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 블랙

GOLD BLACK展   2013_0702 ▶ 2013_0728 / 월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13_0706_토요일_05:00pm

참여작가 고영미_김승택_김영섭_김지연_김태진 나규환_백기영_선무_우무길_자우녕_황순우

후원 / 수원시 총괄 / 조두호 기획 /박소화_김상미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 마감시간 1시간 전까지 입장가능

수원시미술전시관 SUWON ART CENTER 경기 수원시 장안구 송정로 19(송죽동 417–24번지) Tel. +82.31.243.3647 www.suwonartcenter.org

골드블랙, 금빛 어두운 한 방울 ● 수원시미술전시관은 2013년을 맞아 지난 7월 2일부터 28일까지 특별기획『골드블랙』展을 개최했다. 본 기획전은 실험적인 시각예술을 전시하고 교육함으로서 수원시민을 포함한 수도권 거주민의 문화적 향수와 가치창출을 목적으로 한다. 동시대 인문·사회·문화예술 전반에 대한 연구와 분석을 통해 최근 거론되는 문제와 이슈를 반영해 시각예술분야에 나타나는 시대적 흐름과 정신을 표출하고자 한다. ● 본 기획전은 인류가 사회를 이루고 번영하는 과정 속에서 불가피하게 존재해온 힘의 논리, 지배하는 자와 지배받는 자의 불평등, 차별, 소외 등의 문제를 중심주제로 한다. 과거 진화론에 입각한 인종차별의 정당화는 서구열강으로 하여금 무수한 식민지를 확장하게 했고, 나아가 문화의 절대적 우위를 점하게 만들었다. 열등의식에 사로잡힌 대다수의 피지배층은 식민사관과 문화사대주의에 젖어 서구의 그것에서 영원히 자유로울 수 없게 된 것이다. 동시대에 이르러 문화의 상대성이 인정되는 인식의 전환점에 왔음에도 대다수의 우리는 불평등과 차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인류는 보다 더 정교하고 세심하게 다듬어진 자본의 논리에 의해 과거를 뛰어넘는 차별과 소외에 시달리게 된 것이다. ● 15세기 '대항해시대'가 열리자 세계는 지금의 지구온난화만큼이나 후끈 달아올랐다. 신대륙 발견, 미지세계의 탐험, 미개문명의 개척 등 다양하고 멋진 말들로 치장한 백인탐험가들은 발길 닿는 곳 마다 자신의 깃발을 꽂아댔다. 많은 유럽 국가는 신대륙을 통해 이전에는 맛보지 못했던 다양한 과일과 채소, 값진 금, 은, 보석광물 등을 확보해 엄청난 부를 축적할 수 있었고 이는 본격적으로 백인중심 사회가 비기독교 세계를 지배하는 혁명적 계기로 작용했다.

골드 블랙 GOLD BLACK展_수원시미술전시관 1전시실_2013

대항해시대를 말할 때 신대륙발견 같은 건설적 업적 외에 인류역사상 아주 중요한 사건으로 언급되는 것이 노예시장의 활성화다. 노예제도는 과거부터 존재해왔지만, 인종에 따른 계급분화는 아마 이때부터 정착된 것이 아닐까. 대다수의 흑인과 하층민 신분의 백인으로 이뤄진 노예들은 아메리카대륙에 터를 잡았고 권력의 노예, 인종의 노예로 수세기를 보냈다. 그리고 얼마 지나 백인도, 흑인도 아메리카인디언도 아닌 혼혈을 뜻하는 메스티조mestizo, 물라토mulatto, 잠보zambo 등이 탄생했다. 혼혈의 등장은 마치 신인류의 출현처럼 백인사회에 심각한 혼란을 야기했다. 권력의 중심에선 그들의 피부색 혼탁여부에 따라 신분의 우열을 가렸고 혼혈을 좀 더 세분화하기 위해 물리토, 알비노, 토르나트라스 등등 100개도 넘는 단어를 만들었다. 하지만 언어적 구분이 한계점에 다다르자 어느 백인 권력자가 기똥찬 인종 구분법을 고안해낸다. 이름하야 '한방울 법칙one-drop rule'이다. 완벽 무결한 백인의 피를 더럽힌 단 한 방울의 피가 섞인 자는 백인과 유사한 외모, 피부색을 막론하고 'black'으로 구분하는 것이다. 색의 권력, 백인우월주의 정수이자 지배계층이 피지배계층을 지배하는 철두철미한 통치방식인 것이다. ● 시대와 국가를 막론하고 권력계층의 피지배계급에 대한 통치는 어떤 형태로든 존재해왔다. 앞서 언급된 시대의 권력이 백인의 자존감 같은 것이라면 지금은 철저히 자본에 의해 권력의 층위가 결정된다는 점이 다를 뿐. 황순우의 작품에서 보이는 흑과 백, 빛과 어둠이 나뉜 어느 철거촌의 풍경처럼 말이다. 벽돌로 적층된 벽체에 대충 얹혀진 슬레이트지붕은 금세 날아갈 것처럼 위태로워 보인다. 천막을 덮고 버려진 폐타이어를 올려놓지만 자본의 폭풍 앞에서 버틸 재간이 없다. 작품 속 마을은 한국의 근현대사를 거치며 피난민, 이주민 등 세상의 경계에 서있는 이들의 보금자리로 한 칸짜리 쪽방에서 기거하는 빈민들의 삶이 투영된 장소 굉이부리마을이다. 자본의 논리에 의해 편집되는 빈민의 삶, 한 장의 사진 속의 풍경은 대항의 시대를 살았던 노예의 그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것은 고결한 자본에 떨어진 오염되고 더러운 한 방울의 피. 지배와 피지배계층을 나누는 '한 방울의 법칙'이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는 말이다. ■ 조두호

고영미_가족사진III_C 프린트_50.8×62cm_2010
김승택_빈민가_디지털 프린트_100×160cm_2010

section1. DREAMS : 꿈을 좇는 사람들 ● 어둠 속에서 황금을 좇는 사람들. 더 나은 삶,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자 온 그들이지만, 어떤 이들은 꿈을 이뤄 만족스런 삶을 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이는 죽음을, 절망을 맛보게 된다. 경제 성장의 상징인 88올림픽 이후 '코리안 드림'을 꿈꾸던 노동자들이 한국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마치 과거에 이전 세대가 독일로, 미국으로 일거리를 찾아 떠난 것처럼 동남아시아 출신 이주민들이 한국에서 일거리를 찾았다. '튼튼한 외국인임. 일자리 구함. 힘든 일이건 허드렛일이건 무방함. 보수가 적어도 상관없음. 일자리를 주실 분은 000 0000으로 연락바람' ● 돈을 좇아 무엇이든 한다는 이주노동자가 등장했다. 우리나라 고용주들은 그들을 '일회용'처럼 부려먹었다. 지난 2008년 한국에서 일했던 한 몽골 노동자는 환풍기 하나 없는 가구 공장에서 유해 먼지를 마시며 매일 14시간씩 일했다. 그는 한국에 온지 1년 만에 몸이 망가졌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병원조차 보내주지 않았고, 결국 '폐결핵'진단을 받고 몽골로 돌아갔다. 꿈과 희망을 갖고 한국에 왔던 그의 '코리안 드림'은 악몽으로 끝났다. 이와 같은 이야기는 찾아보면 굉장히 많은 사례가 있다. 한 인격체인 '인간'으로 대접받기보다 일하는 기계 수준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 동남아시아 지역 출신의 이주노동자 인구가 140만 명을 넘어섰고 결혼 이민자도 12만 명이 넘는다. 또한 그 자녀들까지 합하면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다. 다양한 인간이 어울려 살다보면 사회적·문화적 교류와 혼합이 자연스레 발생한다. 이로 인해 다문화와 이주노동에 대한 정책 등의 논의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자본을 좇아 희망을 품고 한국으로 이주해 온 그들, 그들 또한 우리 사회를 함께 살아가는 '인간'이다. 주변 곳곳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자본'으로 인해 발생된 사회적 상황 속에서 우리 삶의 지향점을 어디에 놓고 꿈꾸며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김영섭_갇힌 사람 시리즈_하드보드지에 아크릴채색
김지연_수요시위 故박두리 할머니_66×90cm_1998 김지연_옌벤 지역의 탈북 어린이_잉크젯 피그먼트 프린트_66×90cm_1999 김지연_고려인 할아버지, 우즈베키스탄_잉크젯 피그먼트 프린트_50×60cm_2002

이번 전시에서 가장 먼저 만난 자우녕의 영상 설치 작품은 우리에게 많은 문제의식을 전하고 있다. 고속도로나 외진 외곽 도로에서 한번쯤 봤을 것이다. 동남아시아 국가의 여성과 한국인 남성과의 결혼을 알선하는 현수막을. 이런 현수막도 꽤 오래 전 일이다. 베트남, 캄보디아, 필리핀, 중국, 몽골, 우즈베키스탄 등에서 한국으로 시집 온 수많은 이주 결혼 여성들의 결혼 생활은 참혹하다. 2007년 8월 한국에 시집온 지 한 달 만에 남편의 구타로 늑골이 18개나 부러진 채 살해된 베트남 신부 후인마이, 이 사건으로부터 자우녕 작가의 작업이 시작된다. 첫 작품부터 우리를 아주 불편하게 만든다. 작가는 이주결혼에 대한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작품을 통해 전한다. 후인마이는 한 결혼정보업체의 소개로 27세 연상인 한국 남성을 소개 받아 그날로 결혼했다. 그녀는 '행복한 대화를 통해 서로 의지할 것'을 바랬지만, 말은 통하지 않았고, 술꾼인 남편의 폭력에 행복한 결혼 생활을 원했던 그녀의 꿈은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당시 이 사건을 담당한 대전 고법의 판사는 그녀가 죽기 전날 베트남어로 남편에게 쓴 편지를 공개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후안마이의 편지 전문이 그녀가 구슬프게 우는 듯 전시장 바닥에 흩어져 설치되었고, 다른 한 쪽에선 한국남성과 베트남 신부에게 결혼을 알선하는 업체 홍보 영상과 그들이 비행기를 타고 수천 Km를 날아 인천 국제공항을 통해 한국으로 오는 길의 모습을 작가가 재편집한 영상작품, 그리고「국경의 높이」라는 5cm 남짓한 두꺼운 한 권의 책이 전시되었다. 이 책은 베트남 신부들이 우리나라에 오기까지 필요한 서류라고 한다. 우리나라에 결혼이민자 체류 현황은 현재까지 약 15만 명이다. 희망과 꿈을 갖고 한국에 온 그들에게 우리는 씻을 수 없는 어마어마한 일을 저지르고 있다.

김태진_이태원의 사나이_단채널 영상_00:07:55_2009 김태진_부자되세요_오바로크 커튼에 투사_00:03:30_2010

고영미의 사진 작품은 다문화 속 가족의 다양한 표정과 이야기가 담겨 있다. 작가는 2009년부터 다문화가정의 이주 여성들에게 지필묵을 가르치고 있었고, 2010년 당시 서울여성가족재단의 지원을 받아 그들의 삶과 가족, 내면 이야기를 주제로「가족사진」시리즈를 작업했다. 5개의 작품 속에서 발견되는 다른 점이 있다. 백인 여성이 등장한 가족사진은 남편과 아이 셋과 단란함을 보여주는 모습이다. 하지만 다른 작품을 보면 남편이 없고, 가면이 쓰여 있거나 다 초점으로 작업된 가족사진이다. 이 사진의 공통점은 동남아시아권의 여성이 등장한 가족사진이다. 피부색에 따라 다르게 표현된 작품 속에서 우리 현실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2001년 인구조사(통계청)를 보면 '우리'가 된 이방인이 생각보다 많다고 한다. 한국 국민의 26%가 귀화혈통으로 나타났으며 전래 성씨(285개)보다 새로 만들어진 귀화 성씨(442개)가 훨씬 많다고 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전체 인구의 2%가 넘는 120만 명 이상의 이주민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또한 2050년이면 인구 10명당 최소 1명은 외국인이 될 것이라는 통계가 나왔다. 더 이상 단일민족을 내세우며 그들과 다르다는 인식으로 외면할 수만은 없다. 가면과 이중 초점으로 표현된 작가의 사진 속 모습은 색안경을 끼고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다. ● 탈북 작가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선무의 회화는 마치 과거에 삐라처럼 선전화 방식을 차용한다. 또한 과거 이념이 대립하던 시기 붉은 색은 북한을 상징하는 색이었다. 이 붉은 색을 사용하며 특유의 자신만의 작업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경계가 없다' 는 예명으로 활동하고 있는 작가는 의도치 않게 탈북을 감행하게 되었고, 이 후 한국에 와서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탈출하라」작품은 작가가 압록강을 건너면서 느꼈던 심정을 표현한 작품으로 피바다 속에 파닥거리는 물고기가 마치 인민들과 같다고 표현했다. 작가 선무의 작품 속에는 텍스트가 항상 존재한다. "탈출하라, 미소 지으리라. 그리고 자유를 찾으리라. 죽음과 함께 행복을 찾으며 이 몸을 던져 자유는 웬 말이냐. 삶의 행복이 무엇이고 이 세상 태어났지만 분명히 사람으로 살아야만 하니 내가 아닌 내가 되면 그럴수록 더욱 빠져들고 아무리 몸부림쳐도" (선무, 탈출하라 2) 얼마 전 크게 보도된 탈북 청소년 강제 송환된 사건이 있었다. 탈북 고아와 한국에 가족을 둔 청소년을 포함한 9명이 보다 나은 삶을 찾아 북한을 떠난 뒤, 대한민국으로 오기 위하여 선교사 도움을 받아 라오스에 들어갔다가 라오스 당국에 억류된 후 중국으로 추방, 곧이어 북한으로 송환된 사건이 국내외에서 큰 파장을 일으켰다. 국내에 탈북청소년 교육지원센터, 탈북난민인권연합 등 국가에서 만든 단체가 여러 곳이 있다. 작가는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탈북자를 돕기 위한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도 각자 자신의 위치와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보는 것은 어떨까.

나규환_인간모독_쥐망, 폴리코트_가변설치_2009 나규환_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입니다_혼합재료_가변설치_2010 나규환_더 나은 보상을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_나무, 모판_40×70×20cm_2006
나규환_당신이쓰다버린냉장고아래살아있습니다_폴리코트, 냉장고, 철판_200×90×150cm_2010

김태진의「이태원 오바로크」와「부자되세요」는 이태원을 배경으로 제작된 영상 설치 작품이다. 이태원은 조선 말기에는 일제가 식민지 통치를 위한 군사기지를 이 곳 용산에 두었고, 1945년 해방 이후에는 미군이 주둔해왔던 곳이다. 이후 제 3세계에서 온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 등 어느 지역보다 다양한 문화권을 형성한 장소가 되었다.「부자되세요」는 작가가 1년여 가량 이태원 곳곳의 모습을 찍은 영상과 사진 스틸 컷으로 구성된 작품이다. 그 영상 앞에는 오바로크가 새겨진 하늘하늘한 커튼이 설치되었다. 커튼 위에 새겨진 오바로크는 어느 식당을 방문한 유명 연예인의 사인들이 새겨져있다. 돌을 벌기 위해 자신 삶의 터전을 떠나 온 노동자들과 자신의 식당이 번창하기를 기대하는 식당 주인의 마음은 모두 같은 부자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또한 커튼 위에 새겨진 오바로크는 한 올만 풀어져도 순식간에 흔적조차 없이 사라진다. 이태원 문화가 그렇지 않은가. 여러 나라의 문화가 섞여 상이한 문화적 코드가 얽혀 있다. 이러한 곳은 어디에도 없을 뿐 아니라, 각기 고유한 문화는 어디와도 섞일 수 없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이태원 오바로크」의 영상 작품은 은색 천으로 제작된 우주복 같은 의상을 입은 남자 주인공과 두 여성의 퍼포먼스로 진행된다. 기록 영화 속 전투 장면을 뒤로 한 채 한 남성이 격렬하게 움직이다 쓰러진다. 이 후 두 여성이 등장하여 경건한 의식을 치르듯 경쾌한 음악에 맞춰 우산을 들고 춤을 준다. 이 작품은 전쟁과 평화를 풀어내어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위트 있게 꼬집고 있다. ● 김영섭의「갇힌 사람」시리즈다. 26여 년 간 교도관으로 근무하면서 작업한 작가는 돈, 권력에 의해 갇힌 사람들을 묘사하고 있다. 작품에 표현된 인간은 광기어린 흉악한 모습, 정신분열을 일으키는 듯한 표정, 공허한 인간의 모습 등 굉장히 불편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담 안도 담 밖 세상과 별 다름없다. 다만 인간들의 온갖 작태와 모습들이 좀 더 적나라하게 드러날 뿐이다." (김영섭) 우리는 보다 나은 삶을 위해 무수히 많은 경계를 지어 놓는다. 가령 교도소 안과 밖, 학교 안과 밖, 병원 안과 밖, 종교 역시 마찬가지로 타 종교인은 그들만의 사원에 들어갈 수 없도록 만든다. 더 넓게 생각해보면 국경이 그렇다. 내 나라 안과 밖, 이러한 인식으로 많은 이들이 소수로 분리되고 차별 속에 살아간다. 김영섭 작가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어떠한 틀 안에 갇혀있는지, 틀 밖으로 나가면 어떠한 큰 불이익을 당하고 살고 있는지를 한번쯤 자신을 돌아보고 우리 사회의 여러 모습을 생각해보길 바란다. ■ 박소화

백기영_잃어버린 고향_영상설치_00:22:00_2002
선무_탈출하라2_캔버스에 유채_190×520cm_2009 선무_우리를 보라3_캔버스에 유채_72×60cm_2010 선무_너_캔버스에 유채_72×61cm_2012

section2. REAL : 정주하지 못하는 삶 ● 인종이나 민족, 언어와 문화, 종교 등의 문제로 생겨나는 집단적 소수 민들 외에 강제적인 권력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사회적 약자, 다수가 아닌 소수가 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 있다. 전 세계적으로 근현대사에 있어 정치와 경제, 사회적인 목적을 위해 묵살되거나 은폐된 사건들이 과연 한두 가지뿐이랴. 대한민국이라는 작은 땅덩어리 안에서도 그러한 크고 작은 사건들에 의해 생겨난 소수 민들이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일제강점기의 종군위안부와 6.25전쟁으로 인한 피난민과 탈북민, 러시아로 강제 이주당한 고려인, 조국의 경제 발전을 위해 외화벌이로 나간 파독광부, 과도한 도시재개발 사업으로 인해 생겨난 철거민들 모두가 어쩔 수 없는 현실에 맞서 생존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조명해 본 소수민의 삶은 제 3자의 눈으로는 어떠한 삶이라 규정짓기도, 논하기도 어려웠다. 현실은 어둡고 탁하다. 이러한 논리가 모든 소수의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주어진 삶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에게 삶은 지나치게 잔인할 때가 많은 것 같다. 물론 어느 누구도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건 아닐 테지만, 무엇하나 자유롭게 선택 할 수 없는 삶, 그저 주어진 현실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으며 그들은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우무길_현장_콘크리트, 스틸_2007
우무길_City-Utopia_포멕스_2012

사회와 경제의 힘에 터전에서 밀려나는 사람들 ● 대한민국 「헌법」 제 14조, '모든 국민은 거주, 이전의 자유를 가진다'. 이는 원하는 곳에서 살다가 이사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한해 평균 1,000여 곳 이상이 도시개발이라는 명목 하에 철거를 당한다고 한다. 최소한의 주거권 보장조차 안 되는 무허가 판잣집과 비닐하우스들이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과 도시 개발을 위해 쓸려 나가고 있는 것이다. 하늘 아래 내 몸 하나 뉘일 곳이 없지만 죽지 못해 산다는 말, 살아있으니까 살아간다는 말이 와 닿는, 뼈아픈 현실이었다. 아직도 우리나라 곳곳에 3㎡도 채 안 되는(한 평 안팎의) 방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쪽방이라 불리는 이 방은 하나의 방을 여러 개 작은 크기로 나누어 겨우 한 두 사람 들어갈 크기로 만들어 놓은 방이다. 그동안 tv를 통해 보고 말로만 듣던 철거 촌이나 쪽방촌의 삶이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건축가이자 사진작가로 활동 중인 황순우는 인천 만석동의 '괭이부리말'이라 불리는 달동네 곳곳을 흑백사진으로 담아냈다. 겹겹이 겹쳐지어진 무허가 집들이 가득한 '괭이부리말'은 일제 강점기 식민지 노동자들의 합숙소이자, 한국전쟁 이후 분단으로 인한 피난민들의 해방촌 그리고 1960-70년대 농촌을 버리고 올라온 이농민들의 보금자리였다고 한다. 100여 년 동안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삶의 터전이 되었던 이곳이 2012년 8월 재개발이 확정되면서 주민들은 그야말로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다. 작가는 반년 이상을 그 곳 주민들과 함께 지내면서 철거에 저항조차 할 수 없는 사람들의 시선에 주목했다. 그들이 머문 공간과 그 자리에서 바라봤을 법한 풍경을 황순우는 안에서 밖을 내다보는 시점으로 프레임 가득 담아냈다. 나규환은 평택 대추리 미국기지 확장 반대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 용산참사 등 정부와 민간이 대립하는 현장에서 발견한 삶의 모습들을 다양한 예술 형식을 통해 재연해 냈다. 현장미술가로서 한국사회의 갈등이 가장 첨예하게 드러나는 장소인 집회나 시위 현장의 생생함과 절박함을 예술로 표현하고자 했다. 모판에 나무로 양손을 깍은 작품「대추리, 더 나은 보상을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는 미군기지 확장 이전문제로 마을을 내줘야 했던 대추리 사람들의 상황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 위기에 처한 현대인의 삶을 표현한 설치작품「당신이 쓰다버린 냉장고 아래 살아있습니다」는 냉장고를 뒤집어 쓴 채 서있는 사람의 불끈 쥔 두 주먹이 인상적이다. 현장에 없었다면 절대 상상 불가능한 투쟁의 모습들을 증거로 작업을 하는 작가는 이러한 이야기들이 누군가의 특별한 사건이나 지어낸 허구가 아니라 이 시대의 이야기이자 리얼한 팩트임을 알리고자 한다. 김승택은 중국 헤이차오라는 빈민촌의 풍경을 통해 철거를 기다리는 음울한 소시민들의 삶을 보여준다. 중국의 헤이차오(黑桥)는 베이징의 북동쪽 외곽에 위치한 빈민촌으로 우리나라 7-80년대 도시 빈민가의 풍경과 흡사하다. 이곳은 베이징 올림픽 때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도시 재개발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 동네이다. 마치 우리나라의 개발논리와 흡사한 듯하지만, '불법개조건축물을 철거하자'는 표어아래 자행되는 중국의 도시재개발은 그 규모가 더욱 스펙터클하다고 하다. 김승택은 중국 소도시의 특징으로 집 앞의 널브러진 세간물품들과 원색적인 대문, 간판들을 화면가득 그만의 표현방식을 통해 이미지화 시켰다. 또한 큰 마당을 중심으로 커다란 원을 그리듯 배치된 방과 건물들로 하여금 각자의 삶이 함께 공유되는 과거 삶의 풍경을 표현하고자 했다.

자우녕_텅빈 풍경_영상, 망사천_00:05:00, 100×100×100cm_2006 자우녕_후인마이의 편지1_영상_00:07:14_2010 자우녕_후인마이의 편지2_가변설치

유토피아, 그 아래 살고 있는 사람들 ● 복잡하게 설계된 육중한 입체 조형물은 작가 우무길이 늘 선망하는 유토피아의 모습이다.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이상의 나라 혹은 이상향을 일컫는 유토피아는 경북 봉화 출생으로 시골에서 자란 작가 우무길에게 잘 정돈된 도시세계를 의미한다. 작가는 하늘에서 내려다 본 도시의 정형화된 풍경을 유토피아라 칭하고 늘 동경해왔다. 갈수록 고도로 문명화된 사회에서 도시건축을 위해 자행되어온 대규모 개발사업과 재건축 그리고 재개발정책으로 세워진 도시의 모습이 점점 미래 지향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작가가 만들어내는 화려하고 멋진 작품에 투영된 현대의 도시풍경이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도시개발 이면에 감춰진 시대의 아픔과 많은 사람들의 희생 때문일 것이다.

황순우_Sky Bridge_젤라틴 실버 프린트_42×112cm_2012 골드 블랙 GOLD BLACK展_수원시미술전시관_2013

국가에 의해 터전을 잃어버린 사람들 ●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가치로 두고 있는 공리주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에 따른 도덕적 딜레마는 생각해본 적 있는가? 대다수 국민들의 행복을 위한 수단으로 소수의 사람들이 이용될 때가 있다. 이는 개개인 자체를 목적으로 존중하지 않고 소수의 희생을 인정하는 공리주의적 정의관이 작용되기 때문이다. 국가의 이익을 거대한 공익으로 생각하고 전쟁을 필요악이라 여기는 사람들에 의해 좌우되는 사회에서 위안부 피해 여성들과 피난민, 탈북민 그리고 열악한 경제상황을 타개하고자 외국으로 수출된 노동자들은 개개인의 선택이나 이익보다는 공공의 이익을 중시하는 국가권력으로부터 희생을 강요당한 소수 민들이다.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김지연은 연변지역에서 숨어 사는 탈북한 아이들을 만나 사진을 찍다가 TV에 나온 여성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을 통해 알게 된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된다. 이후 광주에 있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쉼터를 왕래하다 만난 박순덕 할머니의 처참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사진으로 담기 시작했다. 끊어진 다리 너머로 보이는 북녘 땅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 러시아에서 만난 고려인 노인들을 비롯해 작가 김지연이 기록한 사진의 주인공들은 전쟁으로 인해 상처로 물든 사람들이다. 그들은 역사 속 국가 권력으로 부터 어쩔 수 없이 희생당한 소수 민들의 모습이다. 21세기를 사는 지금까지도 자신들을 보듬어주지 못하는 국가를 원망과 그리움으로 품고 어느 곳에서도 완전히 정주하지 못한 채 떠돌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의 지난한 역사이자 또 다른 초상이다. 백기영의 작업은 독일 유학시절 만난 파독광부 이현균씨와의 만남에서 비롯된다. 파독관부는 1960년대 열악한 경제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한국정부에서 독일로 파견시킨 광부들을 말한다. 독일은 전통적으로 광산촌과 광부들을 위한 작은 정원문화로 유명하다고 한다. 탄광 속에서 힘겨운 육체노동을 해야 했던 광부들에게 정원은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데 이현균씨 또한 독일의 광산촌에 10년 넘게 한국 식물을 가꾸며 살아가고 있었다. 작가는 먼 타지에 자신의 잃어버린 고향을 재창조 하면서 고향에 대한 향수를 달래 온 이현균씨의 정원을 꼼꼼히 연구하고 촬영한 영상「잃어버린 고향」을 통해 독일을 제2의 고향으로 살아가는 동양인 광부의 삶을 애잔하게 보여주고 있다. ■ 김상미

Vol.20130722g | 골드 블랙 GOLD BLACK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