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ual Look

황정희展 / HWANGJEONGHEE / 黃楨喜 / painting   2013_1009 ▶ 2013_1027

황정희_Casual Look 5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연필_112.1×193.9cm_2013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30am~06:30pm / 주말,공휴일_11:30am~06:30pm

갤러리 도올 GALLERY DOLL 서울 종로구 삼청로 87 Tel. +83.2.739.1405 www.gallerydoll.com

이번 열한 번째 황정희의 회화는 이전의 형상이 있는 풍경이미지와는 완전히 다른 캔버스 작업이다. 이미지를 이루는 구체적인 형상은 사라지고 컬러 스트라이프가 화면을 채우고 있다. 10여년간 지속해온 풍경의 이미지에서도 넓은 색 면(color field)으로 이미지를 구축한 예가 있는데, 이를테면 전면부의 의자, 테이블의 사물과 후면의 여백, 수평의 구도는 회화과정에서 생략과 단순성의 징후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캐쥬얼 룩(casual look)』의 제목에서 알 수 있는 바, 작가는 일상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일시적인 사건, 보기, 만남 등등에서 벌어지는 낯설음과 재확인에 대해 작은 무엇인가가 확대되는 느낌으로 규정한다. 시간의 틈새로 벌어지는 순간의 확대는 낯설음을 가져오고 원래의 것이 변화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캐쥬얼 룩, 일시적인 순간의 확대. 시간의 틈새. 모두 같은 선상에 있다고 본다. 작가는 실행을 위한 일차적인 단계로 이전 회화의 한 부분에 대한 확대작업에 진입한다.

황정희_Casual Look 1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20×90cm_2013

"수영장의 타일, 바닥, 파라솔, 의자, 그림자가 있는 그림. 이 전체 풍경에서 어느 한 부분만을 오려서 확대한 후 콜라쥬처럼 큰 화면에 붙인다. 이를테면 이번의 나의 작업은 전체에서 부분으로의 이동이다. 긴 시간동안 전체를 보는 경험에서 찰나의 순간을 보는 경험으로의 이동." (황정희) 여기서 주목할 점은 화면의 스트라이프는 실재를 생략하여 이미지를 단순화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그 안에 더 깊숙이 진입하기 위한 확대의 작업이라는 점이다. 두 번째 단계는 확대작업을 진행하면서 덧붙여지는 새로운 욕구와 감수성을 배제하지 않고 그대로 따르며 생생한 회화의 붓질과 질감에 충실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는 여러 가지 이미지를 구축하면서 생겨나는 다양한 형태의 회화과정이 하나의 과정으로만 추출되어 진행되는데, 여기서는 과정의 확대와 재해석이 주요한 관점이 된다. 이는 후기미니멀리즘과 연계되는 미술사적 위치로서 형식주의적인 추상예술과는 상반된다. 즉, 형식의 전개로부터 출발된 회화작업이 아니라 '일시적 보기' 의 재해석에 초점을 둔 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 현실의 삶에서 발견되는 흔적, 찰나, 단면에 대한 일차적인 재현이 될 수도 있고, 불안, 회의, 복잡함에 대한 반대의 시각적 재현, 즉 알레고리가 될 수도 있다.

황정희_Casual Look 2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0×72cm_2013

"분명한 색채의 위계(visible hierarchy of colors)는 현실에서 눈으로 보이지 않는 불분명한 경계(invisible hierarchy of reality)에 대한 알레고리다." (황정희) 여기서 의도를 알 수 있는 바, 작가는 재현으로서의 회화와 같은 선상에 있으며 배후의 의미를 중요시 한다고 본다. 미시적 관점으로 이동하고 있는 작가의 이번 신작들은 재현에 대한 또 다른 관점을 제시하고 있으며, 작가가 느끼는 대로 우리 삶의 여러 순간과 공간에 대하여 환기하게 하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다. ■

황정희_Casual Look 3_캔버스에 연필, 아크릴채색_45×38cm_2013

1. 캐쥬얼 룩 ● 티라미슈 케잌 한 조각과 커피가 있는 트레이. 케잌 전체의 형태, 혹은 장식에 관심이 갈 수도 있지만 본인의 경우 단면에 한층 한층 쌓아올려진 다크 컬러와 우윳빛의 컬러 층에 관심이 간다. 커피잔을 볼 수도 있지만 더 가까이에서 가느다란 베이지색 거품과 블랙에 가까운 다크브라운만이 보여질 때가 있다. 이는 일상에서 어느 순간 시간의 틈이 벌어질 때 일어난다. 케잌 한 조각을 사고 계산을 기다리는 중, 혹은 누군가와 대화하는 중에 불현듯 일어나는 일시적인 경험이다. 이는 순간적인 찰나이며 예기치 않은 사물의 발견이다. 그리고 이미 나는 케잌과 커피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갈색과 흰색의 컬러레이어를 보고 있으며, 깊은 다크브라운의 가느다란 흰 선을 보고 있는 것이다. 어느 사이, 전체가 아닌 부분이 그 잠시 동안을 가득 채우고 있으며 오히려 다시 전체로 돌아왔을 때 그 본래의 모습이 낯설고, 밋밋하다. 캐쥬얼 룩, 일시적인 순간의 확대. 시간의 틈새. 모두 같은 선상에 있다.

황정희_Casual Look 4_캔버스에 연필, 아크릴채색_45×38cm_2013

2. 스트라이프와 단면 ● 수영장의 타일, 바닥, 파라솔, 의자, 그림자가 있는 그림. 이 전체 풍경에서 어느 한 부분만을 오려서 확대한 후 콜라쥬처럼 큰 화면에 붙인다. 이를테면 이번의 나의 작업은 전체에서 부분으로의 이동이다. 긴 시간동안의 전체를 보는 경험에서 찰나의 순간을 보는 경험으로의 이동. 그 관찰의 방식은 매우 일상적이고 빈번하다. 그리고, 재현되는 이미지는 매우 요약적(abstract)이다. 생생한 붓의 움직임과 색감의 미묘한 차이들이 더욱 진화되고 확대되는 과정이다. 작은 부분에 초점을 둘수록 구조는 더더욱 단순해졌다. 대부분의 나의 회화가 그렇듯이 구조는 수평의 구조가 되었으며, 수직을 만들어서 그 색감의 느낌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한 층 한 층 쌓아올려지는 컬러 레이어는 스트라이프를 낳고 아울러 본래의 작품에는 쓰이지 않았던 색을 덧붙이기도 하며, 원래의 색을 더 흐릿하게 하기도 하는 변화가 생겨났다. 이때부터는 수영장이 중요한 모티브가 아니라, 내가 사용했던 혹은 사용하고 싶었던 색감과 느낌, 감수성이 더 중요해진다. 여기에서 수영장에서의 기억과 느낌은 실재 그랬던 것처럼 단편적으로 남고, 핑크색의 스트라이프처럼 실재가 아닌 환상이 덧붙여진다. 이제 나는 케잌과 커피가 있는 트레이 전체 모습에 관심이 가지 않고, 케잌의 단면이나 커피의 가느다란 거품선을 보고 케잌과 커피를 경험한다. 그리고 내 그림에 대해서도 그렇게 경험하며, 전체 풍경 속에 숨겨져 있던 요소들을 하나 둘 끄집어내어 그 속을 통과하는 과정에 있다. 이에 따라 나의 수영장은 내가 요즘 경험하는 방식과 동일하게 전체 풍경에 있지 않고, 어느 한 단면으로만 남게 된다.

황정희_Casual Look展_갤러리 도올_2013

3. 알레고리 ● 사진의 순간이미지를 긴 시간의 과정을 통과해야 하는 회화 이미지로 풀어내는 작업을 진행하면서 회화는 또 다른 의미와 과정을 획득하게 된다. 사진이미지의 느낌, 의미와는 다르게 나타나는 회화 과정을 일컬어 '순간의 알레고리'라고 명명하여 작업을 전개해 왔었다. 이제는 사진이미지가 재료가 아니라 회화과정이 재료가 된다. 이는 사진이미지로부터 태동되었던 알레고리의 방법이 경험에 대한 알레고리로 이동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미 회화 과정이 재료가 되어 다른 결과물이 되는 과정은 그리기가 생산하는 다른 의미갖기, 즉 알레고리를 떠올린다. 분명한 색채의 위계( visible hierarchy of colors)는 현실에서 눈으로 보이지 않는 불분명한 경계(invisible hierarchy of reality)에 대한 알레고리다. ■ 황정희

Vol.20131009d | 황정희展 / HWANGJEONGHEE / 黃楨喜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