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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3_1014_월요일_05:00pm
관람시간 / 09:00am~06:00pm
한전아트센터 갤러리 KEPCO ARTCENTER GALLERY 서울 서초구 쑥고개길 34 제2전시장 Tel. +82.22105.8190 www.kepco.co.kr/artcenter
기억과 망각 사이의 진동, 약호화된 현실에 대한 시선 ● 신제헌의 작업은 기억과 연루된 인물의 초상을 토대로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초상은 대체로 정치나 문화의 영역에 있어서 이른바 대중적 '아이콘'이 된 인물들을 가리킨다, 각각의 초상은 특정 사건이나 대상을 즉각적으로 연상시킴에 따라 기호로서의 특정 인물의 이미지, 그리고 지시대상으로서의 역사적 맥락(기억) 사이의 관계를 내비친다. 그러므로 넓게 보아 신제헌의 작업은 미디어에 의해 매개된 역사적 단편과 실제 현실, 동시대 기호 질서의 맥락에서 접근해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역사적 실재는 많은 경우 단편적인 기록과 이미지를 토대로 구성된 것으로 논의되곤 한다. 이 과정에서 역사적 인물의 초상은 역사를 구성하는 효과적인 형식으로 작용하며, 결과적으로 대중은 인물의 이미지를 비롯한 몇 가지 단편들을 통해 역사를 표상한다. 작가가 주목한 인물들은 대개 그런 방식에 따라 약호화된 인물들이라는 면에서 공통점이 있다.
첫 번째 개인전의 히틀러 두상을 통해 짐작할 수 있듯이, 신제헌의 작품은 전지구화 경향 속에서 누구나 쉽게 인지할 수 있는 인물의 얼굴을 제재로 삼는다. 히틀러 외에도, 레닌, 카다피, 마르셀 뒤샹 등 작가는 세계사나 근현대 문화의 특정 시점을 표상하는 인물을 선택하고, 그 인물의 두상을 다소 표현적인 동시에 키치적인 방식으로 제작해왔다. 역사적 인물의 초상을 예술의 맥락에서 재구성한다는 측면에 한정시켜 볼 경우, 신제헌의 작업은 20세기 미술사의 몇몇 경향을 되풀이하는 것처럼 보인다. 외형상 그의 시도는 포스트모더니즘을 거치며 닳고 닳은 유형의 초상 이미지, 예컨대, 역사 속 인물에 대한 풍자나 우의적 의도를 담은 정치적 미술(신표현주의), 또는 유명인의 초상을 차용함으로써 대중적 예술로서의 알리바이를 확보하는 유형(팝-아트)을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이는 사실상 대중적 아이콘을 다루는 대부분의 현대미술이 피해가기 어려운 혐의(?)로서 신제헌의 작업에서 내려질 수 있는 일종의 선입견을 구성한다. 그러나 미리 말하자면 신제헌이 시도하는 일련의 초상 작업은 앞서 형성된 상투형과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으며, 단순히 대중적 아이콘이라는 제재에 한정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의 작업은 초상과 관련된 현대미술의 일반적인 약호를 괄호 안에 넣고 그 범주 자체에 대한 물음을 야기하는 것에 가깝다.
우선 작가가 '망각'이라는 키워드와 함께 제시한 두상 조각들은 대중매체를 통해 반복적으로 매개된 유명 인물의 이미지라는 점, 그리고 종이박스와 같은 연약한 재료, 신체 중 머리만을 제법 크게 재현했다는 점을 공유한다. 작가의 표현에 따르면, 박스 파편을 붙여 만든 인물의 얼굴은 일종의 '포장된 생산품'과 같은 것으로 '의미가 망각된 공허한 인간상'을 표상한다. 그는 한동안 빈껍데기를 연상시키는 가벼운 두상 조각을 추구해왔는데, 작가의 표현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이러한 작업은 실제 의미와는 별개로 통용되는 초상 이미지의 성격을 나타낸다고 여겨진다. 말하자면, 일종의 '원본 없는 이미지'로서 구체적인 맥락이 상실된 채 소위 매스컴에 의해 파편화된 기표로만 유포되는 상황을 가리키는 것이다. 따라서 작가가 재현한 과장된 두상은 인물을 표면을 강조하기위한 수단이며, 그러한 이미지의 과잉 또는 초과 이미지를 통해 오늘날 정치적 문화적 기호의 의미작용(signification) 논리를 보여준다. 다시 말해, 과장된 두상의 텅 빈 기호는 우리의 기억이 대중매체가 매개해 온 특정 도상과 구조적으로 결부되는 방식을 메시지로 삼는 것이다. 신체의 다른 부분이나 배경을 제거한 상태에서 오로지 얼굴만을 과도하게 부각시킨다는 측면 또한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볼 요소이다. ● 이후 그는 인물 두상의 재현 방식을 다양하게 변주하는 동시에 건축이나 기념비와 같은 역사적 기호, 그리고 소위 역사의 주연이 아닌 단역이 포착된 기록에 주목하고 있다. 이를 통해 그는 두상 조각에서 짐작할 수 있는 표면과 텅 빈 기호의 문제를 보다 다양한 대상으로 확장하며, 이에 따라 관람자는 그동안 정치적 사건, 또는 한 시대의 예술 관념을 반영해온 특정 기호를 이전과는 다른 각도에서 바라 볼 수 있게 된다. 예컨대 서울중앙지방법원이나 명동 경찰서의 정면을 모형으로 제작한 작품들은 정치사나 국가권력과 결부되어 있는 실제 장소를 상품화된 형태로 제시함으로써 얼굴과 마찬가지로 건물의 형태가 표상해온 것에 대한 고찰을 이끈다. 그리고「1950-1953」(2011)과 같은 일련의 평면 작업은 과거 보도사진에서 발견한 인물의 초상을 가공, 확대하여 보여준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병사, 피난길에 포착된 남매 등 인물들은 각자의 서사를 지니지만 여기서는 마치 대다수의 보도매체가 그러하듯, 하나의 이미지-기호로 가공된다. 유명 인물의 두상을 재현한 작품들이 특유의 과장된 크기와 소재를 통해 역설적으로 기념비로서의 초상을 무력화시킨다면, 이 경우에는 반대로 개인의 역사를 기념비로 약호화하는 과정을 반영하는 듯하다. 따라서 그의 작업들은 다양한 매체나 제재로의 확산을 꾀함에도 불구하고 한 방향을 보고 있다. 약호화된 존재(정치적 인물, 예술가, 건축물 등)와 그 약호가 형성되는 틀을 노출시킨다는 공통된 효과에 따라 묶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이번 전시를 통해 그려지는 그의 작품 과정은 비판적 현대미술의 문맥과 닿아 있다고 여겨진다. 일상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수용되는 기호에 주목하고 그로 인한 현실의 구성가능성, 그리고 물신화된 예술가 이미지를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특유의 두상 조각에 머물지 않고 다양한 형식으로의 변화를 모색하기 때문에 그 자체로 점차 유연한 기호가 되고 있다. 이는 곧 그의 작품이 역사나 정치뿐만 아니라 그런 주제를 다루는 예술 실천을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컨대 그가 최근 들어 집중하고 있는 예술가 두상 작업은 기존 작업의 쟁점이 예술 제도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이미 현대 미술의 신화가 된 마르셀 뒤샹, 미술 시장을 표상하는 찰스 사치와 같은 인물의 얼굴을 제작한 바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보다 동시대 미술을 대변하는 마우리치오 카텔란, 데미언 허스트를 반짝이는 표면의 흉상으로 제작하였다. 박스 조각으로 덮인 히틀러 조각이 의미의 파편화와 망각을 의도했다면, 데미언 허스트의 영웅적 초상은 후기자본주의 시대의 예술-상품, 혹은 예술가 이미지의 물화를 지시하는 신호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어쨌거나 우리는 과도하게 직접적인 스타 예술가의 초상에서 현대미술의 브랜드 가치, 한편으로 그 브랜드 가치에 대한 비판을 이용함으로써 예술의 지위를 얻는 현대미술 등 예술 제도내의 여러 역학 관계를 떠올릴 수 있다. ● 필자 개인의 경우, 앞의 논의에 따라 신제헌의 작업에서 비판적 혹은 정치적 예술의 가능성을 점친다. 요컨대 이러한 작업들이 초상 이미지라는 범례를 통해 얼굴-기호의 파편화와 물화의 신호를 포착하고, 그 이면의 논리를 어렴풋이나마 드러낼 수 있다면 우리는 그의 작업에서 저항적 역할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의 작업이 일종의 신보수주의적 포스트모더니즘으로서 제도에 진입할지 아니면 동시대 예술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반영하는 저항적 미술이 될지는 좀 더 지켜볼 일이다. 끝으로 무엇보다 이번 전시에서 주목해야할 요소는 개별 작품들을 어떤 식으로 배치하고 연출하였는가라고 생각한다. 각 초상 이미지의 약호화 과정을 의심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매개하기 위해서는 개별 작품들 간의 관계를 면밀히 설정하고 이미지에 대한 관람자의 반응을 주된 변수로 고려해야 할 것이다. 아마도 이 전시의 제목인『시선』이 가장 부각되는 순간은 작가의 시선이 작품의 물질적 층위에서 동시대 문화적 상황과 수용자로 옮겨갈 때가 아닐까 싶다. ■ 손부경
Vol.20131014a | 신제헌展 / SHINJEHEON / 申制憲 / 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