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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3_0824_토요일_03:00pm
관람시간 / 10:00am~09:00pm / 주말,공휴일,8월30일_10:00am~06:00pm
갤러리 팔레 드 서울 gallery palais de seoul 서울 종로구 통의동 6번지 1,2층 Tel. +82.2.730.7707 www.palaisdeseoul.net
조영철의 조각 "이동을 위한 정서적 동물" ● TV 다큐「동물의 왕국」에 자주 등장하는 코끼리는 그 큰 몸집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온순한 성질을 지녔다. 자신보다 몸집이 작은 치타나 사자와 애써 싸우려 하지 않고 자리를 피하며, 다만 자신의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방어를 할 뿐이다. 그렇기에 오래전부터 사람들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어왔는지 모른다. 말 또한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을 위해 조용히 자신들의 네 발을 내어준다. 그들이 애초부터 온순했는지, 혹은 사람들이 그렇게 길들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 동물들을 떠올리면 왠지 모를 친근한 느낌이 든다. 이처럼 애완이 아닌 야생동물과의 교감은 그 동물에 대한 느낌에서부터 출발하는데, 코끼리는 어떤 느낌을 전해주는가? 우리가 흔히 동물원에서 바라보던, 정확히 말해 적정의 안전한 거리를 유지하며 관조하는 코끼리는 더 없이 경이롭고 신기할 뿐이다. 그러나 그 관조의 거리를 없애고 직접 코끼리와 마주한다면 어떻겠는가? 아마 낯선 동물과의 만남에서 오는 긴장감이 생길지도 모른다. 동물과의 교감이 느낌에서 온다고 했는데, 하나의 추상적인 개념인 이 '느낌'의 기운은 개개인의 감성에 따라 다르게 적용될 것이다. 이 느낌은 언제나 주관적이지만 공통의 감각을 공유하기에 간주간적일 수 있다.
작가 조영철은 이 동물에 대한 '느낌'을 예술작품으로 풀어낸다. 그는 스테인리스 스틸 선을 용접하여 커다란 코끼리나 말, 사슴, 무스 등을 만든다. 작품에서 스틸 선은 부드럽게 곡선을 만들어내며, 그가 생각하는 동물의 '느낌'을 잘 전달해준다. 그가 생각하는 '느낌'은 일종의 '정서'로 풀이되는데, 그에게 '정서'란 마음의 감정, 동요를 불러일으키는 기운이 아니라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본성에 다가가는 한 방법을 일컫는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정서에 대한 생각이 조금 더 복잡해진다. 생명체의 본성, 본질에 다가가는 것이 정서와 무슨 연관이 있는가? 우리는 어떤 한사물을 생각할 때 그 사물에 대한 개념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코끼리를 생각할 때 이미 전승되어온 코끼리에 대한 개념과 경험을 통해 받아들여진 개인적인 코끼리에 대한 느낌들이 있을 것이다. 이 느낌들이 모여 하나의 개념이 되고, 이 개념이 바로 우리가 생각하는 코끼리에 대한 '정서'가 된다. 조영철은 이 개개인의 '정서들'이 한 사물의 기운, 본성을 결정짓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정서란 그 사물을 바라보는 주체의 기운과 본성에 관련되어 있다. 그가 이야기하는 야생동물의 정서는 동물을 바라보는 주체인 인간에서부터 출발한다.
1. 인간적인 '정서' ● 조영철의 야생동물은 자신을 바라보는 인간의 정서에 호소한다. 바로 물리적인 동물이 아닌, 사유하는 주체로서의 동물인 자신들을 바라보기를 권유한다. 그것은 단지 동물이 인간과 동등한 위치와 지위를 가진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애완용 동물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조금 비켜서서 동물이 이 세상과 관계 맺고 있는 지점들을 살펴보라는 것이다. 동물은 과연 인간들에게 어떤 정서로 받아들여지기를 원하는가? 그의 작품에서 동물은 기본적으로 자연을 닮아있다.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지 않고 순응하며 살아가는 야생동물들은 인간들을 향해 팔을 뻗는다. 예를 들어「기억을 찾는 사슴」이라는 작품에서 사슴이 자신의 기억을 찾기 위해 머리를 조아리며 화려한 뿔의 우아한 곡선미를 드러내는 지점과 고양이가 자신의 몸을 사람들에게 내어주어 편히 쉬어갈 휴식처를 제공하는 점만 보더라도 그가 만들어낸 동물들이 사람들에게 향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모습이 왜 야생동물의 참모습과 닮아 있는가? 야생동물은 이미 자연의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도시속의 수많은 동물들은 자신의 자연성을 버리고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 도시적으로 진화하고 있다. 그런데 그 진화는 동물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들이 원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동물들은 점점 더 박제화 되어 미술관에 들어가고, 상품으로 팔려나간다. 인간들은 이 야생동물들을 보면서 어떤 정서를 가져야 하는가?
조영철의 야생동물은 동물에 대한 인간의 시선들을 비판하는 것이 아닌, 자연 속 에서 동물과 인간의 조화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자연적 정서를 상기할 것을 권유한다. 자연이라 함은 대 자연의 외형적 모습이 아닌, 도시의 여러 가치들에 때 묻지 않은, 하나의 사물에서 여러 아름다움을 찾아낼 수 있는 감성을 간직한 자연 그대로의 상태를 일컫는다. 이 자연은 태초의 근원으로 되돌아가 생명에 대해 묻는다. 야생동물의 생명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가? 그것은 단지 생물학적인 근원이 아니라 생명을 바라보는 시선들에 대한 질문이다. 자연의 여러 생명들을 바라보면서 그 생명이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 바로 그 지점에서 아름다움의 개념이 피어난다. 그러므로 생명의 근원은 언제나 그 생명의 아름다움을 발견해 내는 것이며, 그것을 예찬함으로써 근원에 대한 물음에 응답하는 것이다. 조영철의 자연스러움의 개념은 이 태초의 아름다움에서 찾을 수 있으며, 야생동물을 바라보는 정서의 의미 또한 이 안에 내포되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야생동물의 것이 아닌, 그들을 바라보는 인간적인 시선에 의한 것이다. 인간이 가장 인간적일 때는 자연으로 되돌아가 자연과 인간 자신을 바라보는 순간이다. 그러므로 야생동물의 정서는 단지 그들의 것이 아닌, 인간들을 위한 "정서"인 것이다.
2. 이동을 향한 네발짐승 ● 조영철은 도시를 돌아다니며 전시를 한다. 그의 전시는 야생동물들을 도시 곳곳에 배치하고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다시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는 과정을 포함한다. 아스팔트 위를 걷고, 파도가 일렁이는 서해안을 걷고, 수풀이 우거진 시골길을 걷는다. 마치 야생동물이 그러하듯이 이 도시에서 이 도시로 유목을 위한 이동을 한다. 그에게 이 "이동"이라는 단어는 아주 중요한 의미로 받아들여지는데, 조각이 권고한 권위를 가진 고체덩어리 조형물에서 벗어나 수많은 이동을 함으로써 관객들과 가볍게 만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동을 통해 조각은 단지 고형물이 아니라 끊임없이 관객들과 이야기하는 살아있는 생명을 뿜어내고 있음을 증명한다.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그의 작품에 앉거나 올라타서 동물들과 교감하며 조각을 살아 숨 쉬게 만든다. 작품의 정서는 자연과 동물, 인간이 서로 만나는 순간 생성된다. 스테인리스 스틸 선으로 제작된 그의 작품은 바깥과 안을 구분하지 않고, 공기를 머금다가 이내 흘려보낸다. 자연의 이치를 닮은 정서,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는 삶을 지향하듯 그의 네발짐승들 하나같이 자연에서의 호흡을 중시하며, 인간들에게 이 호흡을 위해 자연으로 '이동'하라고 말한다. 이렇게 자연의 질서에 자신을 내맡기는 것이 바로 조영철이 추구하고자 하는 야생동물의 정서이자 인간을 위한 '이동'의 미학인 것이다. 그렇기에 네발짐승인 말이 상징화되어 자동차가 되고(「Horse's Imagination」), 보아뱀이 삼킨 코끼리(「코끼리 상자」)가 다시 자신의 몸 안에 전시와 행사를 위한 네모난 공간을 마련하게 되는 것이다.
야생동물의 이동이 예술을 향한 정서적 이동으로 변화하는 것은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이동을 통해 서서히 바뀌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동은 단지 야생동물의 경우에서처럼 자신의 생명유지를 위한 이동이 아니라 사물을 바라보는 예술적인 행위를 상상케 한다. 이는 실제 이동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이동'이라는 단어가 가진 함의가 예술적 행위와 만남으로 인해 생성되는 상승효과일 것이다. 바람을 담아내면서도 고스란히 흘려 보내주는 얇은 스테인리스 스틸 선의 야생동물은 자신의 네발을 가지고 끊임없이 이동하면서 동시에 예술의 가능성을 향해 유쾌한 움직임을 멈추지 않는다.
조영철의 조각은 조각이되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기 때문에 자유롭고 부드럽다. 환경에 따라 변화하고, 공간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그의 조각은 살아있는 생명체와 비슷하게 자신의 존재의미에 대해 끊임없이 되묻는다. 도시를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이를 통해 야생동물의 정서가 어디서부터 나왔는지, 어디로 이동하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그의 작품은 언제나 인간의 사유 한복판에 있다. 인간의 정서에 호소하는 미학적 의미들을 그의 야생동물들이 전해주는 것과 같이 언제나 여러 물음들을 던진다. 자연과 야생동물, 그리고 인간이 함께 공존해야 할 지점들은 고착화된 개념이 아니라 이동을 통해 언제나 새롭게 생성되고 정서적인 교감을 만들어내는 바로 그 지점에서 의미가 생성된다. 그렇기에 조영철의 '이동'을 위한 혹은 '이동'을 향한 정서적 조각들은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와 같이 사람들 개개인의 정서에 하나둘씩 다가가 예술이라는 유쾌한 이야기를 풀어놓는 것이다. ■ 백곤
Vol.20130818e | 조영철展 / CHOYOUNGCHUL / 曺永哲 / 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