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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3_0904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리서울 갤러리 LEESEOUL GALLERY 서울 종로구 인사동 23-2번지 Tel. +82.2.720.0319 www.leeseoul.com
감추어진 통로 찾기 ● 나의 작업은 조작된 메시지로 만들어진 대상이 현실화되는 하이테크 미디어 환경과 스피드 문화에 대해 비판한다는 측면에서 폴 비릴리오(Paul Virilio)의 관점과 공유점이 있다. 그러나 나에게 무엇보다 절실한 것은 현대 문명과 문화의 허구적 현상에 대해 그 이면을 영적으로 통찰할 수 있는 본질적 인식과 작업방식이며 이는 자연과학과 인문학을 포괄하는 예술과 신앙의 통합을 통해 근원적 생명의 실체성을 구현하는 문제로 귀결된다. 근원적 생명성에 대한 조형적 탐구는 일차적으로 자연현상과 인간과의 상호작용에 대한 관심에서부터 시작되어 점차 미시 물리학적 원리를 동반한 상상력을 영적감성으로 표출하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나는 현대의 입자물리학에서 밝혀진 입자와 파동의 상호적 현상에 흥미를 갖고 상상적 다차원의 시공간을 유영하면서 가능태와 현실태의 상관성을 물감에 녹여 화폭에 풀어놓는다. 존재와 세계의 만남에서 현실태가 생기고 그 나머지인 가능태가 현실태와 마주칠 수 있는 접점에서 나의 예술은 작동한다. 나의 의식은 물질과 정신의 경계에서 무의식과 화학반응을 일으키며 수많은 입자들을 파생시키는데 이것들의 운동과 속도, 궤적이 파동으로 변하여 생명 에너지가 되는 작업 과정이 반복되면서 나만의 공간이 펼쳐진다. 이때 나의 내면에서 느껴지는 은밀한 발산적 진동이 절대적 생명성의 본질로 수렴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인간은 미세한 원자이자 세포로 이루어진 생리학적 존재로서, 작은 세포 하나하나조차 엄청나게 복잡한 구조와 질서에 의해 경이로운 생명 에너지를 뿜어낸다. 또한 인간을 비롯한 우주만물은 양자로 이루어진 에너지 덩어리이고,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사실을 인식하면서, 나는 입자와 파동의 성질을 동시에 가진 양자가 관찰자의 의식에 영향을 받는다는'관찰자 효과'를 바탕으로 물질과 정신이 만나는 통로를 작품 속에 상정해 본다. 이러한 통로는 본질적 생명으로 연결된 숨겨진 영적 차원으로서 비가시적 영역이지만 작업을 통하여 시각화되는 과정에서 대부분 내장기관과 유사한 모양의 꿈틀대는 유기체적 이미지로 나타나며 간혹 매우 복잡한 혈관이나 기혈도와 같은 이미지로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 3차원 공간을 통해 다차원의 통로가 문득문득 열리기도 하는데 이는 그림 속에서 개미의 동선이나 물결의 흔적 혹은 하늘에서 보는 세상의 모든 길들, 심지어 아파트 설계도나 지하철 노선도를 통하여 표출된다. 화면상에서 이와 같은 다각적 통로의 이미지들은 주로 옷의 형상을 중심으로 연결되어 상호작용을 하는데 이 옷은 인간환경의 총체적 시스템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마치 생명의 주요소인 피의 순환에서 주진동자 역할을 하는 심장과 흡사한 것이다. 인간도 우주를 닮아 진동의 특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일리야 프리고진(IIya pregogine)에 따르면 생명이란 비평형화학 시스템이며, 요동하는 자기조직화를 통해 생명현상을 유지해 나간다고 한다. 화학반응뿐만 아니라, 60조개의 세포들 모두 세포막에 있는 작은 채널들을 열고 닫는 과정에서 세포막전위의 진동을 유발하는데, 이러한 진동에 의한 공명현상으로 생명체의 자기조직화가 더욱 원활해지는 것이다. 다양한 진동자가 있는 시스템에서는 주진동자가 동조의 기본 리듬이 된다는 크리스티안 휴진의 연구에서 알 수 있듯이 심장은 전자기적으로 혈액펌핑에 의한 물질파동을 통해 우리 인체에 강력한 리듬을 선도하는 주진동자인 것이다.
그러나 양날의 검과 같은 인간의 문명 및 문화 시스템에 대한 형상화이기도 한 화면 속의 옷은 심장처럼 주 진동자로서 화려한 인류발전을 이끈 주인공이라 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자가당착적 독을 지닌 허구적 시스템이라는 것에 나의 작업은 주목한다. 또한 고도로 지능화된 컴퓨터가 마치 생명체처럼 자율적으로 생성·성장을 하며 교활하게 변화한다는 점에 착안하여, 옷을 의사 자연물로 보고 그 허상적 이미지를 알맹이가 없는 속빈 유기적 복합구조물로 설정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옷의 허상적 현실 이면에 숨겨진 비밀스런 공간을 재발견하는 순간 무가치한 빈 껍질은 영적 통로로 변화되는 신기한 반전 현상이 일어난다. 있음은 없음이 되고 이 없음이 다시 있음으로 바뀌는 것이다. 이것은 허무와 절망에서 구원과 희망으로 전환되는 매우 의미심장한 영적 도약으로서 나의 작업을 이해하는 핵심요소이다. 이러한 다중적 현상과 관점은 화면에서 중첩적으로 제시되어 복잡 미묘하게 얽히고설킨 카오스적 파동 공간으로 펼쳐지며, 그 속에 잠재화된 가능태로서의 통로는 관찰자의 의지와 믿음에 따라 입자화된 가시적 현실태로서 점선의 통로로 드러나게 된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 했듯 통로로 형상화된 옷의 의미는 바람의 실상화이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만들어내는 증거라 할 수 있겠다. 즉 옷은 매 순간의 관점에 따라 끊임없이 만나는 물질과 영혼의 교차로이며 나는 이 사이를 진동하는 생명의 입자인 것이다. 화면 속의 실존적 현실에서 펼쳐지는 이러한 육과 영의 관계는 전반에 흐르는 유동적 에너지에 따라 꿈틀대는 근육질 동물성의 이미지와 이에 상호작용하는 옷의 이미지를 통하여 그 관계가 표출되기도 한다. 나의 작품에서 옷이라는 것은 동굴 밖에서 바라보는 플라톤의 동굴 속 그림자이거나 영적 메시지로 충만한 맥루한의 미디어일 수도 있다. 이와 동시에 궁극적인 목적을 일깨우는 현실적 목표로서의 기능을 수반한, 내가 지나가야할 통로이기도 하다.
한편, 극소 입자를 확대한 이미지가 또 하나의 감추어진 통로에 대한 메타포로 등장하는데 이는 초끈이론적 상상력에서 추출된 구불구불한 유기적 선들과 진동하는 점선으로 이루어진 복합적 이미지이다. 가장 미시적이면서 동시에 우주적인 구조체인 이것은 영적 방향성을 제시하는 더욱 정교한 차원을 암시한다. 이렇듯 시공을 초월한 본질과 만나는 통로를 모색하기 위해 나는 오늘도 텅 빈 캔버스 앞에서 진동하는 입자가 되어 미세한 꿈틀거림 하나하나를 포착하려한다. ■ 전성규
Vol.20130904b | 전성규展 / JEONSEONGKYOO / 全成圭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