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혹,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들

이완_이혜인_장성은_전소정展   2013_0620 ▶ 2013_0721 / 월요일 휴관

이혜인_매혹,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들展_갤러리 잔다리_2013

초대일시 / 2013_0620_목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주말_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잔다리 GALLERY ZANDARI 서울 마포구 서교동 370-12번지 Tel. +82.2.323.4155 www.zandari.com

'예술'이란 다양한 차원에서 거울의 매혹에 의한 자기 인식의 과정과 다르지 않으며, 이로써 지각 이전의 보이지 않는 것들을 드러낸다. 표면적 현상 이면의 것들이란 한 사회나 문화의 근본 구조나 조건을 틀 지우는 요인들, 또는 각각의 개별적 존재나 대상의 상실된 자아이거나 본질이다. 나아가 예술에 대한 이런 인식은 여러 담론들의 뒷받침 하에 지속적으로 논의되고, 또 지지되어 온 것으로 그다지 새로울 게 없는 듯 보여질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술에 대한 그렇듯 비교적 익숙하다고 할 수 있는 일정의 기대들이 실제로 좌절되지 않고 오롯이 실현되기란 언제나 쉽지 않다. 무엇보다 그것을 위해서는 미적 객관이 필요할 텐데 이 진정한 예술적 자율성, 한 걸음 더 밀고 나가 랑시에르(Jacques Ranciere)를 빌면 순수한 중간상태에 이르기 위해 이른바 '감성의 분할 Le partage du sensible', 즉 감각의 질서를 지배하는 잠정의 원칙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이란 거의 가능한 일이 아닐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혜인_pläterwald Berlin-snow, 2012.12.22, 15:40~16:00_캔버스에 유채_24×18cm_2012

"일상적 사물들과 행동들 뒤에 있는 자본의 기호들을 보도록 권유하는 비판적 예술은 그 자신이 세계의 영속성에 참여할 위험이 있다. 세계의 영속성 안에서 사물들의 기호로의 변형은 해석적 기호들을 더욱 초과시키고, 이것은 사물들의 모든 저항을 소멸시킨다." (자크 랑시에르, 『미학 안의 불편함』) '관계적 예술'의 경향에 대한 논의는 그에 대한 좋은 예시를 제공해준다. 이의 적지 않은 경우들이 미리 조건 지워진 외적 상황의 강제(보이지 않는 구조나 권력)에 따른 '자발적 동기'의 왜곡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탓이다. 미술가가 자신의 미적 행위로써 비판하거나, 폭로하고 있는 구조나 대상에 오히려 동참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꼼꼼히 돌아보지 않는다면, 자신도 모르게 그런 상황 안에 스스로 갇히게 될 확률이 높다. 이런 점에서 예술가에게 한결같이 요구되어야 할 하나의 덕목을 꼽는다면 아마도 그것은 '직관'과 '이성'의 균형을 지켜낼 수 있는 사유의 힘과 의지가 되어야 한다.

이완_당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가상의 기준선 A Hypothetical base line in your inner side_ 단채널 비디오_2013

그것이 바로 무수한 질문들의 꼬리를 집요하게 붙들고, 각각의 예술 행위가 뿌리 내리고 있는 근원적 인식과 세계관을 일관되게 천착하고, 추궁해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인 탓이다. 따라서 이 내적 긴장이 미리 얻어졌을 때라야 비로소 예술가는 자신의 미적 자율성의 순수성이 외부의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퇴색되는 것을 어느 정도라도 막아낼 수 있게 된다. 그런 점에서 그것은 자연스레 '작가적 태도'라는 틀 안에 수렴된다. 또 바꿔 말하면, 하나의 예술행위를 감상하고, 판단하는 기준의 문제로 이어진다. 거기에는 예술에 대한 단 하나의 보편적인 미학의 원리란 애초에 가능하지 않거나 요구될 수 없다는 전제가 깔려있는데, 그랬을 때 미적 판단의 일차적 기준은 예술가가 작가적 삶과 행위로써 끌어내고 있는 질문과 작업 과정 자체에 있게 된다.

이완_서로 상반된 일관성에 대한 물리적 상태 Physical state about opposite consistency_ 오브제, 무게 맞춤_2013 이완_불가능한 꿈 Impossible dream_풍선_2013

같은 맥락에서 의미 있는 질문을 찾고, 또 제시하는 일이 곧 예술 그 자체일 수 있는 것이다. 더욱이 이는 예술 외의 사회나 문화 전반에 걸쳐 확장되는 것으로, 오늘날 전세계에 걸쳐 일고 있는 시대적 패러다임(사유의 본질적 구조) 자체에 대한 근원적 성찰의 요구들과도 궤를 같이 한다. 그래서 이 질문들이란 직접적이든 아니든 사유의 방식 자체를 반성하는 일이고, 어느 한 분야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볼 때 아감벤이나 지젝이 '예외 상태' 내지 '불가능한 것' 등의 개념으로 인간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지적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면서 사유의 방식 자체에 대한 회의를 우선적으로 강조하고 있음은 예술의 안과 밖의 차원에서 폭넓게 눈 여겨 봐야 할 대목이다.

전소정_Threeways to Elis_bothside printed on vertial curtain_60×80cm_2010

이번 전시 "매혹,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들"에 참여하는 4명의 작가들은 사진, 설치, 영상, 회화 등 다양한 매체를 기반으로 현상 이면의 구조나 조건을 틀 지우는 체계들을 가시화하고 또 그에 대해 일련의 질문들을 던진다. 거기에는 형식에 앞서 자발적 동기에 의한 보편적 자아로의 확장을 시도함으로써 일정의 구조 지워진 틀을 반성하고, 장인적 노동의 '통상성'과 예술의 '예외성' 사이의 미묘한 경계를 넘나들며 예술의 본질적 조건에 대한 재사유와 고민을 시도하려는 의지가 담겨 있다. 또 다른 한 편으로 불특정의 공간이나 대상에 대해 물리적, 심리적 관계 형성의 방식을 다시 설정하고, 또 '불가능 한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구조적 모순의 체계를 가시화한다.

전소정_매혹,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들展_갤러리 잔다리_2013

그들이 던지고 있는 질문들이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판단 하는 일은, 앞서 밝혔듯이 각 미술행위에 스며 있는 작가적 태도가 그 기준이 된다. 그런데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이것이 구체적 담론이나 방향성에 대한 지시적이거나 명확한 입장을 요구하는 차원이 아니라는 점이다. 여기서의 '작가적 태도'란 직관과 이성의 균형을 잃지 않기 위한 자기 검증의 의지를 무엇과도 타협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넓혀보면, 각 예술행위는 곧 그 주체가 발 담그고 있는 사고와 인식의 근원을 드러내는 일, 곧 미술가나 감상자 자신에 대한 재인식의 과정으로 환원된다.

장성은_Flowerpot_라이트젯 프린트_120×80cm_2009
장성은_매혹,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들展_갤러리 잔다리_2013

그리고 각자의 방식으로 던져진 질문들에 대한 답은 도둑 맞은 편지의 그것처럼 아주 단순하고도 가까운 곳에 자리하고 있을지 모른다. 어쩌면 거울을 들여다 보는 것은 아주 명확한 수수께끼를 푸는 일이며, 또한 그렇기에 자기 함정에 빠지기 쉬울 수 있다. 그래서 접근하는 방식에 따라 거울의 매혹 뒤에 감춰진 보이지 않는 것들은 지속적인 자기 상실을 야기하는 미궁의 연속일 수도 있고, 일상의 어떤 체험들처럼 너무 현실이어서 오히려 현실적이지 않은 것으로 보이기까지 한 단순한 무엇일 수도 있다. 끝으로, 이 복잡하고도 단순한 미로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 필요한 일이란 다시 스스로의 관점 자체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 윤두현

Vol.20130623d | 매혹,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들展

2025/01/01-03/30