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 I LOVE YOU

우금화展 / WOOKEUMHWA / 禹錦嬅 / installation.video   2013_0906 ▶ 2013_0922 / 월요일 휴관

우금화_햇빛 드로잉 Sun Drawing_39.4×54.5cm_2013

초대일시 / 2013_0906_금요일_06:00pm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175 Gallery 175 서울 종로구 안국동 175-87번지 안국빌딩 B1 Tel. +82.2.720.9282 blog.naver.com/175gallery

누구도, 무엇도 아닌, 바로 사랑해라는 발화 그 자체에 대하여 ● '사랑해' 말을 할 때, 우리는 먼저 대상을 찾는다. 누구를, 무엇을 사랑하는가. 전시명『사랑해』를 앞두고서, 예술을 향한 고백일까 진무르게 갈고 닦은 매체에 대한 순정일까 갸웃한다. 이게 일반적이다. "전시명을 사랑해로 하기로 했어"라고 작가가 말한 후 이어 무언가 듣기를 기대했으나 그녀는 부연하지 않았다. 그게 다였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흔히 사랑의 대상과 그 관계에 대해 물을 수 있겠지만 어떤 상황에서는 여타의 부속보다 '사랑해'라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의 발화가 다른 것을 무를 수 있다. 세상의 그 많은 술어 중 단 하나의 선택이 우금화에게는 '사랑해'였고 '사랑해'이다. 느낌 아는 우리는 사랑 그 앞에서 달콤함보다 입 속을 도는 핏내의 비릿함, 속수무책의 그 나날과 그럼에도 불구한 제자리를 반추하게 된다. 생각해 보면 이게 참 일상과 닮았다. 차라리 몰랐더라면 이 글은 이번 전시의 시각적 결과물에 좀 더 천착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난 몇 해, 지인으로 작가의 곁을 지켜보았던 나날이 이 글을 수행적으로 만든다. 그리고 수행성(performative)은 첫 번째 개인전을 준비하며 작가가 되뇌였을 '나다움'에 가장 근접한 개념이다. 우금화에게 '금화답게'란 무엇이었을까.

우금화_하루 One Day_단채널 영상_00:09:44_2013
우금화_뜨거운 비 Hot Rain_코바늘 손뜨개질, PE로프_2013

갤러리에서 먼저 눈에 들어오는 오브제는 인공적인 주황 색상의 PE로프로 뜨개질한「뜨거운 비」이다. 한 롤이 1000m인 이 로프를 작가는 현재 열 네 롤 째 뜨고 있다. 이 행위는 전시 중에도 진행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작가는 바느질, 뜨개질에 남다른 소질이 있는데 이 행위는 여리고 작은 그녀의 체구와 더불어 생각할 때, 여성적인 수행성으로 귀결되리라 짐작할 수도 있겠지만 도출된 양상은 거리가 있다. 무지막지하게 여겨지는 이 인공적 조형물은 무엇인가 해야만 했지만 그 마음과 총력으로 오롯이 쓸모없는 일만을 하겠다는 집념과 고집의 집산이다. 손거울에 반사된 태양빛의 둥근 형태가 작가의 발과 함께 계단을 오르내리는 퍼포먼스 영상「사랑해 계단 」도 반사된 빛을 일그러뜨리지 않겠다는 결심이 빚어낸 집요함의 압축물이다. 이 행동들은 땀을 뻘뻘 흘려가며 노는 아이들의 놀이와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다. '어른의 노동을 모방하지 않고 버림받은 물건을 구조하거나 사물과의 원형적이고 마술적인 관계 맺음' (벤야민)은 제도에 편입한 어른과 대별되는 어린아이의 특징이자 작가라는 존재로 살아가는 이들의 뒷모습과도 합치된다. 노는 아이에게 생산성을 기대하지 않는 것처럼 차라리 무언가를 그리거나 만들라는 생산성에 대한 압박은 작가에게 상이한 결과를 낳게 만든다. 햇빛과 바람과 비 그리고 낯설게 개입한 온갖 변수의 조합인「햇빛 드로잉」은 점잖게 액자에 숨어 갤러리로 반입되었지만 액자에 넣기까지 반신반의했던 작가의 결정은 아마 우연의 산물에서 필연의 자취를 찾는 일상 논리를 가볍게 비틀 것이 분명하다. 지난 여름 내내 오류동 어느 주상 복합 건물 옥상에서 이루어진「햇빛 드로잉」은「하루」라는 영상물 속에서는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평온하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온건해 보이는 영상의 프레임과「햇빛 드로잉」의 프레임은 대척을 이룬다. 함침지에 깃드는 일상과 자연의 단서에서부터 출발해 보려고 했던 소박한 첫걸음은 이내 작가의 통제 수위를 넘나드는 상황으로 전개되었다. 작가에게는 분명 예상하고 희망했던 과정이 있었으나 실험의 가설은 참담하게 무너졌고 작가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소한의 개입 상황에서 최대한의 판단과 선택이었다. 무엇을 남기고 거둬들여야 할지를 매순간 결정해야 했고 최종적인 선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우선 배제의 대상은 조형물처럼 보이는 것들이었고 또 이야기를 간취해 낼 여지가 있는 것들도 여지없이 솎아냈다. 시각적인 흥미로움이나 개별 감상자가 작품 이해를 위해 부여하는 스토리마저도 차단시킨 22점의 드로잉에는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작가라는 존재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거쳐야만 하는 부단한 (직업적) 선택이 금욕적이라고 느껴질 만큼 드러난다. 또한 세상의 기준에서는 하지 않은 만 못한 쓸모없는 일들을 향한 자기만의 의미부여와 법칙 만들기, 그리고 그 법칙을 준수해가는 수행성은 논리에 대한 끊임없는 부정(negation)의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우금화_사랑해 계단 I Love Stair_단채널 영상_00:13:22_2013
우금화_사랑해 계단 I Love Stair_단채널 영상_00:13:22_2013

왜냐고 묻는다면 딱히 답도 없는 이 몰두가 과열된 세계를 향한 작가들만의 무게 덜기이고 균형감을 획득하는 생존의 전략이다. 우금화에게 소급하여 말하자면 이 수행성은 작업실도, 작업비도 마뜩치 않은 조건에서 책상 하나만이라도 온전히 있기를, 또 작가로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시간을 확보해 내기를 갈급하는 과정에서 도출되었다. 수행성은 세상의 정도에 비춰볼 때엔 비논리적이게만 여겨지는 것들을 낳았다. 도저한 과잉과 결핍에 평균치를 내는 것이 범속함으로의 견인이라면 요철과 괴이함을 지속시키고 확대해가는 것은 작가의 몫이다. 작가는 일상으로부터도 소외되고 예술로부터도 거리가 조장될 수밖에 없었던 나날을 특정 타자나 대상으로부터 위안 얻는 게 아닌, 순전한 운신으로 버텼다. 그리고 이제 '사랑해'라고 발화하는데 이 발화 자체의 뜨겁고 묵직함이 이 전시에 함께 하는 이들에게 뻐근하게 느껴지기를 바란다. 우리가 이 전시에서 어떤 균형감을 감지한다면 거기에는 그만큼 무게를 짊어진 작가의 몫이 숨어 있는 것이니까. ■ 김현주

Vol.20130908h | 우금화展 / WOOKEUMHWA / 禹錦嬅 / installation.vid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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