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ard animal

장세일展 / JANGSELL / 張世一 / sculpture   2013_1010 ▶ 2013_1109 / 일요일 휴관

장세일_standard animal-flower_스틸_가변설치_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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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3_1010_목요일_05:00pm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일요일 휴관

갤러리 포월스 GALLERY 4WALLS 서울 강남구 논현동 248-7번지 임피리얼팰리스 호텔 1층 Tel. +82.2.545.8571 www.gallery4walls.com

동일자의 파편으로 구성된 타자의 자리 ● 인간에게 두려움과 경외심을 안겨주었던 동물은 역사의 어느 단계에 이르러서는 인간에게 제압되고 길들여진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인간이 자기 안의 동물성을 억압하는 과정과 함께 한다. '자연의 주인이자 소유자'(데카르트)가 된 인간이, 자신도 속해 있는 자연을 대상화하고 지배하는 과정은 스스로를 모순에 빠트린다. 그러나 자연은 인간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리 간단치가 않다. 자연은 인간의 계산과 예측을 뛰어넘는 모습으로 귀환하곤 한다. 그것이 재앙이든 숭고의 모습이든 간에 말이다. 억압된 무의식처럼, 의식의 틈 사이로 귀환하는 자연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척도아래 코드화하기 이전의 원초적 공포와 경이로움을 되살려 내곤 한다. 장세일이 소재로 삼는 동물들은 현대의 토템상과 같은 기념비적 위용을 갖추고 있다. 잘 가다듬어진 형태와 화려한 색채, 자동차처럼 매끈한 도장이 결합된 동물들은 문명에 의해 내몰릴 대로 내몰려 초라한 모습을 하고 있는 궁색한 자연이 아니라, 세련된 현대의 환경과 잘 어울린다. ● 그것은 인간과 함께 공(共)진화하면서 새로운 생태계에 적응한 단계를 보여준다. 물론 적응은 자연선택처럼 가혹하다. 울퉁불퉁 각진 모습과 부드러운 곡면을 겸비한 형태는 인간이 변수를 극대화시킨 복합적인 환경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존재의 징후이다. 복잡해진 환경과 더불어 동물은 단순성을 잃었다. 종 다양성을 부정하는 적대적인 생태적 환경 속에서 야생의 다양성도 잃었다. 장세일이 예술이라는 고도의 인공적 장치를 통해 구현한 동물은 자연 그대로의 단순함도, 다양성도 억제되어 있다. 그것은 복잡하면서도 균질적이다. 거기에는 모든 것을 조금씩 겸비한 똑같은 부류의 인간이 무한경쟁을 해야 하는 사회가 발견된다.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 더욱 비극적이므로, 이러한 변형은 반드시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자연은 단순히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표준을 창조하기도 한다. 2010년 첫 개인전에 이어, 이번 전시에서도 사용되는 'standard animal'이라는 부제는 긍정할 수도 부정할 수도 없는 현 단계 자연의 모습이 반영되어 있다.

장세일_standard animal-arctic wolf_스틸_2013
장세일_standard animal-arctic wolf_스틸_120×930×130cm_2013
장세일_standard animal-arctic wolf_스틸_70×140×130cm_2013

이번 전시의 가장 큰 작품인, 북극 늑대 한 쌍을 형상화한 작품에는 늑대의 풍성한 꼬리부분이 의자형태로 변모되어 관객이 앉을 수 있게 했다. 첫 개인전과 달리, 눈이 묘사되어 있지 않아서 표정은 알 수 없지만, 앉아있거나 서 있는 모습에서 자신에게 적대적일 수도 있는 상대마저도 싸안으려는 우호적 자세가 있다. 12지상을 표현한 작품들에서 친숙 도는 더욱 높아진다. 북극 늑대도 그렇지만, 첫 전시 때 대거 등장했던 멸종 위기 종은 상징적 동물 군으로 확대되었다. 12지상은 인간과 동물이 하나의 상징적 우주로 엮여 있음을 예시한다. 자연이 위기에 빠짐에 따라, 자연으로부터 비롯된 상징적 우주도 껍데기만 남아 있기에, 12지상 역시 멸종 위기종이라는 맥락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이번전시에서 그는 토끼를 여러 모습으로 표현했다. 높낮이가 다른 좌대 위에 하나씩 올라있는 10마리의 토끼는 기하학적 형태가 용접된 몸통과 플라스틱으로 만든 큰 발과 얼굴, 귀의 조합인데, 그것들은 종과 변종의 차이처럼 동질이상(同質異像)의 관계를 이룬다. ● 몸통만 보면 토끼라는 것을 전혀 연상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면을 가진 기하학적 형태들이다. 그것은 어떤 유기체의 기능적인 표면이 아니라, 이런저런 모습으로 각진 덩어리인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닭이나 원숭이 등, 다른 12지상을 이루는 몸통도 마찬가지이다. 제멋대로의 상상력이나 추상이 아니라, 자연이라는 참조대상을 존중하는 작가에게 동물의 형태와 동세는 복잡한 퍼즐을 맞추는 정교한 작업을 요구한다. 특히 큰 규모의 작품인 경우 컴퓨터의 도움은 필수적이다. 본격적인 제작이나 도색되기 이전의 단계를 보면, 전체를 이루는 하나하나의 면마다 번호들이 매겨져 있음을 볼 수 있다. 여기에서 예술작품은 자연처럼 기하학의 정신으로 충전되어 있다. 장세일의 작품에서 재현은 구성의 과정과 동일하다. 유기체와의 비유는 구조적인 단계에서 적용될 뿐이다. 비슷한 규모에 적용된 일련의 차이들은 죽 나열된 상들에 잠재적 운동감을 부여한다. ● 머리나 사지를 이루는 말단 부분의 부드러운 처리는 각진 덩어리에 유기체의 느낌을 주는 요소이다. 몸체 말단의 부분들은 유기적이고 몸통은 무기적으로 보이지만, 표정 없는 가면을 쓴 것 같은 머리통과 달리, 불규칙적 도형으로 접합되어 있는 몸통은 각 개체에 차이를 준다. 그래서 장세일의 작품은 유기적이지 않은 몸통 부분에서 야생적 차이가 느껴진다. 관객에 따라서는 부드러운 유기적 구조가 딱딱한 무기적 구조에 갇혀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작가는 서로 다른 질을 하나의 차원에 조합한다. 장세일이 제시하는 자연의 표준은 이물감이 있다. 이질적인 것들 간의 조화는 태생적인 맞춤형과 달리, 미래에 도래해야 할 몫이다. 이러한 모순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 인간이 자신도 속해 있는 동물을 타자화 함으로서 생겨났다. 그러나 인간의 동물성은 지구상에 끊이지 않는 분란이나 생명공학을 통해 재차 확인된다. ● 인간을 자연이라는 대상과 다른 주체로 정립하는 과정에는 인간의 지배를 정당화하려는 권력에의 의지가 숨겨져 있다. 자연을 도구화하는 인간중심의 목적론에서, 인간이라는 정체성은 권력이 집중된 소수로 귀착되어 간다. 인간이라고 다 같은 인간이 아닌 것이다. 여성, 아이, 흑인, 동성애자, 광인, 예술가 같이 어떤 부류의 인간들은 소수의 합리적 개인만을 주체로 인정하는 체계에 의해 자연처럼 타자화 된다. 야생에는 존재하지 않는 'standard'라는 접두어가 붙인 장세일의 동물들은 인간화와 자연의 길들임 간의 상관관계를 알려준다. 거기에는 주체가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에 내재된 불편한 진실이 있다. 온전한 사회적 개인으로 곧게 서기 위해 인간은 언어를 통해 '나는 나'임을 끝없이 외친다. 주체를 주체로서 가능하게 했던 타자는 의식의 뒤켠이나 심연에 남겨진다. 근대의 미학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신화화된 예술 또한 이렇게 과도하게 비대해진 주체에 의존한다.

장세일_standard anima l-rabbit_스틸, frp_15×17×10cm_2013
장세일_standard animal -rabbit_스틸, frp_17×15×10cm_2013

미술계에는 그림일기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주체의 독백들이 넘쳐난다. 독백이라고 해서 솔직한 것도 아니다. 파편화된 개인에게까지 모세관처럼 뻗어있는 권력의 그물망은 독백적 담론 또한 온통 자신을 합리화 시키는 서사로 가득 차게 한다. 짐짓 계몽주의적이기까지 한 어조로 타자와의 소통을 추구하는 듯한 외양 아래에는,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해 타자를 부정하는 배타적 언어이자 스스로를 감시하는 간수의 언어가 똬리를 틀고 있다.『동일자와 타자』의 저자인 벵상 데꽁브에 의하면 이질적인 것을 길들이고 동화시키는 것, 무분별한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 부적당함을 합리화시키는 것, 간단히 말해서 타자를 동일자의 언어로 옮기는 것이 신화와 이데올로기가 행하는 것이다. 거대한 반사를 통해 나르시시즘을 고무하는 현대적 환경 속에서, 예술적 주체 또한 이러한 신화와 이데올로기가 운집된 장으로 전락한다. 동일자는 무한히 자신을 확장해나가고, 그 지평은 전체성이다. 스스로 정체성을 규정하려는 태도는 독사(doxa)가 되었다. ● 바르트가 독사라고 부른 것, 즉 중산층을 특징짓는, 인정되어 이미 기성화 된 의견이나 상투적인 고정관념, 일련의 숨 막히게 하는 것들이 예술계에서도 발견됨은 애석한 일이다. 근대적 분업화로부터 야기된 예술의 자율성이 자유가 아니라, 자의로 귀결되었다. 자기애와 자기연민, 자기중심주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특히 나를 형성하는 상징적 언어의 감옥에 갇혀 있는 그 자기 지시적이고 자기 참조적이며 동어반복적인 미학이 고백이나 반성이라는 미명아래 번성한다. 근대 미술은 자연, 또는 주체 안의 자연과 단절하고, 그 스스로를 지시할 뿐인 자족적 실체를 추구해왔다. 일견 무해해 보이는 이러한 자기중심적 사고는 환경에 대한 인간의 통제력을 무한히 확대하려는 자연개조의 기획과 그리 멀지 않다. 보드리야르는『생산의 거울』에서 생산력의 근간이 되는 정치경제학의 코드들은 지시체와 객관적인 실체로서 자연을 규정한다고 본다. 이러한 생산제일주의는 자기 자신의 이론적 조작에 따를 수 있도록 분해된 대상을 만들어 낸다. ● 여기에서 사물은 언제나 동일한 것, 즉 지배의 대상이라는데 그 본질이 있다. 질을 상실한 자연은 양에 의해 분할되고, 전능한 자아는 단순한 가짐, 즉 추상적인 동일성이 된다. 보드리야르는『시뮬라시옹』의 '동일증식 집단'에 대한 장에서 무성생식이 지배적인 패러다임이 된 현대를 분석한다. 그에 의하면 무성생식은 이전의 유성생식과 달리, 마침내 다름이 없음을 허용해 주고, 기본세포의 무한 번식을 통해 동일한 것에서 동일한 것으로 가도록 한다. 같은 것의 무성생식은 서로 다른 유전자들의 뒤얽힘을 제거한다. 더 이상 주체도 없다. 하나의 모체만이 있을 뿐이다. 그는『토탈 스크린』에서도 동일자의 끊임없는 반복을 통해서 절멸로 돌아가려는 현기증 나는 욕망을 말한다. 이때 존재론은 순수한 동어반복이 되어버렸고, 계통발생은 순수한 동일발생이 되어버렸다. 차이의 상실은 관료 제도를 통해서 실험실 뿐 아니라, 도처에서 무한 재생산되고 있다. 특히 젊은이들을 오랜 시간 동안 머물게 하는 학교는 거대한 동일성의 깔대기라 할 만하다.

장세일_standard animal-rabbit_스틸, frp_17×15×10cm_2013

보드리야르가 말하듯이, 그것이 문제인 이유는 복제의 기획이 확장되면 자연선택보다 훨씬 더 자동적으로 차별적이 되는 것은 명백하기 때문이다. 코드는 더 이상 주관적이거나 객관적인 어떤 실재를 더 이상 가리키지 않고, 자신의 논리를 가리키는 상황에 봉착한다. 코드를 통한 체계의 집중화가 이루어지면 그것은 모든 계층을 추방하는 경향이 있다. 미셀 푸코가 논증하듯이 서구의 합리성의 출발점에서 타자의 유폐가 있었던 것도 권력의 이러한 전략이다. 오늘날 체계는 기술의 구조적인 합리화에 의해서 재생산된다. 그러나 체계의 밑바닥에는 아무런 표지판도 없는 침묵하는 다수들인 타자들이 존재한다. 타자는 우리가 원하는 다름의 다른 이름이다.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계몽의 변증법』에서 타자들을 알려지지 않은 것, 낯선 것이며 그것은 모두 원초적이고 미분화 된 것이라고 본다. 체계의 균열이 일어나는 곳 중의 하나는 생산력으로서 완전한 약탈에 맡겨져 있었던 자연이다. ● 타자로서 다시 복귀하는 자연은 역시 타자였던 예술과 진정한 유대관계에 놓인다. 현대미술은 온통 자신만을 가리키면서 타자와의 소통을 구하는 그 모순 속에 발목이 잡혀있었다. 진보와 새로움의 논리로 무장한 채 전선에 서왔다고 자부해왔던 현대미술은 발전지상주의의 피로가 쌓여가는 현재, 타자를 환대하고 끌어들이는 대안적 움직임에 주목해야 한다. 동일성의 논리에 의해 훼손되지 않은 자연, 즉 종 다양성이 지배하는 자연은 예술이 지향해야 할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비좁은 한계에 갇혀있는 자아를 탈 중심화 하는 개방적 사고로 가능하다. 장세일의 작품은 무엇인가 견고한 것(자기 동일성)이 완전히 부서진 후, 그 파편들로 재구성된 개체를 보여준다. 이번 전시의 대표작인 북극 늑대 한 쌍은 서로 다른 색으로 상호 간의 이질성을 내포한 채, 풍성한 꼬리부분을 의자로 변모시킨다. 이 의자가 바로 타자의 자리이다. ■ 이선영

Vol.20131010j | 장세일展 / JANGSELL / 張世一 / sculpture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