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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샵 / 2013_1128_목요일_07:30pm
손몽주 인스톨레이션 WITH MEDIA 손몽주_김현명_김한밀
후원 / 부산문화재단
관람시간 / 10:00am~08:00pm / 일요일 휴관
갤러리 움 Gallery Um 부산시 동래구 명륜동 424번지 종로학원 3층 E-Space Tel. +82.51.557.3369 www.cafeum.co.kr
확장된 공간에서 경계 넘음의 경험 ● 평범한 것, 낯익은 것, 일상적인 것, 상식적인 것 등의 편안함이야말로 인간이 추구하는 문화의 궁극 가치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그 반대의 모든 것들을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으로 꾸준히 만들어 왔다. 그런데 모든 것이 이미 완벽하게 그런 편안함으로 마련되어있다면, 그러니까 편안함마저도 비교 대상 없는 절대적인 상태로 주어진다면 그것이 과연 문화의 궁극 가치로 존재할 수 있을까? 답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평범하고 낯익은, 일상적이면서 상식적인 것은 늘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는 비교대상을 불러낸다. 그래서 이 편안함이야말로 권태의 한 단면이다. ● 사실 우리는 평범하지 않은 것, 낯선 것, 일상적이지 않은 것, 비상식적인 것을 추구한다. 이런 것들의 지각이야말로 포화된 편안함의 권태로움을 상쇄(相殺)할 재료인 것이다. 편안하고 안락함의 항은 대립 항을 불러내야만 존치할 수 있다. 그래서 그 두 항은 동전의 양면이면이기도 하다. 이 두 항은 마치 상치(相馳)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서로 보완의 관계로 놓이면서 권태의 상시(常時)적인 상태로부터 벗어난다. ● 우리의 주거공간은 집이다. 그리고 늘 거의 되풀이 되는 동선을 따라 이동했다가 다시 집으로 귀속한다. 그래서 우리는 집이라는 터전에서 정주민이 된다. 이 일상의 공간들에 일상의 것들이 변화 없이 반복되고 누적된다면 분명 우리는 거기에서 권태를 느끼게 된다. 권태로부터의 일탈은 일상으로 귀속할 것이라는 다짐으로부터 발생한다. 여행이 그렇고 새로운 문화를 습득하려는 욕망이 그럴 것이며 예술에 노출되는 것이 그렇다. 특히 예술의 경우 그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형태자체가 평범한 것으로부터, 낯익은 것으로부터, 일상적인 것으로부터, 상식적인 것으로부터 경계 너머의 경험을 제공해주는 것으로 있다. ● 그래서 과거의 예술은 저 너머의 어떤 세계를 지시해 오기만 했다. 그것도 마치 창문과 너무나 닮은 액자 틀의 범위 안에서 창밖의 풍경을 보여주듯이 말이다. 그 창밖의 풍경은 우리의 욕망세계였거나 낯선 공간을 제시하면서 우리의 일상 공간, 평범하고 상식적인 공간과 분명한 경계를 설정했다. 창밖의 풍경은 마치 '~으로 보이는', 범접할 수 없는 미지의 세계와 다름 아니다. 그 생경함도 오백년을 되풀이 하면서 익숙한 것이 되었다. 그래서 이제 미술은 우리를 창밖 저 너머의 미지의 세계로 우리의 손을 이끌고 간다.
선이 모이면 면이 되고 면이 모이면 3차원 공간을 만든다는 이론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림 속의 공간들이 원근법이라는 눈속임의 마법으로만 존재할 때, 그 속의 선이 만드는 면, 면이 만드는 공간은 그저 '~으로 보이는' 공간일 수밖에 없었다. 마치 3차원으로 가장된 평면 작품들이나 3차원적 덩어리 공간이 지시하는 공허한 미지의 예술세계가 갤러리 화이트 큐브공간에서 박재되는 미술 작품의 직무는 이제 붕괴되었다. 필자가 목격한 한 작가는 그런 붕괴를 상징적으로 재현한다. 손몽주는 긴 띠를 종(縱) 또는 횡(橫)으로 연접시켜 복수의 무수한 선들과 그것에 의한 물결(면)을 만든다. 양끝이 고정된 탄력 밴드의 띠들은 아주 작은 떨림의 파형을 그리면서 그것들이 순간적으로 만들어내는 틈새와 그 틈새로 비어져 나오는 조명 빛을 경험케 한다. ● 다시 말하면 그녀의 작품은 지금까지 회화 평면이 지시해 왔던, 그런 미지의 공간속에 실제로 우리를 가두어 놓는다. 우리는 누구나 할 것 없이 그녀의 작품 앞에서는 것이 불가능하다. 우리는 어느 순간 그녀의 공간 속에 존재하게 되며, 이것은 기존의 화이트 큐브 형으로 진행되어왔던 감상의 유형이나 체제를 깡그리 무시하게 되는 특별하면서도 대표적인 매체를 경험 하는 것이다. ● 그녀의 공간은 화이트 큐브의 공간보다 훨씬 우리의 동선을 강제한다. 하지만 그 동선의 유도는 밴드 띠가 연출하는 떨림의 동력, 면들의 변주, 조명 빛의 조화 그리고 스펙터클한 공간으로 안내한다. 그녀는 어떤 유기적 질서를 만들어 내는 탁월하고 독특한 능력이 있다. 일상적이지 않은, 그래서 낯선 공간은 일종의 환타지의 연출이다. 때문에 그녀의 작품이 비유적이지만 한편으론 매체자체의 특성을 고스란히 제공해 줌으로써 질료를 관찰하게 한다. 이 실제적 경험은 마치 추상화의 그것과 동일하다. 궁극적으로 말하면 그녀의 이미지는 어떤 무엇도 지시하지 않는다. 그 비현실공간에서 생생한 현실재로 드러난 '나(감상자)'의 증상들을 목격하게 하는 것이다. ● 증상? 그렇다. 우선 전형적인 공간에서 비전형적인 공간성을 감지했을 때 느끼는 생경함이며, 선들의 스펙터클이 곡면으로 변용되면서 가져다주는 환상적 풍경에 대한 감회, 적당히 강제된 동선을 따라 각도를 달리한 새로운 시각들의 느낌말이다.
손몽주의 작업은 늘 격무의 설치 과정이 수반된다. 또 그만큼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이 작업은 끝나는 순간 그것이 작품이자 전시공간이 되는 설치미술의 전형적인 특수성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작업과정자체가 '완결'의 지점을 갖지 않는다. 작업 준비, 스케치, 공간 설치 리허설, 설치, 효과 점검 등등의 과정 전체가 그녀의 작품이다. 또 있다. 이 모든 것이 하나의 목적과 맥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녀 스스로의 작업 행위가 예술적 퍼포먼스와 동일하다. 분명 결과적으로 계산된 공간을 산출해 일시적으로 전시라는 형태로 노출되었다가 다시 철수하는 과정을 되풀이 하지만 그녀의 작업에서의 '완결'은 미덕이 아니다. ● 우리가 목격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그녀 작업의 어떤 일시적인 상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가 공간을 연출하고 거대한 구조물의 시각 환경을 만드는 것에서 반복적인 행위와 그 시간들의 축적을 만날 수 있다. 그것은 마치 같은 단어를 수 천 번, 수 만 번 되풀이하며 내 뱉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매번 음색과 옥타브는 다르다. 탄력있는 선형의 밴드를 양쪽에 고정시키고 인접하여 반복된 행위를 하지만 똑같지는 않다. 이 탄성 밴드의 복수 조합이 만들어 낼 변증법적 효과야 말로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볼거리다. 지루한 행위의 반복은 마치 '권태'를 비유하는지는 모른다. ● 하나하나 (매질들의)모음이 어떤 무한히 변주 가능한 공간을 연출해 내고 이윽고 더 없는 확장된 공간으로 나아가는 것을 암시하는데, 마치 표백된 무균질의 공간을 부유하게 만드는 효과야말로 손몽주가 탐색해낸 어떤 이미지의 경지이다. ● 분명한 것은 과잉된 일상, 상시적인 것의 포화, 그 권태로움으로부터의 탈출은 특별한 매체에 승선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인데, 손몽주 작가의 활기 넘치는 공간연출에서 그런 '경계 넘음'의 가슴 벅참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 김영준
800km 길이의 끈 ● 최근 몇 년간 공간 드로잉 작업을 하며 사용한 끈의 길이를 짐작해보면 800km가 넘는다. 한 공간 작업 시 평균 10~30 km씩 사용했고 그러길 50여회 반복하였으니,, 그 끈의 길이는 서울, 부산 왕복 거리이며, 결국 나는 그 거리를 끈과 함께 달린 셈이 된다. 그렇게 띠를 잡고 달리며 공간들을 채운 나의 작업이 분명 나를 찾기위한 의미 있는 여정이자 행위라 믿고, 내일의 드로잉은 나아가 지구 한바퀴 쯤 돌 수있는 길이까지 쌓여가길 개인적으로 소망해 본다. ■ 손몽주
800Km of strings ● I have used more than 800km of strings for my space drawings for the past couple of years. I have used an average from 10~30 Km of strings for each space and repeated this process for about 50 times. Total lengths of strings nearly covers returning distance between Seoul and Busan. This means that I have run this distance with these strings. My work of filling spaces while running with the strings was clearly a meaningful journey and an act in search of myself. I imagine I can keep using strings up to a length that matches the circumference of the Earth, I imagine an extended form of space - time drawings. ■ SONMONGJOO
Vol.20131016k | 손몽주展 / SONMONGJOO / 孫夢珠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