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3_0904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7:00pm
가회동60 GAHOEDONG60 서울 종로구 가회동 60번지 Tel. +82.2.3673.0585 www.gahoedong60.com
돌 하나를 주워온다. 돌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 돌에서 대지를 느끼고, 그 대지에 피어나는 생(生)을 마주한다. 가만히 있는듯하지만 살아있다는 증거의 생을 마주하게 될 때의 감동이 있다. 이렇게 온전한 하나의 집적된 덩어리에서 오는 감동을 평평하게 펼쳐보기란 쉽지 않다.
비단 돌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그럴 것 이다. 살아가면서 마주하게 되는 모든 것들에는 그것만의 집적이 있고 호흡이 있다. 어느 것 하나 쉬이 생겨난 것은 없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그 고유의 가치를 지닐 수 있는 이유는 아마도 그것들만의 수많은 집적(集積)이 있어서 일 것이다. 어느 누가 감히 그것을 판단할 수 있을까.
작품에서 보이는 것은 돌덩어리이자 땅덩어리, 즉 대지(大地)이다. 여러 돌과 흙으로 구성된 대지는 우리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억겁의 세월 동안의 빛과 바람, 물의 집적을 한가득 품고 있다. 그 집적을 생(生)으로 피워낸 것이 바로 풀이다. 작품에 표현된 '돌에서 피어난 이끼'는 미시적 관점으로 본 '대지의 풀'인 것이다.
돌에 핀 이끼는 '태점(苔點)'으로 표현했다. 여기서 태점이란 산이나 바위, 땅의 묘사나 나무줄기에 난 이끼를 나타낼 때 쓰는 작은 점으로 동양화에서 주로 쓰이는 기법의 용어이다. 본래 태점의 태(苔)가 '이끼'라는 뜻이기는 하나, 아이 밸 태(胎)의 '태'로 쓴다면 본인이 표현하고자 하는 생의 집적의 결과로서의 그 의미와 더 부합될 수 있겠다. 수많은 집적의 결과로 생명이 새로 움트는 점인 태점(胎點)을 돌에 표현한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 집적의 결과는 바로 생(生)이다.
작업을 하는 과정 또한 집적이다. '흙' 은 먹과 콩테 등 여러 안료로 표현한다. 이 안료들은 식물을 태운 그을음과 흑연, 목탄 등의 원료광물에서 나온다. 이렇게 땅으로부터 나온 재료를 사용하여 '돌-대지' 를 표현한다. 이것을 종이에 접착시키기 위해 물과 함께 사용하며 여러 번 칠하고 말리는 과정에서 햇빛과 바람이 필요하다. 이 과정을 계속 반복한다. 마치 자기수련과도 같다. 칠하고 말리고, 또 덧칠하고 말리고를 수없이 반복하다보면 집적(集積)이 되고 있는 것이다. 억만년 역사의 집적을 한아름 안고 있는 땅덩어리처럼.
'땅, 불, 바람, 물, 마음' 이 다섯 가지 힘이 하나로 모이면 캡틴 플래닛이 탄생된다는 예전 만화노래에서처럼 땅과 불과 바람과 물이 가득 담겨있는 '돌'을 바라보다가 본인의 마음을 담아 하나의 'planet'으로 탄생시켜 보았다. planet, 즉 행성인 지구가 되려면 생(生)이 필요하고, 그 생을 피우기 위해선 무수한 집적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 명백한 사실을 알면서도, 살아가면서 쌓고 기다리는 과정자체를 너무나 쉽게 무시하기도 한다. 그 무수한 집적이 밀집된 덩어리를 돌에 기인하여 형상화한 것이 나의 작품이다. 그 집적을 위한 과정에서 오는 느림의 가치를, 너무나도 빠르게 움직이는 지금 이 혼란의 시대에 서서 말해보려는 것이다.
현재 나라는 존재도 그렇다. 나의 부모, 그 부모의 부모, 그 부모의 조상, 또 그 조상 위의 조상, 이렇게 끝없이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나란 존재는 한 순간에 생겨난 생이 아니라는 사실에 새삼 놀라게 되고, 동시에 나의 존재가 가진 시간과 공간의 집적에 숙연해진다. ● 모두가 그렇다. 돌이 그렇다. 이끼가 그렇다. 꽃이 그렇다. 나무가 그렇다. 땅이 그렇다. 내가 그렇고, 네가 그렇고, 우리가 그렇다. 각자가 장소와 시간이 축적된 것의 아름다운 발현이며 우리는 또 그 과정 중에 있다. 이 세상의 대지 위에서 어떠한 집적이 되어 또다시 어떤 생(生)을 피워낼지 아무도 모른다. ■ 정은지
Vol.20130904d | 정은지展 / CHONGEUNCHI / 鄭恩至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