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보여짐

摄影, 被视展   2013_0627 ▶ 2013_0703

강엄_공기번데기_잉크젯 프린트_81×54cm_2013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강엄_김문선_김현민_김현태_남기정_박상희 박찬원_성희진_안명숙_이영욱_이정수_최병관_한소영

북경, 찡(镜, Mirror) 갤러리 北京市通州区宋庄镇小堡村尚堡艺术园区A座110号 镜画廊

사진'보여짐'그것을 의식하지 못하는 눈 ● 사진은 표면상 현실을 기계적으로 충실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디지털사진의 도래와 더불어 이러한 견해에 변화가 생겼지만 그럼에도 사진과 현실을 동일시하는 심리는 여전하다. 그래서 사진은 객관적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미지라 생각한다. 우리는 거울이미지에 자신을 투사한다. 그 시선은 엄밀히 말해서 작가가 바라본 시선과 사회가 쳐 놓은'의미'의 그물망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곧 작가의 존재를 잊어버리고 대상 속으로 금방 몰입한다. 하지만 그 몰입은 대상에서 반사된 자기투사 이미지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을 우리는 잘 보지 못한다.

김문선_Sapo 1_잉크젯 프린트_42.5×28cm_2013
김현민_Heart To Hurt_아카이벌 잉크젯 프린트_50×35cm_2012
김현태_Anxiety Disorder_젤라틴 실버 프린트_23×16cm_2013
남기정_그리고 남겨진 것들..._C 프린트_17.78×12.7cm_2012

그럼에도사진 너무도 분명한 것을 그러나 소리 내어 말하지 못하는 무능력. 그래서 의미전달을 위해 사진이미지에 반영된 텍스트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것을 읽어버리면 길들여진다. 그 순간 우리는 눈먼다. 더 이상 보지 못한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사진에'의미'를 고정시켜 보려한다. 그러나 이것은 정확히 보는 것이 아니다. 보이지만 결코 보지 못하고, 그저 사진에 쓰여진 코드(code)화된 텍스트를 읽는 것에 불과하다.

박상희_301號_잉크젯 프린트_9×24inch_2013
박찬원_Life 1_잉크젯 프린트_420×594cm_2013
성희진_Busykid-Sports Dance Academy_디지털 C 프린트_39×59cm_2012

보여짐 사진, '보여짐'은 단지 현실을 객관적으로 묘사하거나 재현한 사실에 있지 않다. '보여짐'은 이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으로 의미화 되기 이전의'날것'이다. 이것은 정확히 내가 보고 싶어 보는 것이 아니다. 어쩔 수 없이 보여지는 그 무엇이다. 사진 속에서 소멸하는 그 어떤 것, 그 무엇을 가슴이 아프도록 매혹적인 방식으로 빛나게 하는 것, 그러니까 사진의 침묵 안에서 음악적인 것, 관능적인 그 어떤 것이 끊어지지 않고 생성되도록 이어나가는 것이다. 사진에서'보여짐'이란 의도치 않는'눈 마주침'이다.'보여짐'이란 지금 여기에 없지만 존재했었던 것의 사라짐, 그'부재'의 현전을 힘없이 붙잡고 있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무기력 그 자체다.

안명숙_임진각1_피그먼트 프린트_70×70cm_2012
이영욱_봄날, 이상한 도시 산책_디지털 아카이브 프린트_60×90cm_2013
이정수_After of Babel_잉크젯 프린트_120×150cm_2012

망각 우리는 사진이 부재의 현전과 달라붙어있다는 것을 보지 못하고 또 익숙해져 있다는 사실을 쉽게 망각한다. 의미를 간파할 수 없는 낯선 사진을 만났을 때 우리는 불안하다. 따라서 본능적으로 객관적 표상체계의 기억들을 불러내어 익숙함으로 그 불안을 잠재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현실을 망각하고 사진에 속게 되는 이유다. 사진은 여행자의 안내서 같지만 종종 의도치 않게 길을 잃게 만들고 본이 아니게 속인다. 사진은 도도하다. 초연하고 쿨 하다. 사진은 결코 친절하지 않다. 보는 사람을 망각에 빠트리고 눈멀게 한다.

최병관_Bamboo White Series 1_아카이벌 잉크젯 프린트_100×100cm_2007
한소영_시야 밖 Unseen_잉크젯 프린트_70×70cm_2012

여기, ● 사진예술가의 시선은 결코 여기에 만족할 수가 없다. 작가들은 그 '보여짐'의 망각을 보고 존재를 인정하고 즐기는 자들이다. 그들은 종종 의도적으로 낯설게 보여주는 방식을 취한다. 그것은 '보여짐'의 목소리를 들려주기 위함이다. 의도적인 낯섦의 전략을 취하고 있는 작가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단지 사진의 의미를 객관적 정보차원에 두지 않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발화된 사진은 자신과 세상에 숨겨진 모습을 드러낸다. 『사진, 보여짐』전은 우리의 기억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하다. 익숙하지만 의도적인 낯섦은 다른 세계에서 날아온 이미지들이다. 내가 경험하지 않은 세계 밖에서 온 사진이미지를 만났을 때 사진은 매혹적이다. 한국의 정서와 문화는 분명 중국과 다른 것이고 또한, 사진은 '무언가?'를 증거 하지만 정작 '말'이 없기 때문에 자의적 해석이 가능하다. 중국관객들이『사진, 보여짐』전을 보고서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한국의 모습과 다르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 사진이미지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대단히 가식적이다. 그것은 사진에 찍혀진 대상에 어떤 포즈를 취하도록 강요하는 것이다. 그것은 눈멀게 한다. 사진예술에 '의미'를 고정시키는 것은 그래서 불필요하다. 사진은 답이 없는 숨바꼭질 같다. 그러나 누구나에게 술래잡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사진, '보여짐' 그것의 매혹은 망각된 것의 존재를 인정하고 즐기는 일이다. 똑바로 볼 수만 있다면, '보여짐'의 그 비밀에 속삭임을 듣는 일이다. ■ 이영욱

Vol.20130627b | 사진, 보여짐(摄影, 被视)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