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강세황_김규진_김정희_백광훈_서희환_손재형 안평대군_오세창_윤순_이광사_이산해_조광진 조윤형_허목_황기로_김기창_남관_서세옥 오수환_윤명로_윤형근_이강소_이우환_이응노 Andre Aime Rene Masson_A.R.Penck Gerhard Richter_Jean Messagier_Lucio Fontana Makus Lüpertz_Pierre Soulages_Sam Francis
관람시간 / 10:00am~07:00pm / 토요일_11:00am~04:00pm / 일,공휴일 휴관
포스코미술관 POSCO ART MUSEUM 서울 강남구 대치4동 892번지 포스코센터 서관 2층 Tel. +82.2.3457.1665 www.poscoartmuseum.org
20세기 추상미술, 동양의 서예에서 길을 구하다 ● 20세기 초 서구사회는 인류 사상 초유의 잔혹한 전쟁을 치룬 후 그들 자신의 문명과 문화에 대한 깊은 회의와 의심을 품게 되었다. 서구인들이 마주해야 했던 극도의 불안과 좌절, 상실감은 더 이상 자신들의 방식으로 해결 불가능한 것이었기에 새로운 대안을 찾기 시작했고 예술가들 역시 새로운 패러다임의 문화예술을 모색하게 되었다. 이때 동양의 정신철학과 예술에 주목하게 되면서 그들을 더욱 매혹시킨 것이 바로 중국의 서예이다. 서예는 당시 재현적 회화의 한계에 직면했던 모더니즘 화가들에게 새로운 영감의 원천이자 기존 회화의 조형어법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으로 제시되었다. 특히 일군의 현대 미술가들은 동북아의 정신사상인 유불선에 대한 깊은 관심을 토대로 서예의 서법과 회화 원칙을 더욱 깊이 이해하고 이를 자신의 작업에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이른바 '서체주의Calligraphy' 혹은 '서체추상'이 등장한다.
원래 캘리그라피는 글씨나 글자를 아름답게 쓰는 기술로서, 좁게는 '서예'를, 넓게는 활자 이외의 모든 '서체書體'를 이른다. 중국에서 서체는 서예로 통칭되며 글쓰기와 그리기가 조합되어 만난 예술로서 문자적 의미전달 뿐만 아니라 리듬, 선, 구조 등 세 가지 요소를 통해 자형字形의 예술성도 함께 보이고 있다. 또한 선의 굵기, 강약, 먹의 농담을 이용한 표현기법으로 다양한 서체의 변주가 가능하며, 문자의 기세를 더욱 강조하기 위해 무엇보다 여백의 미를 중시한다. 서체추상은 바로 이런 서예의 조형예술적 속성을 보다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완성된 하나의 새로운 추상미술 경향을 의미한다.
서구 작가들이 동양의 서화에서 느끼는 가장 큰 매력은 바로 순간적인 붓놀림으로 단 숨에 완성되는 '시간성', 즉 일필휘지一筆揮之의 에너지이다. 서예는 일획一劃의 예술이다. 한번 쓰면 되돌릴 수도 없고 수정도, 덧칠도 행하지 않는다. 도끼를 찍어 내리듯 종이 위를 가로지르는 필의 흔적, 먹물의 농도와 운필의 속도, 종이에 눌린 붓의 압력 등에 의해 탄생한 서예는 순간적 이고 동적인 예술이다. 서구 추상 화가들은 이런 속도감 어린 용필법을 응용하여 캔버스 화면에 제한된 색의 아크릴 물감을 서양의 브러쉬나 동양의 붓을 이용하여 빠르고 거친 붓놀림으로, 때론 캔버스에 물감을 직접 들이 붇거나 흩뿌려서 행위의 흔적을 남긴다. 정신적 즉흥이 화면 위에 시간의 흔적을 남기며 서체추상은 마치 몸으로 쓰는 서예처럼 행위적 추상의 모습을 드러낸다. 또한 점과 선 혹은 얼룩처럼 만들어진 형상들은 글씨처럼 특정한 의미를 내포하지 않는 일종의 추상서체이며, 색채와 필치에 의한 무한한 표정을 담고 있는 점에서 표현적이기까지 하다.
서예는 선線적인 예술이다. 선은 모필을 통한 완급으로 리듬감을 창출하며 무한한 가변성과 표현성을 두루 갖추고 있다. 획 속에 내재된 율동감을 통해 서예가는 자신의 내면과 주관적 감정을 표출할 수 있다. 서구미술에서 선이 대상 묘사에 있어 단순 윤곽선의 기능을 넘어 주체적이고 자율적 표현을 획득하게 된 것은 이미 로트렉(Henri de Toulouse Lautrec, 1864 ~ 1901)과 고흐(Vincent van Gogh, 1853 ~ 1890)로부터 시작되었다. 하지만 서예의 선과 획에 매료당한 서체추상에 의해 선은 더욱 표현적이고 서체적으로 또한 독립된 부호로서 존재 가능한 개념으로 완전 탈바꿈이 이루어진다. 즉, 회화의 부속물로 간주되던 양상에서 탈피하여 자율적이고 기호화된 선은 단순한 대상의 재현을 넘어 그 자체로서 리듬과 생명력을 가진 동양예술의 획의 개념과 비교 가능하다. 서예가 화면 위에 기운 생동한 우주의 조화를 추구하듯 추상회화가 온전히 회화로서 성립하려면 선, 색, 면 등으로 구성된 형상 속에 생기 어린 질서와 조화가 내재 되어야 한다. 화면의 형식이 형식 그 자체로서 조화로울 뿐만 아니라 나아가 내면적 삶을 더욱 충실하고 풍요롭게 표현할 수 있는 형태가 되어야 한다.
서예추상書藝抽象, 이제부터 읽는 글씨가 아니라 보는 그림 ● 20세기 서양의 추상미술은 일정 부분 동양의 정신이나 서체 양식에 근거하여 발전해 왔다. 특히 서체추상은 전후 기존의 체제와 미학적 현상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타난 경향도 있지만 서구 작가들이 매료되었던 것은 초서적인 빠른 형세의 붓놀림으로 단숨에 완성되는 시간성과 자율적이고 주체적인 선과 획에 대한 관심이다. 서체추상이 동양서예와 다른 점은 비록 서체추상 작품이 단순히 기호화된 형태로 문자추상의 형태를 지녔지만 서예가 지닌 문자로서의 소통의 기능은 갖지 못한 점이다. 서예가 현대 추상미술에서 논의 될 수 있는 근거는 바로 원시적인 그림 문자에서 부호화의 과정을 거쳐 상형문자로, 이후 차츰 간소화되어 정신을 표현하는 순수한 추상적 기호로, 기하학적 형태로 변한 한자에 내재된 추상성 과 대상의 본질적 탐구라는 정신성 때문이다.
외국어보다 낯선 한자를 담은 서예 한 점이나 선과 형, 색 등 조형적 요소만으로 표현된 추상화 한 폭이나 '알기 어려움'은 매 한가지이다. 문자로서의 의미전달이라는 서예 본연의 기능 을 살짝 내려놓는다면, 우리들은 서예를 순수한 예술작품으로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서예가 동 양 정신철학과 문화예술의 정수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대하는 우리들의 태도는 서양인들의 열린 시각과 사뭇 대조적이다. 그저 읽는 글씨 혹은 문자적 의미 해독에 집중하는 대신 순수한 예술 작품의 하나로 대할 필요가 있다. 추상화 역시 서예처럼 감상자와 만나는 순간의 풍경이 그리 다르지 않다.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대상 없이 추상적이고 감각적인 요소로만 표현되는 추상미술 은 작품의 제작과정 뿐만 아니라 감상의 순간에도 '내발적 창조성'을 요구한다. 쉽게 파악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화폭 앞에서 주춤거리며 뒷걸음치지 말자. 서예 한 점과 추상화 한 폭의 알기 어려움, 이제부터 읽는 글씨가 아니라 보는 그림이다. 붓이 노래하고 먹이 춤추는, 필가묵무 筆歌墨舞의 경지를 그냥 만끽하자. ■ 김윤희
Vol.20130822f | 글자, 그림이 되다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