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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3_0903_화요일_04:00pm
후원 / 양구군 기획 / 엄선미 진행 / 김재희_김지은
관람시간 / 09:00am~06:00pm / 월~목요일 휴관
양구군립박수근미술관 Park Soo Keun Museum in Yanggu County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 박수근로 265-15(정림리 131-1번지) Tel. +82.33.480.2655 www.parksookeun.or.kr
자그마치 30년이다. 충청남도 청양군 비봉면 한술마을에 살면서 한시도 고향을 떠나본 적이 없는 시울이는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 정림리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시냇물에서 발가벗은 몸으로 수영하고 머리에 꽃을 꽂은 채 산세를 뛰어놀며 함께 자라온 4살 터울의 건넛집 정언니가 양구시외버스 터미널 부근 중앙시장에 좋은 자리가 났다고 하면서 다방을 차릴 것이라고 말했다. 민간인보다 군인이 많다는 양구라면 소위 티켓을 끊는 물장사일 터. 본인의 이름을 이용하여 '정다방'이란다. 처음에 자리를 잡으려면 직접 여기저기를 다녀야 할 것 같다며 시울에게 함께 양구로 옮겨가는 것이 어떻겠냐고, 다방에 머무르면서 전화도 받는 일과 주방 정리를 부탁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토록 원하던 글쓰기를 일하면서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언니의 유혹에 시울이는 끝내 못이기는 척 넘어갔다. 섭섭하지 않게 챙겨주겠다는 돈 때문이기도 했지만.
대낮의 양구시외버스터미널이다. 왜 이렇게 정신이 나간 듯 보이는 아저씨들이 많은 걸까? 실내에서 담배를 태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쉬지 않고 손짓을 하며 윙크를 하기도 했다. 한 아저씨가 자신의 성기를 쥐고 씩 웃어 보이는 바람에 시울은 인상을 찌푸리며 금세 그 곳을 벗어났다. 중국집, 당구장, 볼링장, 다방, 순대국밥집... 남초 지역이라는 생각이 든다. 군인마트를 지나 뜨거운 햇볕 아래를 조금 걸으니 중앙시장이다. 시장의 끄트머리 한 편에 위치하고 있는 곳에 간소하게 손으로 쓱쓱 글을 적은 '정다방'이라는 입간판이 서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아아, 이 냄새들... 페인트, 신나, 오래된 가죽 소파에 찌들어버린 담배냄새가 머리를 띵 하게 했다. 가방을 프런트 부근에 대충 던져놓고 다방을 나섰다.
미적지근한 바람을 옆구리에 낀 채 몇 개의 마트, 몇 개의 식당, 몇 개의 임대건물을 지나 정림교를 건너 정림리를 걷는다. 윗도리의 뒷부분이 훤히 파여 자줏빛 브래지어가 그대로 노출이 되어있는 옷을 입은 시울이 혼자 길을 걷고 있노라니 지나가던 군용트럭이 속도를 줄인다. 얼굴을 돌리지 않은 채 딱딱하게 앉아있는 운전병과는 달리 그녀와 애써 눈을 한번 마주치려고 고개를 기웃대던 중사는 시울과 눈이 마주치자 빠르게 윙크를 했다. 시울이가 싱긋 웃자 중사는 파안대소를 했고, 이내 트럭은 그녀를 스쳐 지나갔다. 또 다른 군용트럭이 지나간다. 열댓 명의 군인들이 뒷좌석에 앉아서 서로를 마주보고 있었다. 트럭의 속도 때문에 아스팔트의 열기가 훅 올라와 시울의 몸을 감쌌다.
양구는 낮은 집들이 드문드문 위치하고 있었다. 곳곳의 공사 때문에 여기 저기 땅을 파놓은지라 군데군데 흩어져있는 깨진 보도블록 조각들이 위험해보여 피해서 걸었다. 더위 때문에 수수, 옥수수, 강아지풀 따위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고 바싹 말라버린 각종 잎사귀들이 아무렇게나 바닥에서 굴러다녀 맨발로 슬리퍼를 신고 있는 발가락 사이에 자꾸 끼었다. 발을 허공에 탈탈 털면서 계속 걷는다. 창문이 깨진 채 비어있는 집이 두어 채 있는데 그런 집 곁에는 버려진 공산품의 잔해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옷걸이, 부탄가스의 뚜껑, 부서진 액자... 강원주류 옆에는 깨진 술병들이 반짝이면서 바닥에 널려있었고, 건강원 옆에는 가축들의 똥들이 한가득했다. 높은 기온 속의 분뇨냄새는 고역이다.
시울이는 걷고 또 걸었다. 30년 동안 살았던 고향을 떠나 계획하지도 않았던 생판 모르는 곳으로 옮겨오게 되니 기묘한 기분에 속이 울렁거렸다. 환경적 변화에 익숙지 않아서일까? 아직도 확신이 들지 않는다. 뒤죽박죽인 심신으로 햇빛 아래를 쉬지 않고 걸으니, 땀이 뻘 뻘 나고 입술이 바짝 타는 느낌이다. 몸속을 냉기로 훑고 싶은 욕망에 구멍가게에서 차가운 물을 사서 벌컥벌컥 들이킨다. 몸의 안과 밖이 온통 물투성이다. 문득 슬쩍 눈웃음을 치던 낯선 남성의 온기가 궁금해진다. ■ 한석경
Vol.20130903d | 한석경展 / HANSEOKKYUNG / 韓碩璟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