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스칼라티움 아트 스페이스 SCALATIUM ART SPACE 서울 강남구 역삼동 828-10번지 Tel. +82.2.501.6016 www.scalatium.com
변혜숙 造形論 : 어린 시절의 이미지, 내밀한 공간의 풍경 1. 나의 내밀한 공간 ● 공주와 드레스, 인형과 동화는 어린 시절의 설레는 꿈이었다. 인형을 치장하고 옷을 입히고 멋진 집을 만들어 주는 것은 소녀의 행복한 시간이기도 했다. 변혜숙의 작품에는 이러한 소녀의 달콤한 낭만이 담겨있다. 작가의 작품 속 옷걸이에는 어린 시절의 옷들이 가지런히 걸려 있다. 머리를 빗기듯 걸린 옷들은 단정하고 고요하다. 세탁을 끝내거나 새 옷을 걸어 둔 듯, 이들의 생김새는 구김 없는 얼굴을 보여준다. ● 삼합지의 단단하고 부드러운 표면은 하나하나 붓질로 일구어낸 형태들과 만나고 있다. 옷걸이와 옷의 형태들은 작가가 오래두고 섬세하게 찍어 내린 붓 점들로 화면에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화면 상단의 가득 채워진 옷들과 하단의 비워진 공간은 채움과 비움의 미학적 변주를 보여준다. 레이스, 드레스, 치마와 같은 현대물질문명과 동심을 보여주는 이미지들에서 노자(老子)는 『도덕경』 4장에서 "도(道)는 비어 있으나 그것을 아무리 사용해도 늘 가득 차 있고 넘치지 않는다"는 비움의 미학을 말하고 있는데, 작가의 이러한 공간의 운용에서 채움과 비움 즉, 허(虛)의 미학이 간취되고 있다. ● 이 고요하고 부드러운 화면의 정적인 순간이 바로 옷장 속임을 알아차리게 된다. 정리된 옷장 속에는 레이스가 부각된 치마나 상의와 같은 소녀의 옷들도 보이고, 변하는 계절을 준비하는 작가의 흔적이 가득 담긴 생활 속에서 채집된 감정을 입은 옷들도 있다. 그가 보여주는 「데이트」, 「미미의 옷장」, 「월동준비」 작품들처럼, 작가는 가까운 과거와 미래의 부유(浮遊)하는 시간 속에 녹아든 긍정적 감성을 시각화하고 있다. 옷이 담고 있는 설렘과 꿈을 보여주는 것이다. ● 작가는 종이에 먹으로 스며드는 먹의 흔적들을 집요하게 따라가는 과정에서 밀도 높은 옷의 형상을 구체화한다. 사실, 작가가 하나하나 공들여 찍어낸 점들이 모여 형상을 이루는 것은 일종의 작가가 내면의 세계를 가시화, 조형화하기 위한 방법적 모색으로 볼 수 있다. 문인화에서 미점(米點)과 같은 필(筆)의 운용으로 고결한 정신세계를 담아내었던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순간의 선으로 그어 내린 즉물적, 감각적 형상에서 느낄 수 없는 정제되고 고요한 정신성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섬세한 점들은 작가가 내면의 풍경을 담아내고 관자가 작가의 정신계와 교감할 수 있는, 숨겨둔 빗장을 여는 것과 같은 것이다. ● 작가는 이러한 그리기의 과정 속에서 만족과 정신적 안정을 찾는다고 말하듯이, 추억과 현재의 일상을 밀도 높은 옷을 통해 완성시키는 것은 정신의 단계에서 느끼는 그리기의 유희(遊戱)이기도 하다. 이는 내밀한 공간의 완성에서 맛보는 무한한 자유와 정신의 위안인 것이다. 이렇듯 작가의 조형은 옷장속의 내밀한 공간의 풍경이며 또한 작가의 상상력이 잉태되는 내면의 은밀한 공간이기도 하다. 그 공간은 어린 시절의 이미지가 되살아나 그 시절의 시간이 정지된, 마치 응고된 신비의 세계와 같다.
2. 사이에서의 존재(存在) ● 옷과 옷들이 빼곡히 걸린 공간의 풍경은 높은 밀도와 긴장감을 보여준다. 매달린 존재, 사이의 존재는 작가가 느끼는 인간 삶의 진솔한 표정이기도 하다. 이것은 인간 군상들이 만들어낸 삶의 본질이기도 하다. 이는 옷을 그리는 자아와 그 옷을 감상하는 타자와의 겹쳐짐이며 주체와 타자 사이의 시선이기도 하다. 내가 나임을 알게 되는 주체의 인식은 타자의 존재로써 완성된다. 즉, 타자 없는 나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김애령, 『여성, 타자의 은유』, 그린비, 2012. 참조) 겹쳐진 옷들에서 하나하나의 옷들이 자신의 표정을 숨기거나 감추지 않고 뚜렷한 자기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사이의 존재, 끼인 존재, 겹쳐진 존재로서의 작가가 경험하는 세계 속에서 작가의 오롯한 존재론적인 가치가 담담히 드러나는 것이기도 하다. ● 이는 어린 시절 꿈꾸었던 여성으로서의 성역할에 관한 고민과 정체성(Identity)을 진지하게 담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여성으로서의 로망과 순수한 동심과 현재와 자아의 정체성 앞에 갈등하는 작가의 시각이 조심히 드러나고 있다. 어른이 되어 버린 작가와 아직도 존재하는 어린 시절의 감성 사이에서의 사회적 역할과 성, 그 속에서의 과거와 현재와의 충돌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이는 영원한 아이 적 순수성을 되찾고 현재의 작가가 오롯하게 세계를 인식하고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고민과 성찰이기도 하다. ● 이러한 작가의 내밀한 공간 속에는 종이 속에 녹아들어간 치마와 레이스, 기억과 같은 작은 소망과 추억들이 번져 나온다. 이들의 이미지들은 동화속의 주인공이나 미미 인형을 좋아하는 소녀처럼, 작가의 추억 속에서 잉태된 형상들이며 작가가 되새김질하는 시간으로 우리들을 회귀시키는 특정한 의미체로서의 언어들이다. 작가는 그 속에서 꿈을 꾼다. 그리고 작품 앞에 존재하는 이들도 비밀의 옷장을 열고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꿈을 꾸게 된다. ● 이는 변혜숙의 부드러운 조형이 가진 힘이기도 한다. 나의 정체성을 인지하는 주체와 나를 바라보는 타자, 삶에서 잃어버린 것 그리고 갖고 싶은 것, 현재의 나, 미래의 꿈이 뒤섞이는 화면에서 삶의 부정성을 지우고 인간이 처한 삶의 긍정성을 극대화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시간이 멈춰진 과거에의 순수성을 건져 올리고 무궁한 생명, 기쁨과 행복, 진지한 삶의 성찰을 느끼게 된다. 작가가 보여주는 옷장속의 풍경은 몽환적이고 환상적이다. 그리고 고독을 동반한 고요함을 내재하고 있다.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환기시키거나 신화나 설화의 이야기를 건드리는 어린 시절의 그 모든 이미지들은 중첩된 세계의 사이에서 존재하는 나와 깊이 교감하고 있다. (2012.4) ■ 박옥생
내 나이 이제 서른, 서른이라는 나이가 마냥 순수했던 소녀가 아닌 여성으로써 성숙되었고 현실에서는 막연하기도 불안하기도 한 시간이기도 하다. 그런 현재에서 바라보는 어렸을 적의 추억이 되어버린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해 현실의 감성을 시간적 흐름으로 다른 이들과 공감하려 한다. 우리는 날마다 기억하든 기억하지 못하든 꿈을 꾸며 살아가고 있다. 문득 지친 일상 속에서 잠시 쉬어가는 쉼표처럼 추억에 잠기기도 하고, 미래의 어느 순간을 떠올리며 희망, 기쁨, 용기를 얻기도 한다. ● 여지껏 그려온 어렸을 적의 감수성과 현실의 여성성에 대해 옷장 속에서 그려왔다면, 쇼윈도 너머로 갇혀있는 드레스를 지금 현재 나에게 다가온 혹은 다가올 현실을 드레스로 표현해 보고 있다. 옷장속의 의미는 옷을 통한 겉모습이 아닌 나의 내면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공간이며, 쇼윈도에 갇혀있는 드레스 또한 그저 겉모습의 화려함이 아닌, 드레스에 내재되어 있는 여성의 속마음을 비추고 있다.
순백색의 드레스는 여자들의 로망이자 다가올 현실이기도 하다. 여자라면 한번쯤 꼭 입게 되는 드레스이지만, 쉽게 접할 수 없는 드레스는 언제나 꿈과 같다. 생애의 가장 아름답고 감동적인 순간에 입게 되는 드레스, 그너머로 현실에 부딪히게 되는 것이다. 그런 드레스를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여성으로써 쇼윈도 너머로 아름답게 서있는 드레스를 보면 그저' 아름답다, 입고싶다'로만 그치지 않음을 느낄 수 있다. 그렇게 다른 여성들 또한 나처럼 느끼고 있음을 알수 있다. 하지만 과거든, 현재든, 미래든 어디에나 설렘과 낭만은 있다. 여성이라면 누구나 웨딩드레스를 입은 자기 자신을 상상해 보게 된다. 어린소녀였던 어렸을적 시절에도 드레스는 로망이였다. 동화속 주인공이 되고픈 마음은 어린아이여도 어른이 되어서도 변함이 없다.
작품 속에서 나는 살아있는 동시에 바라보고 있는 관객의 입장, 관찰자이기도 하다. 작품을 매개체로 과거의 나를 보기도 하고, 현재의 내모습을 그리기도 하며, 또한 미래의 어느 한 순간을 상상하며 그리기도 한다. 동시에 누군가의 옷장, 혹은 「미미의 옷장」을 들여다보고, 「데이트」하는 그 순간을 상상하며, 설레이기도 한다. 동심으로의 회기는 사고의 긍정과 희망을 전하는 메시지이며, 시간의 흐름 속에 느껴지는 일련의 변화들은 우리가 공감하고 공유하는 또다른 자아의 모습임을 강조하고 싶다. 작품 앞에서 나는 또 한번 옷장의 문을 열고 미지의 세계, 미래의 어느 순간을 향하는 꿈을 꾸고자 한다. ■ 변혜숙
Vol.20130930b | 변혜숙展 / BYUNHYESOOK / 卞惠淑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