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o Drawing 21_매우 길거나 짧은 either Very Long or Short

이창훈展 / LEECHANGHOON / 李昌訓 / video.sound.installation   2013_1011 ▶ 2013_1027 / 월요일 휴관

이창훈_PARA  S _LED 채널 사인_230×580cm_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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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3_1010_목요일_05:00pm

후원 / 서울문화재단_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료 성인, 대학생_3,000원(단체 1,500원) 청소년(13-18세)_2,000원(단체 1,000원) 어린이(12세 이하)_1,000원(단체 500원) * 단체 : 20인 이상 * 메인 전시(아시아코드-空) 관람 시 무료 관람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 마감시간 1시간 전까지 입장 가능

소마미술관 SEOUL OLYMPIC MUSEUM OF ART 서울 송파구 방이동 88-2번지 제5전시실 Tel. +82.2.425.1077 www.somamuseum.org

매우 길거나 짧은? 달콤한 인생? 현대사회에서 예술가는 어떤 의미일까? ●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의 시각으로 바라 볼 때, 전혀 합리적이지 않고 비논리적인 예술가의 시각을 어떻게 이해하고 판단할 것인가?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진정한 예술가의 정체성과 지위를 자리매김 할 수 있을까? ● 이번, 이창훈의 작품을 설명하기 전에 서론을 풀어가기 위한 화두로 스스로 몇 가지 질문을 던져 봤다. 너무도 당연한 얘기지만, 예술가의 존재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 되지 않기위해서 라도 예술가의 존재, 예술가로 생각 한다는 것의 궁금증을 이창훈의 작품을 통해 알아가는 재미를 공유하고 싶다.

이창훈_PARA  S _LED 채널 사인_230×580cm_2013
이창훈_길을 잃다_도로 표지판_200×300cm_2011

일상생활 속에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고 예측할 수 있다면, 어떨까? 그것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같은 예술가들의 사고방식을 들여다보는 묘미는 짜릿 하다. 여기 이창훈의 작품도 최초 모티브를 얻게 된 동기와 제작과정, 작품연출 마무리까지... 전 과정에서 보여지는 독창적인 동기부여와 창의적인 제작과정, 가볍지 않은 주제의식까지 지켜보는 내내 미소 짓게 만들었다. 컨셉츄얼 아트(Conceptual Art)가 이렇게 재미있다는 게 믿기 어려울 정도로 전 과정 자체가 작품의 특징을 말해주는데, 지금부터 일관성 있는 주제의식에 다양한 소재를 이창훈식 사고틀에 버무려서 제작되는 작품들을 소개하도록 하겠다. (중략)

이창훈_1 Frame-삶과 죽음, 인생은 아름다워, 스틸 라이프, 삶의 의미, 아버지의 인생, 나의 장미빛 인생, 희몽인생, 인생, 오하루의 일생_9채널 영상설치_각 00:00:00-loop_2011~3
이창훈_1 Frame-삶과 죽음, 인생은 아름다워, 스틸 라이프, 삶의 의미, 아버지의 인생, 나의 장미빛 인생, 희몽인생, 인생, 오하루의 일생_소마미술관_2013

검고 길게 표기된 이력처럼 우리의 인생은, 어쩌면 어두운 터널의 연속일지도 모르겠다. 과거 냉전시대와 흑백논리가 지배하던 사회보다 진일보된 세상을 살고 있지만, 다양한 가치가 존중되고, 절대 악과 선이 무의미하며 양면성과 모호함이 지배하는 현대사회를 살면서 작가의 의문과 문제제기에 깊은 공감을 느낀다. 그리고, 그가 예술가로서 단절된 개인과 사회에 대해 소통하려는 노력과 방식을 응원하고자 한다. 혹, 아는가? 그 노력이 빙하기 인류멸망이라는 어두운 터널을 뚫고 지나가는 설국열차의 멈추지 않는 엔진 같은 것을 만들어 낼지. ■ 손성진

이창훈_매우 길거나 짧은_사운드 설치 : LP, 턴테이블, 앰프, 스피커_24:00:00_2013
이창훈_CV_도록에 인쇄_2011~

드로잉 단상 ●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 1925~ )의 말을 빌자면 현재의 우리는 '액체화'된 '유동적'인 사회에 살며, 그러기에 그 삶은 불확실하고, 예측 불가능하며, 불안정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살아간다는 것, 그것은 나를 둘러싼 커다란 사회구조 속에서 (무)의식적인 오감을 통해 학습 되어지고, 이를 기준으로 끊임없이 그 속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에 대해 판단하고 사고하며, 그에 상응하는 반응으로서 (어쩌면 그 사회를 구성하는 하나의 개체로서 최소한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끊임없이 무언가를 생산하는 행위일 것이다. 그러나 결국 그 생산물들은 살았던 과거에 대한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기록물들이며, 살게 될 미래에 대한 예측 불가능한 청사진들일 뿐이다. 살아간다는 것, 그것은 내가 살아가는 시공간 속에서의 선 긋기이다. 그러나 그 선은 지극히 모호할 뿐이다. ■ 이창훈

Vol.20131011c | 이창훈展 / LEECHANGHOON / 李昌訓 / video.sound.install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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