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오버랩

김주희의 작품을 처음 접하면 그 강렬한 색채에 압도당한다. 커다란 화면을 가득 채우는 현란한 원색의 향연은 복잡하게 구성된 이미지로 인해 더욱 극대화된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사실은 디지털카메라로 촬영한 사진들을 컴퓨터프로그램으로 중첩시켜 만든 것이다. 그녀는 중첩시킨 사진이미지를 회화로 재현해낸다. 사진과 회화,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간극 그 어디쯤에 김주희의 작품이 있다.

김주희_이순신_캔버스에 유채_162×55cm_2013

사진의 특성과 회화의 특성을 비교해보면 김주희의 작업이 갖는 특징이 명백히 드러난다. 사진은 빛의 예술이고, 회화는 물감의 예술이라 할 수 있다. 빛의 혼합은 중첩될수록 밝아지지만, 물감의 혼합은 중첩될수록 어두워진다. 김주희의 작품에서 검은색 배경은 물감 혼합의 결과로 보이지만, 그 위를 수놓는 화려한 색의 병치는 빛의 혼합에 가깝다. 작품의 주요 소재가 되는 야경의 네온사인들처럼 말이다.

김주희_DELI_캔버스에 유채_90×146cm_2013

김주희_Yellow cap_캔버스에 유채_61×104cm_2013

김주희의 작업이 갖는 또 하나의 특징은 디지털매체를 사용하면서도 매우 인간적인 작업과정을 거친다는 사실이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거리, 건물, 풍경들은 모두 여타의 카메라테크닉 없이 뷰파인더에 보이는 대로 순간 포착하여 찍은 사진들이며, 컴퓨터에서 이미지를 중첩하는 작업도 수십 수백 개의 샘플을 제작한 후 최종 이미지를 선택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들은 실제 대상을 보고 손으로 스케치를 하는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일일이 기억하여 그리는 대신 카메라의 힘을 빌리는 것이다.

김주희_만모우 사원_캔버스에 유채_65×90cm_2013

카메라는 기억을 기록하는 매체다. 김주희가 그려내고자 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기억들인 셈이다. 그러나 사진에 기록된 장면이 특정한 시간의 찰나에 불과한 반면 인간의 기억은 한 장면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여러 시간대에 같은 공간을 지나가거나 같은 시간에 여러 가지 대상을 보게 된다면 그것들은 머릿속에서 어떠한 ‘인상’으로 남는다. 이는 사진의 한 프레임만으로는 담을 수 없는 중첩된 잔상이다. 그것은 여러 공간들의 중첩일 수도 있고, 여러 시간들의 중첩일 수도 있다. 서로 다른 지역 혹은 국가에서의 어떠한 기억이 연상 작용에 의해 오버랩 될 수도 있다. 사진들을 중첩하는 것은 어쩌면 기억을 반복적으로 겹침으로써 더욱 선명하게 하고자 함이 아닐까.

김주희_런던-국회의사당과 빅밴_캔버스에 유채_72×90cm, 90×72cm_2013

초기작에서 주로 일상적인 기억들을 다루었던 것과는 달리, 최근작들에서 김주희는 이러한 오버랩 된 기억들을 화면에 펼쳐 놓으면서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에 관해 이야기한다. 사람은 변하고, 어쩔 수 없이 기억도 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 변하지 않는 것들,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들이 있다. 김주희의 작품에 빅밴, 노트르담성당 같은 랜드 마크나 자유의 여신상, 이순신장군상 등의 지역적 상징물들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다. 변하지 않는 하나의 상징을 그림으로써 그곳에서의 기억들을 또 다시 아로새기는 것이다. 김주희의 그림에서처럼 모든 좋은 기억들이 변하지 않고 아름답게 반짝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송윤지

김주희_파랑새_캔버스에 유채_45.5×53cm_2013

When seeing Juhee Kim's works, we are overwhelmed by the loud colors. The feast of brilliant primary colors that fill the big screen is maximized by the images that are complicatedly organized. In fact, such images are made by overlapping the photos taken with digital camera at a computer. She represents the photo images overlapped into paintings. Her works are somewhere between photos and paintings and between digital and analogue. ● To compare the characteristics of photos vs paintings, the characteristics that Juhee Kim's works had are revealed evidently. Photo is the art of lights and painting is the art of paints. The mixture of lights becomes brighter when it's overlapped more, but the mixture of paints becomes darker when it's overlapped more. In her works, the black background is seen as the result of the mixture of paints, but the juxtaposition of brilliant colors embroidered on the background is very close to the mixture of lights. It's like neon signs in the nightview which is the major material for her works. ● Another characteristic that her works have is that she goes through the work course that is very humane using digital media. The distance, building, and landscapes appearing in her works are taken catching the moments as seen in a view finder without other camera techniques and the work of overlapping the images at a computer is the selection of final images after manufacturing dozens of or hundreds of samples. Such processes are not big different from the process of sketching with hands by looking at objects in reality. But, she uses the power of camera instead of drawing by remembering them one by one. ● Camera is a medium that records memories. What Juhee Kim wants to draw is finally her memories. However, the screens recorded in the photographs are the moments at a particular time, whereas human memories do not remain in one scene. When we pass through the same space at various time zones or see various objects at the same time zone, they remain as a certain 'image' in our mind. This is the overlapped after-image that cannot be held with one frame of a photo. It may be the overlap of various spaces or the overlap of various time zones. A certain memory in different regions or countries can be overlapped by the process of association. The purpose of the overlapped photographs is to make it more clear by overlapping memories repeatedly. ● Unlike she dealt primarily with ordinary memories in her initial works, she talks about something immutable or mutable by unfolding such overlapped memories on the screen in her recent works. People change and memories change unavoidably. Nevertheless, there are the things that can never be changed or the things that an individual doesn't want it to be changed. That's why landmarks such as Big Ben and Cathedrale Notre-Dame and regional symbols such as Statue of Liberty and the statue of Admiral Yi Sun-shin appear frequently in her works. She engraves memories upon her mind by drawing one symbol that is not changeable. I indulge in romantic thoughts of how good it would be if all good memories glitter beautifully without being changed like in her paintings. ■ SONGYUNJI

Vol.20130806c | 김주희展 / KIMJUHEE / 金珠熙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