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3_0906_금요일_07:00pm
후원 / 인천문화재단
관람시간 / 12:30pm~07:30pm / 월요일 휴관
사진공간 배다리 갤러리 BAEDARI PHOTO GALLARY 인천시 동구 금곡동 14-10번지 Tel. 070.4412.0897 www.photobaedari.co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한점갤러리 인천시 동구 창영동 15-7번지 Tel. 070.8227.0857
배다리 모닝글로리 인천시 동구 금곡동 33번지
감각, 실존, 건축을 향한 시선 ● 그 공기 속에는 한낮의 생활에서 뿜어진 냄새가, 질병이, 날숨과 여러 해 동안 밴 연기 냄새, 겨드랑이에서 배어나와 옷을 무겁게 적시는 땀내, 퀴퀴한 입 냄새, 더위에 지친 발 고린내가 스며 있었다. 지독한 오줌 냄새, 눈을 찌르는 듯한 그을음, 거무스름한 감자를 삶을 때 나는 냄새, 오래된 돼지비계에서 나오는 무겁고 미끌거리는 냄새가 섞여 있었고, 엄마의 돌봄을 받지 못한 젖먹이 아이에게서 나는 달콤하고 시큼한 냄새, 학교 가는 아이들의 두려움 섞인 냄새, 그리고 성년기 남자아이들의 침대에서 나는 훅훅한 냄새가 스며 있었다.(라이너 마리아 릴케, 『말테의 수기』 중에서) ●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헐린 집에 스민 지난 삶의 이미지를 생생하게 묘사한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지문은 곧장 작가 장수선이 이 책에 담고자 한 유령도시-인천 가정동의 주거단지를 철거하는 현장 -의 이미지와 중첩된다. 수술대 위에서 배를 가른 환자의 환부를 보여주듯 시간이 정지된 가정동 일대의 철거 현장은 개발 광풍에 휩쓸린 도시의 어두운 그림자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수십 년 한 장소에서 멀쩡히 살아가던 주민과 세입자들을 이주 보상금이라는 명목으로 몰아내고 기념비성 도시화의 새판을 짜기 위한 정략적 도시 비전은 시민사회의 동의를 구하는 수순을 무시한 도시개발이 얼마나 무모하고 위험한지 보여주는 극단적 사례다. 개발 사업이 정지된 시간을 기록해 온 작가의 작업은 이 시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일상의 바깥 공간에 대한 시선의 포착이며, 동시에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일상의 이면에 대한 내러티브(narrative)를 재구축한다. 나는 작가가 현장에서 맡았을 냄새며, 들었을 소리며, 만졌을 사물의 촉감에 대한 공간의 이야기를, 현상학에 기반하여 감각의 건축을 설파하고 있는 유하니 팔라스마의 시선을 빌려 이야기하고자 한다.
냄새로 느끼다 ● 폐가의 안팎을 드나드는 사진은 인간이 떠나버린 공간을 보여준다. 시각 자료를 통해서 우리는 기억 속에 잠재된 퀴퀴하고 비릿한 곰팡이 냄새를 길어 올린다. 저마다 조금씩 다른 냄새의 기억은 각각의 사진 속 공간에 대한 서로 다른 이야기로 채워지게 마련이다. 예술 작품을 경험하는 것은 작품과 관찰자 사이의 은밀한 대화라고 했던가. 망막에 의존한 기억만으로 공간의 기억을 온전하게 복원할 수 없다. 바로 그 자리에 특정한 냄새를 기억하는 무의식에 의지하여 시각 자료가 전달하고 있는 실체와 마주하게 되는데 당장 일차적으로 다가오는 곰팡이 냄새가, 그다음 각각의 방에서 뿜어져 나오는 일상의 냄새가 그러하다. 후각으로 사진 속 공간을 구분하여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은 다시 우리가 현재 살아가는 집과 마을, 도시의 영역 각각이 동일한 방법으로 기억될 이유가 있음을 환기한다. ● 소리로 그리다 아파트 지하실. 청소부 아주머니와 경비원 아저씨들이 거주하던 삶의 흔적. 이곳에서 저들이 틈 내어 귀 기울였을 라디오, 그 낡은 기기에서 낯익은 가요가 들려온다. 드라이 에어리어로 비추는 햇빛이 얇고 길게 드리운 지하실 방은 어둡지만 안온하다. 청소 도구가 가지런히 놓여 있는 한편으로 입주자들이 쓰다가 버린 식탁, 의자, 침대를 들여다 놓은 저들의 생활공간이 속닥대는 소리로 채워진다. 작가는 폐허가 된 아파트 지하 주차장의 바닥이 물로 채워진 채 겨울을 맞아 통째로 얼음판으로 변하는 시간까지 수차례 현장을 오간다. 그때, 발에 채는 물소리를 들었던 기억과 얼음판 위를 미끄러지며 사람과 자동차가 떠난 빈자리에서 공명되는 특별한 청각을 사각寫角에 담아 놓았다. 작가의 사진은 우리에게 시각적 형체만을 전달하지만 우리는 사진 속에서 녹음된 음향을 감지하며 공간을 이해하고 판단하는 것이다. "폐허가 된 마을과 공간에서 청각적 경험은 작가의 사진 속에 기록된 시각적 경험을 강화하고 풍성하게 만든다."(유하니 팔라스마)
기억하고 상상하다 ● 작가는 도시화의 네거티브(negative) 현상을 화면에 담는 것에(그것은 종종 흑백사진으로 대상이 그로테스크하게 재조명되면서 개개인의 기억의 일단에 스며들어 낭만적 느낌을 강제하기도 하는데) 대비하여 촌스런 색채로 꾸며진 생활공간의 표면과 속살을 여과 없이 드러내어 상상의 기시감이 지닐 기억의 오류를 경계한다. 작가 특유의 거실 천장天障화를 기록한 지난 작업, 『높은곳-카타콤베』는 가정동 현장에서도 간간이 모습을 드러낸다. 일그러진 삶의 터전에 깃든 세속성을 탐닉하는 그의 작가정신은 대상을 무감각하게 간과하는 일상의 허술한 시선을 비판적으로 사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감각적이며 교훈적이다. 이제 이 도시는 시각적 이미지만으로 기억되거나, 몇몇 저술 속의 지문으로만 존재하는 공간으로 전락하였다. 특별히 이 지역을 웅변하는 개념과 형태가 없었던 만큼 이 도시의 기억이 사람들의 기억속에 온전히 자리 잡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도시화의 상처로 치부되기엔 파헤쳐진 지역의 부위가 너무 넓고 심각하다. 작가의 사진은 도시화의 그늘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기에 앞서 자료화의 목표로부터 출발한 것이겠지만(이 사진 작업에 담긴 촌스럽고, 천박하고, 어설퍼 보이는 집과 장소의 기억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 일상적 도시 풍경의 조악함이 먼저 눈에 와 닿는 게 사실이지만) 그 안에서 꿈틀거리는 생명력 있는 실존적 은유들을 찾아내어 그 시대 그 장소의 삶과 생각들을 반추하게 한다는 점에서 잃어버린 생활문화의 질서를 환기할 뿐만 아니라 체화된 기억이 공간과 건축에 얼마나 중요한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실존주의적 작가의 감각, 그의 사진술 ● 작가는 1소점 투시도법에 근거하여 대상이 지닌 물질적이고 공간적인 가치를 관찰자(보다 정확히는 거주자)의 눈높이에서 재구성한다. 각각의 공간을 구성하고 있는 생활소품의 흔적, 파손된 부엌 장식장, 가구마다 다른 벽지의 패턴, 거울과 낙서 등으로 장식되거나 훼손된 벽면 등은 이들 하나하나가 개별 주거의 일상을 형성하는 주요 소재이며, 동시에 그 속에서 살아간 인간의 접촉성을 환유한다는 면에서 사진은 왜곡을 자제하고 각 부위별 디테일의 처리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1소점 효과는 화면 중앙의 소점을 향한 운동성을 유지한 채 건축 평면의 변형감을 최소화할 수 있어서 비교적 비례, 균형, 크기 등을 단정하게 보여줄 수 있는 게 장점이다. 집의 외부와 내부 공간에서 정지된 시간에 봉인된 각각의 집에 대한 경험을 구조화하기 위하여 작가의 작업은 인간 행위의 배경으로 존재했던 공간을 동종의 기능실과 건축을 이루는 요소들의 단위로 구분한 채 1소점의 방식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감각적인 사진술에 기대어 가정동의 기록은 삶이 반영된 공간의 가치를 되돌아보게 한다. 가정동의 공간적, 상황적 실존을 기록한 작가의 사진집은, 무엇보다 생명과 공간이 그 생성과 소멸을 동일시하여 바라볼 이유가 있음을 단정적으로 발언하고 있다. 곧 인간의 삶과 그 삶이 이루어진 공간을 동일시하는 태도에서 실존주의자로서 작가의 모습이 드러난다. 인간의 감각기관에 호소하며 온몸으로 세상을 경험케 하는 작가의 사진 작법이 소비사회로 치닫는 현금의 시류-도시 공간과 건축이 통째로 소비재로 전락하고 있는 세태-를 견제하며 건축과 도시의 진정성에 대한 탐문의 한 방법으로 오롯이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 삶의 진정성과 건축의 진정성이 다르지 않기에, 인간의 영혼이 물질화된 현장을 끊임없이 고발하고 사유하는 그의 작업 자체가 숭고한 사건이 되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해본다. "진실한 건축적 경험은 건물의 구축적(tectonic) 언어에 근거하며 또한 감각에 이르기 위해 일어나는 행동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바탕으로 일어난다. 우리는 몸 전체를 가지고 세계를 보고, 만지고, 듣고 측정한다. 우리의 거주지는 우리 몸, 기억, 정체성의 피난처이다."(유하니 팔라스마) ■ 전진삼
슬펐다. 기이했다. 무서웠다. 그런데도, 끌렸다. 거기에 진실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인천시 서구 가정동에서 근 2년을 보냈다. 낮에도 사람이 없어 무서웠고ㅡ사람이 있어도 무서웠다. 결혼식장, 은행, 찜질방, 학원 건물, 한방의원, 15층 아파트 등등. 루원시티라는 가본 적 없는 낙원은 끝내 자본의 시대에서 좌초했다. 꿈이었던 루원시티는 이제 한갓 유령으로 가정동을 배회한다. 마지막 철거를 앞둔 몇 채의 건물들이 피뢰침처럼 지상으로 삐죽하게 튀어나와 있다. (2014년 4월까지 남은 건물 모두 영영 허공으로 죽을 예정이다.) ● 보았다. 공간을. 집합주택인 빌라와 맨션의 건물과 건물 사이를. 꽉 밀폐된 외부를. 기적처럼 그곳으로 햇빛이 드나들었다. 그 공간은 폐허이면서, 동시에 유적지였다. 어떻게 21세기에 ? 사람이 버린 공간에서 환멸과 우울이 따라다녔다. 특히나 반쯤 땅에 묻힌 반지하에 이르렀을 때, 나는 해머로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추락하고 있었다. 다른 세계로, 지구의 바깥으로 떠밀려 들어갔다. 그곳은 삶과 죽음이란 구분을 무너뜨렸고, 문은 제 구실을 잃고 허공에 초현실적으로 떠 있었고, 곰팡이는 몇 년째 확산되어갔고, 지난 비가 빠지지 않아 바닥에 물이 고여 있었다. 지금 이 땅을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보는 것처럼 시간도, 여기에 있을 수 없는 것처럼 공간도 혼란스러웠다. 시퍼런 바람이 우주로 데리고 갈 것만 같았다. ■ 장수선
Vol.20130906a | 장수선展 / JANGSUSUN / 張修瑄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