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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Steps Gallery 東京都 中央区 銀座4-4-13 琉映ビル 5F Japan, Tokyo-to, Chuo-ku, Ginza, 4丁目4−13 琉映ビル 5F www.stepsgallery.org stepsgallery.cocolog-nifty.com
不可能하다는 것은 不可欠하다는 것-金正喜의 『美·欲·物』에 붙여 ● 일본과 한국은 이웃나라면서도 완전히 다른 역사를 가지고 가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양국을 보면 마치 미국의 속국과 같이 그 영향권에 들어와 있다. 미국은 정의라는 이름 아래 끊임없이 무력을 정당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본래의 민주주의 의식은 사라지고 권위주의와 자본주의만을 숭배하는 나라처럼 되어 버렸다. 김정희는 그런 시대의 흐름을 외면하는 것도 비하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마주 보고 「美・欲・物」을 주제로 철저히 현대미술의 방법적인 수법에 근거하여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 주제인 그릇이라고 하는 존재가 완벽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이유는, 인류의 발생과 동시에 만들어지고 사용 되었다는 점에 있다. 그릇은 이미 문자로도 문화 그 자체를 상징하고 있다. 인류가 지금까지 경험을 했던 적이 없는 많은 인명 피해를 기록한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유럽에서는 현대미술이 탄생하였다. 예술가들은 기존의 가치관을 극복하기 위해 창세기 이전의 엘리트먼트「 水・光・土」에 도달했다(R.하우스만 /H.아르프). 김정희의 그릇에는 이 같은 사상이 담겨 있다. ● 김정희는 지지체로 골판지를 선택하였으며 그 위에 우레탄 페인트로 착색을 한다. 1910년대의 M·뒤샹의 변기, 50년대의 R·라우센버그의 폐기물만큼이나 의미를 두고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은, 골판지라는 것 자체가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는 물체이기 때문인 것이다. 이 골판지라는 것은 특별히 귀한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쉽게 버려지는 물건도 아닌 항상 쉽게 새로운 역할을 반복하는 이름 없는 존재라고 하는 점에 있다. 그것은 자본주의 사상의 중심에 있는 「우리는 매춘부와 같이 한 사람 한 사람이 상품으로서 존재한다.」는 W·벤야민 사상과 지나치게 닮아 있다. 김정희는 그리는 것이 아니라 세게 긁어내는 것에 의해 주제를 드러낸다. ● 착색되어진 종이가 마치 피부와 같이 벗겨지고 애처롭게 그 속을 드러내고 있다. 그것은 우리에게 상처를 상기시킨다. 일본어에는 신체의 「상처 傷(상)」, 보석의 「옥의 티 瑕(하)」, 그릇의 「흠 疵(자)」라고 말하는 세 개의 한자가 존재한다. 김정희의 작품에는 이 세 개의 요소 모두가 포함되어 있다. 즉 그의 작품은 원초적 문화라고도 할 수 있는 그릇이기도 하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당신 자신의 육체이기도 하다. 또한 예배(礼拝)(이 글에서 사용되고 있는 "예배"는 모두 W. 벤야민의 『복제 기술 시대의 예술』 에서 사용되는' 전시가치 ' 에 대한 '예배가치" 로부터 인용되고 있다. 벤야민은 '종교로서의 자본주의 '(1921년)에서 "예배가치는 자본주의이다. "라고 명시하고있다.) 와 패티쉬(fetish)(마루야마 케이쟈부로(丸山 圭三郎 )의 『문화의 페티시즘 』(1984년), 혹은 J.보드리야 『소비사회의 신화와 구조』(1970년)를 전제로 하고 있다. 여기에 페티쉬를 "상징"으로 인식 할 수 있다.)가 교차하는 보석과 같은 가치까지도 혼재되어 있는 것이다. 현대 미술의 역할에는 한편 다음과 지적이 있다.「소비물에 있어서 그 생산과 과정은 잊혀지고 있다. 물건을 교환하는 인간은 소비물을 만들며 그 물건에 포함되는 노동이라는 가치를 보이려하지 않는다. 그러기 위해서 소비물의 외관을 중시하고 있다. 예술의 자율성의 기원은 노동의 은폐에 있다.」(R.아도르노) ● 한편, 예술에서 보면 기존의 권위나 질서를 날려 버리고 이에 맞서며, 인간이라는 자체에 의미를 두는 작업이 있다. 김정희는 자본주의를 긍정하거나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냉정하게 작품으로서 이를 현재화하고 있다. 우리 또한 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상황을 피할 이유는 없다. 김정희와 같이 모든 것을 받아 들여 그것에서부터 스스로를 시작하는 자세를 가져 보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한다. 불가능(不可能)하다고 생각되는 것이 가장 가치 있고 의미 있다(不可欠)는 것, 이것이 현대 미술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 미야타 테츠야
金正喜 2013 美·欲·物 ● 1. 겉만 보고 예쁘다 한다. 예쁜 걸 어쩌란 말인가? 그만큼 겉이 중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2. 존재하는 모든 것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것이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오직 사물의 표면에 달라 붙어있는 욕망의 숫자에 의해 귀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구별될 뿐이다. 3. 표면=겉 1_사물의 표면 2_욕망으로 덮여 있는 표면 3_표면을 위한 표면 4_표면을 걷어내면 진솔한 실체는 존재하는가? 5_진솔함을 감추기 위하여, 보호하기 위하여 위장하고 있는 것인가? 4. thing 物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 -인식되어 지는 것 -작품에서 보이는 재료나 이미지 심지어는 작품까지도 모두가 物이다. -인식되지 않는 것은 없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인식되지 않고 존재하는 것은 없는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무엇인가? 5. 참 열심히 그린다.(긁는다.) 열심히 긁느라 어디까지 긁었는지 모른다. 긁다 보니 경계 지점까지 갔는가 보다. 상처 같다. 그 상처로 아름다운 형상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그 형상이 상처 받은 것 같기도 하다. 6. 나의 작품에서 이미지는 껍데기이다. 그러기에 보는 시각에 따라 달라 보일 수 있다. 이런 경우 우리는 흔히들 본질이라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 한다. 그러나 본질로 판단되는 것이 얼마나 될까 의문이다. 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 +1+1+1+1+1+1+1+1+1+=1, 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 예술의 근본정신은 선비정신이다. 예술이란 기술의 습득, 보존, 전승이 아니라 끊임없는 탐구와 성찰의 수신이 동반되어야 한다. 수신이라는 것은 나를 아는 것이며, 그것은 나를 버려 세상과 화합하고 소통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어떤 부귀나 출세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존재가치인 자신을 완성해 가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선비정신이며 예술정신이 아니겠는가. 나도 예술가의 한 사람으로서 동시대의 질서와 개념을 탐구하고, 남들과는 다른 시각과 상상력으로 나를 자극하고 수신을 통한 진화를 계속하였으면 한다. 이러한 생각을 늘 한다는 것 또한 나의 사적 욕망이며 그러기에 수신은 나의 긍정적 욕망이라 생각해 본다. 개인의 욕망을 바탕으로 주변의 열망과 사회 전체가 안고 있는 희망이 조화를 이룬다면 그것이 세상을 발전시키고 지탱하는 힘일 것이다. 작은 하나하나가 모여 큰 것을 이루며, 그 커다란 것은 작은 하나하나에 힘이 되어 주기도 한다. 그것이 우리이며, 우리의 사는 모습이 아니겠는가. 2013. 여름. ■ 김정희
不可能であることが不可欠であること-金正喜 『美·欲·物』 ● 日本と韓国は隣国でありながらも全く異なる歴史を携えているのだが、今日では米国の属国として並行した道程を歩んでいる。米国は正義の名の下に果てしない暴力を繰り返し、最早民主主義は失われ、権威主義と資本主義を礼拝する国と化した。金正喜はそういった時代の遂行に目を背けるのではなく、卑下することもなく、むしろ積極的に向き合って「美・欲・物」を主題として制作を行う。それは徹底的な現代美術の手法に基づいている。● 主題である器という存在が完璧な美しさを誇る理由は、人類の発生と同時に生まれた点にある。器は、文化そのものを象徴しているのだ。人類がこれまで経験をしたことがない大量殺戮が行われた第一次世界大戦を通過して、ヨーロッパでは現代美術が誕生した。芸術者達は既存の価値観を乗り越えるために、ギリシャ以前のエレメンツ「水・光・土」に到達した(R・ハウスマン/H・アルプ)。金正喜の器には、このような思想が隠されている。● 金正喜は支持体に段ボールを選び、ウレタンペンキで着色する。1910年代のM・デュシャンの便器、50年代のR・ラウシェンバーグの廃棄物以上に衝撃が走るのは、段ボールが卑近な道具であることよりもむしろ、礼拝されることも破棄されることもなく、再生を繰り返す無名者という点にある。それは資本主義の中で「我々は売春婦のように一人一人が商品として存在する」(W・ベンヤミン)事象と酷似する。● 金正喜は描くのではなく引っ掻くことによって、主題を顕わにする。着色された紙が、まるで皮膚のように痛々しく捲られる。それは傷口を想起させる。日本語には身体の「傷」、宝石の「瑕」、器の「疵」という三つの漢字が存在する。金正喜の作品には、この三つの要素全てが含まれている。即ち作品は原初的な文化である器でもあり、今日に生きている己自身の肉体でもあり、礼拝とフェティッシュが交差する宝石の価値までもが混在するのである。現代美術の役割に、一方で以下の指摘がある。「消費物においてはその生産の痕跡は忘れられるべきものなのである。交換する人間は消費物を作ったのではなくその物の中に含まれる労働を領有したのだということを顕わにせぬために、消費物には、そもそもがもはや作られたものではないかのごとき外観をもたせねばならないからである。芸術の自律性の起源は、労働の隠蔽にある。」(T・アドルノ)● 他方で、近代までの既存の権威を玉座ごと吹き飛ばし、人間が人間であることを確認し、対峙する作業がある。金正喜は資本主義を否定することなく、冷静に作品として顕在させる。我々もまた、この状況の最中にいる。しかし逃走する必要はあるまい。金正喜と同様、総てを受け止め、そこから自らを開始すればいいのだ。不可能であることが不可欠であること。それが現代美術の姿でもあるからだ。 ■ 宮田徹也
金正喜 2013 美·欲·物 ● 1. 見掛けだけ見てきれいだと言う。きれいなのをどうする。あれほど見掛けが重要な時代に生きている。2. 存在するすべてのものは価値を持っている。それがいくらつまらないことでも... ただ事物の表面に付いている欲望の数字によって尊いこととそうではないのが区別されるだけだ。3. 表面=見掛け 1_ 事物の表面。2_ 欲望で包まれている表面。3_ 表面のための表面。4_ 表面を取り除ければ 真率な実体は存在するか。5_ 真率さを隠すために, 保護するために偽装しているのか。4. thing 物 -世の中に存在するすべてのもの。-認識されること。-作品で見える材料やイメージはなはだしくは作品まですべてが物だ。認識されないことはないことと同じだ。それなら認識されないで存在することはないか。あることとないことの差は何か。5. 本当に熱心に描く(掻く.) 沒頭して掻いたらあくまで掻いたのか分からない。掻いたら境界地点まで行った。傷みたいだ。その傷で美しい形象が作われたり, その形象が傷を受けたようでもある。6. 私の作品でイメージは殻だ。それで見る視覚によって違ったように見えられる。こんな場合私たちはよく本質というのが重要だと言う。しかし本質で判断されるのがどれぐらいか疑問になる。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 +1+1+1+1+1+1+1+1+1+1+=1 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 芸術の根本精神は士精神だ. 芸術とは技術の習得、保存、伝承ではなく絶え間ない探求と省察の。修身が連れされなければならない。修身というのは自身を知ることであり,それは私を捨て、世の中と和合して疏通することでもある。またどんな富貴や出世のためではなく一つの存在価値である自分を完成して行くことであり, それがちょうど士精神で芸術精神ではないのか。私も芸術家の一人として同時代の秩序と概念を探求して, 他人達とは違う視覚と想像力で私を刺激して修身を通じる進化を続けたいと思う。このような考えを常にするということも私の私的欲望でそれでは修身は私の肯定的欲望と考えて見る。個人の欲望を土台で周辺の熱望と社会。全体の抱いている希望が調和を成したらそれが世を発展させて支える力だと思う。小さな一つ一つが集まって大きいことになって, その大きいことは小さな一つ一つに力になってくれたりする。それが私たちであり, 私たちの姿ではないのか。2013. 夏. ■ 金正喜
Vol.20130624b | 김정희展 / KIMJEONGHEE / 金正喜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