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2013 KAF미술관 기획초대展
기획 / 킴스아트필드 미술관 운영위원회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킴스아트필드 미술관 KIMS ART FIELD MUSEUM 부산시 금정구 죽전 1길 29(금성동 285번지) Tel. +82.51.517.6800 www.kafmuseum.org
하기 싫은 일을 하면서 평생 안정적으로 사는 것과,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평생 힘들게 사는 것, 어떤 삶이 더 나은 것으로 존중되어야 할지 판단할 순 없지만, 살아가면서 하나의 일에 매진하기란 여간 쉽지 않은 법이다. 게다가 경제적 보상이 따르는 직업으로서가 아닐 경우거나 혹은 단순히 개인적 취미쯤으로 지속하는 일이 아니라면 더욱 그렇다. 얼마나 많은 작가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자신의 작업을 흔들림 없이, 타협 없이 지속할 수 있을까. ● 이번 2인전은 80년대부터 자신의 관심분야를 지속적으로 다루어온 박재현, 심점환 작가의 전시다. 이들은 각기 다른 매체로부터 출발하고 있고 또 작업의 성향과 개인이 처한 환경도 다르지만, 50대 초반 이라는 비슷한 연배와, 지역을 기반으로 하며, 상업성에 매몰되지 않고 꾸준히 자신의 작품세계를 다져오고 있다는 점에서는 유사한 면모를 보여 왔다.
박재현은 초기부터 빛을 이용하여 자연과 공간의 관계를 탐구하는 대규모 설치작업을 주로 해왔다. 그는 조형물이 가지는 그 스스로의 의미 즉, 조형성 혹은 조형적 관심보다는 그 오브제와 그 외의 공간과의 관계에 주목하였다. 그의 작업은 광활한 자연 속에 배치되거나, 물로 채워진 실내공간에 위치시키기도 하였고 또 무한대로 확장되는 어두운 공간을 구성하는 것과 같은 방식이었다. ● 이 같은 초기 작업들에서 그의 관심은 그가 제작한 조형물 '자체'라기보다는 자연환경과 공간 속에 위치한 인위적 덩어리(혹은 빛)가 어떻게 '관계'맺는지를 탐구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여기에는 물론 특정 공간과 특정 시간 그리고 '참여자'가 필수적이다. 자연이 아니더라도 관객이 물위를 걷도록, 그의 오브제 주변을 걸을 수밖에 없도록 의도된 작업이나, 어두운 공간속에 관객을 몰아넣고 무한히 확장되는 착각속의 환경에 몰입되도록 하는 작업들에 이르기까지 지속된다.
이처럼 박재현은 그가 제작한 어떤 '오브제'의 외부적 표상에 머물기 보다는 주어진 환경과의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어떤 '아우라'에 주목하기를 기대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작업을 제작된 오브제의 형상으로만 파악하려 한다면 특별한 의미를 발견하기 힘들뿐만 아니라 의문에 놓일 수도 있다. 이러한 점에서 그의 과거 작업에 대한 평가를 재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 또한 그의 작업에 지속적으로 삽입되어왔던 빛, 잡히지 않는 이 '빛'은 관객과 환경(오브제를 포함한)의 관계에 있어 중요한 매개물로 작동되어 왔다. 당시로서는 새로웠던 레이저광선을, 매우 이른 시점인 1990년대부터 사용하기도 하였는데, 이후에도 그는 지속적으로 LED와 같은 인공조명을 작업에 개입시켜 왔다.
하지만 최근 작품 시리즈에서 그는 과거와는 달리 보다 적극적인 방식으로 '빛'과 관계하고 있다는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즉 작가의 연대기적 변화에 주목해 보면, 초기 작업에서는 오브제 속에서 빛이 투영되면서 하나의 요소로 활용되었고, 2000년대 어둠속에서 움직이는 기호화된 빛은 그 자체가 공간을 구성해 보다 적극적인 요소로 부각되었다면, 최근 시리즈에서는 직접 작가가 빛을 조작하며 그 움직임과 흔적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작가자신이 빛을 더욱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 최근 작업 시리즈는 희망에 대한 의심으로 촉발된 불안과 무력함을, 어둠속 허상과도 같은 자신의 모습으로 투영하고 있으며, 이를 다시 꽃 형상의 이미지로 재구성하기도 한다. 물론 잡히지 않는 빛을 포착하여, 구체화 한다는 점에서 그가 지속적으로 빛을 관심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는 것은 일관된 태도다. 하지만 이를 대하는 과정에서 보다 직접적이고 구체성을 띄기 시작했다는 지점에서 박재현의 작품세계에 작지 않은 변화의 측변이 감지된다. ● 이를테면 거대한 자연환경에서의 빛, 어두운 전시공간에서의 빛, 자신만의 공간에서의 빛으로 공간은 점점 구체성을 가지며 좁혀지고 있으며, 반면 그의 작업에서 빛의 역할과 비중은 점점 커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그동안 그가 만든 오브제나 빛 자체 보다는 공간과의 관계에 주목하던 것에서, 빛으로 생성된 이미지 그 자체에도 관심을 보이면서 사진이라는 평면작업으로 옮겨오고 있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변화다.
심점환은 존재론적 '불안'과 '모순적 상황'을 철학적 사유를 경유하여 형상화 하는 작업을 지속 해오고 있는 작가다. 그는 80년대 후반부터 '해빙'과 같은 미술그룹의 일원으로 민중미술 활동을 하면서 화가로서의 삶을 시작하였다. 불안한 정치적 상황과 새로운 미술흐름과 맞물려, 과거와 다른 형상적 표현을 추구한 이른바 '1980년대 부산의 형상미술'이라 일컬어지는 일군의 작가들 중 한명이다. 이후 작가로서 적극적인 활동을 하기 시작한 90년대부터 정치적, 시대적 문제만이 아니라 은유와 상징을 통해 자신과 자신이 마주하는 현실의 불합리한 상황을 그려왔다.「가뭄 (1993년)」,「용화세상을 꿈꾸며(1997년)」,「깊은잠-무기력(1998년)」,「불안한 꿈(1999년)」과 같은 일련의 작업들은 불안과 소외, 무기력한 인간과 시대의 단면을 잘 드러내고 있다. 지하철좌석 혹은 소파에 힘없이 기댄 사람, 힘겨워하는 농부 등 시대를 살아가는 고난난 일상의 모습에 거대한 곤충을 배치하거나 불안정한 구도의 화면으로 작가가 직면하고 있는 불안과 허무를 표현했다.
그리고 2004년 즈음, 화면을 가득 채웠던 해체된 생선과 개의 내장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강렬하고 붉은 색상의「process」,「unconsciousness」시리즈 작품들은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 시리즈는 큐레이터였던 한 후배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시작되었고, 여러 미술관과 비엔날레 등에서 소개되기도 하였는데, 관객은 마치 붉은 꽃밭과 같은 화면에 가까이 다가가면서 그 실체를 파악하게 된다. 있는 그대로의 오브제를 가감 없이 그렸다는 점에서 작가의 여타 작업경향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고도 볼 수 있지만 그림의 소재, 그 고깃덩이 자체만으로도 많은 상징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었다. ● 이후 영화 속 배우와 그 영화가 다루는 인물의 관계를 다루었던 2008년 개인전「이미지의 귀한」시리즈는 우리가 진실인 것으로 믿고 있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로 원본과 복제, 허상과 진실의 문제와 그 경계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또 2009년부터 수년간 제작된 인형시리즈는 '인형'이라는 상징적 오브제를 차용하여, 우리에게 보이는 이미지와 존재의 내면, 그 사이의 간극 그리고 이미지 이면의 허무와 고독을 말하고 있다.
2013년, 최근의 작업들은 문학/철학과 연관된 이미지들을 끌어와 존재론적 불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의 초기 작업들이 상당부분 현실적 풍경과 우리가(자신이) 처한 현실의 문제에 근거하여 불안과 부조리한 상황을 들추려 했다면, 이후의 작업들은 영화, 인형, 문학 등으로부터 상징적 이미지를 차용하여 인간 근원적인 문제들에 접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초기 화면에서는 직접적인(구체적인) 현실의 이미지에 상징과 은유가 더해졌다면 그 후론 현실의 이미지보다는 상징적 이미지의 비중이 커지면서 보다 추상적이고 근원적인 문제 즉, 실존, 허상, 불안, 존재, 허무와 같은 인간 내면의 문제들에 집중하기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 이와 같은 약간의 변화가 감지되고 있지만, 심점환의 작업 대부분에서 시적 은유와 상징이 등장하고 또 그가 내러티브와 복선이 깔린 방식을 선호해오고 있다는 점에서 초기부터 일관적인 작품성향을 보인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지속적으로 불확실하고 불안한 삶, 존재의 불안과 소멸하는 것들에서, 그가 직면하고 또 고민하고 있는 불확실한 실존의 의미를 질문하고 있다.
두 작가 모두가 주변을 의식하거나 시대의 예술적 흐름과 현실적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진지하고 집요하게 자신의 세계를 구축해 오고 있다는 것은 많은 후배 작가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박재현은 새로운 매체를 활용하고 새로운 시도를 감행하는 동년배 작가를 꼽기가 힘든 지역의 분위기로 볼 때, 얼마나 쉽지 않은 길을 가고 있는지 잘 알 수 있다. 또 '힘겨움과 고독의 진솔한 결과'라는 심점환 작가의 진술만큼 작업에 대한 연구와 열정을 쏟는 태도는 충분히 존중될 필요가 있다. ● 그리고 이들은 지속적으로, 보다 나은 작업환경을 만들기 위해 각기 다른 방식으로 많은 희생과 고통을 수용해 왔다. 특히 박재현은 본격적으로 작업에 매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하니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기대된다. 그리고 심점환의 글 한 구석에 있는 문구는 그가 작업을 대하는 태도를 가늠하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업을 떠난 나의 삶이란 이제 상상할 수가 없다. 어쩌란 말인가." 이 두 작가가 보여 온 지금까지의 활동 못지않게 앞으로의 작업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되는 이유다. ■ 김성연
Vol.20130910h | 불안한 현실과 허상-박재현_심점환 2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