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입 INJECTION

이강희展 / LEEKANGHEE / 李康凞 / painting.installation   2013_0814 ▶ 2013_0820

이강희_CHANEL_스테인리스, 약병, 혼합재료_52×77cm_2012

초대일시 / 2013_0814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갤러리 이즈 GALLERY IS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0-5번지(인사동길 52-1) Tel. +82.2.736.6669 www.galleryis.com

욕망을 제어하는 앰플 치료제 - 프롤로그 ● 앰플 용기에 담긴 샤넬(Chanel)이나 나이키(Nike)의 정수를 마시면 무엇이 해결될까. 메르세데스(Mercedes-Benz)나 버버리(Burberry)를 사랑하게 만드는 주사액이라도 들어 있는 건 아닌지, 혹은 저 (유사)주사액이 인간의 무한한 명품소비의 욕망을 제거하는 그 어떤 물질은 아닌지 궁금하다. 치유를 위해 조제된 앰플 용기의 내용물은 육안으로는 확인할 수가 없으므로 독소를 제거했기에 공허한 내용을 저장하고 있으리라는 짐작이 가능하다. 아니면, 오히려 '비어 있음'으로 하여 인간을 정화시킬 목적을 가진 오브제일지도 모르겠다. ● 이강희 작품의 오브제는 일반적으로 주사액을 담는 '앰플 용기(15ml)'다. 빈 병, 특히 치료제를 담고 있어야 할 앰플 병은 무릇한 상징과 은유의 기호로 작용할 수 있고, 내용물은 치료의 효용성과 과잉소비에 따르는 중독성이라는 이중적 가치를 내포한다. 현대인들에게 의사와 약은 치료효과보다는 잠재적 효능을 지닌 소비와 중독의 대상으로서 비쌀수록 효능이 비례하는데, 하층계급에서는 의약품에 대한 수요에, 상층계급에서는 의사에 대한 수요에 편중하여 의사와 약이 치료기능보다는 문화로서의 효과를 가지면서 소비의 대상이 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강희_CHANEL_스테인리스, 주사기, 혼합재료_90×122cm_2013

현대 미술사에서 오브제 전략의 형식은 이미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결과물들을 방출했으나 시대에 따라 확대 생산되는 의미와 이미지로 예술가를 더욱 자극하고 있다. 이는 마치 경제적 상품의 효용성에 대책 없이 이끌리는 소비자들의 심리와 마찬가지로, 예술가들을 차별화된 형태의 오브제를 획득하기 위해 끊임없이 주변을 탐색하게 한다. 결과적으로 수용자에게는 고통에 가까운 난해성을 제시하게 마련이지만, 이강희의 작품은 재료의 독특함에도 불구하고 다소 쉽게 다가온다. 이미지를 만들어 확산하는 시스템이 인간을 어떻게 유혹하고 조종 하는지에 대한 감시와 해독을 위한 실천적인 처방이 포함된 덕분일 것이다. 그의 작품은 상품의 이미지에 인간의 소비를 반영하면서 사용하는 로고와 이미지가 이미 욕망이라는 사회문화적 구조에 내재되어 있음을 말하고 있다. 투명한 병 속에는 인간의 허망한 욕망이 들어 있어 공허한 욕망이 빈 욕망과의 맞교환으로 치유되어야 한다는 믿음을 보여 치유와 중독이 한 몸일 수 있음을 제시하고 있다. 작가는 아이들의 대표적 기호식품인 프링글스(Pringles) 또한 담배가 지닌 치유와 중독의 이중적 가능성처럼 자화상 로고로 차용하고 있다.

이강희_NIKE_약병에 유채_52.5×89cm_2012

메타 포스팅(Meta-Posting), 기호로서 사물의 소비 ● 인간의 특성, 즉 세상에 자기존재를 표시하고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영원한 욕망을 '메타-포스팅(Meta-Posting)'이라고 한다. 현대 사회로 오면서 더욱 만연해지는 이러한 현상을 틈 타 수많은 신종 소비문화가 대두했고, 차별화에 대한 갈망과 동경은 명품 소비로 이어졌다. 사람들은 쇼핑몰을 통해 현실 세계가 더 이상 제공하지 못하거나 제공 할 수 없는 것들을 체험하고자 하는데, 특히 명품 소비는 집단의 통합을 보증하는 시스템으로 자리한다. 심지어 현대인들의 소비는 의사소통이자 도덕이며 코드화된 가치들의 생산 및 교환의 신화체계가 된지 오래다. ● 사람들은 사물 그 자체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타인과 구별 짓는 기호로서 사물을 소비하고 조작한다. 권위를 지닌 고가(高價)의 이미지를 소비함으로써 상품 이미지의 권위가 자신을 대리하고 있다고 느낀다. 나이키(Nike) 상표가 박힌 신발은 기능적인 것 때문에 소비되는 물건이 아니라 또 하나의 우월감을 지켜주는 기호로 작용한다. 외제 자동차와 같은 고가품들은 대중적 접근이 어려울수록 그 효과가 극대화된다. 그리하여 실제보다 더 진짜 같은 세상의 거짓된 가치들을 위해 욕망을 억압하거나 욕망에 탐닉하는 현대인들의 자화상이 만들어진다. ● 부르디외는 개인이 생존하고 살고 있다고 느끼는 때는 초과분의 여분을 소비할 때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단순한 이유로 많은 사람들은 꼭 필요한 것 이상으로 언제나 탕진하고 소모하고 소비해 왔다는 것이다. 여분의 소비는 상류층들의 우월성을 확인하는 행위로 발전되고, 유사한 출신계급의 동일한 아비투스(habitus)에 따라 성향이 동질화되어 '계급 아비투스'를 형성한다. 통제하지 않지만 이미 통제된 무의식에 따라 자발적이고 의식적인 행동처럼 사회질서를 따르므로 결국 아비투스는 이미 계층이 구조화된 것이자 구조화시키는 점에서 계급화 행위로 볼 수 있다. ● 타인으로부터 인정받으려는 것이 인간 동기의 핵심이라는 헤겔의 주장처럼 인간은 자신을 남과 구분하고자 하는 욕구를 통해 존재를 드러낸다. 그러한 욕구를 표출하는 아비투스의 층이 넓어지면서 남과 자신을 구별하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그러한 욕구가 강해질수록 물질적인 충족은 더욱 힘들어 진다. 고급스러운 소비취향을 선도하는 사람은 예전보다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소비하며, 일반인들의 진입을 막고자 소비 신화를 지속적으로 재생산해내기 때문이다.

이강희_BURBERRY_스테인리스, 약병, 혼합재료_100×78cm_2012

소비 욕망의 중독증, 어플루엔자(Affluenza) ●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비싸게 사는 인간의 행태를 중독증으로 보는 '어플루엔자(Affluent와 Influenza의 합성어)' 라는 신조어도 있다. 과도한 소비를 사회적인 전염병으로 보는 것이다. 비쌀수록 호사품의 가치는 커지며 소비의 욕망도 증대되는 것으로, '베블런 효과(Thorstein Veblen)'라는 말로 유한계급의 과시적 명성과 체면유지의 수단으로서의 소비를 해석하기도 한다. 신분상승의 불안감을 호사품으로 대리만족하려 한다는 의미이다. ● 드디어는 기호의 홍수 속에서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를 위해 기계적으로 복제되어 범람하는 사물의 고유한 본질과 존재의 근원을 파악하는 일은 모순처럼 보인다. 로고는 이미 권력을 얻었고 인간을 조종하거나 지배하면서 인간의 인식에 많은 영향을 미치면서 주변인과 기득권의 관계를 명확하게 나눈다. 그래서 인간의 본성은 욕망에 의해 지배를 받으므로 모든 지식이 선과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한 아우구스티누스와 자본과 기술과 시장이 인간의 인간다움과 사물의 사물다움을 파괴한다고 주장한 하이데거의 말은 설득력을 갖는다.

이강희_LAMBORGHINI_캔버스에 유채_112×145.5cm_2013

산업화가 모든 것은 기계적으로 반복하듯이 이강희의 작품에서는 동일한 이미지가 수없이 반복된다. 이는 키에르케고르가 말한 '균일화'를 연상시킨다. 반복은 거기에 어떤 절실한 요구가 깔려 있음을 은유하면서 허무를 극복하기 위한 작가의 태도의 반영이기도 하다. 또한 억압에 의한 '신경증'과 탐닉에 의한 '도착증'으로 순환하는 동시대 사람들의 동일성이다. 작품의 틀은 동일성의 폭력을, 각각의 앰플 용기의 동일한 내용은 보편화 되어버린 가치와 규범을 의미하며, 균일한 이미지의 나열은 이미 구축된 자본주의의 반복적 시스템의 재현이다. ● 앰플 용기의 불분명한 기능과 효과에 대한 매력도 제시되어 있다. 빈 공간이 주는 여백도 그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었을 것으로, 채워져 있지 않음과 무언가로 채워져 있어야 할 공간에 대한 단상이 소중하게 작용했음이다. 비어 있음은 감각의 착란을 바로 잡아 주는 물질인 동시에 오염되지 않은 순수하거나 성스러운 것과 연관시키려는 문화적 관습과도 연관이 있다. 언뜻 감상의 일부분을 우연에 기대는 회화적 특성을 거부 하는 듯 보이지만, 빈 용기마다에 봉인된 욕망의 내용과 욕망을 누르는 무수한 알레고리의 차별성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허공을 떠도는 우리 시대의 담론을 어떻게 적용하는 지에 따라 다양한 결론의 도출이 가능해진다.

이강희_CocaCola_캔버스에 유채_130.5×89.5cm_2012

에필로그 ● 바바라 크루거는 '너의 몸은 전쟁터다.'라는 작품을 통해 신체의 정치적인 메시지를 제시한 바 있다. 신체는 테크놀로지의 발달로 끝없는 변형과 이행의 과정 속에 놓여 있어 욕망은 대상 자체보다는 타인의 욕구와 동일하므로 상품 시장의 논리와 타자의 응시에 의한 욕구를 소비함으로써 존재한다는 것이다. 안타깝지만 오늘날 현대인들의 욕망은 억압되기는커녕 오히려 간교한 거래, 화해를 가장한 교환과 획일성, 단순성이 판치는 가증스러운 시장에서 기술과 자본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다. 작가는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것, 없었던 것을 있게 해주는 개시(開示)의 진리로서 작품을 제시한다. 소비되고 향유되는 것은 물질이 아니라 기호로서의 사물이라는, 중독의 가능성을 고발하는 것이다. ● 작가는 과학적 도구와 이미지 그리고 재료를 활용하여 삭막하고 가파른 현실적인 삶을 반영하면서 현대인의 욕망의 허망한 구조를 파헤친다. 꼼꼼하게 그렸거나 인쇄된 로고를 붙여 완성시킨 욕망과 감각을 녹여버리는 앰플 용기는 작가 이강희의 상상력에 기반 한다. 그는 말 수도 적고 과묵한 편이나 잠재된 코믹함으로 간혹 주변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인물로, 표정이나 동작이 과장되지 않으나 유머를 제시하는 '데드 팬'(dead pan)과 닮아 있다. 그는 맥도널드와 폴로(POLO)의 이미지를 합성하기도 하고 버버리의 로고 이미지에 비아그라(Viagra)를 더함으로써 과잉 소비에 대한 중독성을 소박한 블랙 유머(black humor)로 제시한다. 작가의 이러한 태도는 표정 없는 데드 팬과 유사한 앰플 용기에 매력적인 속성과 살짝 비튼 해학의 전략과도 일치한다는 느낌을 준다.

이강희_BUTTERFLY_캔버스에 유채_97×130.5cm_2012

올바른 사고의 맥락을 포함하고 있는 이강희의 작품은 내적 모순과 함축된 이데올로기를 완전히 드러내야 하며, 시각적인 반응을 강화하기 위해 유명 상표의 로고와 문자를 활용하는 것이 그의 전략이다. 언어와 기호의 사용은 의사소통에 정치적인 의미를 함축하므로 반복을 통해 발생하는 차이는 소통을 가로막는 '일탈'이 아니라 의미를 출산하는 '창조'일 수 있다는 얘기다. 욕심이 있다면 보존하기만 하는 수동적 담론이 아니라 감상자의 느낌이 적극적인 실천으로, 혹은 역동적인 담론으로 적극 생산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 이강희 설치작품은 인간의 보편적 이미지는 없지만 인간과 밀접한 연관이 있어 보이는 앰플 용기로 대부분 구성되어 본성을 상실해가는 현대인들의 자화상이긴 하지만 인간의 삶에 있어서 개별적이고 고유하다는 사실 자체가 위대함의 조건임을 우회적으로 제시한다. 유리병은 투명성에 의해 현상적으로는 접촉의 가능성이 열려 있으나 본질적으로는 닫혀 있으면서 근원적인 우울을 안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물신숭배와 공허한 소비 이면에 잠재하고 있는 중독의 해악성을 일깨우고 있다. 무의식적으로 습관화된 지배 이데올로기든, 무의식적으로 지나치던 대상 속에 감추어진 경이로움이든, 무의식을 의식하게 해준다는 점은 중요하다. ● 사람이 죽어 꽃이 되고 나비가 된다는 믿음으로, 치유의 상징으로서의 작품들은 엄중한 인간의 길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목적을 수행하려는 조형언어였다. 그러므로 병 속에 봉인 된 벌거벗은 몸이 나비의 애벌레인 듯 이미지를 탈바꿈하고 훨훨 날아 인간의 비애와 육체의 천박함이 조형적으로 시각화되기를 기대한다. 작가는 참된 노동을 통해 얻어지는 것을 본질을 응시하는 관조의 정신이라 판단하고 데페이즈망을 통해 우리에게 익숙한 일상의 사물들을 낯선 것으로 체험하게 한다. 감상이란 대상에서 받은 느낌으로 마음이 상하는 일이어서 비밀스럽게 은폐되어 있던 유혹의 물질이 세상에 처음으로 개방된 것처럼 하나의 사건이 될 수도 있다. 산업사회에서의 육체는 유혹이나 불순함을 담는 그릇이 되어가고 있다. 욕망은 문명을 건설하지만 세계를 붕괴시킨다는 의미를 다시 되새겨야 할 것이다. ■ 주성열

Vol.20130814b | 이강희展 / LEEKANGHEE / 李康凞 / painting.installation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