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오세인_이원경_김동희_최세경 한바라시_장영환_이선미_김민정
주최 / 생태교통 수원 2013 조직위원회 주관 / 씨드 갤러리 기획 / 이빛나
수원시 팔달구 화서문로_신풍로 일대
#1 ● 『행궁발수신자부담9프로젝트』는 '2013 생태교통 수원 페스티벌' 한켠에서 '생태'라는 말 없이 '생태'를 증언하는 저항적 수행이다. 수원시는 행궁동 옛길 위에서 '생태-교통'이라는 친환경적 슬로건아래 그들의 질서 속으로 생태를 통합시켰다. 보행자를 위한 도로는 대리석으로 깔렸고, 상점의 특성상 함부로 바꿀 수 없는 간판들은 미관을 위해 내려져야 했으며, 급작스레 심은 소나무 가로수는 그늘이 앙상하다. 실상 '생태-교통'은 9월 한 달간 교통의 불편을 감수하고 '느리게 살기'를 통해 자본주의 사회의 증식되는 욕구를 역류하여 살아보고자 계획된 것이다. 그러나 그 '생태'를 실현하기 위한 과정은 '생태'의 기호들을 배치하는 것으로 행궁동의 공간과 속도를 소멸시키며 생경한 3D 입체 벽화, 발랄한 서체의 일률적인 간판 위에 기입되었다. 그러한 '생태'를 향한 이질적인 욕망은 생태의 몸으로 생태를 잠식시킨다. ● 이러한 맥락에서『행궁발수신자부담9프로젝트』는 '생태-교통'을 위한 볼거리(작품)를 제공하는 대신 말 걸기(행위)를 이어가며(말 걸기- 독백- 대화의 과정을 같이 겪는다) 잠시 "생태"가 지나간(갈) 행궁동 옛길을 다시 쓴다. 욕망과 결핍으로 채워진 그 자리에는 삶의 감정을 헤아리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단순히 이동의 물질적 매개에 불과하지 않은 그곳에 멈춰 서서 지역민의 망실된 목소리와 접맥하는 것이다. 이방인(작가)과 지역민 사이의 대화는 더듬거리고 비틀대면서 우발적으로 접속되고 단절된 채 유지된다. 어디서든 시작하고 아무데서나 끝이 난다. 삶의 형태이고 관계의 무늬일 것이다. 그리고 그 '말'들은 흐르고, 넘치고, 횡단하며 거리의 풍경이 된다.
이렇게 행궁동 거리 위에 놓인 아홉 개의(작가 여덟+ 기획자 하나) 메시지는 명확한 수신자와 발신자가 지정되지 않는다. 누구든 수신자가 될 수 있으며, 발신자가 보낸 메시지를 본인이 되받으며 수신자로 전환될 수도 있다. 무수한 지점에서 뜻밖의 발/수신자를 기다리는 본 프로젝트는 조화를 위한 배제적인 소통이 아니라 지금-여기의 어긋남을 마주하려는 불편한 요청이다. 체계 안에서 작동시킨 "생태"의 시속으로부터 감속하려는 사유의 결실이다.
#2 꽃그늘 아래서 웅성거리기 ● 오세인 작가는 행궁동 골목에 버려진 물건들, 스러져가는 건물들에서 소리를 채집하여 동우 꽃집으로 가져온다. 음표로도 변환할 수 없는 그 소리를 작가는 가만가만 어루만진다. 메시지의 전달보다 발성에 집중된 소리의 중첩은 무엇도 소외되지 않았음을 증언하며, 상징체계 안에서 통용되는 의미작용을 비껴간다. 꽃집 유리창에 매달린 여러 개의 소형 스피커들은 그 소리에 몸을 입힌다. 희미하게 수렴되다 '쏴아-쏴아' 하며 밖으로 퍼지는 소리는 동우 꽃집 안에 있는 식물들의 심호흡 같다. 순간적으로 보이지 않던 존재들이 그림자에 실려 수초처럼 일렁인다. 미세한 개체의 파동이 그림자로 기억되는 것이다. ● 그런데 유리창에 소형 스피커를 마주하고 걸려있는 사진들이 보인다. 꽃집 아저씨의 풍경 사진들이다. 인화까지 직접 한 그 사진들은 아저씨의 기억을 말하는 방식이며, 우연히 작가에게 드러낸 수줍은 자랑 같은 고백이다. 자신을 "약자"라 칭하는 자조적인 말 가운데 피로한 삶의 흔적을 덜어내기 위한 여로인 듯하다. 투명한 유리벽을 맞대고 희미한 두 울림이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한다.
#3 시간을 함께 앓기 ● 이원경 작가는 예순을 넘긴 화성옥 아주머니의 생을 걸고 시작한 밥벌이의 고단함부터 "다 정리하고 떠나고 싶다"는 반복적인 말까지 촘촘히 회고한다. 어스름녘의 착잡함 마냥 어찌할 수 없는 시간 앞에서 작가는 아주머니의 부동의 세월을 철사로 뜨개질한다. ● 자신의 이야기 안에 정작 자신은 부재한 화성옥 아주머니의 서사는 무기력하다. 숨기고 꾸미지 않는 고백은 "얘기해줄 게 없다" 하면서도 온갖 이야기들이 겹겹이 얹힌다. 망각 속으로 폐기했던 순간들이 툭 터져 나올 때마다 이야기는 방향을 잃는다. 그 미세한 흔들림이 작가가 표상해 내는 시간의 문양이다. ● 철사로 뜨개질하는 작가의 작업 또한 지리한 시간의 집적이다. 사방 어디에도 길이 없는 존재의 울림은 차가운 철사의 물성을 타고 손끝의 온기 아래서 구부러진다. 동일한 패턴으로 엮은 듯 보이지만 단 하나의 겹치는 형태도 없이, 떠날 수 없는 시간을 그렇게 살아내고 있다.
#4 간판 앞에 간판 세우기 ● 생태-교통 페스티벌을 위해 시행된 간판사업은 행궁동 골목의 상점들에 유니폼을 입혔다. 단 세 가지 유형으로 '다양성'과 '차이'를 표방하려는 깜찍한 서체의 간판들은 모든 상점을 일반화한다. 시각적 동일성을 탈피하려는 버전임에도 자본제적 시속으로 '생태'를 거스름은 부정할 수 없다. ● 그런데 한솔 건강원 간판 앞으로 삐죽 튀어나온 제4의 간판이 보인다. 투명하고 반짝거리는 그 간판에는 상큼한 레몬의 절단면이 포인트로 새겨져 있다. 그러한 트렌디한 간판은 김동희 작가가 디자인부터 설치까지 외부업체에 맡긴 것이다. 게다가 그는 판매인까지 고용해 건강원 앞에서 좌판을 펼쳐놓고, 9월 한 달 동안 (블루)레모네이드를 판매한다. 이로써 얻어지는 수익으로 작업은 완료된다. 기실 누군가의 '생태 사업'에 가장 일조하면서도 위배되는 아이러니한 결실이다. 완고한 사실에 돌연히 틈입하는 기이한 실속이다.
#5 해우(解憂)하기 ● 최세경 작가는 형제 세탁소 내부에서 천을 끌어와 행궁동 골목 한쪽에 푸른 그늘막을 세운다. 행인이나 세탁물을 맡기러 온 손님들은 그곳에서 잠시 더위를 피할 수 있다. 다른 계절보다 여름날의 세탁업은 더욱 고되다. 세탁물의 오물을 헹궈내고, 스팀열로 구김을 펴는 동안 형제세탁소 내외의 땀구멍은 열렬히 반응한다. 작가는 마침내 청결해지고 곱게 다려진 그 천에 주목한다. 그것은 결핍 뒤에 오는 충만으로 우리가 사는 모습과 닮았다. 바람과 먼지를 한껏 수락하며 때에 따라 적절히 몸을 기울이는 것도 비슷하다. 그렇게 겸허하게 뻗어 올린 천은 행궁동 세설(世說)을 끌어안고 전시 기간 동안 다시 찌들기를 기다린다. 그것은 세탁소 주인의 마음이며 배려이다. '생태-교통' 추진을 통한 유토피아 전략과는 다른 방식이다. 순환(循環)이다.
#6「보:물찯끼」 ● 한바라시 작가는 '생태-교통'에 대한 각기 다른 입장으로 충돌하는 사람들의 '말'을 수집하여 나무 문패에 적어 행궁동 골목 곳곳에 숨겨놓는다. '보물찾기「보:물찯끼」'의 규칙을 따르는 작가의 작업은 "보물"에 해당하는 나무 문패의 위치를 힌트로 제시하는 포스터까지 제작하여(게다가 문패를 찾으면 아이스크림으로 교환해준다) 분쟁과 갈등의 표식을 순환시키려 한다. ● 그러나 작가의 친절한 안내에도 불구하고 그 "보물"들은 간과될 가능성도 포함하고 있다. 불화의 파편들이 실질적인 내용으로 환원되는 순간 감내해야 할 짐은 "우리"를 구축하고 증폭되기 때문이다. "우리"란 때때로 버거운 관계이며, 안주해있던 현 상태의 위치를 옮겨야 하는 불편함이다. 누군가 "보물"을 찾고 그것을 전달하는 행위는 수동적이지만 상호작용의 마찰과 충돌에 기꺼이 자신을 노출시키는 수행은 주체를 가리키는 지표일 수 있다. 보물을 찾자!!
#7 불편한 말 걸기 ● 자본주의로 점철된 질서를 재조직한다는 측면에서 '생태-교통'은 이상적인 실행 프로그램이지만 그 슬로건이 배양한 상인들의 분노는 단순히 무지와 아집으로 치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제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해도 놓인 문맥에서 외떨어지면 '나쁜' 것이 된다. 이 양가적인 이상향은 누구를 위한 것이며 궁극에 무엇일 수 있을까를 질문하며 장영환 작가의 작업을 바라볼 수 있겠다. ● 그의 작업은 '말'의 기의로 '생태-교통'을 유희하며 그것에 관한 판단을 유보한다. 즉 생각을 전달하는 '말(言)'의 기표를 동물 '말(馬)'의 표상에 씌워 '말(言)'을 회전하는 것이다. 때문에 우체통 기능이 내장된 '말(馬)'은 '생태-교통'을 바라보는 지역민들의 '말(言)'을 실어 나르게 된다. 그러한 수집된 지역민들의 '말(言)'은 다시 푯말로 제작되어 임의의 장소에 걸린다. 이곳저곳으로 옮겨지는 생생한 (말의)디테일은 '생태-교통'의 현장 위에서 미묘한 환경의 일부가 된다.
#8 타인의 시선되기 ● 이선미 작가는 '생태-교통'에 대한 '시선'의 응집으로 모뉴멘트를 제작한다. 버려진 안경 렌즈로 작업하는 그녀는 행궁동 골목 중앙에 무수한 익명의 '눈'들을 엮어, 투명하지만 흐리멍덩한 경관을 경험하게 한다. 비슷해 보이는 투명한 안경 렌즈들로 구성된 모뉴멘트는 각기 다른 도수와 두께 때문에 대상의 왜곡은 물론 본래 렌즈의 기능을 잃고 현기증마저 느끼게 만든다. 온몸에 '눈'을 단 채 "생태"의 현장을 목도하는 순간이다. ● 작가는 또한 바닥에 드리우는 안경 렌즈의 그림자에 주목한다. 시간에 따라 변하는 그림자는 그 형태가 매끄럽지는 못하나 오싹하거나 흉하지 않다. 작가는 우리가 모뉴멘트를 통해 세상의 위선과 마주하고 있을 때, 유유히 그림자를 세공한다. 빛과 맞닿아 흔들리는 조화가 아름답다. 그러고 보면, 항시 반대의 것들은 동석해 있는지도 모른다.
#9 실연(失戀)을 실연(實演)하기 ● 김민정 무용가는 줄을 이용해 고립된 내상의 공간들(점집들)을 잇는 퍼포먼스를 한다. 행궁동 골목 안에 점집들은 암묵적으로 배제, 소외를 할당받았다. 실상 무당의 굿은 예술가의 행위와 공명함에도 근대화 속에서 망실되어 일상에서 밀려나 어둡고 침침한 곳에 놓이게 된다. 그러한 '없는 존재'들은 김민정의 퍼포먼스 안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노래와 함께 호명된다. ● 무용가의 몸은 비틀리고 구겨지며 흔들린다. 타자를 재현하여 현시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아픈 '말' 위에서 같이 신음하는 것이다. 이러한 행위 뒤에, 그녀는 천왕 보살집을 중심으로 닫혀있는 점집들을 드나들며 줄로 연결한다. 실뜨기 모습처럼 엉켜있는 그 줄은 점집 내부와 외부의 접선이자 깊이 앓는 몸들(무당과 무용가)의 합선(合線)이다.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는 순간인지도 모른다. 잠시 순환. ■ 이빛나
Vol.20130902g | 행궁발수신자부담9프로젝트-생태교통 수원 2013 커뮤니티아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