전에 선취하고, 모방이나 흉내를 내는 경로나 과정에 직접 개입하여 흉내 내는 본성에 제약을 가하며, 흉내를 내는 능력 자체가 작가의 의도대로 드러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조롱박을 이용한「텔레플래스티(teleplasty)」시리즈를 보자. 이 작업은 조롱박 자체를 보여주기 보다는, 오히려 조롱박이라는 대상이 재배되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로 하여금 그것의 성장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준다. 쇠를 사용하여 매우 기하학적인 새장 같은 구조물을 만들어 그 속에서 조롱박을 키운다. 쇠로 만들어진 구조물 때문에 원래 자랄 수 있는 방향으로 자라지 못한 조롱박은 그 인위적 환경에 적응하여 구조물의 모양에 부합하는 형태로 자라난다. 충분히 자란 조롱박을 줄기로부터 끊어내고 그 상태를 충분히 말리면 조롱박은 딱딱해져서 마치 플라스틱 같은 느낌이 난다. 이런 쇠 틀에 갇혀서 재배되고 수확되어 건조된 조롱박은 더 이상 조롱박이라고 할 수 없는, 족보에도 없는 괴상한 형태로 변해서 갤러리에서 전시된다. 작품으로 드러난 조롱박은 작가가 조작한 틀 속에서, 그러나 작가가 그다지 예상하지 못한 방식과 형태로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나는 것이다. 기하학적이고 규칙적인 쇠 틀 속에서 괴상하고 예측할 수 없이 자란 조롱박이 서로 우연히 결합된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엉뚱하게도 어떤 해방된 시원함을 맛본다. 작가는 그것을 자유의 맛(taste of contingency)이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바로 생물이 가진 생명의 기운에 다름 아닌 것이다. 작가는 그것을 '예쁘다(pretty)'고 하지 않고, '아름답다(beautiful)'고 말한다.
사진 작업도 마찬가지다. 어떤 간단한 도구를 사용하여 스스로의 몸에 제약을 가한 뒤 반응을 지켜보면, 그 제약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몸이 그냥 알아서 제약을 벗어나는 놀라울 정도로 자율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그것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일상을 통하여 자신의 몸이 스스로 가한 억압과 통제를 쉽게 벗어나는 경이로운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고 말한다. ● 비슷한 맥락에서 지팡이를 사용한 작품을 보자. 이 작업은 지팡이가 가진 보조적인 본질을 해체해서, 지팡이와 지팡이를 서로 지탱하게 하였다. 이로서 지팡이 자체가 스스로 자립하는 주체로서 능력이 있다는 것을 환기시켜준다. 지팡이는 이미 인간의 '흉내 내기' 능력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의인화된 사물(anthropomorphized object)이다. 하나의 흉내 형상인 것이다. 흉내 내어진 것들이 흉내 내어진 것을 서로 지탱하고 의존하여 당당하게 서 있고, 시멘트 계단을 오르는 것이다. 눈물겨운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로버트 리는 이번 전시를 통해서 신체를 가진 인간이 자신들의 삶을 조건 짓고 규정하는 자연 혹은 사회 속에서 스스로를 자유롭게 하는 비가시적인 기운과 능력을 물질로 드러내어, 그것들이 어떤 가시적인 것으로 나타날 수 있는가 단박에 느끼게 해 준다. 인간은 어떤 조건에서라도 살아갈 수 있고, 또 어떤 경우라도 함께 살 수 밖에 없다는 처연하고 무거운 희망을 가볍고 산뜻하게 느낄 수 있도록 보여주는 것이다. ■ 신지웅
Vol.20131024e | 로버트 리展 / Robert Rhee / sculpture.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