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3_0925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성신여자대학교 파이룸갤러리 SUNGSHIN WOMEN'S UNIVERSITY firoomGALLERY 서울 성북구 동선동 3가 249-1번지 Tel. +82.2.920.7114 www.sungshin.ac.kr
강훈정은 80년대 초 제주도에서 태어났다. 제주도라는 섬을 한번이라도 방문해본 사람은 알 수 있듯이 그 곳의 지형이나 풍경은 한반도 본토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 스무 살에 서울로 올라 온 그는 과밀하게 도시화 된 서울의 모습에 큰 인상을 받았고 이는 그의 작업 방향에 일정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런 제주도 사람으로서의 시각은 자신이 생활하고 있는 공간에서 자신을 타자로 인식하는 강훈정의 독특한 시점으로 일관성 있게 유지된다. (80년대 생이란 젊은 나이 때문인지 제주도인으로서의 역사적 아이덴티티는 보이지 않는다. 이는 현대 한국의 문화 정치적 현실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단면인지도 모르겠다.) 20대 중반, 젊은 강훈정의 최초 작업은 서울의 생경한 풍경에 대한 시각적인 흥미에서 출발했다. 이러한 시각적 유희는 곧 자연스럽게 선이나 형상. 색을 추출해낸 추상으로의 발전가능성을 모색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그 지루한 모색에서 금방 벗어나 성의 실루엣과 같은 장치들을 이용해 그가 줄곧 그리던 대상의 역사성을 밝히는 작업을 졸업 작품으로 출품하게 된다. 졸업 후 2년 간 그는 서울이라는 시스템 자체에서 생존하기 위해 분투했는데 이러한 상황과 함께 그의 작품에선 현실 풍자적 농담joke의 요소가 짙어진다. 이 후 성신여대에서 미술 석사 과정을 하며 그의 작품 세계에는 장치에 의존한 기존의 상징적인 요소들은 줄어들고 회화에서 가능한 역량의 추구나 일상의 아이러니들을 차분히 증언하는 시도가 시작된다. 그 결과를 그의 석사 청구전인 이번 전시에서 여실히 볼 수 있다.
앞서 강훈정 자신이 느끼는 독특한 타자성에 대해서 말했는데 이번 회색풍경전이야 말로 그러한 인식이 다시 드러난 전시라고 볼 수 있다. 한국이란 곳에서 대학의 존재는 특별하다. 대학은 이 나라의 지성과 학문의 요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항상 온갖 사고나 불협화음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완벽한 것이 없는 세상에서 어느 집단이나 이 점에서는 마찬가지 일 테지만 대학 자체가 고결한 지성을 지향하며 아직은 청순한 젊은이들이 모인 집단이라는 점에서 그러한 아이러니는 종종 다른 집단에서와는 다른 모습으로 드러난다. 대학의 아이러니는 종종 더한 충격으로 다가오거나 아예 은폐되어 버린다.
또한 강훈정이 대학원 과정을 위해 들어간 곳은 대학원생만 남학생을 받는 여대였다. 여대/여대생은 우리나라의 남성들에게는 욕망의 대상인 동시에 줄곧 아우라를 가진 공간/개체로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상상과 다르게 우리나라에서 절대다수가 여자인 사회에 소수의 남자가 실제로 던져졌다고 생각해보면 상황은 그렇게 낭만적이지만은 못하다. 여자들 사이의 위계와 유대관계는 남자들의 그것 보다 더 엄격하고 폐쇄적인 경우가 많다. 그런 사회에서 남성은 종종 잠정적인 성범죄자 쯤으로 매도되기 십상이다. 강훈정은 자신이 적법하게 2년 이라는 시간의 대부분을 보낸 공간에서도 자신이 결국 타자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느낀다.
『벽(壁)』이라는 그림은 신원을 확인 할 수 없는 여자들이 가득한 공간을 보여주고 있다. 이 그림은 굉장히 수줍은 시선을 보여주고 있는데 강훈정은 아마 저 벽을 뚫지 못하고 돌아 나갔을 것이다. 『분쟁』의 경우는 어떠한가. 그림을 통해 정확한 사정은 알 수 없지만 한 남자가 성난 여자들 사이에 둘러 쌓여 있다. 여자들은 필요하다면 완력이라도 쓸 기세이다. 남자의 모습이 꼭 고대 아마조네스의 영토에 던져진 희랍의 한 여행자 같다. 이러한 장면들은 우리가 익숙하게 밖에서 생각해온 여대의 낭만적 이미지에 비추면 낯설기만 하다. 그곳은 예기치 않은 끔찍한 사고로 인명이 희생 될 수도 있는 장소이기도 한데 『인공장애물』은 그런 일상적인 비극의 속사정을 관객에게 넌지시 말해주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보이는 강훈정 그림의 또 다른 변화는 기존의 설명적 장치를 최대한 자제하고 그림 그리기라는 활동 자체에 더욱 집중했다는 점이다. 그의 전공이 동양화인 만큼 먹의 농담으로 화면에 깊이를 주려 노력했고 유화를 그 위에 중첩시켜 이미지를 더욱 희미하게 만들었다. 『사적인 공간』의 경우에는 전통적인 병풍의 형식에 강훈정 자신을 둘러싼 실기실의 전경을 그려냈는데 앞서 말한 먹과 유화의 혼합이 좁고 깊은 공간을 나타내는데 효과적으로 사용되었음을 볼 수 있다. 또한 자신에게 적대적인 분위기의 학교 정문을 그린 『막(幕)』과 같은 그림에서는 사물의 상을 빛의 반사reflexion로 보지 않는 전통적 동양의 시각과는 다르게 자신이 스케치처럼 사용했던 사진이미지의 빛 효과를 먹의 농담과 유화의 반짝임을 통해 그려냈다.
이 짧은 글이 강훈정의 예술을 말로 표현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예술의 언어는 은유이며 다른 해석의 가능성은 향유하는 사람에게 항상 열려 있다. 강훈정의 이번 전시 또한 그런 다양한 해석의 유희를 유발할 것이다. ■ 노태은
Vol.20130924e | 강훈정展 / KANGHOONJEONG / 康訓禎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