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고한 생성의 터

이상국展 / LEESANGGUK / 李相國 / painting   2013_0925 ▶ 2013_1015

이상국_나무로부터 I, II, III, IV_캔버스에 유채_145×75cm_2008 이상국_나무로부터 I, II, III, IV_목판화_62×25cm_2002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10311b | 이상국展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나무화랑 NAMU ARTIST'S SPACE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5번지 4층 Tel. +82.2.722.7760

형상미술을 중심으로 지속적인 기획을 하고 있는 나무화랑은 작가연구 형식의 첫번째 전시로 이상국의 회화와 목판화의 관계를 조명하는 '견고한 생성의 터'전을 준비했습니다. 작가 이상국은 1970년대부터 약 40여년간 삶의 체험과 세계에 대한 인식, 그리고 조형과의 통일을 묵묵하게 형상작업으로 증명해 왔습니다. ● 소박한 전통적 서민정서/사회와 역사에 대한 서사성/내면으로부터의 서정성/그만의 독자적 조형방식 등이 상호 충돌하거나 융합하며 길어올려진 상징성으로, 이상국의 작업은 70년대 이후 한국형상회화와 목판화의 주요한 궤적과 단서를 제공해 줍니다. 이상국의 작업들은 형상미술에 있어서 회화와 목판화라는 매체가 어떻게 작가 내부로부터 외적 표현으로 연결되는지를, 그리고 두 장르 모두 거기에 걸맞은 독자적이고 적확한 어법과 형식적 특성을 어떻게 구축했는지를 동시에 증거해 주는 좋은 예라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이번 기획은 회화의 물질성·신체성(팍투라 Faktura)과, 목판화의 제판과정에서 구사된 작가의 몸짓과 팍투라를 거세하는 프린팅의 (회화에 비해)비물질적이고 중성적인 기호·정보·형태의 팍토그라피(Factography)적 요소가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으로 드러나는지 추적하려는 것입니다. 물론 이상국의 목판화에는 여전히 작가의 노동력에 의한 나무판과 칼맛의 표현성이 깊게 남아있지만, 그의 회화와는 상대적 지점에서 조형적 맛과 미디어의 특성과 느낌의 차별성이 있기에 이 두 장르 작품들에 대한 비교와 감상은 작품에 대한 깊은 접근의 기회를 제공할 것입니다. ● 다만 좁은 전시공간이란 제약으로 인해 많은 작품들 중에서 극히 소량의 작품만 보여주는 점이 안타까움을 밝힙니다.

이상국_나무 4326-R Ⅱ_캔버스에 유채_97×145cm_1993 / 겨울나무_목판화_25×33cm_2003

견고한 생성의 터 - 이상국의 회화 ● 대기는 바람으로 보이지 않는 근육을 비틀고, 등 떠밀린 물은 결이 일고, 나무는 햇빛을 반사하며 그 잎사귀를 흔든다. 무언가 움직이는 파장으로 소리가 울리고, 냄새는 발효에 따라 변하고, 빛에 의해 색도 고정되어 있지 않다. 세계는 끊임없이 움직인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숨은 들어가고 나오며, 감정은 생성하고 스러지고, 생각은 끊임없이 발생했다 사라지고, 육체는 노화하고 소멸한다. 시간의 순리다. 사람이나 사물 뿐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마저도, 혹은 공기마저도 끊임없이 유동하며 제 모습을 변주한다. 우주의 모든 것이 그렇게 쉼 없다. 그리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언젠간 사라진다. 소멸이 진행되는 동안 또 다른 사물의 생성이 그 자리를 대체하며 세계는 한 순간도 정지되지 않는다. 어디에선가는 고요할 때도 있다. 그러나 움직임을 동반하지 않은 그 순간에도 미세한 빛, 수분, 작은 벌레, 세균, 산화, 발효, 탈색 등은 끊임없이 진행되며 이 세계를 어김없이 다른 세상으로 바꾸어 놓는다. 섭리다. 쇠락과 생성을 통하여 만물은 끊임없이 변한다는 자연의 섭리, 운동의 섭리, 태어나고 죽는 인생의 섭리, 우주의 섭리... 인문학이든 자연과학이든 예술이든 세계를 감지하고 드러내는 방식은 다르지만, 이 생성과 소멸과정에 대한 관심과 사유에 있어서는 공통분모를 안고 있다. 세계는 왜 이렇게 유동하는 것이며, 나는 거기에서 무엇을 느끼고 깨달으며, 어떻게 죽음을 향해서 갈 것이며, 또 그런 과정에 대해 무어라 말하고 증명할 것인가?, 라는...

이상국_겨울나무 1_캔버스에 유채_122×77cm_2011 / 겨울나무 3_목판화_50×34cm_2004

풍경이란 그런 것이다. 쉼 없이 변화하며 한 개체가 소멸하는 공간을 다른 개체가 생장하는 긴 시간의 흐름 중 어느 한 순간의 장면이 마음에 담기는 것. 그리고 지금 나의 감각과 사유현상의 단서이자 토대가 되는 것. 풍경을 마주하는 우리들의 기분이나 감정에 따라서 풍경은 전혀 다르게 느껴지고, 태도에 따라서 그 인식은 천차만별로 다양하게 진행된다. 감정이입이 되어 서정적 감응을 일으키기도 하고, 분석적으로 사유하기도 하고, 반대로 무심한 듯 관조(觀照)적 태도로 있다가 한 순간에 직관적 영감을 취할 수도 있다. 이렇듯 바라보는 사람과 그를 둘러싼 풍경은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며 상대적인 관계를 형성한다. 거기에서 발생하는 감응과 기운을 이상국은 지난 40여 년간 포착하고 표현해 왔다. 소재인 풍경과 그 풍경을 마주한 이웃들의 변화무쌍한 삶에 대한 이상국의 접근은, 끈질긴 서민정서에 대한 기록적 서사이자 그런 토대로부터 형성된 자신의 내면을 반영하는 실존적 행위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상국 특유의 공고한 미술언어는 거기에서부터 주조된 것이다. ● 이상국 풍경화의 지속적인 소재들은 그가 발을 딛고 선 현장이었다. 그 터에서의 감정과 의식, 기억, 회한, 의지 등을 형상을 통해 담아낸 것이다. 1990년대 영국에 체류할 때의 유럽풍경, 미국에 거주하던 시기의 풍경들, 여타 국내 여러 곳을 여행하며 그린 풍경들이 있었지만, 그 기간을 제외한 대체적으로 주된 소재는 서울 서북부의 '풍경'과 '사람들'이다. 홍은동, 홍제동, 수색, 화전, 역촌동, 신사동, 불광동, 북한산... 등의 산동네와 변두리. 화면을 꽉 채운 닥지닥지 붙은 집들의 삐뚤삐뚤한 병렬 사이로 수직으로 삐죽이 서있는 송전탑, 화면에서 기울어진 채 반복되어 나타나는 비닐하우스, 을씨년스런 공장지대의 콘크리트 각진 지붕, 허허로운 나무, 근골과 근육이 두드러진 산, 한가로이 떠 있는 무심한 구름과 하늘.... 서울이지만 도심의 직선이나 화려함과는 거리가 있는 남루하게 집적된 주변부 삶의 풍경과 자연풍광들. 그가 태어난 고향이자 지금까지 60년 이상 삶의 터인 그곳에서 보고 느낀 세상살이와, 풍경에 대한 원체험이 그의 정서의 근간을 이루고 또 세계를 인식하는 주 원소로 작용했을 터였다. 소싯적부터 노년에 이른 지금까지 그가 마주했던, 그에게 영향을 끼친 사람냄새에 대한 감성과 삶에의 의지가 거기에 배어 있다. 가난하고 소박하고 번다했던 서민들과 밀착할 수밖에 없는 생활과, 변두리 삶의 공간을 수용한 감수성은 이상국만의 독자적 회화 형식을 산출해 냈다. 그런 현실의 바탕에서 형성된 정서와 반응하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때라야만 스타일化가 가능한 그런 조형언어 말이다. ● 이상국의 회화엔, 고립된 주체의 눈으로 대상들을 객체화 하는 원근법적 시선이 없다. 대상들과의 관계를 수평적으로 수렴하는 태도가 그림을 그리는 단서로 두드러진다.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대상에 접근하는 심안(心眼)의 태도랄까, 한(恨)과 슬픔, 혹은 그런 바탕에서의 질긴 생명력에 대한 공감과 공유로 주객의 구분이 모호한 시선에 의한 화면 중심(소실점)으로부터의 이탈이 제공하는 평면적 공간의 펼쳐짐이 거기에 있다. 기실, 원근법은 르네상스 이래 근대를 지날 때까지 주체가 대상에 대해 일방적 권력으로 작용하는 의식의 토대였다. 시선의 주체가 임의적으로 설정한 소실점으로부터 그 원근법적 반경 내의 모든 대상은, 주체에 의한 분석과 묘사에 의해 수동적 대상으로서만 존재하며, 원근을 구별하는 '법(法)'의 틀 안에서 피동적으로 정지되어 있어야 했다. 비록 원근법이 중세에서 벗어나는 근대적 시선이었지만, 어찌 보면 그것은 대상에 대한 주체의 독재이기도 했다. 바라보는 사람의 의식과 의지로 대상은 그 성격이 규정되고 개념화되고 재단되었고, 그로인해 대상은 화면을 구성하는 필요에 의해 주종(主從)의 관계로만 기능했다. 인간의 시선만이 온 우주를 인식하고 구성하는 무소불위의 척도였던 것이다. 원근법은 데카르트의 저 유명한 명제 "인간이 자연의 주인이게 하라"는 인간이성의 배후에 있는 폭력성의 한 단서이기도 했다. ● 사실 그렇다. 이상국 회화의 화면구성 및 주제 서술방식엔 소재나 표현의 주종관계가 별로 없다. 특정한 소재가 부각되며 화면의 포인트로 내용과 시선을 분리해서 유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각자의 소재들이 병렬로 배치되어 유기적으로 각자의 기능을 하면서 화면을 구성한다. 그리고 그 부분 부분들의 연계가 화면 전체의 이미지와 울림을 동적으로 이끌어 낸다. 이는 이상국의 세계에 대한 입장의 반영이다. 사람과 자연, 사람과 사물, 사람과 사람, 사물과 사물 등 세상 모든 것은 나름대로의 존재근거를 갖고 있는 것이며, 우와 열, 상과 하, 주와 종속 따위의 인위적 구분에 관계없이 고르게 평등한 가치를 가진다는 것을 그림으로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대부분의 산동네 풍경들은 원근법적 거리보다는 대상들의 집적(集積)에 의한 고르고 수평적인 평면성으로 열린 채 화면바깥으로 확장하는 기운을 띄게 된다. ● 이상국의 풍경은 이렇듯 가상의 소실점을 향한 주체만의 시(視)방식에서 벗어나 풍경과 대상을 리드미컬하게 수용하는 유연하게 구조화된 힘을 보여준다. 그 구조 속에서 풍경을 형성하는 사물(산의 근골, 사람이나 집의 형태 등)들은 굵고도 힘찬 선으로 구체적인 고체(固體)의 무게감으로 구축되고, 그 사이 공간은 아주 미세한 입자로 이루어진 기체(氣體)처럼 기화되어 색채나 물감 붙이기(혹은 문지르기)의 중첩에 의한 추상적 요소로 전이되고, 다시 전체인 풍경은 그런 조형요소의 구사와는 다르게 삶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현실적 이미지를 증폭해 낸다. 그 것은 선 원근법·공기 원근법·명암법 등의 거리감에 의한 3차원적 재현에서 벗어나서, 그만의 시선·기호·냄새·촉각·맛 등의 추상적 감각에 의한 안료와 작업행위의 조형요소로 전환된 형상이라는 것이다. 거기엔 작가의 물리적 몸짓, 흔적, 체취가 캔버스 바탕에 붙어있는 물질과 이미지의 생생한 리얼리티로 흔적화 되어 있다. 작가의 몸이 감각을 물질(안료)로 대체시켜 놓은 것이다. 우리는 그 물질을 보며 작가의 감각과 정서와 세계관을 거꾸로 소급해서 추적하고 확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 소실점을 제거한 다시점(多視點)으로 펼쳐지는 대관(大觀)적 시선은, 전통 동양화에서의 풍경을 바라보는 방식을 기초로 하며, 부분적으로는 세잔, 입체주의, 신조형주의 등의 조형적 특성을 수용한 것으로도 보인다. 또 굵은 선묘로 대상의 재현이나 직접적인 묘사를 벗어나, 자신의 내면에 충만한 감정과 기운을 발산하는 액티브한 표현주의적 요소는 대상에 자신의 내면을 이입하며 정서적 통일을 이루는 방편이기도 하다. 여기저기서 불쑥불쑥 솟아나는 '침묵의 아우성(유홍준)'같은 내면의 추상적 기운과 몸과 표현적 기량과 질료의 성질 등이 어우러지는 조형적 통일성으로 구축된 견고한 화면으로 말이다. ● 말이 나온 김에, 이상국 회화의 그 견고한 구조성에 대해 얘기해 보자. 그것은 초기작부터 근작까지 거의 모든 작업을 관통하며 감지되는데, 두드러진 몇 가지로 요약해 보면 대상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통한 평면적 조형성 구축, 거칠고 원시적인 붓질과 몸의 표현성에 의한 운동감과 생동감, 여러 방향에서 끊어지거나 연결되며 중첩된 붓질에 의한 비정형의 다양하고 자연스런 안료의 표정이 캔버스바탕에서 겹치면서 만들어내는 물성의 단단한 밀도감, 화면에 대상을 가득 채우면서 화면 바깥까지 확장되며 반복과 변화를 이끄는 리듬감의 힘 등이다. ● 평면적 이미지를 산출하기 위해 구사하는 첫 번째 단서는 대상의 3차원적 재현을 거부한 채 구사되는 이상국 특유의 분절된 선과 점의 불규칙적인 운용이다. 이상국에게 있어서 선은 구획과 변별을 위한 경계가 아니라 그림을 축조하는 뼈대다. 그 선은 대상을 분석하여 도출한 질서로 힘의 집중과 분산을 효과적으로 견인하는 역학(力學)적인 구조의 출발점이자, 사물과 대기를 기체처럼 느끼게 만드는 장치이기도 하다. 이 기화(氣化)의 과정이 회화적 에너지를 발산한다. 에너지는 고체화나 액화(液化)보다는 기화의 과정에서 강력하게 발생한다. 열에너지가 있어야 기화는 가능하고, 그 열로 인한 기화는 더 강력한 열에너지를 만들어 낸다. 이런 선의 구조와 기화와 같은 힘의 생성이미지의 바탕에서 움직이는 듯이 꿈틀거리는 형태감과 운동감에 의한 화면이 평면적으로 펼쳐진다. ● 만약 3차원적인 방식으로 대상의 재현이나 묘사의 방식을 택했으면 이런 운동감은 좀처럼 나타나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상국의 목판화는 바로 이런 유동하는 힘의 축에 대한 접근을 실험하고 증명하는 좋은 예다. 목판화를 참조하는 회화는 목판화를 통해 감지/인지한 뼈대에 근육과 살과 피부를 풍성하게 붙이며 자신의 체중을 온전히 계측하는 종합적 매체라 하겠다. 뿐인가, 그 대담하게 크고 걸쭉한 필획과 터치들 사이 여백에선, 선의 긴장감과는 달리 여러 번 얇게 중첩된 안료가 자신의 성질을 여유롭게 드러내도록, 감각적으로 세심한 손맛과 물감의 표정으로 배려되고 있다. 디테일에서 섬세하고 예민한 맛이, 액티브(Active)하고 나이브(Naive)한 선의 굵고도 거친 호흡과 대비되어 화면 어느 한 곳도 적당히 넘겨버리지 않는 균형을 만든 것이다. ● 붓질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방향에서 서로 다른 몸짓으로 난무하며 중층적인 바닥과 표층을 구성하는 터치들의 겹친 표정은 작가의 내면적인 표현 충동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이런 액션들이 겹쳐지면서 안료자체의 성질로 환원된 물감은 붓과 나이프로 캔버스에 힘차게(强) 접촉해서, 단단하게(剛) 밀착하고, 부드러운(柔) 텍스쳐를 만들어 낸다. 그것은 시각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촉각적이다. 눈 뿐 아니라 피부로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그 조화와 변화가 여러 색채의 겹침의 퇴적층과 더불어 화면의 밀도를 최대한 끌어 올리는 것이다. 감각(시각, 촉각, 청각)적 기능으로 화면에의 접근을 동시에 유도하는 촉지적(觸知的) 화면은 곳곳이 얇거나 두터운 층을 이루며 화면에 붙여진 물감들의 혼성적 표정으로 천변만화의 변화를 소리 없이, 그러나 아우성처럼 뚝심 있게 밀어낸다.

이상국_홍은동에서_캔버스에 유채_80×100cm_1994 / 홍은동에서 4_목판화_55.5×67cm_2004

묵언의 이미지들... 소리 없는 이 형상성은 이상국이 온 몸으로 밀어붙이며 추출한 하나의 세계다. 현실(풍경, 이웃)과 작가내면의 관념적 지향성이 어우러진 화음(和音)의 현장인 화면으로 말이다. 이상국의 '형상성'이 기존 구상화와는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형상성(形象性), 화면에 구체적 형상이 등장하는 작품에 대한 성격을 규정하는 미술용어다. 추상화(抽象畵)와는 조형적 입장과 결과가 분명히 다른 개념이기에 그 차이의 구별은 분명하다. 그러면 대상이 화면을 구성하는 조건에 있어서 공통적인 형상회화와 구상화의 차이는 무엇일까. 구상화는 소재나 대상을 중심으로 작가의 조형적·표현적 입장을 덧붙이는 단순한 경우다. 당연히 소재와 테크닉이 중요하다. 대상에 대한 서정을 어떻게 묘사(재현)하거나 표현할 것인가가 조형의 주 포인트다. 따라서 대상의 성격과 속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작가 나름의 감정과 표현방식만 두드러진다. 작가가 그 대상을 통하여 그 너머 또 다른 세계에 접근하는지에 대한 사유가 당연히 없다. 지금의 구상회화가 현대성이나 동시대성을 확보하지 못하는 이유다. ● 이에 비하면 형상회화는 작가의 주제의식에 의해서 소재들이 선택되어진다. 세계관이나 이념적 지향성, 조형적 필요성이 선택한 대상을 자유롭게 해체하고 재조립하여 새로운 의미로 탈바꿈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대상들은 작가의 판단이나 표현충동으로 마음대로 주물러지고, 변형되고, 조리되어서 화면 안에서 상징적 단위요소로 쓰여 진다. 즉 작가가 의도한 주제를 드러내기 위해 대상들은 선택되어서 사용될 뿐이다. 따라서 이 소재나 대상들 보다는 작가가 궁극적으로 무엇을 이야기 하려는가, 라는 대상 너머를 향한 주제의식이 중요하다. 작가의 사유와 내면이 소재들의 성격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혹은, 주체인 작가와 객체인 대상 어느 한 쪽에 비중을 두지 않고, 작가와 대상 사이에서 새롭게 발생하는 어떤 '현상'이 중요할 수도 있다. 따라서 '형상성'은 작가의 세계관이나 감성, 조형에 대한 입장 등을 버무려서 보다 적극적이고 포괄적으로 작가자신과 조형이념을 드러내는 작업태도에 관한 것이라 하겠다. ● 이상국의 회화는 바로 이런 작가의 태도와 표현역량이 결합된 장(場 Ground)이다. 미적 체험, 자신과 현실과의 긴장과 화해의 길항관계, 그로부터 발생하는 내면의 현상과 작용을 회화적 표현을 통해 연역해 내는 거다. 그 결과인 작업과정에 작용하는 가장 큰 동기가 이상국 특유의 에너지다. 자신도, 세계도, 풍경도, 이웃들의 삶도, 역사도, 사회도, 문화도 이 기(氣 Energy)의 약동이라는 사실에 대한 깨달음..., 그것을 증명하는 회화.... 중심/주변, 남성/여성, 위/아래, 좌/우, 양/음, 선/면, 봉우리/골짜기... 등 모든 상대성 사이에 동시에 작용하는 불규칙하고 혼돈스런 이 중력과 장력을 통하여 이상국은 회화적 '형상성'을 견인한 것이다. 대상과 만나는 현장에서의 미적 감성→내면(존재)의 감정→구체적 현실→보편적 역사성→추상적 기운이 동시에 내재된, 생동하고 확장되고 확산되는 터(화면)로 말이다. ● '구체적 현실'은 풍경과 사람살이에 대한 이상국의 실제 경험이다. 풍경을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으로 '경험'한다는 것, 그 현장에서의 존재에 대한 떨림과 체험을 기반으로 하여 이상국은 시간에 의한 삶의 운동과 변화의 관계성을 역사성으로 풀어낸다. 그것은 역사적 맥락에 있지만 그 결과는 대단히 추상적인 것이기도 하다. 회화가 갖는 애매모호한 탈 지시언어적 상징기제의 속성이 작동하는 것이다. 여기서 역사적 맥락이란 작가나 일반인 개인단위로 분해된 경험들이 그림을 보는 행위를 통하여 하나의 화면에 집중하면서 불러일으키는 공감에 관한 에토스(Ethos)와 파토스(Pathos)의 변증적 과정을 말한다. 이는 사회과학에서의 역사 개념과는 다르다. 거기에서 역사는 지나간 시대의 객관적 사실로부터 정치나 사회적 담론을 거시적 입장에서 분석하여 보편적 패러다임을 추출하고 기술한다. 그리고 그것이 일반화 되어 그 시대의 특성을 규정한다. 그러나 이렇듯 체계적으로 기술되고 규범화 된 역사학의 입장과는 달리 그 역사를 구성하는 인자들의 숨겨진 개인사를 펼쳐놓고 보면 더 많은 사건과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사람들에겐 모두 자신의 경험과 이력이 있다. 이런 개별 단위들의 삶의 체험이 구성하는 각기 다른 개인사들의 미시적 교집합에 의해 배태되는 복잡다단하고 가공되지 않는 날 것의 정서들이야말로 가장 실증적이고도 감성적인 역사가 아닐까. 그리고 이런 개별적인 체험과 정서들을 역사성으로 연결시켜주는 동인이 이상국에게 있어서는 추상적 기운이 아닐까. 표현에 있어서나 소통에 있어서의 언어너머 공감대가 되는 시각적 상징기제로 말이다. - 이상국 그림도 이런 개인사라는 단위요소의 전형과 같은 지점에서 보편성을 갖기 때문에 역사성의 개념적 근거가 가능할 거라고 본다. - ● 아무튼 불규칙하게 반복된 몸짓과, 붓질과, 물질(物質)과, 감각과, 인식의 운행으로 흔적화된 이상국의 화면은 리드미컬하게 힘차면서도 유려하다. 산이든, 나무든, 집이든, 기타 사람이든 이상국이라는 작가의 조형적 프로세스를 거치면 살아있는 감정으로 변환된다. 오랜 시간의 흐름에 의해 스스로 영(靈)적인 능력을 가진 자연이기도, 또 인간들의 세계에서 긴 세월 부침을 거듭한 역사와 삶의 의지로서의 힘이기도 한 이런 형상의 발현은 화면을 숭고하고 장중한 묵직함으로 유도한다. 그런가 하면 한편으로는 이런 무게감과, 공간과 이웃에 대한 체험으로 인한 정서가 꿈틀거리면서 환기하는 졸(拙)하고 박(朴)한 투박한 미감이 이상국의 본원적 체질로 덧붙여지면서 또 다른 소탈한 편안함도 더해준다. 이런 졸박(拙朴)한 표현에서 역설적으로 세련된 회화적 밀도감이 팽팽하게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게 이상국 회화의 형식적 결정성의 지점이다. 이 점은 선비들에 의한 문인화류의 대교약졸(大巧若拙)의 고아한 관념과 일견 유사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 표현의 결과는 전혀 다르게 화가의 온 몸에 붙어있는 예민한 신체성의 운용에 의한 것이다. 허허실실, 텁텁하고, 뭉툭한 듯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능숙한 손맛과 물성의 표현력이 예리하게 직조되어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의도하는 바를 표현하는 유화의 질료와 표현의 테크닉(巧)과 졸(拙)한 맛과 여운의 조화가 두드러진 것이 확연히 느껴진다. 그의 화면이 단단하고 견고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그만큼 이상국은 자신의 '내면과 현실적 세계관'이란 내용과 회화라는 매체 개념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사유하고, 조형적 이미지와 물리적인 질료성을 향해 오감을 열어서 접근하고, 그것을 구체적인 물질을 통해 장인처럼 몸으로 집요하게 주조해서 마침내는 그만의 물리적 결과물을 만든 것이다. ● 그 결과물들은 작업에 대한 이상국의 결벽적인 태도와 의지가 있음으로 가능한 것이다. 언젠가 이상국은 자신의 그림 그리기를 작두 위 무당에 비유한 적이 있다. 온 몸과 마음이 진지하게 하나로 집중되어 통일되지 않으면 그 칼날에 자신을 상하게 할 뿐만 아니라 타인을 속이는 행위가 되는 것이기에 그런 것 같다. 굿이 성공하지 않으면 사기가 되거나, 그 굿은 미신(迷信)이 된다. 삶에 자신의 작가적 태도를 걸고, 사물에 자신의 신체를 민감하게 반응하고, 조형에 자신의 존재감을 더 예민하게 겹쳐놓는 그의 윤리적인 그림 그리기는, 그래서 의식과 중추신경과 노동 사이를 오고가는 진자처럼 늘 기민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항상 미술로 깨어 있으려는 그의 태도가 가끔은 작두날처럼 서늘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이상국_허허바다_캔버스에 유채_40.9×53cm_1999 / 허허바다 2_목판화_33×53.5cm_2000

이상국에게서는 화가의 냄새가 난다. 서민 같은 화가, 아니 서민화가. 서민을, 그 정서를 그려서도 그렇지만 그가 그냥 서민이라서 그렇다. 그러나 이처럼 서민 이상국으로 평범한 자기 인생에서 느낀 것을 기술하고 표현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것은 회화로는 독자적인 세계다. 그런데도 이런 회화적 세계를 만든 이상국은 드라마나 소설에서처럼 낭만적이고 데카당한 분위기는 전혀 없다. 작업에 혼신을 실은 채 작업 이외에는 별 관심도 없고 무뚝뚝한, 그러면서도 예민하고 단단한 집중에 빠져 있는 진득한 화가의 모습일 뿐이다. 그를 만난 지 25년이 되었어도 처음 만난 그때나 지금이나 그의 이런 자세는 한결같다. 참으로 초지일관한 사람이다. 뿐인가, 그의 작업에 대한 집요한 긴장과 의지와 몰입은 가끔씩 두렵기도 할 정도다. 그러나 그게 좋다. 이상국은 그런 작가다. 대충의 태도로 살지 않고 혼신으로 자신의 세계를 추구한 채, 묵묵하고 평범한 이웃이자 화단의 아웃사이더로 70년대부터 지금까지 40여 년을 버티며 그의 궁극인 그림에 에너지를 쏟아내고, 다시 그 에너지를 그림으로 모두어 낸..., 그림을 실존의 화두로 설정하고 실천한 진짜 작가 말이다. 그는 한 인간으로서도, 작가로서도 단단하고 묵직한 그의 그림만큼이나 진정한 강자(强者)다. 후배인 나는 그의 그런 태도가 존경스럽다.

이상국_공장지대 1_캔버스에 유채_78×95cm_1988 / 공장지대 3_목판화_26×41cm_1978

질박한 정서, 그 둔중한 삶의 의지 - 이상국의 목판화 ● 이상국의 목판화는 맛이 있다. 그 맛은 감각적으로 혀를 유혹하는 달콤함이 아니라 뭐랄까 텁텁하면서도 구수하고 그러면서도 묘하게 까칠한 그런 맛이다. 정적(靜的)이면서도 꿈틀대는 힘이 있고, 즐겁다가도 다시 쓸쓸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한마디로 이상국의 판화에서 우리는 다양한 감정들을 느끼게 되는데, 이는 그의 표현들이 작가자신의 체험과 거기에서 연유하는 감정이나 감성을 설명적이지 않은 형상으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 초기작인 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에 이르는 귀로, 탈춤, 기다림, 시골아이, 각시, 이야기, 맹인부부가수, L선생, 벌서기, 오월시 등에서 보이는 사람들의 묘사에서는 작가의 이웃에 대한 부드러운 시선과 서민들의 생활상이 담담하게 담겨 있다. 이 도상들은 인물들의 보편적인 정서를 포착해내어 70년대 우리이웃의 전형적인 서민아이콘이라 할 수 있겠다. 오윤의 목판화 작업이 80년대의 상징적인 민중 아이콘으로 부상한 것이 정치적 저항성과 풍자성, 신명을 필요로 했던 민중미술의 미학 때문이라고 본다면, 이상국의 7, 80년대 초기 목판화 작업은 오윤과는 달리 당대의 리얼리티와 서민들의 생활상을 자연주의적인 방식으로 포착한 중요한 작업이라 볼 수 있다. 이런 방식은 화전에서, 응암동, 산동네, 공장지대, 산, 나무연작 등에 이르는 풍경화에서도 한결같다. 그렇지만 그의 자연과 이웃에 대한 따뜻한 시선은 작업형식에 이르면 이와는 다르게 보다 엄격하고 견고한 태도를 보인다. 스케치를 거치면서 대상에 내재된 특성을 찾아내는 분석적인 조형성을 추구하면서도 표현방식에 있어서는 대상의 왜곡, 구축, 해체 등의 방식을 자유분방하게 구사함으로 다소 진부하게 보일 수 있는 서민적인 정서를 모던하고 주관적인 개성으로 드러냈다. ● 90년 이후 지금까지의 주가 되는 작품은 홍은동 연작과 같은 풍경이다. 화면 전면을 빼곡하게 채운 집들과, 전봇대, 골목, 간판들이 닥지닥지 모여서 뭉뚱그려 움직일 듯 산모양의 능선을 따라 덩어리를 이루고, 화면 상단 좁은 하늘엔 간혹 떠가는 구름이 한적하다. 굵은 선으로 구획된 집들의 끝없는 집적(集積). 숱한 사람들의 삶과 거기에서 비롯하는 무수한 애환과 즐거움들이 버무려진, 검은색과 흰 여백의 결합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는 처연하되 강하고 끈질기다. 굵은 먹 선이 조합되면서 빚어진 많은 언어들은 결국 그 자체로 응결되면서 하나의 형상으로, 덩어리로 모인다. 검으나 땅에 흰 백성이라 했던가. 삶은 항상 척박하지만 변두리 산동네, 거기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은 맑다. 지독할 정도로 악다구니 인듯하다가 어느 순간 드러나는 여린 인정. 홍은동을 그린 목판화는 이런 모든 것을 묘사하면서도 동시에 과묵하고 아무런 소리 없이 그 형상성만을 드러낸다. 흑과 백의 선면과 여백. 청마의 시구처럼 이 그림들에서는 소리 없는 아우성이 들리는 것 같다. 화면의 동세가 움직일 듯 정지되어 있는 역설적 상황의 긴장이 더욱 그렇다. 칼 맛은 어눌하고 굵고 힘찬 선, 그러나 전체의 움직임은 유려하고 느린 부드러움이다. ● 이 힘차고도 부드러운 둔중함은 곧 거기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자 이상국 정서의 근간이다. 그는 여전히 자신이 태어나고, 성장한 공간 그 주변에서 육십이 되도록 살면서 자신의 어릴 적 기질과 정서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홍은동, 역촌동, 응암동, 구파발, 수색. 서울 서북부 산동네들.... 그가 자랄 땐 변두리였고 지금은 도심에 가까워진, 그러나 여전히 중심부와는 일정한 거리를 갖는 주변부 소시민들의 터전인 그곳이 바로 이상국의 정서를 형성한다. 이 공간에서 그는 질박하면서도 강인한 생명력을 이웃하며, 그 변두리를 감싸고 흐르는 공기 속에서 그의 원형적인 정서를 지키고 있다. 이상국이 화단의 중심이 되는 미술이념, 조직들과는 관계없이 외롭고 독자적인 길을 가고 있음은 이런 서민적인 주변부의 뚝심이 그의 성격의 밑바탕에 있기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소설가 김승옥은 '무진'의 모호한 안개를 통하여 60년대 상실된 자아의 허무한 내면을 토로 했다. 그런가하면 80년대가 지나고 90년대가 되었을 무렵, 한참 아래세대인 시인 유하는 "바람 부는 날엔 압구정동에 가야한다"고 했다. 그렇게 젊은 시인은 성장기 자신의 정서적 원체험의 공간이었던 압구정동을 부유코자 했다. 다른 세대는 이해하지 못할 그 또래의 정서는 어쩌면 잃어버린 시공간을 다시금 향유하지 못하기 때문이리라. 무언가 뿌리 뽑히고 상실된 감성의 공간적 흔들림. 한국현대사의 모든 사람들은 이런 공간에 대한 변화와 상실의 경험을 수동적으로 겪어야만 했다. 거기에 비하면 이상국은 행복한 사람이다. 50년대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크게 변하지 않은 유년기와 청년기의 그 공간에서 이웃들의 기쁨과 슬픔, 분노와 즐거움 등을 뭉뚱그려 자신과 작업을 하나로 통일해 올 수 있었기 때문에 그렇다. ● 미국에 체류할 때의 작업인 캘리포니아 풍경은 느낌이 다르다. 사람과 집들이 없는 산과 평원을 그렸기 때문에 자연자체에 대한 순수한 미적접근의 결과일 것이다. 모하비의 산, 팜 스프링스 산 연작에서는, 덩어리진 채 처연하고 둔중한 에너지를 담은 홍은동이나 응암동 풍경과 달리 곡선의 흐름이 빚어내는 유연한 형태가 도드라진다. 그 안에서 적당한 길이로 움직이는 선들의 결합은 싱싱하고 장엄하고 경쾌하다. 한국의 산동네를 판각할 때 직선과 각도가 두드러지며 형태가 단단하고 견고하게 드러났다면 여기의 산은 완만하고 곡선으로 그 자태를 드러낸다. 태극의 원리처럼, 음과 양이 서로 어울러 지듯이, 혹은 양이 음이 되고 다시 음은 양이 되듯이, 산마루와 골이 별 구별 없이 어울린다. 그리고 움직인다. ● 요세미티, 산으로부터, 나무로부터, 기쁜 날 연작에 이르면 파편화된 에너지 입자들의 날렵하고 생동적인 움직임은 더욱 경쾌하게 나타난다. 이 작업들은 사람들의 삶과 연관하여 풍경을 대면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작가가 서 있는 그 때 그 자리에서(standing point)의 감정이나 인스피레이션을 표현한 것이다. 산과 나무는 그 형태를 겨우 유지할 뿐 분절되고, 짧게 끊어진 선 혹은 점들의 움직임에 의해 유동한다. 그 큰 산과 숲과 나무는 이 작은 입자들의 움직임에 의해 마치 기화(氣化)하듯이 추상적으로 변해간다. 형태는 해체가 되고, 평면은 더욱 평면화 되고, 여백도 독립적으로 자신을 주장하고, 형상은 점, 터치, 여백, 칼 맛과 같은 조형적인 요소로 환원된다. 거기에 들숨과 날숨의 호흡과 같은 리듬이 있는데, 그 리듬은 그러나 규칙적이지 않고 비정형적이다. 축제처럼 즐거운 카오스의 향연. 다시 말하면 인간의 감정이 어떤 정형화된 형태로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지 않고, 늘 어떤 상황이나 대상과의 마주침에 따라 다르게 일어나기 때문인데 만물의 생성과 변화가 사실 이와 같지 않을까. 일종의 질서에서 넓은 무질서에 이르는 현상, 엔트로피 같은... 작은 기쁨이 큰 슬픔으로 퍼져나가고... , 분노는 희열의 바다로... , 섞여서 무질서 해지고... , 다시 정화가 되고... , 기가 발생하며 움직이고... 이 부분은 그의 지난번 개인전서문에 필자가 인용한 바 있는 서경덕의 기에 대한 부분을 재인용할 필요가 있겠다. 너무나 잘 맞기 때문이다. "공기空氣 대기大氣 운기雲氣 및 일체의 기운氣運 기상氣象 기개氣槪가 모였다 흩어지고(聚散), 펴졌다 오므려지고(屈伸), 왔다 갔다(往復)하며, 맑고 흐리게(淸濁), 곱고 거칠게(粹駁), 정교하며 엉성하게(精粗)유동한다." 이렇게 묘사된 기의 움직임은 이상국의 판화에 나타난 점이나 선의 유동성과 일치한다. ● 이와는 다르게 다소 고통스러운 나무를 보자. 백련사 나무, 겨울나무 등은 최근의 작업들이다. 뒤틀려 엉켜서 앙상한 가지만 남기고 추위에 맞닿은 나무의 실루엣은 성긴 톱날 같은 칼의 운행으로 그 선(가지)의 흐름이 매우 까실하다. 겨울추위의 혹독한 이미지, 궁핍한 실존이 투사되지만, 다시 이를 극복하는 생성의 힘과 의지가 그 선과 형태에서 동시에 묻어난다. 이는 이상국의 목판화에서 드러나는 어법이자 궁극적인 주제다. 작가가 굳이 이런 뚝심과 실존에의 의지를 유도하지 않음에도 절로 드러나는 상징인데, 어떤 소재나 언어로 기표하지 않은 순수한 조형요소들의 조합이 불러일으키는 환기력은 작가에게 내재된 기(氣)와 그를 둘러싼 공간이나 환경의 결합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산, 나무, 산동네 등은 재현된 것이 아니라 작가의 직관적인 감성과, 조형적으로 분석한 구조와, 이를 육체로 실행한 궁극적인 표현성이 뭉뚱그려 있는 것이다. 인간이 세계를 인식하는 과정을 불교에서는 오온(五蘊)으로 설명한다. 색(色), 수(受), 상(想), 행(行), 식(識)의 과정이 그것인데 일단 감각기관으로 마주친 대상을 느끼고, 생각하여, 반응한 자신을 인식하여 올바로 안다는 것이다. 이는 대상 뿐 아니라 자신을 철저하게 인식해야 함을 단서로 하는 것이다. 또한 대상과 자신을 통일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이 직관과 사유의 결합이라는 과정이 이상국의 작업에서 작용하여 자신과 세계의 만남을 만들어 낸다. 다시 말하면 구체적인 소재가 작가의 감성과 이해, 육체적 표현을 통해 추상적인 에너지인 삶의 의지로 바뀐다는 뜻이다.

이상국_맹인부부가수 I_캔버스에 유채_75×52cm_1979 / 맹인부부가수 I_목판화_30×25.7cm_1978

사실 기법적인 면에서 보자면 이상국의 작업은 현대판화의 흐름으로 보아서는 소박한 방식이다. 온갖 매체들과 테크닉들이 혼합되어 보다 현대적인 이미지들을 생산해내는 지금의 판화계이고 보면, 이상국의 목판화는 대조가 될 정도로 단순하고, 고전적인 느낌이 들 정도로 원초적인 기법이나 재료를 고집하고 있다. 즉 목판에 형상을 드로잉하고, 조각도로 새겨서 블록프린팅(Block Printing)하는 과정은 목판화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작업프로세스의 테크닉보다는 칼과 판이 만나는 순간의 긴장과 이완의 맛에 의해 결정되는 이 방식은 단순하지만 우리나라 현대목판화의 중요한 궤를 잇는 방식이다. 최영림, 정규, 박수근, 오윤 등이 직접적인 칼 맛을 최고로 끌어 올린 작가들이다. 이런 작품에서는 어떤 요란한 기술도 필요가 없다. 목판에 칼을 운용할 때 집중되는 긴장감, 서예로 본다면 필력 같은 그런 힘이 이미 기술을 넘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이 원초적인 날것의 표현성이야 말로 가장 완벽한 쾌감을 이루는 목판화의 정수라 할 것이다. 이상국은 아마도 이런 목판화 방식의 거의 마지막 남은 작가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 이상국이 이런 단순한 판화기법을 고집하는 이유는 체질적으로 이 방식이 자신에게 알맞기 때문이다. 그의 회화에서도 보이듯이 지금까지 이상국은 철저하게 평면성을 중요시하며 작업했다. 이는 그의 중학시절 스승인 이철이(李哲伊)화백으로부터의 영향이다. 세잔에게 철저히 심취했던 이철이 화백에게서 중학교 때부터 세잔느에 관한 화론을 공부한 이상국으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목판화는 이런 그가 평면성에 기반한 표현을 하기엔 아주 적당한 매체였고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세잔느적인 평면에 대한 이해와 대상에 대한 분석적인 자세를 견지하면서도 이상국은 자신의 표현충동을 억누르지는 않았다. 마치 고호처럼 대상과 사람과 세계에 대한 투명한 직관으로 자신의 내부에 있는 뜨거움을 표현한 것이다.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 조형적 이원성이 이상국에게서는 잘 통일된 셈이다. 이는 지금도 그의 회화나 판화가 새로운 방식을 굳이 실험하지 않음에도 진부하지 않은 모던함을 갖는 이유이기도 하다. ● 이상국은 목판화를 자주 발표하지 않았다. 오로지 혼자서만 고집스럽게 해 온 셈이다. 그런데도 이상국의 판화가 중요하게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이유는 그의 회화와는 또 다른 변별점에서 판화가 독자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대개 회화와 판화를 겸하는 작가들은 자신의 회화를 판화에다 옮긴다. 상업성을 위한 일종의 자기복제인 셈이다. 그런데 이상국은 오히려 판화를 회화로 옮긴다. 판화작업을 통해서 선과 전체적인 형상의 굵고도 강렬한 특징을 구축한 후, 이 핵심적인 맛을 질료의 물성을 최대한 드러내는 유화로 옮기는 것이다. 다른 작가와는 반대인 셈이다. 물론 이상국의 회화와 판화는 다르다. 화면 구성이나 소재들의 형태는 유사하지만, 물감의 물질성과, 붓 터치로 인한 주관적 표현성이 강한 회화에 비해 판화는 굵고 검고 둔중한 형태감만 남길 뿐 오히려 절제되고 응축된 느낌이 강하다. 화면의 이미지만 남기고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회화의 강한 물질성이 소거된 판화는 그래서 근골만을 남긴 채 핵심적인 이미지만 드러낸다. 그 주제는 서사적이되 설명적이지 않고, 서정적이되 어느 하나의 감정으로만 편입되지 않는 다양한 느낌으로 드러난다. 그래서 이상국의 목판화는 그가 대면한 구체적인 현실을 소재로 하면서도 그 소재를 넘어서는 주제인 둔중한 뚝심의 에너지, 즉 '삶에의 의지'라는 추상적인 힘을 길어 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 ● 이상국의 작업은 그가 미리 미술의 이념을 설정해 놓은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느끼는 온갖 인간적인 천변만화의 감정들을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작업실에 박혀서 외출도 자주하지 않고, 과묵하고, 변화보다는 깊이 있게 집중하는 작업스타일에, 언변 또한 느린 이상국의 목판화 작업이 소박하되 밋밋하지 않고, 힘이 넘치면서도 유연하고, 칼칼하면서도 부드러우며, 단조로우면서도 복합적인 이유는 아마도 그 안에 내재된 감정들이 항상 충돌하면서도, 작업에 있어서는 마음과 신체와 질료가 하나 되는 통일된 의식과 프로세스를 형성하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 김진하

Vol.20131003d | 이상국展 / LEESANGGUK / 李相國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