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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선화랑 · 선 아트센터 SUN GALLERY · SUN ART CENTER 서울 종로구 인사동 184번지 1,2층 Tel. +82.2.734.0458, 5839 www.sungallery.co.kr
사유의 풍경: 『유토피아』 ● 담박한 풍경 속에서 새들이 유유히 날아간다. 절제된 색채와 여백이 뒤섞이는 그림은 신기루와 같은 공간 속에서 다양한 삶의 이야기들을 읊조리고 있다. 왕열의 작품은 익숙한 풍경이지만 특유의 서정성으로 인해 '그림 속에 시가 있다'는 고전의 표현을 고스란히 느끼게 한다. 흔히 그의 작품들은 현대 동양화의 범주에서 거론되는데, 작가의 근작들은 『유토피아(utopia)』라는 주제 속에서 동양화의 전통성에 대한 고민들을 안팎에서 풀어낸 서사적 공간을 마련하고 있다. ● 먼저 작품들을 처음 마주할 때면 우리가 익숙하게 받아들이던 동양화, 즉 장지에 먹을 사용해 그린 화폭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보는 이들을 다소 혼란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작가는 캔버스, 천, 종이를 가리지 않고 아크릴 물감과 먹을 자유자재로 운용하는 작품 속에서 동양화의 과감한 행보를 진행해왔다. 때문에 작품은 동·서양, 과거·현재를 가로지르며 정통 동양화에 비하면 보다 친숙한 인상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무엇보다 동양의 전통을 가장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동양적 사유가 지속적으로 관통하는 지점에 놓여있다.
왕열의 작품은 주제와 표현 양식에 있어서는 변화를 거듭해왔지만 그 근간에는 전통 동양회화의 현대적 모색이라는 고민이 공통적으로 반영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고민은 무엇보다도 동양적인 틀을 통해 스스로의 주견을 일궈나간다. 가령, 『장자(莊子)』의 「양생주(養生主)」편에서는 '포정해우(庖丁解牛)'에 관한 일화를 살펴볼 수 있다. 이야기에서는 뛰어난 포정이 소를 잡는 모습을 서술하며, 포정의 행위가 단순한 기술을 넘어 '도(道)'의 경지에서 이루어지는 것에 주목하였다. 이러한 일화는 서복관의 『중국예술정신』에서도 언급되었듯이 서양의 'Art'가 기술적인 의미를 내포하는 것과는 다르게, 동양 예술에서는 기술을 넘어선 경지에 뜻을 두었던 특유의 이념을 가늠하게 한다. 왕열의 작품은 바로 이러한 예술적 자세에서 발화된 것처럼 보인다. 그로인해 그의 작품은 동양화의 전통을 단순한 기법, 재료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그 본질, 우리의 예술정신에서 중시한 사유에 근거하고자 하는 태도가 가장 특징적이다. ● 과거 동아시아의 회화, 특히나 대표적인 문인화단의 흐름은 유독 사실적인 표현을 넘어 그 형사(形似)에 덧대어 작가의 심중을 담아내려는 '사의(寫意)'를 예술적 귀결로 삼았다. 이러한 연유로 문인화에서는 정신성과 사색의 틀이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가 되어 온 것이다. 왕열의 작품 역시도 풍경의 실사(實寫)보다는, '의경(意境)'에 더욱 중심을 두고 있다. 전통의 예술작품들이 작가의 삶과 밀접하게 결합되어 일종의 수양을 통해 완성되는 경우가 많았던 것처럼, 그의 작품 또한 끊임없는 현시대에 대한 성찰이 바탕이 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는 동양 예술의 중심적인 구조를 이루어 온, 노자(老子)와 장자를 통해 구체화된 도가적 사유와 유가 철학의 관점들이 작품의 시각적인 발판을 이루기도 했다.
실제로 작가는 자신의 삶 속에서 이러한 전통 예술, 나아가 그 안의 내밀한 역리들을 현대적으로 시각화하려는 것에 비중을 두었다. 결과적으로 표현은 담백하다. 단순화된 색면이 화면을 가로지르고, 풍경과 사물은 간결한 필치로 완결되었다. 이 단순한 표현은 세련된 기교, 능숙한 묘사를 넘어선 간솔함으로, 즉 '일격'의 경지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공간 역시 드문드문 순백의 공간을 과감하게 드러내며, '여백'의 전통을 재해석하기도 한다. 다만 작품은 사라져 버린 여백의 전통을 되찾아내려는 듯, 하얀 공간을 화면위에 덧칠해가는 방식으로 접근한다. 그렇게 이룩한 비어있는 공간은 때로는 무한한 하늘로, 때로는 물가의 흔적들로, 때로는 이야기의 끝에 남아있는 여운을 끝없이 흐르게 하는 장소로 연결되었다. ● 나아가 그의 작품에서는 텅 빈 공간이, 물감이 묽게 스며든 캔버스 천과 뒤섞이며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드는 듯한 아련한 느낌들을 자아내고 있다. 거기에 푸른빛으로, 혹은 붉게 물들어버린 넓적한 색면들은 흑백을 중심으로 한 산수의 전통에 동시대성을 뒤섞어 새로운 흐름으로 '개화'하려는 듯한 느낌도 들게 한다. 뿐만 아니라 캔버스에 물든 물감의 흔적들은 자연의 요소들과 작가의 심상이 함께 흡수되는 공간으로 귀결되어, 삶과 자연을 한데 물들이고자 했던 동양 특유의 감성들을 현대적인 방식으로 시각화하였다.
한편, 언급한 것처럼 왕열의 작품에서 주된 모티브는 '새'를 통해 드러났다. 그는 「겨울나기」 연작과 같은 초기의 작업에서부터 최근의 작업에 이르기까지 '새'를 중심적인 소재로 등장시킨다. 이때 작품 속에 등장하는 새들은 복잡한 인간사(人間事)를 고스란히 떠안고 있는 의인화된 존재라고 한다. 그로인해 작품은 '새'들을 통해 우리네 삶의 다양한 형태를 거울처럼 들여다보도록 만들고 있다. 그런데 작가는 이러한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유토피아'로 일컬으며 작품에서 중층적인 장소로의 변화를 시도하였다. ● 주지하였듯이 그의 근작들은 꾸준히 「유토피아」를 주제로 나타내는데 그 의미에 대한 이해는 어원을 통해 극명히 드러난다. '유토피아'란 16세기에 토마스 모어(Thomas More)가 자신의 저서를 통해 '없는(ou-)'과 '장소(toppos)'라는 단어를 합쳐서 만든 용어이다. 어찌되었든 이것은 현실 속에서 물리적으로는 없는 장소라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차원으로 생각해보면, 유토피아는 끝없이 현실을 비추어가며 그와는 다른 이상향의 공간을 상상을 통해 구축해나간다. 그렇게 유토피아는 우리의 상상과 염원을 통해 사고(思考)의 공간으로 이어지며 현재화되어 온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이를테면 유토피아는 생각을 통해서라면 실존하는 공간이 되는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사유적 공간으로 완성되었던 동양화의 전통은 이러한 유토피아적 공간과 상통하는 지점이 발생한다. ● 그렇다면 작가는 왜 실존하지 않는 유토피아의 공간 속에, '새'를 통해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등장시킨 것일까? 우선 새라는 소재에 주목해보면, 『장자』의 「소요유(逍遙遊)」편에 나오는 '대붕(大鵬)'에 관한 유명한 일화가 불현듯 떠오른다. 새는 흔히 자신의 의지대로 자유롭게 날 수 있는 존재처럼 여겨지지만, 장자의 이야기에서 거대한 새로 묘사된 '대붕'은 바람의 기운을 타야만 날아갈 수 있는 얽매인 존재로 표현되었다. 그리고 도가에서는 이 '대붕'이라는 상상의 존재를 통해 절대적인 자유란 삶의 구속(혹은 조건적인 자유) 속에서 거듭나는 것임을 피력해나간다. 아마도 왕열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새'들 역시 마찬가지의 맥락에서 비롯한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작품에서 새들은 우리의 현실 속에 존재하는 수많은 모습들을 반추하고 있다. 그렇게 작가는 끝없이 유토피아를 꿈꾸는 우리들 속에서, 그 유토피아를 '없는' 세계가 아닌, 실존하는 모습 속에서 정신적인 유희를 통해 찾을 수 있다는 깨달음의 이치를 엿보게 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이처럼 작품은 우리의 현실에서 볼 수 있는 희노애락의 에피소드를 '새'를 통해 제시하였다. 그리고 고뇌와 즐거움이 교차하는 모습 속에서 진정한 삶의 가치를 이해하려는 자세를 통해 초월적 의미의 유토피아를 일깨운다. 실상 최근에는 사회적으로 '힐링(healing)'의 문화가 열풍이다. 너도나도 마음의 안식과 유토피아를 갈구하는 현대인들의 삶 속에서, 작가는 진정한 전통적 태도를 기반으로 현대적 공감을 얻어내고 있다. 그것으로 작품은 평범한 현실 속에서 마음의 자유를 찾을 수 있는 휴식의 공간 자체로 기능하며, 동양미학 특유의 상승적 의미들을 되새기도록 만들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 왕열의 작품들은 소소한 이야기, 화면의 구성, 표현, 기교 등 모든 관점에서 전통화단의 고유한 가치를 현시대적으로 풀어내려는 고민이 얼마나 깊이 있게 응축되었는지를 새삼 느끼게 한다. ■ 함선미
Vol.20131008f | 왕열展 / WANGYEUL / 王烈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