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임대레지던시

2013_0801 ▶ 2013_1222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강혜란_김지영_정인교_정철규_황지영

주최,주관 / 달려라보라호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_세계 속의 경기도_경기문화재단 총괄기획 및 진행 / 정인교_정철규

경기도 일대의 자연 수원, 안산, 고양, 의정부

『자연임대레지던시』를 마무리 하며 ● 1845년 7월 4일, 데이빗 헨리 소로우는 자신의 진정한 삶을 위해 월든 호숫가에 4.2평의 오두막을 짓고 2년간의 자급자족적 생활을 시작한다. 그의 작은 거처는 독서와 사색을 위한 어느 대학보다 나은 공간이었고 자신의 내면 깊숙이 도달할 수 있는 통로였으며 간소한 삶의 가치를 깨닫게 하는 소중한 스승이었다. 문명과의 단절은 '공정하고 현명한 관찰자’의 모습으로 문명에 대한 깊은 성찰에 이르게 한다. 『자연임대레지던시』 프로젝트는 소루우의 『월든』을 모티브로 시작되었다. 단순히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낭만주의적 시선을 넘어 부랑자의 눈을 통해 도시를 포함한 대자연의 범위를 확장시킨다. 한정된 조건 속에서 계속될 수밖에 없었던 자기 모방적 한계를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으로서 권태해진 작가들을 일탈시키는 도구, 독특한 상황 속에 몰아넣어 상상력을 깨우기 위한 하나의 방법론을 제시한다. 로지에가 원시오두막을 주창하며 건축의 본질에 대해 질문하고 그것이 새로운 건축의 시발점이 되었듯이 갤러리의 공간성과 공공미술의 대상성에서 자유로워진 작가들은 '자연임대’라는 원초적 환경과 마주하며 예술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시작한다. ● 황지영은 명상을 통해 작업의 단초를 찾고자 했다. 그녀는 도심 생활에 지쳐 템플스테이라는 사찰 프로그램에 관심을 갖게 되었지만 관광하듯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을 마주하며 이마저도 번잡한 도시 생활의 연속임을 깨닫게 된다. 이에 그녀는 자신만의 사찰을 짓는다. 숲 속 인적이 드문 곳을 골라 자리를 잡고 나무들을 하얀 천으로 둘러치는 간단한 구획으로 단출한 공간을 만든다. 그곳에서 그녀의 명상이 시작되고 하얀 천은 해와 달과 바람과 나무를 걸러 고운 가루로 그녀에게 전달한다. 하나하나 쌓아 올린 오보는 산을 오가며 내뱉은 응어리이자 그녀가 오르고자 한 사유의 흔적들이다. ● 강혜란은 꿈의 재현을 통해 꿈과 현실의 고리를 잇는다. 꿈속에서 웃는 그녀는 현실에서도 웃고 있고 꿈속에서 울고 있는 그녀는 현실에서도 울고 있다. 꿈은 감은 두 눈 틈새로 새어 나오고 새어 나온 꿈의 흔적들을 붙잡아 꿈의 텐트를 만든다. 현실은 꿈을 만들고 꿈은 현실을 만든다. 꿈을 현실에 붙잡아 두고자 하는 것은 꿈이 끄집어 낸 현실의 기대와 절망을 다시금 꿈속으로 집어넣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꿈과 현실은 변증법적 증식을 통해 점차 수렴한다. 이제 꿈속의 그녀는 꿈의 텐트를 만들며 현실의 그녀와 대화를 시도한다. ● 정철규는 자신이 매일 오가는 한적한 공원에서 발견한 4개의 공원 벤치에 주목한다. 무언가 잘려져 나간 흔적들, 4개의 의자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정사각형의 공간에 그와 짝을 이루는 책상을 만든다. 그는 오랜만에 열어본 기억의 서랍을 쏟아 책상 아래 13개의 서랍들에 차곡차곡 정리한다. 잊었던, 잊어버린 줄 알았던 물건들이 오래된 서랍에서 발견된다. 한창 빠져 살았던 어느 가수의 카세트 테잎은 워크맨도 없이 머릿속에 슬픈 노래를 들려준다. 사랑은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시작된다. 상처는 그 사람을 구분할 수 있게 하는 인생이 내린 훈장이다. ● 김지영은 나비의 변태를 주제로 수원 나혜석 거리에서 무용공연을 한다. 한 번도 외부 공연을 해본 적 없는 그녀에게 이번 과제는 그 자체로 갈등의 연속이다. 거리 무대라는 특성은 그날의 날씨와 거리 상태에 따라 예기치 못한 변수들을 안겨준다. 추운 날씨와 얼어붙은 눈 때문에 번번히 공연은 밀리고 무용수들과의 일정을 맞추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나비의 변태는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하고 혼란을 겪고 있는 그녀의 메타포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알을 뚫고 나온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 데미안의 이 유명한 구절은 지금의 그녀를 상징한다. 아프락사스, 신이자 동시에 악마인 그는 하나의 기준을 가지지 못한 갈등과 방황의 신이다. 갈등만이 유일하게 사람을 성장케 한다. 알을 깨기 전 밖을 상상하는 두려움으로 성장은 시작된다. ● 정인교는 도시의 거대 구조물을 이용해 작은 작업실을 만든다. 독서와 사색의 공간, 이 작은 공간에서 글을 쓰고 외부와 단절된 채 사색에 잠긴다. 이곳은 도심 한복판에서 고독을 즐길 수 있도록 해주었다. 하지만 그러한 사치도 잠시, 이불로 무장한 어느 부랑자의 점유로 그만의 공간은 혼탁해 진다. 그는 이 부랑자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왜 사람은 길거리의 고양이들과 강아지들만큼도 연민을 자아내지 못하는 것일까. 그가 가진 기준들은 혼란을 겪으며 부랑자와의 관계는 긴장상태에 놓이게 된다. ● 『자연임대레지던시』는 이렇게 다섯 작가의 이야기로 마무리 되었다. 처음 접해보는 작업환경과 2주에 한 번씩 정기 간행물을 통해 작업과정을 모으는 쉽지 않은 과제들은 무수한 시행착오와 우발적인 발견들로 가득 차 있었다. 갈등하고 방황하는 못난 모습마저도 스스럼없이 보여줄 수 있었던 건 젊음이 가진 특권일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성장하고 있을 다섯 작가의 이야기는 다음의 모습을 기대하게 한다. ■ 달려라보라호

황지영_잠시_방수천, 나무_가변크기_2013
황지영_잠시_방수천, 나무_가변크기_2013

2013[잠시] ● 3번의 계절이 작업실에 다녀갔다. 여름, 가을, 겨울이 지나간 자리에는 많은 그림이 남았다. 그 그림 속에 내가 들어가 있었고 내가 없기도 했다. 변화는 금방 혹은 한참을 지나서야 알아차리기도 했다. 이렇게 반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어느덧 작업실[잠시]는 하얀 색을 입게 되었다. 처음 그 장소에 갔을 때는 한 없이 푸르른 녹색이 가득 채워져 있었지만 이제는 앙상하게 남은 나뭇가지가 검정색의 선을 보여주게 되었고, 흰색이 그 사이 사이를 메워 주었다. 방공호가 되어 주던 그 곳은 어느덧 오래 머물기에는 조금 힘들 정도의 온도를 갖게 되었다. 내가 칠하고 형상을 입혀 놓고 다녀간 자리에는 자연은 알아서 다른 색으로 덧칠을 해 놓았다. 그 다음 작업실에 오면 조금은 달랐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달랐던 것인지가 애매모호한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심리적인 변화도 그 자리를 바라보는 시선마저 변한 이유에서인지, 정확히 달라진 것을 몰랐었다고 하더라도 달라보였을 것이었다. 작업실에서 작업을 한 시간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거의 없었다고 볼 수 있다. 내가 무언가를 만들거나 남기려고 시도했던 것들이 다른 의미로 퇴색되어 버렸기에 도중에 멈춰버렸다고 하는 것이 적합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글을 써서 남겨두기에는 벅찼고 그리거나 녹취를 하기 에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사진으로 남겨두는 기록만이 내가 작업실을 자연에서 임대 받고서 한 작업의 전부였다. 그렇게 남겨진 기록들을 들여다보니 많은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같은 캔버스에서 다른 조건들이 서로 뒤엉켜서 무엇을 말하려고 하기 보다는 흔적이 남아 그대로의 형상이 드러냈다. 나와 우리 사이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 있다. 그건 얇디얇은 막이다. 얇은 종이 한 장이 가로 놓여 있는데, 그건 일종의 보호막일 것이다. 그 막을 가로 놓고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 지는 오래 전 부터이다. 세상을 눈으로 더듬고, 손으로 더듬고, 코로 더듬고, 온 마음과 몸으로 더듬고 있는데, 때론 그게 형상을 뿌옇게 흐르게 만들고 자세히 한참을 들여다보게끔 하기도 한다. 왜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불쑥 꺼낸 거냐고 한다면, 작업실에서 만들어 놓은 공간을 나눈 파티션의 소재가 나의 이러한 모티브가 반영된 것이기에 잠시 그 이야기를 시작하려 함이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 놓여 진 불투명한 흰색의 비치는 천은 나무를 기둥 삼아 프레임을 나누고 공간을 새로이 쪼개 놓았다. 미로 같은 길이 될 수도 있고, 사방이 막힌 공간이 될 수도 있고, 자연이 그리고 있는 하나의 캔버스가 될 수도 있다. 이렇게 입혀 놓은 불투명한 PVC비닐 레이어(layer)는 시야를 가로 막고 막의 건너편의 장면을 화이트 컬러로 통일감 있게 보여주고 이내 형상을 뿌옇게 만든다. 여러 장의 흰 천이 만들어 준 장면은 각기 달랐다. 보는 위치에 따라 풍부한 겨울의 미가 있었다. 내가 벽으로 설정해 놓은 이 얇고 연약한 흰 천은 흰 책상과 흰 의자만 덩그러니 놓인 곳을 둘러쌓았다. 나름의 포근함과 안락함을 느끼게 해주는 장치가 되었다. 이것이 또 워낙 바람에 취약하여 흩날려 찢겨져 바닥에 나뒹굴기도 하고, 비에 젖고 눈에 덮여 더러워지기 일쑤였고, 어디로 날아갔는지 찾지 못하는 일도 허다했다. 이런 변덕스런 날씨와 계절을 이기기엔 견고하지 못한 임시적 보호막에 불과했다. 작업실[잠시]에는 견고한 것은 없다. (간행물 중에서 부분 발췌) ■ 황지영

강혜란_꿈의 텐트_pvc파이프,폐현수막_가변크기_2013
강혜란_꿈의 텐트_pvc파이프,폐현수막_가변크기_2013

2011년 6월, 나는 꿈을 꾸었고 2012년 2월에 꿈을 작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3년 8월, 나는 꿈의 텐트를 재현할 기회를 만났다. 그러나 내가 재현할 대상은 모두 꿈이었기 때문에 원본도 없었고 꿈을 떠올리기를 반복할수록 그 기억은 점점 변형되었다. 꿈에 대한 기억은 확실하지 않았고 심지어 꿈 안에서조차 대상은 불변하는 형태가 없었다. 꿈 안의 텐트는 흰색이라는 것 외에는 어떤 천을 사용했는지, 어떤 재료를 사용해서 지지되고 있었는지 확실하지 않았고 또한 꿈에서 내가 텐트에 들어가면 그 공간은 필요에 의해 넓어지기도 하고 텐트 밖에서 보았던 것과 다른 공간이 되기도 했다. 꿈 안에서는 공간의 변형과 시간의 변형은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일이었지만 그것을 물리적으로 실현할 때 불변하는 원본이 없다는 사실은 '재현’이라는 것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꿈의 텐트를 재현(재현인지 창조인지는 모르겠지만)하기 시작했다. ● 자연임대레지던시의 도움을 받아8월부터 12월까지 4-5개월에 걸쳐 텐트를 만들고 텐트의 장소를 옮겨다녔다. 나는 텐트의 천을 도시에서 쉽게 구할수 있는 폐현수막을 쓰기로 했다. 폐현수막에 흰색 페인트를 칠해서 텐트에 쓰일 천으로 만들었다. 공교롭게도 내가 수거한 현수막의 대부분은 아파트 광고였다. 아파트 광고를 담고 있는 현수막은 앞뒤로 꼼꼼히 칠한 하얀 페인트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가려지지 않았다. 일정한 거주지 없이 돌아다녀야만 하고 불법으로 남의 땅을 점거해야만하는 나의 텐트는 자신의 꿈을 온몸으로 말하듯이 아파트 전세광고를 담고 있었다. 텐트의 장소는 세 군데가 선정되었다. 첫번째는 의정부 시청앞, 두번째는 의정부 예술의 전당, 그리고 세번째로는 의정부 시의회였다. 이 세 장소는 모두 텐트와 대비되는 육중한 건물을 가지고 합법적인 이유로 땅을 점유하고 있는 곳들이었다. 예상과는 달리 등잔 밑이 어둡다고 나는 한번도 사람들에게 텐트의 설치를 저지당한 적이 없었다. 나는 시민들의 무관심한 도움 속에서 그들에게 불편을 끼치면서 텐트를 완성했다. 나의 텐트를 공공장소에 설치했다하여 그것이 공공미술이고 거리의 미관을 향상한다고 주장할 생각은 없었다. 대부분의 공공미술처럼 시민의 동의없이 제멋대로 설치된 나의 텐트는 사실 시민들의 무관심을 고맙게 여겨야할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꿈에서의 나처럼 텐트 안으로 들어와 말을 걸어주기를 기다린 것이 사실이다. 내가 없을 때라도 누군가 내 텐트를 호기심있게 보고 갔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 몇개월에 걸쳐 변형되고 이동하면서 설치와 철수를 반복하던 나의 텐트는 이제 그 마지막 설치와 철수를 끝냈다. 2011년 6월부터 지금 2013년의 마지막달까지 끈질기게 붙들고 있던 나의 꿈은 이제 정말로 재현되었고 실현되었는지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꿈을 재현하기 위해서 두 발로 다른 세계를 여행했고 두 손으로 만질 수 있는 텐트를 만들었고 더위와 추위를 온몸으로 느꼈다. 이제는 꿈을 마쳐도 미안하지 않다. ■ 강혜란

정철규_공사장_나무, 13개의 서랍_180x180x70cm(가변설치)_2013
정철규_공사장_나무, 13개의 서랍_180x180x70cm(가변설치)_2013

공 사 장_公 私 場 - 계속 공사 중 ● 144일간 많은 일들이 발생하기를 기대했다. 이렇게 저렇게 시간은 지나갔다. 그늘 한 점 생기지 않는 잔디밭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네 개의 벤치들, 그들에게 만들어 준 네 개의 긴 책상, 책상에게 책임감을 부여한 열 세 개의 서랍들, 서랍들에게 고백한 복잡한 것들. 마치 송아지가 처음 태어나 어리둥절하게 네 다리를 지탱하고 힘겹게 서있는 것처럼, 네 개의 책상은 생명력을 가진, 그래서 더 살피고 보살펴야 할 것처럼 만들어 졌다. 덩치에 비해 얇고 작은 다리, 그 다리들 끼리 지탱하며 네 개의 책상은 그곳에 자리하게 되었다. 144일 동안 비도 왔었고, 바람도 불었고, 눈까지 왔었다. 눈은 쌓였다가 녹았다가를 반복하며 책상을 덮어주기도 하고, 괴롭히기도 했던 것 같다. 처음의 말끔함은 조금 사라지고 이제 시간의 무게를 짊어지려는 성숙함을 느낄 수 있었다. 무엇이든 처음이라는 것은 기대감을 갖게 한다. 방 한 구석에서 캔버스를 펴 놓고 작업을 하던 몇 년 전, 큰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작업실이 너무나도 갖고 싶었다. 3년간 네 번의 이동을 거듭하다 처음으로 생긴 반 지하 작업실,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큰 그림을 그리려고 펴 놓기도 하고, 일부러 그림들 앞에서 밥도 먹고, 잠도 잤다. 어느 정도 시간이 또 흘렀다. 처음의 기대와 의지는 조금씩 작아져 갔다. 그러던 중 자연에 나의 작업실을 구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작업실이 두 개가 되었다. 스스로에게 잊었던, 시들해지던 기대감을 다시 끌어올릴 수 있었다. 이곳에서는 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엇을 해야 재미있을까? 고민하며 지냈다. 하루에 두 번 씩은 찾아갔다. 책상 근처 고장 난 가로등, 그림자를 만들어준 달빛에 의존하여 편지를 써보기고 했던 날, 흘러내리려고 준비하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달려와 실컷 울었던 날들이 기억난다. 서랍을 만들었다. 열 세 개의 서랍에 많은 이야기들을 담으려 했다. 서랍을 열어 본 누군가에게 나를 보여주고 싶었다. 서랍은 언젠가 노출이 될 수 있는 불안한 것이었다. 현실의 모습 그대로 인 것 같다. 첫 번째 서랍을 채우고 일곱 번째 서랍까지 채워가며 나의 이야기는 더욱 깊어져 갔다. 잠시 잊었던 것들을 다시 끄집어내어 그때의 감정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때의 격하고 날 것 그대로의 감정 보다는 조금은 정제되고 정리되었다는 것을 서랍을 정리하며 느낄 수 있었다. 때로는 숙연해 지기도 했다. 처음에는 서랍속의 것들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걱정이 더 컸었다. 그러한 걱정은 잠시 잊을 수 있었다. 지나가다 본 벤치에 앉았던 사람들은 여유를 즐기며 대화를 하거나 쉬고 있었다. 그리고 밤마다 왔을 때 서랍 속의 것들은 무사히 남아 있었다. 채우지 않은 서랍에는 누군가가 도토리를 모으고 있었고, 누군가의 열쇠 꾸러미가 놓여 있기도 했었다. 그렇게 다른 이의 이야기도 함께 채워지는 것을 서랍은 받아들이고 있었다. 작업이라는 것을 시작한지 5년이 지났다. 이제 6년째가 시작되었다. 어떠한 것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던 때, 나의 이야기를 하면서 시작했다. 이것이 맞나? 이렇게 해도 되는 건가? 물음을 던지며 계속 달려왔다. 빨리 달리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지속적으로 달리지도 못했다. 내 귀가 듣기 싫은 소리, 내 마음이 아픈 소리를 들으면 더욱 달릴 수 없었다. 그래서 다시 무언가가 움틀 때 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144일간의 짧은 시간동안 기대와 걱정, 기쁨, 슬픔, 안타까움, 허탈함. 많은 것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매일 매일 서랍정리를 하려고 했지만, 생각보다 잘 되지 않았다. 하면서도 너무 깊은 그래서 나만 아는,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닐까?라는 불안한 궁금증은 풀리지 않았다. 더 큰 이야기, 더 깊은 이야기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무엇보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모르고 계속 정리만 하려고 하는 것 같다. 146일째 되던 날, 그야말로 처참한 광경을 볼 수밖에 없었다. 아직도 가슴이 벙벙하고 두든 거린다. 소중한 감정은 지극히 나의 것이었던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소중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엎어지고, 찢겨지고, 사라지고, 뜯겨지고, 버려졌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받아들여야 한다. 당분간 그곳에 갈 수 없었다. 그냥 지나치려 애썼다. 새로운 드로잉 북을 구입했다. 일곱 개의 서랍에 대해 일기를 쓰듯 또 다시 하얀 종이위에 남겼다. ■ 정철규

김지영_나비의 변태_5분_2013
김지영_나비의 변태_5분_2013

안무의도 ● 꼭 한번쯤 횡단보도,공원의벤치,지하철역,옥상,터널등 우리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공간들을 가지고 춤을 춰봤으면 하는 소망이 있었다. 이 작품은 무용을 비롯한 예술에 관한 시대감각이 뒤바뀌고 있다는데 왜 아직도 우리가 춤을 출 무대는 없지? 라는 질문에서 시작하였다. 현재도 몇몇 무용수들은 기존 정형화된 무대를 벗어나려는 부단한 시도와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지만 그 마저도 기회가 자주 없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또 하나의 자연과 생활 그대를 무대로 보는 공간을 창출하려 한다. 하지만 야외인 만큼 환경이 잘 갖춰줘 있지 않아 변동이 클 것이라는 단점이 있지만, 나는 그곳에서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둔 채 관찰하고 실험하려 한다. 문화와 만남이 공존하는 거리 나혜석거리 소재지▶ 경기 수원시 팔달구 인계동 (시도 중 1-25호선, 나혜석거리) 듀엣에서 솔로, 그리고 군무(함께 추는 춤)로 ● 원래 같이 듀엣을하기로 했던 무용수가 개인 사정으로 인해 연습도중 그만두었다. 이런 경우를 겪어본 적도 없고, 생각지도 못했기에 한동안 '방황’을 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서 말 그대로 어쩔 줄 몰라 했다. 이때부터 한 달을 넘게 홀로 머리 싸매며 연습을 하게 되었다. 당연히 아무 생각도 안 들었다. 생각해온 작품 전체를 뒤집어엎어 다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야함과 새로운 무용수를 구해야한다는 걱정 때문에 잠이 오지 않았다. 나 하나로 인해 여러 작가와 함께하는 이 프로젝트를 망치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매주 정기간행물이라는 자료를 내야하는 부담감 때문인지 이후로도 계속해서 잠들지 못한 밤이 여러 번 있었다. 전화통화의 말로는 "네~알겠습니다. 그렇게 할게요" 라고 자신만만하게 대답했지만 전화를 끊자마자 눈앞이 깜깜해졌다. 이것을 어떻게 감당해야하나… 답이 보이지 않은 상태로 있던 찰나 모교를 방문했다. 부담감을 잠시 내려놓고 주위를 둘러보니 함께 출연해줄 후배 무용수들을 구하게 되었고, 혼자 고민해야할 문제를 여럿이 함께 나누고 소통하니 작품이 하나하나 짜여 갔다. 이렇게 되고나니 상대의 평가에 눈치 보지 않아도 되고, 결과 위주의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도 벗어날 수 있고, 함께하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부담감이 아닌 즐거움이 많아졌다. 나비의 변태 ● 나비가 아름다운 날개를 펼치고 자유롭게 날기 위해서는 '번데기’라는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듯 아예 몸의 구조자체를 바꾸는'나비의 변태과정’을 몸으로 표현해내는 퍼포먼스를 통해 지금껏 자신을 보호해주던 '껍데기’를 완전히 벗어던진 채 '겨울이 오고 있는 숲’을 떠나 완전히 다른 '따뜻한 남쪽나라’로 날아가는 과정을 흥미롭게 표현해보고자 한다. 안무,연출 : 김지영 출연 : 권동희,김수현,김지영,박관정 첫 번째 쇼케이스 : 2013.11.16 – 7pm, 수원 나혜석거리 작업을 하며 ● 작품을 새로 구상할 때, 작품이 아닌 '나'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이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이것이 작품을 만드는 작업으로 이어졌다. 학교 선배들처럼 사회에 나오면 이상과 철학을 가지고 사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 학생 때 생각했던 것을 현실에서 이어가기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실감했다. 이제 막 사회에 나와 적응을 시작하는 나비가 마치 나와 똑같다고 느껴졌다. 아무의 도움 없이, 혼자만의 힘으로 번데기와 애벌레라는 힘들고 지칠법한 시간들을 앞으로 계속해서 반복해야 함은 내가 앞으로 견뎌야 할 삶의 무게와 미래라고 생각되었다. 이 작품은 사실 무용 작품치고는 작품의 주제와 내용 그리고 안무 또한 테크닉이 전혀 들어가 있지 않을 정도로 좋게 말하면 순수함, 가벼움이라 말할 수 있다. 이게 바로 단순하다만 내가 추구하는 키워드가 아닐까 생각된다. 나비의 변태. ● 함께한 무용수들과 프로젝트 작가들이 있어 든든하고 그들에게 힘을 얻었다. 나에겐 과분한 경험을 안겨준 기회의 프로젝트라고 생각된다. 이렇게 모여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에너지를 받고 또 다른 프로젝트나 위시리스트를 찾는 선순환이 이어졌으면 하는 바램 이다. ● 나뿐만이 아닌, 누구나 겪어야할, 또는 겪고 있는 이 시기. 아직도 표현에 서툴고,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는 우리의 인생은 어쩌면 모두가 항상 갓 번데기에서 해체되어 나온 나비가 아닐까? ■ 김지영

정인교_나무, 천_가변크기_2013
정인교_나무, 천_가변크기_2013

직선의 미로 ● 어렸을 적 학교 주위는 코 묻은 돈을 뜯으려는 사기꾼들로 득실댔다. 노란 병아리, 녹슨 동전을 반짝이게 하는 약, 미원이 듬뿍 든 쥐포, 새빨간 혹은 새파란 사탕들. 연습으로 하면 항상 맞출 수 있었지만 돈을 걸고 하면 단 한 번도 이길 수 없었던 야바위. 그 중 가장 관심을 끌었던 것은 백과사전이었다. 정확히는 백과사전 옆에 당당히 서 있는 장난감로봇이었다. 아이는 덥석 백과사전 계약서에 집주소와 전화번호를 넣는다. 그리고 가슴엔 로봇이 들려있다. 로봇의 크기만큼 아이는 뿌듯했고 보란 듯이 몸을 좌우로 흔들며 걸어갔다. 자신의 힘으로 얻은 것이기에 처음으로 자신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이는 로봇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이야기를 나눴다. 그와 부둥켜안고 레슬링도 할 수 있었다. 로봇은 힘이 셌지만 한 번도 아이를 이기진 못했다. 아이는 로봇을 들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유를 알진 못했지만 그래야만 했다. 며칠이 지나자 본인이 저지른 일을 알게 되었다. 까맣게 잊어버렸던 아니 본적도 없는 책들이 집으로 배달됐다. 아버지는 길길이 날뛰었다. 이게 뭔 줄 아냐는 물음에 대답할 길이 없었다. 자신은 전혀 모르는 일이었다. 대답할 수 없었기에 얻어맞아야 했다. 대답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아니라 로봇이었다. 아이가 눈빛으로 로봇을 부르던 순간 아버지도 로봇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버지는 다시 한 번 이게 뭐냐고 다그쳤다. 물음이 바뀌지 않았지만 이번엔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었다. 샀다고. 되풀이되는 아버지의 물음에 솔직하게 대답하면 할수록 아이는 더 세게 얻어맞아야 했다. 이제 로봇이 활약할 시간이었다. 책상 밑에 숨어있던 로봇이 날아올랐다. 아버지는 로봇의 목을 움켜쥐고 벽으로 내던졌다. 로봇은 숨어있어야 했다. 그는 그리 세지 못했다. 아버지와의 싸움에서 진 로봇은 얼굴이 떨어져 나갔다. 부자의 시선이 나뒹구는 로봇의 눈과 마주쳤다. 떨어져나간 얼굴을 보며 아버지는 정신이 들었다. 분풀이를 다한 아버지는 울고 있는 아이에게 미안해졌다. 아버지는 아버지 같은 말투로 멍해있는 아이에게 약속했다. 백과사전은 사주겠노라고. 그렇게 다달이 청구서는 집으로 배달되었다. 백과사전을 파는 것뿐 아니라 백과사전 자체가 사기였다. 조악한 흑백 그림에 아니면 말지 정도의 조악한 사실들을 전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쩐지 학교수업보다 재미있었다. 마치 할아버지의 신기한 이야기를 듣고 있는 느낌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던 아이는 그것과 금방 친구가 되었다. 매일 백과사전이 보고 싶어 친구들과 노는 것도 마다할 정도였다. 마침내 몇 권의 백과사전을 가방에 넣고 아침을 나서기에 이르렀다. 책의 무게 때문에 가방 끈을 움켜쥐고 낑낑댈 수밖에 없었다. 아이는 노인처럼 굽은 채 걸어갔다. 책가방 대신 지팡이가 쥐어 졌다면 그야말로 자그마한 노인네였다. 그렇게 금세 커다란 로봇은 잊혀 져 갔다. ● 백과사전의 서문은 이렇게 시작했다. '책을 읽는다. 책 속의 주인공은 책을 읽고 있다. 그 속의 주인공이 책을 읽고 있다. 불현듯 나 역시 내가 읽고 있는 책 속의 주인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안의 내용들은 코웃음 쳐지는 것들이었다. 유리잔 밖에 서리가 끼는 것은 안에 있는 물이 유리잔을 통과해 스며 나오기 때문이라든지, 작은 물고기를 커다란 어항에 옮기면 커다란 물고기가 된다라든지.. ● 소년은 나이키 운동화가 너무 갖고 싶었다. 어떤 모양, 어떤 색인지 알지도 못한 채 그냥 나이키 운동화가 갖고 싶었다. 어머니는 왜 그리 비싼 운동화가 필요하느냐고 다그쳤지만 소년도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쭈삣거리다 다들 가지고 있기 때문에 소년도 가지고 싶다고 대답했다. 대답은 적절했고 소년은 나이키운동화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대답의 순간, 이런 것들을 가지기 위해 평생을 살아가리라는 생각이 스쳐갔다. 소년은 소년의 모든 미래에 대해 알지 못했지만 몇몇 미래에 대해 느끼기 시작했다. 어떤 것들을 정해진 미래였다. 적어도 그렇게 느껴졌다. 처음에는 간단한 예상부터 시작했다. 스무 살에 대학에 들어가고 스물여섯에 직장에 들어가고 스물여덟에 차를 사고 서른둘에 전셋집을 마련하고 서른넷에 결혼을 하고 서른다섯에 첫아이를 갖고 서른여덟에 둘째 아이를 갖고 마흔에 내 집을 장만하고 마흔둘에.. 처음 미래를 예상하며 느낀 감정은 절대적인 희망이었다. 미래란 절대적인 희망공간 안에서만 작동하는 것이었다. 하나의 상황이 완벽하게 떠올려지고 나면 다시 또 하나의 상황을 떠올렸다. 어떤 때는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장면에서 희망이 느껴지는 인생이었고 어떤 때는 사랑하는 배우자를 만나며 행복해 하는 인생이었다. 처음에는 하나의 인생을 완벽히 상상하는데 꼬박 일주일이 걸렸다. 하지만 곧 익숙해져 그것의 반, 또 다음번엔 그것의 반만큼의 시간이 걸렸다. 소년은 대부분의 시간을 머릿속에서 보냈다. 그곳에서 소년은 시공간 어디에도 존재할 수 있었다. 어떤 경험보다 강렬했다. 그에 반해 현실은 언제나 지루하기만 했다. 현실은 머릿속 상상의 재방송일 뿐이었다. 예상을 벗어나지 못한 현실은 어떤 감흥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필연으로 가득 찬 삶이란 죽음과 다름없었다. 그렇게 몇몇의 인생을 세세하게 예상하고는 문득 돌아가기 싫은 감정을 느끼곤 했다. 심지어 청년의 모습으로 때론 노인의 모습으로 상상에 빠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처음엔 고개를 흔들어 환상을 지우려 했지만 그것이 반복 될수록 자신이 청년인지 노인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것은 그냥 익숙한 무엇이 되어갔다. 곧 소년은 함수식처럼 변수 값을 대입하면 하나의 인생을 예상할 수 있는 공식을 만들어 냈다. 변수는 무한했고 그 변수가 만들어 놓은 인생도 무한하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소년은 이 무한한 인생 속에 틀림없이 하나의 완벽한 인생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단 하나의 인생을 살아야 한다면 그것을 택하고 싶었다. 모든 인생을 상상할 수 있었지만 살 수 있는 인생은 하나뿐이었다. 상상의 여정은 흥미로웠지만 현실로 돌아온 소년은 허무함을 느꼈다. 모든 인생을 사는 것은 어떤 인생도 살지 못하는 것을 의미했다. 소년의 머리는 어느 미래로 향하고 있었다. 얼마가 지났을까? 밖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소리가 생각을 깨웠다. 악센트가 강조된 외국어처럼 들렸다. 몇몇 단어 외에는 알아들을 수 없는 대화들이 오가고 있었다. 소년은 귀를 기우려 의미 없는 말들을 잡아챘다.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들이 늘어갔다. 그 말들은 어떤 주기로 반복되고 있었다. 소음은 점차 신호로 변해갔다. 어느덧 하나의 문장이 완성되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문장이 만들어졌다. 이제 한 노인의 목소리가 뚜렷이 들렸다. '책을 읽는다. 책 속의 주인공은 책을 읽고 있다. 그 속의 주인공이 책을 읽고 있다. 불현듯 나 역시 내가 읽고 있는 책 속의 주인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소년은 창문을 열었다. 하지만 창문 여는 소리에 고개를 든 세 명의 남자가 보일 뿐이었다. 그 노인을 찾아야 한다. 그 노인을 찾는 것이 소년이 꿈꾸던 완벽한 인생일지 모른다. 적어도 그 노인과 만난다면 그런 인생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직감했다. 소년은 노인을 찾기 시작했다. 수많은 갈림길 중에서 어떤 것을 택해야 하는 지 알 수 없었지만 소년은 이미 수많은 인생을 경험해본 터였다. 그 중 하나하나 단서를 찾고 묻고 또 물으며 그 노인을 찾아 나섰다. 하나의 인생에서는 어떤 단서도 찾지 못하고 죽음을 맞기도 했고 또 다른 인생에서는 노인에 대한 들어 본 한 사람을 만나기도 했다. 그러면 소년은 그 인생의 그 위치부터 다시 갈림길을 택하기 시작했다. 하나의 단서를 찾고 그 단서의 단서를 찾아 갈림길을 택했다. 마침내 소년은 무수한 미로 속에서 노인을 만났다. 그는 번쩍 그 환영 속에서 빠져 나왔다. '이 모든 것을 기록해야 한다.' 지금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당장 기록해 놓지 않으면 꿈처럼 사라질 환영이었다. 소년은 노인과 관련된 갈림길들은 빠짐없이 빨간 노트에 적기 시작했다.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어야 한다. 만에 하나하나의 갈림길만 잘못 택하게 되도 그 노인을 만날 수 없었다. 며칠이 지났을까? 소년은 한 권의 노트에 그 모든 갈림길들을 상세히 적어 놓을 수 있었다. 소년은 뿌듯하게 그 노트를 바라보았다. 소년은 소년이 좋아했던 만화의 제목을 노트의 겉표지에 적었다. '예언의 서'. 예언의 서는 소년의 책장 한 귀퉁이를 차지했고 곧 소년에게서 잊혀 져 갔다. ● 결혼식에서 돌아온 그는 더없이 허했다. 한 동창의 결혼식이었다. 더없이 화려한 결혼식이었다. 오랜만에 동창들을 만났지만 얘기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다. 주식이 어떠니, 차가 어떠니, 아파트가 어떠니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들뿐이었다. 이야기에 끼지 못해 주눅이 들었다. 화려한 음식, 화려한 차림새, 화려한 웃음에 초라해졌다. 술 한 잔을 권하는 그에게 차를 핑계로 모두들 손사래를 쳤다. 홀로 취하면 취할수록 그는 도드라졌다. 돌아오는 길 역시 혼자였다. 길거리의 차들 마저 적대적으로 보였다. 가방에서 책 한 권을 꺼내 옆구리에 꼈다. 이 책 한 권이 자동차와 아파트 크기보다 자신을 드러내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자신도 가진 것이 있다고 항변하고 싶었다. 시끌벅적한 시장바닥에서 먹은 음식들은 그의 배를 채워주지 못했다. 그는 집으로 돌아와 며칠 굶은 사람처럼 라면을 먹어댔다. 열여덟, 그는 훗날 첫사랑이라 말할 수 있는 관계를 가졌다. 소년은 전혀 알지 못하는 감정이었으므로 소년은 그것을 사랑이라 부를 수 없었다. 지금의 그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 흔한 소년 소녀들의 교제 이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소녀가 이별을 고하던 날에야 이것이 한 번도 겪어 본적이 없는 감정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방구석에 처박혀 자신도 모르는 눈물을 흘렸다. 소년은 가슴을 쥐어짜며 연신 중얼거렸다. 이상해.. 이상해.. 그는 이후 몇몇 연인을 만났지만 결국 상상했던 이상의 것은 아니었다. 예정된 수순의 일들이 벌어졌다. 만남과 사랑과 헤어짐에 앞서 만남과 사랑과 헤어짐이 있었다. 사랑이 병이라면 그는 이미 다량의 백신을 투여한 상태였다. 몸도 감정도 무감각해져 갔다. 그 소녀를 망각하지 못한다면 어떠한 만남도 사랑이라 부를 수 없음을 알았다. 그날은 그 소녀의 결혼식이 있던 날이었다. 다음날 아침 그는 마치 하나의 연극 속 배우와 같았다. 하루가 온통 기시감으로 범벅이 되었다. 커피를 내리고 소파에 앉았다. 이것은 그가 매일 하는 행동이었지만 그날만은 다른 느낌이었다. 그 동안의 반복적인 행위들은 단 하루만 상영하는 연극이 무대에 오르는데 필요한 지루한 리허설에 불과했다. 그는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 습관처럼 책장에서 잡히는 대로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보르헤스의 책을 다시 펼친 것도 5년만의 일이었다. 그는 그 책을 펼침과 동시에 오늘 일어날 일들에 대한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보란 듯이 진한 분홍색 펜을 들어 다음 행동을 이행했다. 책의 한 문장 한 문장에 밑줄을 긋기 시작했다. 이미 본 책들도 새 책이란 소리를 듣는 판이었다. 굳이 밑줄을 그어가며 잡으려 해 봤자 곧 잊혀질 이야기들이라며 밑줄 긋기에 열심인 친구를 핀잔하곤 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예정된 행위들이었다. 사건은 징검다리처럼 놓여 있었다. 얼핏 어제와 다를 것 없는 행동들이었지만 약간의 변수들이 변경되면서 마지막 행위를 예견하고 있었다. 그 노트를 다시 펼친 건 그 노트가 잊혀 진 후 15년만의 일이었다. 예언의 서. 그 노트의 첫 장은 이렇게 시작했다. '노인을 만날 준비가 되었다면 노인을 찾아라.' 그 노인을 떠올린 것도 15년만의 일이었다. 소년의 함수식은 그리 복잡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 그는 그 간단한 수식조차 이해할 수 없었다. 미지수는 고작 12개 밖에 되지 않았다. 고작 12개의 미지수로 하나의 인생이 완성되다니. 그의 인생은 60진법으로 '78hs38df0a'라고 표현되어 있었다. 그것은 매 순간 끊임없이 갈라지는 갈림길이 다다를 어느 한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 수식은 어떤 감정도 실지 않고 덤덤히 하나의 인생을 송두리째 예견하고 있었다. 누구의 인생이든 무한한 공간 속 하나의 좌표일 뿐이라고 말하는 듯 했다. 무한히 얽히고설킨 직교좌표의 교차점이었다. 그는 소년이 집어넣은 변수 값의 결과일 따름이었다. 가끔은 예언의 서에 나오지 않은 갈림길을 택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이 장난 같은 이야기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조차 예견된 일일 것이라는 생각에 다다랐다. 그 작은 지류는 결국 어느 지점에선가 본류의 흐름에 합류하게 될 것이다. 그러자 오히려 편안해졌다. 그도 노인을 만나고 싶었다. 그것은 신의 부름과 같은 그의 숙명이었다. 우연 또한 필연에 종속되고 있음을 느꼈다. 그는 노인을 찾아 나섰다. 기억은 그를 어렸을 적 백과사전으로 데려다 주었다. 도서관의 모든 백과사전을 펼치며 노인의 흔적을 찾으려 했지만 어느 곳에도 그 같은 서문을 발견하지 못했다. 모든 책이 독후감에 불과하다면 그 글은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그렇게 그는 책을 읽고 쌓으며 그 노인이 남겨놓은 구절을 찾아 나섰다. 그는 미로를 만들겠다는 이유로 건축가가 되었다. 빠져나갈 수 있는 가능성이 무한한 미로. 그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는 미로. 무한한 가능성은 아무런 희망도, 가능성도 없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빠져나가려고 하는 의지만 존재하고 빠져나갈 가능성이 없다는 것은 망각된 상태라면 완벽한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에게 기억은 과거의 것임과 동시에 미래의 것이기도 했다. 그의 스승은 미로를 만드는 것이 건축이고 미로를 푸는 것 또한 건축이라 하였다. 스스로 만든 공간이 스스로를 만든다 하였다. ● 노인의 직업은 사서였다. 적은 돈이지만 스스로 살아갈 수 있게 해 주는 일이었다. 노인은 자신의 일이 자랑스러웠다. 말벗을 찾아 공원을 서성일 필요도 없었다. 아내도 자식도 없는 그였지만 그리 쓸쓸하진 않았다. 친구가 많진 않았지만 도서관의 책들이 좋은 말벗이 되어주었다. 책을 정리하고 책을 읽고 책을 권하고 소개받으면 하루가 금새 지나갔다. 노인은 언제나처럼 도서관에 출입하는 사람들을 웃으며 맞이했다. 한 남자가 들어왔다. 많지 않은 친구 중의 하나였다. 어제 읽은 책을 남자에게 권했지만 그는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의아한 표정으로 책을 받아 들었다. 그 남자는 몇 년째 도서관을 드나들고 있었지만 그날의 표정은 처음이었다. 그 책은 남자가 이미 노인에게 소개받은 책이었다. 아직 1년도 채 되지 않은 일이었다. 노인은 자신의 책들을 모아 그곳의 사서가 되었다. 그것은 한 장 한 장 정성스럽게 쌓은 종이를 시간과 바꾸던 그의 삶이 꿀 수 있는 유일한 꿈이었다. 그곳은 누군가와 만나기 위해 평생을 헤매던 미로였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노인은 책을 사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곳의 책들이 노인에게 새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읽은 적이 없는 책들이 점점 더 늘어가고 있었다. 읽기를 멈추지 않았지만 하루에 한 권을 읽으면 하루에 두 권이 잊혀졌다. 그곳은 노인에게 과거의 공간인 동시에 미래의 공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얻는 것의 기쁨은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지만 잃는 것의 아픔은 무뎌진 듯 보였다. 노인은 이 미로를 완벽하게 만드는 마지막 행동을 알고 있었다. 미로가 완벽해 지기 위해선 만든 이를 가둘 수 있어야만 했다. 노인은 그 깨달음의 순간 어떤 득실댐을 느꼈다. 이것 또한 운명된 일이었음에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미로는 자신의 완벽을 위해 출구를 알고 있는 노인의 기억을 마지막으로 원했다. 인간은 완벽한 삶의 형상으로 신을 만들었고 신은 그의 완벽을 위해 신을 창조한 인간을 제물로 원했다. 모든 것이 잊혀 지기 전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았지만 조바심은 나지 않았다. 그 일을 하기엔 꼭 맞는 시간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는 미로의 마지막 부분을 완성해야 했다. 망각은 죽음을 위해 수없이 행해지는 리허설이었다. 무한히 이어진 프랙탈의 한 부분 속에서 노인은 글을 쓰기 시작했다. '책을 읽는다. 책 속의 주인공은 책을 읽고 있다. 그 속의 주인공이 책을 읽고 있다. 불현듯 나 역시 내가 읽고 있는 책 속의 주인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제 서야 노인은 평생 자신이 찾던 노인과 만날 수 있었다. 소년이 예상할 수 있었던 무한한 인생 속에서 그 노인을 찾는 것은 아무런 가능성이 없음과 다름이 없었다. 그가 노인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가 그 노인이 되는 길뿐이었다. 노인은 그가 그곳을 만든 것조차 잊어버릴 즈음 그가 쓴 책을 집어 든 어느 소녀의 얼굴에서 마지막으로 그의 과거를 떠올릴 수 있었다. ■ 정인교

Vol.20130810h | 자연임대레지던시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