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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3_0911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추석연휴 휴관
희수갤러리 HEESUGALLERY 서울 종로구 팔판동 128번지 1층 Tel. +82.2.737.8869 www.heesugallery.co.kr
이종한, 일상의 시화詩化 ● 이종한은 회화와 설치, 판화, 그리고 영상을 넘나드는 '멀티플레이 작가'이다. 회화와 설치는 물론이고 실크스크린에 매료되어 수차례 판화 개인전을 가졌는가 하면 미디어를 이용한 실험적인 작품도 거르지 않고 발표해왔다. 보통 사람들로서는 한 가지만 하는 것도 벅찬데 여러 장르를 섭렵하고 있으니 그만한 작가를 보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 그는 1989년 홍익대대학원을 졸업한 뒤 지금까지 스무여 차례의 개인전을 가졌는데 그중에는 뉴욕, 뉴저지, 워싱턴, 제네바, 동경에서의 해외전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개인전을 거의 매해 거르지 않고 열어오고 있는데 이것은 이종한이 부단히 정진하는 작가이자 뜨거운 예술혼의 작가라는 것을 알려준다. ● 그의 작품중 기억에 나는 것은 약 20년전 그가 미술회관(지금의 아르코미술관)에서 있었던 제5회 개인전 때였다. 작가는 무려 20미터의 벽면을 부유하는 이미지들로 채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캔버스대용으로 벽면을 이용하고 그 벽면에 형형색색의 이미지들을 채워넣었다. 물고기, 낚시바늘, 나무, 별, 집, 하트, 강아지, 동그라미, 수직선과 곡선, 그밖에 무언지 알 수 없는 모종의 이미지들이 서식하는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전시장 안은 아이들의 놀이터처럼 어떤 구애도 받지 않는 기호들이 자유로이 뛰어놀았다.
그후로도 작가는 상상속의 장면이나 동화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들을 화면에 담아왔다. 그에 의하면 그런 이미지들은 "어린 시절 어느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은" 것들이며 그가 어른이 되어서도 간직하고 있는 "최고의 공간이자 시간"이었다. 이렇듯 작가는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도 모르게 굳어져버린 시간과 공간을 해체해버리고 거기에다 자신의 꿈과 환상을 건설하였다. 구김살없는 각종 이미지들이 살아 숨쉬는 공간은 그렇게 탄생하였다. ●「지금 · 여기」란 타이틀로 제작된 그의 연작은 사람과 물고기가 어울리고 밤과 낮의 구분이 없으며 기차와 자동차가 미지를 향해 달리는가 하면 여기저기 별과 구름이 떠도는 등 환상적인 세계를 담고 있었다. 마치 소풍을 갈 때의 심정처럼 그의 화면은 설레임과 기대감으로 가득차 있다. 이렇듯 그는 상상이란 그물로 활어처럼 싱싱한 세계를 퍼올렸다. ● 그러던 그가 어느 순간부터「집 시리즈」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그의 작품세계에 분수령이 된 것은 2008년 한가람미술관에서 개최된『아트 & 플레이 Funster』展을 계기로 해서이다. 일상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지만 구체적인 이미지, 즉 '집'이라는 단일 테마에 주력하기 시작하였다. 그때의 작품은 한지로 떠낸 집의 이미지를 비스듬히 쌓아올려 마치 약간 퇴락한 달동네를 연상시키기도 했다. 그때의 작품은 규모도 상당하고 사뭇 비장함마저 엿볼 수 있는 심혈을 기울인 역작이었다. ● 크게 보면, 이번 전시도 한가람미술관의 출품작과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종이로 만든 집들이 계단식 모양으로 층층이 이어져 있는 것이 노크를 하면 금세라도 집주인이 나올 것같은 분위기이다.
이런 작품이 주는 의미는 풍성하다. 그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유년시절로 돌아가는 것같다. 골목길을 돌아서면 이발소, 솜틀집, 연탄가게가 보이고 지붕에 사정없이 떨어지는 빗방울소리, 바람에 덜커덩거리는 문소리,강냉이 튀기는 소리가 들릴 것같다. 함께 모여 소꿉놀이, 숨바꼭질, 고무줄놀이를 하던 유년의 추억에 잠긴다. ● "동네 모퉁이 골목에 쭈그리고 앉아 돌멩이로 땅바닥에 집을 그리고 나무를 그리고 하늘에 햇님과 비행기를 그리며 가족과 친구들을 그리면서 어린 시절 나는 무척 기뻐했고 즐거워했다"고 그는 적고 있다. 그러니까 그가 설정한 공간은 물리적인 광경에 그치지 않고 심리적 공간이란 의미도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 아마도 이런 회상을 자아내는 요소가 있다면 제일 먼저 약간 퇴색한 듯한 한지와 은은한 백라이트효과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자세히 보면 바탕이 밋밋하지 않고 오톨도톨한 촉각성이 두드러진다. 이것은 그가 한지의 성질을 풍경과 접목시킨 데서 기인한 것으로 바탕의 재질을 모두 한지로 처리하여 나타난 결과이다. 알다시피 한지는 섬유질이 강한 닥나무로 만들기 때문에 이것의 재질감이 화면의 거친 텍스추어로 잔류하게 되는 것이다. 그의 바탕은 물에 풀어진 한지를 말리고 일정 시간이 흐르면 다시 한지를 덧바르는 식으로 세 번 이상의 배접을 거쳐 나오게 되는데 이 경우 닥종이가 거듭 중첩되면서 성형(成型)과 동시에 더욱 촉각적인 성질을 고조시키게 된다. 그리하여 탄생된 집의 이미지들은 우리 마음속에 있던 바래고 희미한 기억들을 오롯이 불러일으킨다.
그의 작품에 향수를 유발하는 또다른 요소는 은은한 빛의 효과이다. 창문과 골목길에서는 잔잔한 빛이 새어나오고 북두칠성과 하늘의 별무리 등에서도 깜빡이는 빛을 볼 수 있다. 그에게 있어 빛은 사람의 인기척을 암시하며, 따듯하고 평온한 세상을 전달한다. 불 꺼진 집이 휑한 느낌을 준다면, 불 켜진 집은 언제라도 손님을 맞이해줄 듯한 정겨운 분위기를 안겨준다. ● 근작에서 그는 지붕을 예쁜 색들로 꾸미고 주변을 숲으로 가꾸는 등 보다 풍성하게 묘출하고 있다. 이것은 그의 집이 애잔한 향수로만 머물지 않고 현재의 활기찬 일상으로 바꾸려는 시각차를 보여준다. 그 결과 전체적으로 밝고 화사해졌으며 생동감을 갖게 되었다. ● 그의 집엔 누가 살고 있을까? 집이 재산이나 출세의 척도가 아니라면 우리가 소원했던 대로 과연 행복을 누리고 있을까. 꽃은 꺾어서 화분에 담을 수 있지만 봄은 화분에 담을 수 없다고 한다. 집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집은 조금만 노력하면 소유할 수 있으나 거기에 행복을 담아내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가정은 "규칙과 확고한 의무로 넘쳐나는 세상에서 유일한 야만의 공간"이라고 체스터턴(G.K.Chesterton)은 말하다. 여기서는 "양탄자를 천정에 못박아둘 수 있으며,바닥에 기왓장을 깔아도 누가 뭐랄 수 없다." 집이란 의무와 과제의 촘촘한 틀안에 얽매이기보다 주변의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편안한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그것을 현실로 옮겨내는 것은 우리의 의지에 달려 있다.
이종한의 집그림이 주는 의미도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그의 집안에서는 연실 굴뚝의 연기가 피어오르듯 대화가 피어오른다. 불켜진 집마다 저녁을 먹으며 소곤거리는 소리, 아기를 재우는 자장가 소리, 자녀들과 대화하는 소리, 통화하는 소리 등이 울려퍼지며 밤하늘도 이들 가족을 향해 빙그레 미소를 보내는 것같다. 작가는 이렇듯 집안의 불빛을 창문으로 흘러나오게 함으로써 과연 우리가 '하루를 충분히 누리고 있는가' 하는 물음을 던지고 있는 듯하다. 행복한 가정에선 결코 '시간의 종소리'가 울리지 않는 법이다. ● 이러한 의도를 실어내기 위해 그가 들이는 수고는 엄청나다. 그가 종이와 부단히 씨름하는 모습은 장인의 그것을 연상시킨다. 작품만큼 세상에 재미있는 것은 없다고 여기기 때문일까? 그의 작업은 고된 공정으로 이루어진다. 일일이 수공으로 성형한 집의 이미지도 그렇고, 그런 이미지들을 화면에 하나하나 부쳐가면서 전체의 모양을 잡는 것, 그리고 화면 뒷판에 라이트를 넣고 인두로 지켜가면서 밤하늘의 불빛효과를 내는 것은 모두 힘든 노동을 전제로 한 것들이다. ● 이것 말고도 한지로 작업을 한다는 것은 한지에 대한 남다른 애정없이는 감내하기 힘들다. 그만큼 사람의 손이 많이 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가 한지를 고수하는 이유는 한지는 잘난 체 하지 않고 겸손하며 자기 자신을 내어줄 줄 아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쉽게 물에 풀어지고 어떤 모양이든지 순순히 수락하고 그러면서 따듯함을 잊지 않는다. 이종한이 한지를 고수하는 데는 아마 그런 물성의 매력을 뿌리치기 어려운 저간의 사정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 서성록
Vol.20130911c | 이종한展 / LEEJONGHAN / 李宗翰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