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3_0807_수요일_06:00pm
참여작가 김권명_김승정_김영선_김옥희_구본성_민경란 안해숙_오은희_윤병선_이경아_이영수_정영선_현영주
기획 / 최정미
관람시간 / 10:00am~06:00pm
제이에이치갤러리 JH GALLERY 서울 종로구 관훈동 29-23번지 인사갤러리빌딩 3층 Tel. +82.2.730.4854 www.jhgallery.net
파르마콘은 '마법의 약'이라는 뜻의 그리스어이며 '비법', '조제법', '특효약', '치료제', '치유'로 번역할 수 있다. 파르마콘은 치료제와 독 모두를 의미하며 영어의 'drug' 처럼 좋은 면과 나쁜 면 모두를 가지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 플라톤의 저작, 그리고 데리다의 '풀라톤의 제약술'과 연관된 파르마콘은 모순된 힘을 가지고 있어서 데리다가 차연의 현상을 드러내는 데에 사용하고 있는 한 부류의 용어에 속한다. 특히 플라톤의 '파이드로스'에서 글은 파르마콘 즉 망각의 치유나 치료로 언급되고 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가 예시하듯이 그것은 또한 위험한 약물이기도 하다. 양날을 가진 말인 파르마콘은 플라톤의 텍스트에서 이항대립의 논리가 이것도 저것도의 논리에 의해 명백히 전복되는 계기를 제공한다. 치료약이면서 독약인 파르마콘은 차이의 조건과 놀이를 떠올리게 하는 글과 말을 닮아 있다. 기억해야 할 것은 파르마콘의 이중성, 즉 약이 독일 수도 있다는 인식이다. 파르마콘에는 자신이 '선'이라 굳게 믿을 때조차도 사유 속에서는 늘 제 위험성에 대한 각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기도 하다.
이번 전시는 힐링과 파르마콘의 정의와 해석 그리고 그 의미가 시각미술에서는 어떤 역할을 하고 현대사회에서는 어떤 의미로 존재할 수 있는가? 라는 의문에서 시작되었다. 힐링과 파르마콘의 공통된 정의는 '치유'이다. '치유'란 어떤 고통이나 아픔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과 같은 의미를 떠올릴 수 있는데 이 단어 안에는 육체적 아픔의 치유보다는 '정신적'인 아픔으로부터 벗어나게 한다는 의미가 강하다. 힐링과 파르마콘 이란 단어 중에서 파르마콘에 이끌린 이유는 그 단어 안에는 '독'과 '약'이라는 양날의 검으로써의 뜻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독'이 때론 사람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약'이 될 수 있으며 잘못 사용했을 때는 '독'이 되어 치명적일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그림을 그리는 행위에서 '독'과 '약'의 의미를 가지는 파르마콘은 어떤 의미로 작용할 수 있을까?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들은 각자 주제를 정하고 작업을 진행함에 있어서 각자의 파르마콘적 의미를 적용하고 있다. 이는 가끔은 어떤 이미지에 대한 재 표현으로, 가끔은 어떤 생각에 대한 재해석으로 그리고 가끔은 어떤 사물이나 사진의 독창적인 색상과 형상들인데 이는 '모방'이라는 형식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
모방 ● 모방이란 거울을 통하여 대상을 그대로 반사하듯이, 생산한다(produire)는 의미이다. 여기서 거울은 진리를 생산하기보다 현상을 생산하는 것이며, 진리와 현상의 관계는 사물과 거울의 허상의 관계와 닮았는데 이런 모방은 장인의 모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모방은 (자연의)모방이라는 개념으로 번역되기도 하는데 감각적 대상화, 사실적인 것의 표현이나 가능한 것의 선취를 의미하기도 한다. 플라톤은 완전히 외적인 자연을 모방으로 파악하는데 오로지 영원하고 추상적인 이데아만이 고유한 현실성을 갖으며 따라서 자연적 현상은 이데아를 감각적으로 대상화하는 한에서만 현실과 관계하고 또한 그러한 한에서만 인식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을 말한다. 작가들은 실재를 있는 그대로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실재가 나타나는 대로 모방한다. 이런 의미에서 작가는 현상을 그린다고 할 수 있다. 실재가 나타는 대로란 의미는 현실적 대상인 자연물이 현상으로 나타나는 모방이며, 이것은 존재론적 측면에서 사물의 모형과 그림자의 관계이다. 예술사에서 회화는 인간에 의해서 제작된 대상에 대한 모상으로 여긴다. 이것은 신에 의해서 창조된 자연적 대상에 대한 모상, 즉 회화는 그림자에 비유된다. 이 이분법적 분류는 모방(mimesis)의 예술에서 새로운 구별을 도입한다. 하나는 모상(simulacre), 즉 원본에 맞는(conforme) 복사(copie)의 기예(술)이며, 다른 하나는 환상적(illusoire) 현상(l'apparence)의 기예(술)이다. 예술가는 모델에 비례하여, 실재적 차원에 따라 모방상(eikon)을 실현할 수 있다. 실내풍경, 실외풍경, 오브제들의 묘사, 꽃들의 묘사, 정물의 모노톤적 느낌의 재구성... 이처럼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들은 자신들이 선택한 모델에 비례하여 실재적 차원에 따라 그들만의 모상을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미적 취향&모방 ● 플라톤은 정밀모방이란 점에서 화가 시인 소피스트를 비난한다. 이런 모방은 매끄러운 거울의 반사 방식이다. 그런데 이런 모방기예로서 거울은 어떤 매혹도 없으며, 이런 예술의 주술은 은유도 아니다. 그런데 착각을 일으키는 최소한의 어떤 존재는 매혹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모방이 본질인 기예에는 미적 권능이 있다. 그 권능이 있다는 것은 예술작품이 어떤 심리적인 상태를 환기할 수 있는 대상으로 환원될 수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상징물로서 의미를 창조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감성에 뿐만 아니라 인간의 신체에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예술작품이 가진 의미가 감상자에게 미적 취향과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기인의 기억 속에서 개인의 고유한 애정적 상흔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그리고 인류의 본원적 의식의 한 부분을 자극하면서 거대한 힘을 치솟게 한다는 점에서, 즉 작품 자체가 감상자에게 환희와 고뇌의 감정과 감동의 아우라를 생성하게 한다는 점에서는 매력적이다.
미&창조 ● 플라톤에게서 우리는 기예에 대한 심리학적이고 생리학적인 결과의 분석을 발견할 수 있으며, 미학을 재발견하게 하는 시적 열정의 서술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플라톤은 기예들을 미(美)에 의해서가 아니라 모방에 의해서, 다시 말하면 존재론적 열등성에 의해서, 진실한 실재성 즉 이데아에서 멀어짐에 의해서 규정한다. 현재 있는 사물의 각각은 현전 때문에 아름다운 것으로 나타나며, 아름다움의 대부분은 비례와 전체의 조화에 남아있는데 사물이 아름답다는 것은 단일하고 영속적인 이데아 즉 미의 이데아에 사물이 참여에서인 것이다. 아름다움의 정의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아름다운 감각적 사물의 다수성을 통하여 정의에 의한 하나의 탐구이다. 플라톤에게서 미의 기예는 쾌락을 순화하는 것이자, 쾌락의 본질을 예지적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미는 감각적이라 할지라도 기예의 작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으로 금욕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들은 각자의 파르마콘을 가지고 모방과 미의 추구라는 양날의 검을 사용한다. 그들이 표현하고자하는 예술의 미는 개념적으로 정의해서 설명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시각적으로 표현되면서 떠올리고자하는 개념에는 그들만의 아우라(Aura)가 묻어나고 그렇게 표현된 것들은 또 다른 이미지와 말을 연상시킨다. ■ 최정미
Vol.20130807a | 파르마콘 Pharmakon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